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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Oct 06. 2018

작지만, 큰 지갑

나의 첫 지갑을 추억하다

지갑이라는 물건은 참 묘한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칠칠맞아서 몇 번 지갑을 흘리고 다녔는데 그중에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서너 개다. 내 인생 첫 지갑은 검은색 원숭이가 그려진 검은색 캐릭터 지갑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꽤 오래 썼던 것 같다. 좋은 점은 지갑을 열면 가운데에 동전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지갑이 딸려 있었다는 것인데, 분리가 되어서 동전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지금은 동전만 들고 다니면 무엇 하나 살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때는 이것저것 불량식품이라도 사 먹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오래 쓰다 보니 이 동전지갑이 큰 지갑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거의 2년을 꼬박 썼으니 그 싸구려 지갑이 성할 리도 없겠지만, 떼었다 붙였다 하는 맛이 없으니 어린 마음으로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동전을 지폐 넣는 곳에 넣을 수는 없으니, 생각해낸 방법이 지폐를 동전 지갑에 같이 넣어 다니는 것. 그때부터 나의 지갑은 아주 작아지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좋은 생각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좁은 곳에 지폐를 구겨 넣다가 동전을 도리어 빼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저 새 지갑을 사면 되는 일을 가지고 그렇게 답답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일이지만, 나는 어렸던 나의 행동들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 원숭이 지갑은 나에게 있어 새로 사면 그만인 싸구려 지갑이 아니라, 내 첫 번째 지갑이었다. 어린애가 이제 자기도 돈을 갖고 다닐 수 있다고, 내 지갑이 생겼다고 온 친척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는, 지금 쓰는 지갑에 없던 애정이 생기려고도 한다. 천원짜리 몇 장이 생기면 온 시장을 돌아다니며 무엇을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결국은 마트에 들어가 과자 한 봉지 사오면 다인 것을. 그땐 지갑은 두껍지 않을지라도 어린 나에 대한 관심과 주위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었다. 무엇을 사도 몇 개 더 얹어주고, 때로는 그저 웃으며 거리를 돌아다녀도 남은 과일 몇 개 건네주시는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렇기에 내 지갑은 작지만, 컸다. '어림'이라는 가치로 가득 찬 지갑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썼던 나의 물건들을 이렇게 떠올려보면, 그때는 내 것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작지만 의미 있는 물건들, 가진 것 없지만 지금보다 더 가진 것 많았다고 생각되는 그 시절. 그리고 지금은 나의 것보다는 남의 것을, 과분한 것들을 탐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이 말 그대로 나만의 것이라는 것, 그 기쁨을 커가면서 우리는 점점 잊어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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