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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Mar 13. 2016

대필代筆

3.탄식의 방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친구 동인의 자취방에서 동기들 서넛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우리 주량을 잘 모르고 술을 퍼 마시던 시기였다. 우리는 야간 대학을 다녔기에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가거나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거나 선택을 해야 했다. 강혁은 조금 취한 듯 했다. 강혁은 소주 3잔이면 얼굴이 벌개 지곤 했다. 강혁은 원래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해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동기들은 그를 항상 챙겨 주었다. 예를 들어 나는 그의 빈 소주잔에 몰래 물을 채워 준다거나, 그의 술을 대신해 마셔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강혁은 그 날 처음으로 가족 이야기를 했다. 말투는 차분했고 담담했고 소리도 조용했다. 10년 전의 일이지만 그 날 강혁의 목소리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엄마와 나의 시간도 점점 빨리 가는 것 같아.     


 2014년 12월 2일, 그 날 새벽,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강혁이 써 놓은 글들을 살펴보았다.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아 글들이 선명하지는 않았으나 그 글을 읽는 것에 있어서 선명함은 필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뒤의 글들을 이어 적기 시작했다. 강혁과 나의 대화에서 남겨진 기억들을 기록들로 바꾸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았다.     


 빛이란 것이 굉장히 빨리 죽기 시작하는 이 시점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하는지 몰라서 나는 괜히 무안한 글들을 썼다 지웠다 하며 빗소리만 듣고 있다. 한 편으로 모두의 젊음은 함께 하향하고 있으니 나는 그것을 내 위안 삼아 잠드는 것이다. 아쉬움에 또 지나간 시간에 탄식을 타서 수저를 휘휘 저어 들이킨다.   

  

 강혁은 평소에도 농담처럼 작가로 등단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다. 1학년 중간고사 기간 도서관 앞 벤치에서 낮잠을 자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2005년 4월 15일.     

 “연후야, 나는 매일 낮잠만 자고 싶다. 그래서 오늘 같은 볕 좋은 날이 너무 좋아. 나는 가끔 아닌 걸 알면서도 그래, 안 될걸 알면서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싶어 사실. 근데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잠을 자는 일이거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내가 만약에 나중에 죽으면 평생 푹 자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재수 없는 소리 마라, 인마”

 “재수가 없긴 왜 없어. 맞는 이야기 인데. 잠이랑 삶은 같은 한 글자더라. 그 무게도 질감도 비슷하지 않아? 있지, 나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종교도 아마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것 같다. 근데 나는 우리 아버지도 믿지 못하겠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아버지가 오토바이는 이제 제발 그만 좀 타셨으면 좋겠는데. 새벽에 일을 하러 가려면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없으니. 알잖아, 건설현장은 항상 바뀌는 거. 내가 국민학교 때 제일 싫었던 일이 뭐냐면. 아버지 회사 주소 적는 거. 또 하나는 학력 적는 거. 나는 아무튼 학교 졸업하기 전에 작가로 등단할거야 시인이든 소설가든. 돈 잘 벌면 아버지 꼭 일 못하게 한다, 진짜.”     


은은하게 지워진 꿈들을 안아본다.

한 없이 그렇게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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