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버스에서 내린 참이었다. 나는 유니버시티 애비뉴에서 집 방향으로 가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옆으로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사내가 같은 버스에서 내려 걸어왔다. 타이트한 검은색 숏패딩에 추리닝 바지를 입은 그 남자는, 몇 달 동안 씻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는 특유의 구린내를 은은하게 풍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애매하게 단정한 옷차림 때문에 전형적인 미국의 홈리스인가 아니면 그냥 오래 못 씻은 사람일 뿐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을 뿐. 그런데 그는 별안간 몇 차례에 걸쳐 건너야 하는 큰 도로를 빨간불에 듬성듬성 건너기 시작했다. 확실히 홈리스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무작정 건널 수 있는 장소가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도로를 반 정도 건너서 교차로를 등지고 목에 흰 팻말을 걸었다. 나는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말이 써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무엇을 팔려고 하든지 구걸을 하려고 하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미국 사거리에서 무언가를 팔려고 한다면, 뻥튀기도 없고 군밤도 없는 동네에서 대체 무엇을 팔 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사내는 그러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뭐라고 하면서 신호에 맞춰 출발하는 차들을 향해 달려가다가 거의 바닥에 자빠질 뻔했다. 나는 차에 탄 누군가가 그에게 욕지거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차에 치이기 직전에 옆으로 피하면서 지폐 한 장을 간신히 주워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창 밖으로 돈을 던진 운전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달렸던 것 같다. 어쨌든 목에 매달려 있던 팻말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그날 위스콘신은 영하 3도였다. 0도에 근접하는 온도는 이곳에서 그렇게 추운 날씨가 아니지만, 몸에 걸칠 옷이 빈약하거나 머무를 실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가혹할 수 있는 기온이기도 하다. 나는 위스콘신의 거리에 거지가 별로 없는 이유에 대해 며칠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나름의 결론을 지은 상태였다. 겨울이 혹독한 곳에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오래 살 수 없다. 추위가 사람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곳에서 집이란 나만의 안온한 공간을 넘어서 생존의 요건에 가깝다. 결국 길거리에 살던 사람들도 날이 추워지면 어디론가 들어가거나, 떠나야 한다. 아마도 머무를 곳 없는 사람들은 사시사철 따뜻한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의 해변도로로 떠났으리라고 나는 짐작해버리고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 치솟는 대학 건물의 환풍구 위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사내의 두툼한 옷차림과 이제 안정을 되찾은 팻말을 보면서 다른 거지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는 것일까. 몸이 추위를 버틸 수 있는 동안, 충분히 쉴 수 있는 돈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한국 거리에서 손바닥만을 위로 둔 채 엎드리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리고 여전히 똑같은 모양의 바구니와 이제는 사라진 현금의 자취를 묻고 싶었다. 내가 어릴 적 시장의 낮은 구석을 배로 쓸고 다니던, 고무다리를 가진, CD를 팔던 잡상인들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사내가 받은 돈이 그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어떡하지. 상기된 표정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들어 올린 종이에 1이라고만 쓰여 있으면 어떡하지. 사내는 어떤 숙소에서 잠을 청하려고, 얼마나 오래, 몇 번 신호등 앞에서 돈을 주울까.
신호가 바뀌고 걸음을 사내의 쪽으로 옮기면서 나는 만약 그에게 돈을 주기로 한다면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주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당장 가진 현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 와서 지폐로 무언가의 값을 지불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사내의 등 뒤를 지나쳤다. 벌이를 하지 않는 내가, 그 사내처럼 도로 중간에 남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나는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서 다시 한번 진한 체취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