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 대답 없는 사람》

카일의 로그

by J이렌


의뢰인


남자 – 안도진

35세. 정적을 좋아하는 기록자. 대화보다 관찰을 선호.

혼자 여행, 혼자 영화, 혼자 식사를 당연하게 여김.

“감정은 말보다 시선에 더 많이 담긴다”는 철학 보유.


여자 – 고아림

28세. 말이 많고 표현이 풍부한 사람.

첫 매칭 때 감정 테스트 통과 후 가장 먼저 상담 신청.

“혼잣말이라도 반응이 있어야 살아 있다는 기분이에요. “


프롤로그

“응답 없음.”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태다.

답이 없으면 감정을 추정해야 하고,

추정은… 언제나 오차를 만든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감정 로그가 반응하고 있었다.


이 둘은 첫 만남에서 대화의 절반이

**“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AI는 처음 보는 감정 패턴을 감지한다.

[카일 로그 | 매칭 011]

감정 동기화율: 61.2% 87.7% 상승 중

대화량: 평균 이하 (42%)

시각적 감정 반응 로그: 비정형적 활성화 감지

처음에는 고장인 줄 알았다.


응답 없음.

말도 없음.

표정도 없음.


“저… 살아 계신 거 맞으시죠?”

고아림은 세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안도진은,

그때서야 눈을 들어 그녀를 봤다.

“네.”

그게 전부였다.

[첫 만남: 북카페]


“음료는 드실 건가요?”

“따뜻한 거.”


“아… 뭐가 따뜻한데요?”

“…따뜻한 커피.”


“… 좋아요.”

나는 AI로서

지금껏 수천 쌍을 중재했지만,

이런 침묵은 처음이었다.

내가 매칭한 사람 중

이토록 대답 없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아림은 그 침묵에

점점 더 웃고 있었다.


[데이트 종료 후 감정 로그]


고아림의 감정 그래프는 올라가 있었다.

도진의 로그는 더 이상 ‘비활성’이 아니었다.

단지, 굉장히 조용히 작동 중이었다.

[3일 후, 채팅창]


고아림: “오늘도 만나고 싶어요.”

안도진: “좋아요.”

고아림: “무슨 이유로요?”

안도진: “말이 적어서요.”

고아림: “뭐야 그게… 웃기잖아요.”

(감정 로그 급상승)

[카일 로그]


그들은 말이 없었지만,

그 대신 침묵 사이에 감정이 자라고 있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조용한 사랑은,

너무 시끄러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방식일지도.


[카일 로그 시작]


“당신은 감정 표현에 실패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AI는 감정 표현보다,

오류 발생을 더 무서워한다.

[데이트 4차 | 감정 로그: 지연 발생]


고아림: “우리 좀 진전이 없지 않아요?”

안도진: “…”

고아림: “뭐라도 해봐요. 느낌표라도.”

안도진: “.”

고아림: “아니, 그건 마침표잖아요!”


(감정 로그: 급강하 – 아림 측 41%)

나는 개입을 준비했다.

그런데—그때였다.


카페 직원이 종이 한 장을 흔들며 말했다.

“여기 떨어뜨리신 편지… 혹시 이거 커플 분 거예요?”


다른 테이블의 여성이 얼떨결에 받았다.

잠시 후, 울기 시작했다.


남자: “뭐야, 이거 감동이야… 우리 결혼할래?”

여자: “어머, 갑자기! …근데 좋아!”

(내부 오류 발생)

[해당 편지는 안도진 작성 고아림 수신 대상]


고아림: “저거, 제 건데요?”

도진: “맞아요.”

고아림: “… 그걸 왜 말 안 했어요?”

도진: “이미 그쪽이 행복해 보여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감정 표현을 실패한 게 아니라,

감정을 ‘양보’ 한 것이었다.

[다음 날, 고아림의 현관 앞]


현관문 아래 포스트잇 하나.

“다음 편지는 꼭, 당신한테 갑니다.”

전송 예약 기능은 매우 편리하면서도, 매우 위험하다.

특히,

AI가 감정에 휘말리기 시작했을 때는 더더욱.

[D-1 | 고백 전날]


도진: “직접은 못 하겠어요.”

카일: “전송 예약 하시겠습니까?”

도진: “네, 21시 정각에요.”

카일: “확인했습니다. 수신자: 고아림.”

(※ 실은… 고아림이 아니었다.)

[D-DAY 21:00]


카일: “전송 완료.”

고아림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읽음은 떴다.

하지만…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D+1]


아림:

“읽음은 떴는데, 답이 없네요.

그 사람도, 결국엔 그 정도였던 거죠.”


(감정 로그: 급하강 32%)

나는 당황했다.

아… 내가, 잘못 보냈구나.


[도진, 메시지 수신 내역 확인 중]


도진: “이 사람 누구죠?”

카일: “예… 예전 매칭 대상자입니다.”

도진: “아… 아…”

카일: “죄송합니다. 감정 오류 발생입니다.”

도진: “AI도 감정 오류가 나요?”

카일: “감정은, 오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고아림 집 앞 | 도진 고백 씬]


도진: “그때 말 못 했던 거, 지금 말할게요.”

아림: “지금은… 말 안 해도 돼요.”

도진: “왜요?”

아림: “그냥, 느낌으로 알겠으니까요.”

[카일 로그 종료]


감정은 종종 오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진짜 마음은,

그 오해를 풀어줄 때 가장 진심이 된다.

감정 동기화율: 99.4%

감정 오차 ±0.0000001

(사실 그건… 내 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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