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가끔 약속이 없는 일요일에 회사에 나온다. 대부분의 일요일에는 약속이 없지만서도 월요병을 고치려거든 일요일에 출근하여 사무실에 앉아 있으라는 한 뉴스 기자의 말을 그대로 맹신하는 것은 아니나 약간의 효과가 있지 싶어 일요일에 나온 지 횟수로 제법 되었다(그 실제적 효능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개인적으로 문의 바랍니다). 허나 처음에는 그 기자의 말을 듣고서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도무지 무엇을 먼저 손에 집어야 할지 몰라 나는 라디오도 틀어 보고 카페에서 틀어줄 법한 보사노바 풍의 음악들을 틀어놓고 있었다(with no 허세, 혼자 있으면 무섭다). 그걸로도 나의 일요일은 위안을 받지 못 하여, 친했던 대리님이 추천해 주신 회사 옆의 작은 카페에 들려 커피를 사 오며 위안의 요소들을 구성하여 놓았다. 이 위안의 마지막 요소인 커피로 말할 것 같으면, 카페의 새로운 메뉴로서 입간판에 적혀 있기를 아메리카노 위에 올라간 부드러운 생크림이 인상적인, 비엔나커피라고도 하지요. 라며 나와 같이 단 거는 좋지만 나는 단 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야 라는 사람에게 적합한 커피 인 듯하였다.
나는 이 커피를 기다리며 카페 안을 둘러보기를 여러 번, 사장님은 생크림을 믹서기에 돌려 거품을 만드는 듯하였고, 외부가 잘 보이는 통 유리에, 또 그 옆 벽면에는 단골손님들이 걸어 놓은 쿠폰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이 카페는 3년 전 회사가 문래동으로 이사 오는 순간에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잘 있어 주었다. 면접을 보러 온 후배에게 잘 될 거라며 안도의 말을 건넬 때에도, 나를 찾아와 준 친구에게 잠깐만 카페에서 기다려 달라며 말을 할 때에도, 이사님과 점심을 먹고 요즘 고민이 무어냐느 질문에 다른 부서나 팀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에도, 계속 그렇게 있었다. 이 카페에서만 커피를 사서 마신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또 그럴 것이, 영원할 것이, 지속될 것이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 사거리의 왼쪽 편에는 그 그림이 익숙했었기 때문에. 최근에 회사에 많은 일들이 있고 내가 지나온 시간 동안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그 많은 일이라 함은 '조직개편'과 같은 하나의 단어로 줄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그 여러 일들로 인해 내가 회사에서 보낸 시간 또한 적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내 나이의 앞자리의 숫자가 바뀌며 지나온 시간을 세는 것 보다도 더욱이 와 닿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번에 나에게는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10대에서 20대를 넘어갈 때에는 친구들과 술집에 들어갈 수 있는 패스포트가 생기는 기분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나는 느꼈었으나, 이번에 2에서 3으로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에는 나의 젊음은 유효하며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 하에 외면하고 싶었고 아직도 이 정확한 팩트를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시간을 느리게 쓰고자 하는 나의 노력의 일부이며, 외면의 결과로 나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오늘 또 시간이 흘러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 카페가 7월 26일까지만 영업을 한다는 것을 카페의 문 앞에 A4용지로 붙여 놓은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와 현재의 과거 완료 진행형에 무언가 과거의 동사를 써야 할 순간들이 자꾸만 많아지는 것이다. La vie, 프랑스어로 인생, 이 카페의 이름이기도 한 단어와 함께 그 A4용지에 적힌 말은 이러 했다. "저희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신 모든 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종이가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 무슨 커피를 시킬까 고민을 하다가 다른 곳에서는 마실 수 없는 아인 슈페너, 즉 비엔나커피라고도 하지요. 하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고민을 멈추고 아인 슈페너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이 글에는 PPL의 요소가 단 1도 들어가 있지 않음을 선언한다.)
화요일이면 문을 닫는 이 곳에서 나는 외면하고 있던 시간의 지나감을 이제는 조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고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