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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Lee Apr 07. 2019

삶의 한계와 고통에게

인듀어 -알렉스 허치슨-, 아사코 - 하마구치 류스케-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 까지뿐이다. 그다음은 마음과 정신의 영역이다. - 손기정-


긴 기구력 운동 끝에 탈진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가 고갈된 것에 불과하다. 



작가는 캐나다 달리기 대표선수 출신에,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 전문 칼럼니스로 내가 닮고 싶은 지덕(?)체를 갖춘 존재이다. 책 제목 인듀어는 영어 Endure: 견디다, 참다, 인내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허치슨은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다"라고 정의한다. 책은 더 잘 달리기 위해, 더 짧은 기록을 내기 위한 달리기 방법의 제시가 아닌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극한의 고통을 견디고 지구력과 승리의 단락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지구력이 정신(뇌)과 육체(능력)의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사실을 수많은 실험과 논문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한계를 제대로 재조명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마라톤이나 중장거리 달리기, 울트라마라톤, 사이클, 극지방 탐험, 최고봉 등반 등을 기반으로 작가의 시점과 과학적 사실들을 풀어나가지만, 나는 책에서 우리의 삶을 보았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우리의 부모님들은 말씀하신다. 욜로(YOLO)나 즉흥적 만족감(Instant Gratification)을 추구하는 지금의 세대들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한탄하지 말고, 핑계 대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한 번 가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것은 나의 한계야...'라며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둬버리는 많은 젊은이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지만 수많은 선구자들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지금의 세대에게 아우성치고 있다. 안젤라 덕크워스의 책 <그릿>에서도, 신영준/고영성 <완벽한 공부법>에서도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제대로(deliberate) 끈기 있게(peserverance) 게 해야만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듯이. 


통증내성을 실험한 연구에서는 11명의 프로 선수들에게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3분간 버틴 뒤 느껴지는 고통의 정도를 1-10점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프로 선수들의 평균은 6점이었지만 대조군의 일반인들은 11명 중 고작 3명만이 3분을 버텼고, 나머지는 평균 96초 만에 최고 점수인 10점을 매긴 뒤 실험을 포기했다. 이와 유사한 많은 실험의 결과를 보면서 작가는 프로 선수들은 고된 훈련으로 통증에 대응하는 능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것인지, 그들의 통증내성이 높기 때문에 프로 선수가 된 것인지와 같은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의문을 제기 하기만,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 선수들은 인내하고 훈련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즉, 누구나 상황과 조건이 주어진 상태에서 의지만 있다면 얼음물에 손을 3분 담그고도 극심한 고통이라 여기지 않을 수 있을 것임을. 


이 책을 덮을 때쯤엔, 나도 당장 나가서 달리고 싶어 진다. 내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오더라도 옌스 보이트처럼 "다리야, 닥쳐(shut up, legs)!" 라고 외치며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힘들지만 재밌을 것 같은 미친 상상. 


우리의 삶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부분이자 동반자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왔을 때 불평하고 포기할지, 목숨을 잃지 않는 한 고통에 맞서고 해쳐나갈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영화 이야기-


이 영화는 멜로 영화로 분류되었지만, 판타지이면서 스릴러 같은 느낌이다. 왜냐하면 어릴 시절  누구나 한 번은 저질렀을 뻔한 어리석은 사랑의 실수를 아사코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나도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 아사코(아침의 여자라는 뜻이라네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여기서부터 영화와 책을 억지로 연계시켜보자)


사랑의 상처, 고통 보다 우리 기억에 오래 남는 고통이 있을까? 인간이 느끼는 육체적 고통 중 화상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나도 불로 인한 화상은 아니지만 아스팔트에 몸을 갈면서 생긴 화상에 솜뭉치 소독약으로 벅~벅~ 닦아낼 때의 고통은 아직도 그 화상 부분이 시리는 느낌이 들지만, 가슴 시린 사랑의 상처와는 비교가 안 되는 듯하다. 


인간의 행복도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고통의 척도는 모두 다르다고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고통은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슬픔에 공감(empathy) 한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인 것 같다. 내가 많이 부족한 부분이고 그래서 사람을 더 알아가려고 책으로 사람을 연구하고 책으로 타인의 경험을 익히지만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묻어 나오는 진심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남자 주인공 료헤이가 받은 상처와 고통이 우리의 삶에도 찾아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슬퍼하고 불평하고 비난하고 비관하고 분노하고 그렇게 시간이라는 치유약에 기대어 삶을 이어갈 것인가?

술이랑 눈물에 기대어 보니 후회와 상처 말곤 남는 것이 없더라. 


료헤이는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돌아와 용서를 비는 그녀를 온전히 용서하진 못하지만 조용히 문을 열어준다. 어쩌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행과 동거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올 수 있게 문을 열었다. 너무 사랑하니까. 



나의 삶에도 내 꿈들, 목표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통이 왔을 때 나의 한계는 여기 까지야, 더 이상 나는 못하겠어라며 포기하지 않는, 나와의 싸움에 승리하는 내가 돼야지 않을까.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할 테니까. 그래야 이곳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번외-


스트라 영어 토론 모임을 하면서 기대하지 못했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가고 있다. 영어를 잘 못해서 영어나 한 번 해볼까 하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와 같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건강한 한인 커뮤티니를 만들려는 좋은 뜻을 품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인연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앞으로 한국과 같은 저신뢰 문화로 병든 시드니 한인사회를 위해, 혼란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안갯속에 갇힌 연착된 활주로 같지만. 뜻이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함께 노력한다면 고난과 역경이 올지라도 종국엔 비행기가 뜰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마무리하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니체-


이제는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조차도 참 감사하다. 

돈이나 재능이 아닌 노력과 정신으로도 이길 수 있음을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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