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푸껫으로
지금은 여행 중이다.
그리고 방콕에 살고 있다.
여행 중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그림을 일일이 묘사하지는 않고
삶의 여정을 느낌 위주의 이야기로
전개하려고 한다.
푸껫? "여보 푸껫은 시골 아니에요?"
난 방콕이 좋은데... 꼭 가야 하나...
"잠깐 놀러 가 보고 괜찮으면 살 수도 있고,, 싫으면 다시 오자."
우리 둘 다 선택의 기로에서 과감히 용기를 낼 수 있는 적은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여행업 종사자의 예상치 못하는 운명의 변수는 끝이 없다.
"그럼 결혼 전 약속은 어떡하고요?"
"응? 무슨 약속이 있었어?"
내 꿈은 결혼을 하면,
초고속 비행 모두로 전력 질주하던 내 고단한 역마살 인생이 잠깐이라도 마감이 되고
봄날의 새색시처럼 사는 흉내라도 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물론 운명적으로 길게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반면에 또 다른 호기심이 폭풍처럼 내 살갗을 뚫고 지나갔다.
태생이 물병자리인 나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가.
"싫으면 꼭 다시 돌아오자. 여보!"
'꼭'이라는 약속은 10년이 넘게 지켜지지 못했고,
2009년, 나는 결국 푸껫을 사랑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한국에서 방콕으로 날아오다
잠깐 결혼 전 시간으로 돌아간다. 왜 왔지?,, 어느 순간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회사에 휴가 처리를 하고(나중일은?,, 에라~나도 모른다) 태국으로 내 지친 몸과 영혼, 그리고 트렁크 가방 하나를 싣고 태국 돈무앙 공항으로 도착했다. 마치 28년 전 보모님과 살던 집을 떠나 미친 용기로 도피(인생의 1번째 방황기) 한 것처럼...
인생의 2번째 방황기이다.( '인생의 방황기'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유가 느껴졌다. 자유의 책임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한동안 몸은 고달팠으나 세상의 수많은 호기심은 나를 끊임없이 다른 세상과 경험으로 연결시킨다... 그러던 중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 내 인생에 펼쳐진다.
태국에 와보니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각 나라에서 인생의 안전지대를 버리고 온 나와 같은 '도피생'들이 엄청 많은 것에 새삼 놀랐다. 결심은 더욱 굳건해졌다. 결국엔 단기 휴가가 장기 휴가가 되고 다시 서울에 돌아가 1년 남은 회사의 업무 스케줄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고 나는 완전히 이방인(Expats)으로 살기 위해 태국으로 왔다( 태국은 영주권이나 시민권 제도가 없다). 나의 돌봄 시간, 일상에서의 미친 탈출은 나를 또 인생의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때가 2006년이다.
나는 내 운명이 이끄는 데로 나를 맡겨보기로 했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내 삶의 기회도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선택지가 항상 좋은 쪽은 아닌 경우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빠르게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들, 기회와 함께 오는 위기들을 하나씩 잘 극복해 나가는 노하우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동안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건강한 하루의 감사함'도 알게 되었다.
태국의 수도인 방콕은 '코스모폴리턴' 도시이다. 하지만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나의 정체성이 진정성 있게 연결이 되기까지는 또 다른 지혜의 시간이 요구되었다. 새로운 환경의 적응에는 항상 도움의 손길이 이었다. "추어이 다이 마이카?(도와주실 수 있나요?)"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확신은 세상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는 용기를 만든다. 용기는 기회를 만들고 기회는 경험을, 경험은 지혜를, 지혜는 포용을 만들고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는 유연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을 활동하는 사람으로 시 공간을 넘나들었던 직업 때문에 생긴 지병들과 그것을 치유하는데 걸렸던 시간의 경험으로 나는 건강의 중요함을 어느 누구보다도 강조한다. 특히 노후에 평생 힘들게 번 돈을 병원과 치료하는데 버려지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 시간을 우리의 남은 인생이 더 축복 있게, 더 가치 있게 채울 수 있어야 한다. 남들과 상대적으로 삶을 비교하는 대신 절대적으로 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방콕에서 푸껫으로 떠 밀려가다
17년 전 결혼을 하게 되었고 방콕에서 계획에 없던 푸껫으로 잠깐 가서 놀다가 올 생각이었다. 잠깐만,, 아주 짧게,, 갔다 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또 무엇 인가에 이끌려 바닷속에서 13년을 헤엄치는 삶을 되었다. 물병자리의 숙명인가? 긴 여행의 여정은 업무와 관련된 일 중 해양 스포츠를 배우고 가르치는 공식적인 시간으로 이어졌고 개인적으로 경이로운 경험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푸껫을 방문하는 목적 중 순수 여행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건강의 회복을 위한 장기 휴양 형태의 거주>이다. 이것은 인생의 어느 순간 고단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자연과 함께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다. 사실, 푸껫은 바다와 숲의 세라피를 좋아한다면 매력적인 곳이지만 교통비와 음식, 호텔비 등 생활 물가는 태국에서 가장 비싼 곳이다. 일이 아니었더라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사는 동안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첫째, 몸의 움직임을 통한 마음의 치유이다. 그 이후 <뇌과학>과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태국의 예방의학+대체의학>에 동시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있는 공부의 분야이다. 둘째는 음식의 놀라운 효과이다. 과일 야채 위주의 자연식을 자주 먹는 습관을 들였다.(식전 운동 중에는 수분을 섭취해야 하고 운동 후 1시간 안에 충분한 단백질을 보충한다) 셋째, 수면의 질이다. 직업상 규칙적인 수면이 어렵지만 수면의 양 보다 '어떻게 자야 하는가' 하는 수면의 질(램수면 단계 실천)에 초점을 두었다.
