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첫 번째는 운동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지 13~4년쯤 됐다.
만화책을 지극히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늘 동경하던 우리 형이 운동을 워낙 잘해서 운동은 그냥 좀 타고난 사람들만 하는 거라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방에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그 어떤 운동보다 난이도가 낮고, 방에서 누워있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어서 그랬다.
조금만 해도 혈류량이 늘어나 팔, 어깨, 가슴이 빵빵해지는 기분도 들었고, 하고 나서 거울을 보면 핏줄이 서있는 게 고등학생 때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입대를 앞둔 나에게 형이 한 마디 던졌다.
“군대 가면 벤치(프레스) 100KG은 가볍게 들고 나와야 돼~”
난 정말로 군인들은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어렸을 때는 군인들이 다 어른 처럼 보였는데 이젠 버스터미널이나 역에서 군인들을 보면 다 애기 같다.)
훈련소에 들어가면서부터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운동 기구는 못쓰니 늘상하던 팔굽혀펴기부터 했다. 개인 정비 시간에도 운동하고, 훈련때도 운동했다.
훈련소 1주 차에 체력측정을 했는데 2분에 98개를 했다. 윗몸일으키기는 60개 정도밖에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레이더 기지로 발령 받기 전, 후반기 교육때는 개인 시간이 많아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새벽에 화장실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
전역할때쯤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 알아보니 1년에 3~4천만 원 정도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돈을 모으기 위해 군 복무 연장을 신청했다.
부사관 교육을 받으러 가서 체력측정을 다시 했다.
팔굽혀펴기를 2분에 220개를 했다.
이백여명의 전문하사 교육생들 중 압도적인 1등이었다.
훈련 부사관은 전군에서 제일 많이 했을 거라 했다.
일렬횡대로 10명씩 낮은 봉에 엎드려 푸쉬업을 하고,
앞에 있는 각자 파트너가 수를 센다.
첫 번째 사람부터 자기 파트너의 개수를 외치고, 훈련 부사관은 받아 적는다.
각 파트너들이 '30개입니다! 50개입니다! 36개입니다! 25개입니다!' 외치다가
내 파트너가 '220개입니다!'를 외치는 순간,
받아 적던 부사관이 흠칫하더니, '뭐라고?'
의심의 눈초리로 나와 내 파트너를 봤다.
그리곤 진심으로 째려보고 '다시 해봐'
그 자리에서 즉시 100개를 했더니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내게 푸쉬업은 유산소 운동이었다.
20대 초반에 주변 친구들이 여느 20대와 다를 것 없이 PC방, 술과 여자, 클럽 같은 곳에서 놀 때 나는 대게 운동을 했다.
나는 이게 너무 재밌었다.
몸이 바뀌어 가는 게 좋았다.
중학교 때 메이플 스토리라는 게임을 하다가 레벨 10을 채 못 넘고 그만 뒀다.
내 캐릭터가 세질수록 열심히 마우스질 하며 피시방에 있는 나는 반대로 쇠약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운동은 그렇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경험치가 쌓이면서 레벨도 올라가고 몸도 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운동을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운동 3일 하면 내가 알고, 3개월 하면 주변 사람이 알고, 3년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다고.
나 자신을 RPG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키워보기로 했다.
운동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모든 열심히 하다보니
나는 그냥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보는 사람마다
'야 대단하다. 너 자기 관리 진짜 잘한다.'
'이야 이 친구 아주 훌륭하네 자기 관리 열심히하네~'
하고 칭찬해 주는 게 아닌가.
참 신기했다.
PC방에서 게임하는 걸 좋아해서 게임하는 애랑
몸 만드는 거 좋아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애랑
똑같이 좋아하는 걸 했을 뿐인데, 평가가 다르다.
여기서 난 무언가 깨달았다.
남들이 뭐라 하건 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보람도 차면 좋겠지만,
‘이왕 할 거면 가능한 남들한테 박수받는 걸로 해야겠다.’라고 말이다.
왜냐면,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다가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벽을 만나게 되고,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서 그 힘든 시기를 지나고 성장해야 더 많은 재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라도 늘 좋을 순 없다.
맞닥뜨린 벽 때문에 고통을 감내하는 와중에 가뜩이나 힘든데,
그런 걸 왜 하냐며 주변에서 혀를 쯧쯧차면 누구도 버티기 쉽지 않다.
나비가 날아가려 하는데 비가 내리는 것처럼, 가랑비에 조금씩 날개가 젖어 무거워지면 날지 못한다.
예쁘게 날고 싶어 하는 나비에게 자꾸 지적하면 날 힘이 없어진다.
재밌게도 이렇게 하던 운동이 나중에 입사 면접 때 도움이 될 줄은 또 몰랐다.
자소서에 '저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보다 '시장배 보디빌딩 대회 2등 수상!'이 더 임팩트 있었고,
면접관들 반응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이왕 좋아하는 걸 할 거면 동시에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걸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두 번째는 언어다.
나는 다른 공부보다 상대적으로 언어 공부가 좀 재미있었다.
대학생때 한동안 'How i met your mother' 이라는 미국 시트콤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가 입대를 했고 전역을 앞둔 시점에 어학연수를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복무 연장을 했었다. 물론 군대 생활도 성미에 맞았다.
삽질 잘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총 잘 쏘고 후임들 관리 잘하면 박수받는 곳이니 어려울 게 하나 없었다.
이렇게 좋아해서 시작했던 공부가 어학연수로 이어지고 캐나다와 호주에서 지내며 겪은 경험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호빵맨 할아버지가 있을 것만 같은 밴쿠버의 제일 큰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을 하며 배운 영어와 제빵 기술, 노가다판 경험, 새벽에 나가 닭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 등
각기 다른 국가, 종교, 언어, 인종,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며 인간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체득했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타인을 대할 때 생각하는 어떤 가치관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20대 중반,
어학연수를 갔다 와서 복학을 했다.
