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시누 Sep 04. 2016

배트맨 팬들을 위한 프리퀄 드라마

드라마 리뷰: 고담



          최근 들어 '슈퍼 히어로'라는 장르가 붐을 이루고 있다. 한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폭스사의 [엑스맨]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이던 때가 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가 원작 만화와는 또 다른 기묘한 느낌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슈퍼 히어로 붐의 열풍은 [아이언맨]이라는 영화에 있다. 오랜 기간 불황을 겪던 마블사는 지금까지의 영화사에 팔아 넘기던 판권을 스스로 소유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들의 도박은 [아이언맨]의 큰 성공과 동시에 기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캡틴 아메리카], [토르]등의 작품들을 연쇄적으로 내놓으며 슈퍼 히어로 붐과 [어벤져스]라는 대규모 기획까지 감행하게 되었다. 마블사는 최근 들어 폭스사에서 몇차례 말아먹은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계약적으로 마블과 공유하기로 한 상황이라 이제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스파이더맨] 시리즈까지 부활 시킬 능력마저 갖게 되었다.



          마블 사가 승승장구하는 것에 반해 코믹스 쪽에서 큰 인기를 구사하던 DC 코믹스는 영화판에서는 영 힘을 쓰지 못한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슈퍼맨 시리즈는 [엑스맨]을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고용해 [슈퍼맨 리턴즈]라는 리메이크작을 통해 부활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한편, 팀 버튼 감독의 독특한 감성이 가득 들어간 [배트맨 1,2]편은 조엘 슈마허 감독과 만나 극악의 케미를 터뜨리며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한 DC 코믹스에 한줄기 빛을 보여준 것은 바로 [다크 나이트] 3부작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었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은 히어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감 있는 내용을 다루며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세계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위 시리즈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탄탄히 다지며 감독의 디테일한 설계를 통해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걸작이라 불려진다. 비록 놀란의 3부작은 DC의 다른 이야기와 연관되지는 않지만 DC 코믹스가 이에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음은 분명하다.





          최근 DC 코믹스 또한 마블의 [어벤져스]에 대항해 슈퍼히어로 군단인 [저스티스 리그]를 기획하고 있음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영화판을 떠나 방송사에서도 마블과 DC의 신경전은 이어졌다. 마블에서는 [에이전트 오브 쉴드]와 [에이전트 카터]등의 드라마를 선보였고, DC에서는 [플래시]와 [애로우]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여기에 뒤이어 등장한 후발 주자가 바로 [고담]이라는 배트맨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고담]은 배트맨이 사는 도시를 지칭한다. 범죄가 판치는 불한당들의 도시인 고담을 배트맨은 자신만의 정의를 토대로 정화한다. 하지만 드라마 [고담]이 베이스로 삼는 주둔지는 배트맨이 활동하는 기존 배트맨 시리즈의 시대관을 다루지 않는다. [고담]은 그로부터 오랜 기간 과거로 돌아가 배트맨, 즉, 브루스 웨인이 소년이었던 과거 시절을 주요 무대로 선택한다. 그 말인 즉슨, 배트맨에 등장하던 다른 인물들, 예를 들어 브루스 웨인의 주요한 조력자였던 알프레드와 루시우스 폭스, 그리고 배트맨 시리즈 내내 등장하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많은 악당들 또한 과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시리즈와는 또다른 면모를 보이며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악한 인물을 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선한 인물이 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캐릭터들도 존재한다. 한편, 이 드라마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인기있는 캐릭터인 브루스 웨인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그의 조력자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고담시의 청장, 제임스 고든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미드 [고담]은 첫 시작 당시, 전형적인 버디 수사물의 형태를 띄었다. 고담시에 새로이 들어온 정의감 투철한 형사 제임스 고든, 그리고 기존의 형사 생활에 찌들어 있는 어딘가 삐뚤어진 고참 하비 블록. 이 두명이 일으키는 불협화음은 맞지 않는 듯하면서도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삐걱삐걱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고담]의 초기 방영 당시, 많은 팬들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보였다. 단순 배경과 일부 캐릭터만을 차용했을 뿐, 고담시가 가지고 있는 광기의 모습들이 너무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초반부의 메인 빌런인 '피쉬 무니'도 어느정도 상식적인 인물이고 1편만 봤을 때는 그저 칙칙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범죄 수사극 그 이상으로 보여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비 블록이라는 캐릭터가 그나마 양면적인 인물로 등장해 고든과 종종 대치하곤 하나, 그러한 부분들로는 시청자들과 기존 팬들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들은 극이 조금씩 진행되면서 서서히 해결되는 듯 보였고, 결정적으로 위와 같은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고담] 최대의 신의 한 수가 등장하니 그것은 바로 '펭귄'이라는 캐릭터다.



          로빈 로드 테일러가 연기하는 '오스왈드 코블팟', 기존 배트맨 시리즈의 '펭귄'이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는 한없이 비굴하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악당의 성질을 가진 인물이라 칭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에게는 잔머리와 야망이 있다.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일시적이다. 그는 매번 강자에게 들러붙어 기생충처럼 삶을 부지하지만 항상 그 뒤로는 자신이 섬기는 강자, 또 그 밖에 고담을 지배하고 있는 다른 악당들을 밑으로 끌어 내릴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는 드라마의 시작 당시 피쉬 무니라는 팔코니 패밀리의 2인자 옆에서 우산을 들어주는 낮은 직책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뒤로는 경찰과 내통하며 2중 스파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조직의 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 올라갈 생각에 부풀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1화에서 그의 이중 스파이 행각은 들통나게 되고 죽을 위기를 겪으나 고든 형사의 도움을 받고 고담에서 탈출한다. 그는 '큰 전쟁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고든에게 남기고 고담을 떠나지만 그리 머지 않아 스스로가 폭풍의 핵이 되어 고담으로 귀환한다.





