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ho Frendly...
'인생의 바구니에서 비워지는 것이 있으면 또 채워지리라'라는 명언을 실감하면서 사는 시간이다.
'자연의 위대함은 항상 인간을 놀라게 만들며 때로는 그 위대함과 경의로움에 머리가 숙여진다.'
방콕에서 푸껫으로 가는 동안 날씨도 기분도 약간은 을씨년스러웠다. 우기철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운전을 조심하면서 내려가야 갔다. 예전에는 삼일 비가 오면 하루는 화창했는데,,, 따뜻한 비는 며칠을 연속해서 내리고 구름만 보였다. 기후 변화는 점점 빨라지고 지구 온난화도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겠지... 거리의 풍경이 새삼 예전같이 않은 게 아쉽다. 수도인 방콕만 복원이 빨리된 느낌이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은 일들을 지나 차게 염려하는 '걱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나 자신을 몰고 갔다. 그나마 신체를 움직이는 운동이 장시간 습관화되어 있었기에 우울증이나 불면증은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자주 뇌리를 스치는 불안증은 결국 신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건강 검진의 결과가 2년 안에 극도로 차이가 났던 이유는 '급성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만성이 되기 전에 빠져나와야 했다. 운동의 소염효과를 얻지 못하는 대신 또 다른 면역체계를 만들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연구에 의하면,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건강에 대한 염려증 때문이고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불면증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3년 동안 따라다니던 만성 불안증이란 놈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백신'의 효과가 시간이 지나고 효과를 드러낸 모양이다. 마음의 근육이 면역을 키운 것이겠지...
나는 남편과 함께 짐을 챙겼다. 팬데믹 바로 이후의 세상을 돌아보고 싶어서였다. 생각의 정리와 마음의 균형이 자리를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웃는다.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코로나 기간 동안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였고, 이 사람들은 지금부터 일을 한다. 사람은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평생을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그동안 고생한 나의 심신에 대한 배려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나는 장거리 여행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하였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 첫날부터 나는 외쪽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보조석에 앉질 못하고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했다. 차량(태국은 영국식 문화를 따라 운전석의 방향이 오른쪽이다)의 문을 열고 내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여행 도중에 나는 남은 약봉지를 길에 던질 수 있었다. 당분간 운동을 자제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둘째 날부터 서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내 몸을 안다. 곧 회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짜이엔엔 나카!
달리기는 항상 변하지 않는 내 인생 동반자다. 견디기 힘들 때도, 행복할 때도,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여행 기간 동안 서서히 내 인체의 자율 신경계는 예전의 리듬을 되찾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약의 '플라세보 효과'였을까? 참으로 신기하다. 그로부터 2주 후 숙소에서 요가와 야외 운동에 시간을 더 많이 집중했고 자외선 흡수와 멜라토닌 분비에 신경 썼다. 여행 중에 오히려 하기 쉬운 명상요법이 많다. 자연식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키자 점차 공복 혈당은 없어지고 두통도 사라졌다. 빨리빨리의 심리적 압박(?)에서 탈출되니 나의 삶에 몰입도가 높아지고 뇌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습관에 길들여진 뇌는 '빨리빨리의 삶'을 극단적으로 거부하였고 추운 환경을 견디지 못하였다.… 차가운 날씨에서 일단 벗어나니 근육 경직이 풀리면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안정이 되는 느낌이 왔다.
자연 속, 숲이 많은 환경에 노출이 되면 인체는 평소와 다른 호르몬을 많이 분비하여 수면을 돕게 되고 수면의 질이 높아지면 자연면역 체계가 강해지게 된다는 보고가 있다.
방콕에서 푸껫까지는 약 830km 차로 운전하면 11시간 40분 정도 소요 거리이다. 국내선 비행기로 약 서울- 부산 거리인데 방콕과 치앙마이도 비슷한 거리다. 푸껫에서 치앙마이는 1.514km (차로 약 20시간 40분 소요)이다. 일단, 방콕-푸껫-방콕-파타야-방콕-치앙마이-빠이-방콕, 이런 순서로 여행이 계획되었다.
돌아보면 , 직업의 핑계로 10년 이상을 이 나라 저 도시로 전 세계 하늘을 날아다녔고, 10년 이상을 푸껫 바다를 헤엄치며 살았다. 이러한 내 역마살 낀 인생도 이제 마지막이 된 것인가? 힘든 점도 많았지만 소중한 기억들로 남을 수 있었고 그 시간들이 이제 온전히 나의 경험 자산으로 남았다. '육 해 공' 중에서 땅을 밟고 사는 시간이 시작되면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살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하나의 장소로 정해지니 일상이 조금 더 규칙적으로 바뀌고 내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던 욕망 중에서 ‘쓰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은 했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실천하지 못했다. 비교 설명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처음 좋아서 시작하게 된 ‘고강도의 운동‘도 이와 비슷했다. 습관이 될 때까지는 힘이 든다.
첫째는 하고 싶은 욕구, 둘째는 해야 한다는 약간의 압력과 탄력, 셋째는 몰입과 집중. 모든 것이 인생에서 이 세 단계를 거쳤던 것 같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버티는 시간은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나는 체질학적으로 소양일 체질인데 ,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이며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성격을 타고 낫지만 평생 위장인나 비장이 약하고, 예민한 성격인 탓에 내가 늘 내가 꿈꾸던 삶의 열정과 계획들을 실현해 나가기에 체력적으로 역 부족이었다. 욕심만 많고 체력은 받쳐주지 않는 경우이다. 청년기에 안정된 집을 도망 나왔던 이유는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기대, 강박 등으로 나는 습관성 위장 장애와 소화 불량, 심계항진 증세를 달고 살았다. 30년 전 첫 직장이었던 호텔에 사표를 던지고 홀로 1년을 방황(?)한 뒤 전직을 했다.
그 당시 여행사의 해외 출장 업무는 세상의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줄 만큼 성취감이 있었고 나의 도전을 불사르는 정신은 타의 주종을 불허했다. 무지한 것이 용감하다고 했나? 시간이 갈수록 내 불안정한 업무 환경( 잦은 해외 출장이 많았고 승무원 보다 많았던 비행시간, 사흘이 멀지 않게 바뀌는 시차, 수면을 방해하는 극도한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으로 인해 나는 어느 순간 번아웃(burn out)이 되었고 건강의 회복 탄력성을 잃어갔다. 또 다른 나의 육체를 망가뜨리는 지병들은 순차적으로 나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3번의 응급 처치와 2번의 엠블런스의 기록이 나의 자서전에 남았다.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를 읽게 되는 진리의 법칙!.
내 인생은 장기적인 안식 모드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것이 내가 태국에서 살게 된 이유이다.
Pleae, just do it...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갑자기 송길영 저자의 '그냥 하지 말라'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서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인생에도 한 번씩 힘을 빼는 시간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키야 한다. 그러려면,
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을 챙기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 인생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