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비가 왕창 오는 바람에 러닝을 못했다. 처음 며칠은 비를 맞으며 했지만, 멈출 줄 모르는 빗줄기에 중랑천이 범람할 것 같아 이내 그만두었다.
”뛰고 싶은데... “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비가 안 왔다. 냉큼 집 근처 중랑천에 나가봤더니 물이 많이 빠져 있었다. 중랑천은 인위적으로 수위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더니! 의정부시설관리공단 만만세다.
몸을 풀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근데 습도가 너무 높아서 금세 면티가 땀 범벅이 됐다. 물속에서 달리는 느낌이었다. 몸이 두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느린 페이스로 뛰고 있는데도 숨이 차서 결국 달리기를 멈추고 천천히 걸었다.
“ 그래 잘 됐지 뭐, 선선한 공기에 몸이 가벼워 뛰기 좋은 날이 있으면, 이렇게 달리기 힘든 날도 있는 거지, 이런 날은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 경관도 보고, 느긋하게 주말 오전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빠르게 달리지 못해 조금은 답답했던 마음을 달래곤 이내 주변을 즐겼다.
전남 해남의 땅끝에서 군생활을 할 때, 임자도에서 온 선임네 가훈을 들은 적 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다고 하셨는데, 선임의 아버지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고 했다.
볕 들면 일해서 좋고~!
비 오믄 놀아서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도 이 말을 엄청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주변을 훑어보며 걷다가 길가에 난 클로버 무리를 만났다.
쪼그려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찬찬히 훑어보다가
문득 언젠가 동서울 시외버스터미널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본 명언집에서 봤던 문장이 생각났다.
흔하지만 마음에 깊게 새겨진 문장이었다.
“네잎클로버의 꽃 말은 행운입니다. 동시에 그 옆에 있는 세잎클로버의 꽃 말은 행복입니다. 당신은 혹시 당신의 행운을 찾기 위해 수많은 행복을 짓밟고 있지 않나요? “
혼자 흠칫 제 발 저리곤 세잎클로버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찾았다. 혹여나 세잎클로버에 생체기라도 생기면 오늘 나의 이 행위가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빼았다며 자책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어린시절 길을 걷다가 갑자기 보도블록의 선을 밟지 않고 걸어가려는 이상한 습성 같이 말이다. 꼭 이런다. 아이들 같은 행동을 하면 생각하는 것도 아이들처럼 변하곤 한다. 그래도 재밌으니 됐다. 원래 인생에 무용한 것일수록 재밌다.
열심히 집중해서 찾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문득 깨닫곤 민망함에 살짝 스트레칭하는 척도 해봤다가 찾는데 방해되 다시 집중해서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옆에서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께서
“학생!” 하시며 나를 불렀다.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나머지 한 손에는 투명비닐봉지를 붙잡고 있으셨다.
“학생 네잎클로버 찾아? 여기 많이 이쒀 가져~!“ 하시며 비닐봉지에서 시장 나물 꺼내듯 네잎클로버를 한 움큼 꺼내집으시곤 내게 건넸다.
“예???! “ 아니 이런 시트콤 같은 상황이!!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웃음을 간신히 참고 다시 대답했다.
“아유 아니에요ㅎㅎ 괜찮습니다. 저는 제 능력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딱 하나만 찾아서 가면 돼요”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유 나는 이렇게 내 행운을 나눠주는 게 행복이야~ 자! 받아 받아가~”
그렇게 마치 명절 세뱃돈처럼 받아라, 안 받는다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 소란스러웠는지 지나가던 할머니가 뭔가 싶어 듣다가 자기가 받아가도 되겠냐며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 '휴 다행이네' 하며 그들을 떠나 보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보통 고집이 아니라며 씩 웃으시곤 다시 자전거를 끌며 길 옆에 나있는 클로버들을 보며 걸어가셨다.
나도 다시 클로버무리에 쪼그려 앉아 천천히 훑어보다가 기어코 나만의 네잎클로버를 한 가닥 찾아냈다.
핸드폰 케이스에 조심스레 펼쳐서 고정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코스에서 1킬로미터 정도 다시 천천히 뛰다가, 좀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속으로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리곤 생각해 보니
서른 살 넘은 아저씨한테 (대)학생이라고 해주신 게 감사했다.
”행운 잘 받았습니다 “
덕분에 일상이 글감이 됐네요.
23. 7. 1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