          브루스 웨인은 [고담]에서 주인공이 아닌 단순한 하나의 조연으로만 등장한다. 그의 곁에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알프레드 집사가 붙어있고, 극이 시작함과 동시에 부모가 총격으로 사망하기 때문에 그에게 가족이라곤 시작할때부터 집사인 알프레드 뿐이다. 알프레드는 무술에 능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과거 군인이었던 이력이 있으며 브루스 웨인이 위기에 빠질 때 시시각각 몸으로 뛰며 그를 보좌한다. 물론 정서적으로 불안한 어린 시절의 브루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조언자의 역할 또한 충실히 해낸다. (어찌보면 고담의 만능 캐릭터.) 브루스 웨인은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주인공이니만큼 적지 않은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고든과 펭귄이 진행하는 메인 스토리와는 별개로 그의 부모님의 암살 사건과 관련된 또하나의 이야기 줄기를 갖고 극을 진행한다. [고담]에서는 그의 부모님이 당한 암살이 단순 노상 강도가 아닌 흑막이 있는 암살 사건으로써 다뤄지는데 이는 웨인 기업의 부패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브루스 웨인은 아버지의 흔적을 하나씩 추적해 나가며 이것이 자그만한 일이 아닌 거대한 무언가와 연관되어 있음을 차차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크게 위의 세 줄기로 나뉜다. 고든과 하비 블록의 수사 드라마, 펭귄의 범죄 조직 드라마, 그리고 브루스 웨인의 추적 드라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세 이야기들은 각각의 길을 걷지 않고 때로는 함께 엉켜 함께 진행되거나 서로가 서로의 사건에 영향을 주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야기 속에는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단순 1회성 용으로 출연하는 살인마들 또한 대부분 원작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물들이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다. 그러한 인물들을 통해 세줄기의 이야기는 실을 꿰차듯 듬성듬성 이어져 나간다. 원작에서 리들러라는 지능적 범죄자로 등장하는 에드워드 니그마는 본 드라마에서는 고든 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경찰 소속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이때부터도 수수께끼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면은 있으나 고든을 걱정하기도 하고 수사에 열정을 다해 여러가지 사건에서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로 나타난다. 캣우먼의 닉네임을 갖는 셀레나 카일은 이당시 브루스 웨인과 비슷한 연령대의 어린 소녀로 등장하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생활에 익숙해져 생존하는 법과 싸우는 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선의 편에 설때도 있고 악의 편에 설때도 있는 혼란스러운 인물로 등장한다.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도 주요한 비중을 꿰차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쉬 무니이다. 그녀 역시 펭귄과 마찬가지로 고담시의 제왕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팔코니의 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호시탐탐 그를 제거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오스왈드 코블팟을 엄청 무시하는데 그가 경찰과의 이중 스파이 생활을 통해 배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나서부터는 그를 혐오하기에 이르른다. 그녀와 오스왈드와의 증오스런 관계는 시즌1이 진행되는 내내 진행되는데, 이들의 관계 또한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들의 대립은 시즌 1의 피날레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피쉬 무니 캐릭터 자체의 인기는 크게 없는듯 하여,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팬들이 피쉬 무니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불만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피쉬 무니라는 캐릭터는 제임스 고든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바바라와 함께 본 작품에서 가장 인기 없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고담] 드라마 자체가 [브레이킹 배드]나 [배틀스타 갤럭티카], 혹은 [왕좌의 게임]처럼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다. 코믹스의 원작 세계관을 베이스로 하고 있긴 하지만 본래의 작품이 있지도 않고 새삼 시청률에 따라 히든 카드를 선보였다 접었다 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한편 에피소드식으로 진행되는 수사 사건들의 경우, 너무 우연에 의해 해결되거나 갑작스러 사건이 결말로 점프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물로의 재미는 거의 느낄수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고담]이라는 드라마는 기존의 배트맨 세계관을 좋아하는 팬들 혹은 개성강한 인물들의 모습을 기대한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는 적지않은 재미를 줄만한 드라마이다. [배트맨]이라는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무려 22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가지고 진행되는 이 드라마는 현재 시즌1을 거쳐 시즌2까지 완결된 상태다.  긴 호흡을 가지고 진행되다보니 쉬는 기간과 방영하는 기간이 거의 일치하는 특이한 케이스의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22편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한 시즌마다 극의 진행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의견이 갈리겠지만 고담은 사실 평작 수준의 작품이다. 엄청난 복선 회수나 영화 뺨치는 연출등을 극중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앞서 리뷰한 [브레이킹 배드]나 [왕좌의 게임]의 완성도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배트맨 시리즈를 아끼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느낄수 있는 나쁘지 않은 드라마라 생각된다. 다소 무게를 낮춘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시즌이 뒤로 흘러감에 따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점차 그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것 같다. 여러 캐릭터들을 산발적으로 진행시키다보니 발생하는 문제같기도하다. 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한데, 시청자들의 질타와 비판을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여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점을 보완해 보다 완성도 있는 새 시즌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역대급 스케일의 마피아 게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