처음으로 완성한 인물의 얼굴
남자는 계속해서 조커의 얼굴을 그려갔다. 조커의 얼굴을 그리며, 남자는 그동안 배웠던 모든 것이 다시금 조금씩, 조금 더 높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은, 이렇게 많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나. 새삼 남자는 사람의 얼굴에 대해 경탄했다.
입의 주름만 하더라도 단 하나가 아니라 수 많은 주름이 있었고, 주름은 입에도 있었고, 코에도 있었으며 눈썹 근처에도 있었고, 이마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든 접히는 부분의 피부에는 주름이 있었는데, 문득 남자는 이번에는 상반신만 그려서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목에도 주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는 또 어떤지. 귀의 모양에 따라 명암을 넣을 때, 남자는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렇게 귀를 자세히 본 적이 있었나. 남자는 다음부터 사람의 얼굴을 볼 때에는, 조금 더 귀를 자세히 관찰하기로 했다.
머리칼은 이번 그림의 백미였다. 남자는 머리칼 하나에 도대체 몇 개의 선을 그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계속해서 선이 그려지고, 이어지고, 모양을 갖추고, 곡선을 넣었다. 특히나 머리칼은 어떤 머리카락도 직선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머리칼을 그리자니..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남자는 그림이라는 것은. 선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의 노동이라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노동을 좋아했다. 몸을 움직여 정직하게 무언가를 얻는 것. 남자는 이제야 예술이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실제적인 것을 알았다. 아. 물론 현대미술이라는 것은...남자가 아직 이해하기는 너무 먼 세계에 있었다.
결국 남자는 조커의 얼굴을 완성했다. 장장 삼 주일에 걸친 작업이었다. 남자는 완성된 조커의 얼굴 그림을 보고. 정작 자신이 그린 그림인지 의심했다. 분명히 모든 선이 남자의 손으로 잡은 연필에서 나왔고, 지워진 선들은 남자가 든 지우개로 지웠지만. 이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는게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의 그림은 아주 멋졌다.
"자. 이제 소묘가 끝났습니다. 성호 씨."
선생님이 남자의 곁에 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멋진 졸업 작품이네요. 축하해요."
라고 덧붙여 주었다. 남자는 쑥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커 그림을 같이 선생님과 보면서, 사진을 찍었을 때, 남자는 드디어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라고 생각했다.
소설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완성시키고, 새로 생긴 꿈.
'멀라이언 스노우볼'의 표지를 내 손으로 그려보겠다는 꿈.
남자는 그 꿈의 크기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 조커의 얼굴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을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비록 모작이지만 이렇게 멋진 그림도 그렸는데. 이제는 할 수 있을 거야. 나를 믿어보자.
나는 이제 그림을 어느정도, 아니 잘 그려.
"네. 선생님. 이제 드디어 물감으로 넘어 갈 때가 된 것 같아요."
선생님이 가볍게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이제 크게 물감이 세 가지가 있는데. 유화, 아크릴 물감, 수채화가 있어요. 제 생각에 성호씨는 아크릴 물감이 어울릴 것 같아요."
"아크릴이요???"
"네. 아크릴 물감은 일을 하고 와서 그림을 그리는 성호씨에게 적합할 거에요. 유화처럼 물감이 마르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고, 가격도 조금 저렴한 편이고, 수정도 쉬운 편이에요. 그리고...성호씨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냥요."
"그냥이라..."
남자는 선생님을 믿고, 아크릴 물감으로 하겠노라고 했다. 선생님은 남자에게 필요한 도구들(그림을 그릴 크기에 맞는 캔버스와 붓, 물감, 그림 팔레트 등이었다)의 목록을 알려주었다. 남자는 도구들의 목록을 핸드폰에 입력하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그림에 이름을 적고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조커의 그림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자. 여기까지가 남자의 소묘 편입니다. 이 매거진에서는 제가 미술학원에서 원래 기본과정이었던 소묘 과정. 원래는 8주 예정이었으나 제가 다소 그림을 배우는 속도가 더딘 관계로 약 11주에 걸쳐 소묘를 배운 과정들을 매거진으로 써내보았습니다.
저는 미술학원을 다닌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만해도 정말 진저리치게 싫었던 미술이었는데, 취미로 이렇게 성적 압박도 받지않고, 누군가의 지적도 받지 않으며 차분하게 그림을 그리니, 정말로 좋았습니다. ^_^ 그림을 그리다 힘들면 잠깐 쉬고, 맛있는 것도 사와서 학원 원생분들과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수다도 떨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커의 얼굴은 정말 저에게 큰 인생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의지가 있고, 뜻이 있고, 행동하는 실천이 있다면 어느정도는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음 매거진은 이제 제가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들의 매거진입니다. 이번 소묘는 모두 모작이었으나,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모두는 제가 스스로 이미지를 상상하여 그린 그림들입니다. 소묘도 정말 즐거웠지만,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한 모든 그림들을 그릴 때, 정말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럼 다음 매거진으로 뵙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