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우울의 비밀을 품기에 좋은 계절일지도 모른다. 겨울에 헤아리는 우울은 벤치 끝에 앉은 너의 마음과도 같아서 나는 한 마디 말도 붙이기 어려워 뱅글뱅글 입술의 주변만을 맴돈다.
너는 너의 마음 하나 파헤치지 못 해서 양지쪽에는 발 하나 걸치지 못 하는 것을 아쉬워 했다.
입김이 났다. 어제까지 품었던 희와는 이별을 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날이 추워서 빨리 헤어질 수 있으니 집에 돌아가 일찍 잠을 청할 생각에 한편으로는 신이 나기도 했다. 마음이 차분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나는 너를 오래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건 아니고 너무 추워서.
희가 가고 난 뒤에 비가 왔다.
무엇이 아픈지 봤어야 했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너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돌아왔는데 그건 너가 어디가 아픈지 계속 생각하는 일이었다.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시간에도 외부의 차가운 공기는 내부의 따뜻한 공기와 순환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하여 뒤섞이고 밀어내고 들어오고 있었다. 예민한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쉬려고 했지만 나는 어떤 표정을 덮지 못해서 겨울의 순혈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했다. 너는 어디가 아픈지, 자세히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
희가 가고 난 뒤에 비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