푸껫에 살고 있는 모든 '프리워커'는 절대 프리 하지 않다. 나름 '준 해양 전문가'라고 부를 만큼 바닷속 안전에 대한 지식과 기후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수영 실력과 각종 액티비티에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닥치는 사고에 대비해 응급조치 능력과 병원 의료통역 기술까지 겸비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행운이지만 그렇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푸껫 땅(태국은 법적으로 외국인이 주택이나 땅을 소유할 수 없다)에 새롭게 정착하는 일은 이토록 힘들다...
남편은 항상 나에게 "사바이 사바이, 짜이 앤 앤!"(편하게, 냉정한 마음으로!)라고 말하지만 , 나는 뼛속까지 빠른 성격의 소유자이다. '빨리빨리'가 그렇게 싫어서 태국에 왔는데 '천천히 힘을 빼고...'는 아직 나로서는 인생의 철학자 들이나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남편은 항상 나의 말없는 동반자이자 영원한 응원자이다. "푸껫에 오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우리는 서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일의 목적으로 푸껫 살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그렇게 바다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물을 싫어했지만 나 같은 '물귀신'을 만나서 '친수성 남편'으로 바뀌었다. 내가 항상 물과 가까이 있는 여자이니까... 우리는 늦게 결혼한 '딩크족'이다.(Double Income No Kid) 족이다. 서로 강한 독립적 인격체가 만나서 하늘이 무너질 만큼 싸우다가 천둥 번개가 멎은 후 이제는 인생의 유연성(운동도, 인생도 힘을 뺄 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을 깨우쳤다.. 나는 철저히 성장 요구가 강한 성격이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성취감을 인생의 행복으로 사는 사람이지만, 남편이라는 사람은 완전히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태생이 태국 사람 보다 더 느리고 낙천적이며 실수를 쉽게 용서하고 남들에게 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수행에 경지에 도달한 남자'라고 하면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전생에 여기(태국)서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푸껫의 섬사람들은 추진력은 느리지만 도시인들보다 멘탈이 강해 보인다. 햇볕에 그을려진 탄력 있는 흑갈색 피부와 머리카락 사이로 번져 나오는 부드러운 미소, 때로는 투박하고 강한 어투이지만 착하고, 삶의 인내력이 있으며, 부자는 아니지만 내 안의 행복을 소박하게 다룰 줄 알고, 가족을 아끼고 항상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 자세가 존경스럽다. 마치 어떠한 자연재해나 다른 세계 이방인들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무장된 안티프레질이 느껴진다.
나의 운동의 역량은 직업상 수면의 질이 나빠지기 시작(1997년부터 밤과 낮이 뒤 바뀐 올빼미가 되었다)하면서 극도의 수면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달리기(인터벌 러닝 )에서 고강도 근력운동(순차적 레벨업)으로 발전했고, 요가(해변 요가+브리즈 스파)와 명상에서 수영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편안한 호흡의 느린 수영은 명상 요법에 해당). 운동과 식이요법, 수면의 패턴으로 인해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빠르게 치유될 수 있다는 비밀을 다년간 나 스스로 실천하여 깨닫게 되었다. 운동에 투자했던 시간은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머리의 고민이 사라진다. 마음이 뇌를 속인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뇌도 사람을 속인다. 마음먹은 대로 우리의 뇌가 작동을 하고 이미 시작된 작동의 스위치는 언제든 다시 켜진다. 어느 순간 습관이 되면 뇌의 뇌가 명령하는 기억대로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 이런 방법을 일과 운동, 읽고 쓰기에 적용한다면 매우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가 있다. 인간의 뇌는 90일에서 100일 사이에 습관화된 기억들은 한동안 멈추었다 다시 스위치를 작동시켰을 때 원래의 관성으로 돌아오는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
십 수년을 살았던 푸껫 땅에 영원한 작별을 외치며 삶의 둥지를 완전히 떠났다.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고 돌아보면 '푸껫'이란 단어는 내 인생의 풍요로운 한 페이지를 남기고 가는 삶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방콕 집으로 다시 왔다. Adieu!
여행은 계속되고,, 20년 전 연애 시절을 떠올리면서 Witty(지헤로운 우리 차)는 해변 휴양지 파타야로 이동한다.
컵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