개강 후 경영학 전공 수업들을 듣다가 마케팅을 만났다.
세 번째는 마케팅이다.
마케팅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타학문에 비해 전공책의 7할이 마케팅 사례로 차 있다.
우리 마케팅 교수님은 정년퇴직을 앞둔 분이 셨는데
인자하신 할아버지가 손주손녀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연배에도 전혀 틀에 박혀 있지 않고, 늘 사회 현상에 대해 궁금해하시고 분석하려고 하셨다.
송리단길, 황리단길 같은 거리의 시초 격인 경리단길을 활성화시킨 장진우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대단한 친구가 어떻게 경리단길을 핫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보자며 분석하신다.
당시엔 마케팅도 마케팅이지만, 아마 그분의 태도에 반한 것일지 모르겠다.
졸업시기가 됐다.
내 아버지는 농협에서 월급쟁이로 평생을 지내셨다.
부족하지 않은 삶이었고, 당신은 평생 하고 싶은 취미를 다 하셨다.
거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나도 안정적인 직장으로 눈을 돌렸는지 모른다.
동시에 형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나라도 안정적인 곳에 앉아 있어야 가족들이 걱정을 덜 하고,
위급할 때 대출이라도 쉬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정적이면서 페이도 괜찮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된 직장이 어딜까 찾았다.
몇 곳 눈에 들어왔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체육회, 코이카 등등
너무 안일하게 멍청하게도 '아 공기관쪽은 대강 준비하면 되겠지~'했다가
몇 년 아주 심하게 큰 고생을 했지만 결론은 잘됐다.
세상엔 정말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취준 하면서 느꼈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더니 나는 운구기일이었다. 운이 엄청 좋았다.
지금은 해외 마케팅 사업을 기획하는 업무를 하고 있고, 좋아하던 마케팅과 외국어를 활용한다.
또 퇴근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실컷 할 수 있게 됐다.
네 번째는 독서와 글쓰기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에 [회색인간]을 집필한 김동식 작가님이 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타일작업, 공장일 하던 중
늘 엉뚱하고 재미난 상상을 펼치는 걸 좋아하던 작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만의 짧은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다.
댓글로 유치하다며 욕을 먹기도 하고, 또 기발하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며
실시간으로 첨삭당하며 성장한다.
주 독자들은 핸드폰으로 짧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잠깐 읽고 싶어 하기 때문에
빠른 전개와 반전, 기발한 소재를 이용했다.
그렇게 몇 백편의 초단편 소설들을 써 내려가던 그의 글을
김민섭 작가가 발견한다. 그리고 그에게 책으로 엮어보자며 제안한다.
그렇게 공장에서 일하던 김동식은 작가가 됐다.
김동식 작가님의 글은 간결하고 숨이 짧은 게 특징이다. 어려운 한자어나 중이적인 문장보다는
가볍고 직관적인 문장을 활용한다.
또한 아주 지극히 평범한 상황과 소재를 잘 활용한다.
예컨대, 이런 느낌이다.
그의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수박을 사려고 익었는지 두들겨 봤다.]
[그런데 수박 안에서 누군가 덩달아 두들기며 '저기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너무 재밌고 왠지 나도 덩달아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가 책을 출판 한 뒤, 독자였던 초등학교 교사가 연락을 해왔고,
자기 반 학생들에게 글 쓰는 법에 대해 강의해 달라며 요청 했다.
이후 다양한 곳에서 글쓰기에 관련된 강의를 하게 된다.
어느 영화 작가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자며 제안을 했다고한다.
김동식 작가가 말한다. 삶이 바뀌었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그게 어떻게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춤 추는 어린 동아리 학생들을 보며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지는 못할 망정 '저런 거 해서 뭐 하냐'며 혀를 차는 어른들이 있다.
그 인간들은 딱 그 정도 수준인 사람이다.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해서 그 정도 어른이 됐을 거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간에 멈추면 그걸로 끝이다.
진득하게 오래 해보자.
33살의 내가 지금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면 늦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도자기를 빚어도
63살이 되었을 때는 30년 장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거야~하시듯
삶의 대부분의 것들이 시작하기에 적기인 때가 있다지만 아닌 것도 많다.
해선 안될 이유 백 가지를 생각하기보단, 내가 해야 할 이유 딱 한 가지만 있다면
시도해 보고 경험해 보자.
의외로 나에게 딱 맞는 옷일 지도 모른다.
운동을 좋아하던 내가 어느 날 운동 용품을 만들어 팔아 대성할지도 모르고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내가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요리를 좋아해서 베이커리나 카페,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을 통해 프랜차이즈 회사를 설립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날고 싶다 해서
단번에 하늘을 날 수는 없을 것이다.
비행기 프라모델을 만들기 좋아했던 내 옆 자리 친구가 공군에서 비행기 정비를 하다 퇴직하고
개인용 비행기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기를 30년,
나이 육십에 직접 만든 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있을지 누가 알겠나.
천천히 하나하나 하다 보면
내가 겪어온 삶들이 어느새 점들로 이어저 큰 시너지를 발휘할지 누가 알겠나.
"You have got to find what you love."
”당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으세요“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발표한 연설문의 제목이다.
그리고 연설의 첫 번째 주제도 이와 같다.
"Connecting the Dots"
점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내용으로
잡스는 대학교 중퇴를 하고 교내에서 디멘터처럼 부유하다가 우연히 서체(Typography) 수업을 도강 한다.
이 경험은 나중에 스티브잡스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 때 다양하고 아름다운 컴퓨터 글씨체로 꽃 피운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문구다.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 Steve Jo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