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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y 03. 2017

바다로부터 바다로 -1-

이어지는 꿈

남자는 바로 다음 그림에 착수하기로 했다. 열정이 꺼지지 않았을 때,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었고 소설 표지를 하나 그렸는데 두 번째는 그리지 못할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 와중에, 남자는 회사를 결국 퇴사하게 되었다. 비오는 어느날, 까칠하기로 유명한 협력업체에 가서 회사의 물건을 회수해 오는 것이었다. 남자는 협력업체의 건물 앞에 차를 주차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비가 워낙 많이 오고 있었고, 우산을 챙겨오지 않은 탓에 그 잠시에도 남자의 옷이 제법 젖었다. 물기를 털어내며 협력업체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의 싸늘한 눈빛이 날아왔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에 어떤 감정이 있어야 저런 눈빛을 할 수 있는 걸까. 남자는 들어가서 회수할 물품들을 체크했다.

서류를 가득 채운 종이 박스 네 개에 복합기 하나였다. 종이 박스는 어찌 든다 하더라도, 복합기는 남자 혼자 들기에는 꽤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협력업체 직원들은 남자는 뒷전이었고 자기들끼리 히히덕대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바쁜 듯해서, 남자는 도움을 요청 할 수 없었다.


결국 남자는 복합기에 거의 끌려가듯 옮기며 차에 도착했다. 이제 남자는 제법 비를 맞아 옷이 꽤나 축축했다. 아. 이런 몰골로 사무실로 들어가면 혼날텐데, 남자는 한숨을 쉬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 남자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상사였다.

"야. 너 어디냐?"

"지금 짐 다 싣고 출발하려고합니다."

"야이 새끼야.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거기있어?"
"네..? 아..지금 비가 와서 도로도 막히고 사람들이 안 도와 줘서..."

"빨리 빨리 다니라고 했잖아. 지금 니가 사무실에 없으니까 내가 니 몫하느라 일을 못하잖아. 빨리 복귀하란 말이야."

그 때, 남자의 머릿속에서 뭔가 뚝-.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참아 왔던 모든 인내심이 끝나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배터리를 빼고, 회사로 차를 몰았다.

차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남자는 복합기를 거의 밀다시피 해서 사무실로 향했다. 중간에 만난 막내 직원은 남자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 탓인지 무거운 복합기를 들고 낑낑거리는 남자를 쳐다보고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혼자 복합기를 사무실로 옮긴 남자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 부로 퇴사 하겠습니다."


남자는 새로운 캔버스를 사서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마음은 편하지만, 이번달 월급이 나오고 나면 돈이 들어올 일이 없었다. 퇴사가 후회스럽지는 않았으나, '멀라이언 스노우볼'이 출판사들에게 퇴짜를 맞고, 모든 공모전에서 탈락 했기 때문에 어떻게 든 돈을 벌 궁리를 해야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에도 돈이 필요했고, 사람답게 살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꿈과 현실, 모두에 발을 딛고 살고 싶었다. 


이번 그림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표지였다. 남자가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연습삼아 써본 중단편 소설이었다. '바다로부터 바다로'. 그 소설중에 주인공과 아버지가 바다속에서 조우하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다. 남자는 선생님에게 컨셉을 설명하고, 조언을 듣고 붓질을 시작했다.






남자는 일단 검정색과 푸른색을 섞어 캔버스를 칠해 나가기 시작했다. 바다속에는 해류가 흐르고 있을 것이기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표현하고자 붓을 놀렸다. 또 바다는 밝은 부분도 있고, 어두운 부분이 있을 것이기에 듬성듬성 물감을 적게 바르자, 바탕이 되는 캔버스의 흰색이 조금씩 드러나 생각처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는 해류가 완성되었다. 


푸른색을 가득 채운 남자는, 밑 부분은 흰색으로 칠했다. 작중 주인공은 사고를 당해 잠시 바닥에 누워있게 되는데, 그 부분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바닥을 칠하고 나서 주인공이 떠 있는 위치인 빛의 기둥과, 주인공의 형태를 그렸다. 남자는 다시금 사람을 그리며 사람이 제일 어렵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미술학원을 나서며, 길거리를 다니는 남자들을 조금 더 주의깊게 바라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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