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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Lee Jun 03. 2019

세상과 역사는 평화를 원치 않는다

최진기의 끝내주는 전쟁사 특강, 알렉산더, 킹덤 오브 헤븐

30여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세계 평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 45대 대선에서 모두들 힐러리를 지지하는 것 같았지만 트럼프가 승리하듯 다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던 이기적인 소수가 이기는 것이 역사이더라. 세계 평화도 원치 않는 소수가 있기 때문에 다수는 늘 꿈만꾸는 것은 아닐까. 타협하고 비겁하게 사는 것도 우리 삶의 일부이듯 그렇다고 그 소수를 탓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으련다. 


최진기 강사의 저서 <최진기의 끝내주는 전쟁사 특강 2>은 세계 전쟁사의 큰 틀을 볼 수 있는 시아를 밝혀주는 등대라고나 할까. 참고문헌이나 각주가 하나도 없는 특이한 책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간한 책인데 저자 스스로 엄청난 자료수집과 공부를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일단 진짜 재밌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한 번에 다 읽게된다! 




책에서 언급하는 전쟁들 속에 2000년대 초중반에 불었던 고대 전쟁 영화의 붐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5편의 영화(시대순) 중 2편을 책과 함께 이야기해보려 한다. 


트로이 2004 

300 2005

알렉산더 2004

글래디에이터 2000 

킹덤 오브 헤븐 2005



알렉산더 대왕을 Alexander the Great이라 부르는 이유를 아는가? 많은 영토를 지배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강력한 해군을 가진 아테네나 최강 육군을 가진 스파르타도 중동의 강대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아시아를 넘어 당시 지식으로 알고 있던 세상의 끝까지 가보려는 야망은 알렉산더 말곤 없었으니까. 알렉산더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현자로 추앙받던 아리스토텔레스도 틀렸다는 걸 알렉산더는 집적 눈으로 보았다. 

영화 초반에 그 유명한 가우가멜라 전투 장면이 나온다.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는 10만의 병사가 있었고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는 4만 조금 넘는 군사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지만 전쟁 천재 알렉산더는 대승을 거둔다. 당시 그리스 보병의 전형적인 팔랑크스 전법(영화 300처럼 방패와 장창으로 무장한 보병)과 기병을 쓰던 알렉산더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망치와 모루 전법으로 버티는 보병을 돌아서 페르시아 왕이 있는 곳으로 돌파함으로 상대의 진영을  무너뜨리고, 도망가는 다리우스 3세를 뒤로하고 파르메니온 진영을 보호하기 위해 페르시아 군대를 포위하고 거의 전멸시켜 버린다.  그 후 이수스 전투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승리하면서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원정을 떠나는 업적을 남긴다. 


역사는 바라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특히 후손에게 이름이 남는 인물은 치켜세우면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아지고, 반대로 까다보면 멘틀 뚫고 지구 핵까지도 들어갈 기세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지의 사람들을 야만인이나 노예로만 보지 않고 동등한 대우를 해주고 혼인까지 하는 유화정책을 쓴 점과 모두가 세상의 끝이 인도쯤이라고 믿던 통념을 벗어던지고 더 넓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말을 몬 것은 대왕이라 불릴만 하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영웅주의에 빠져 후계자 지명도 하지 않고 죽음 후 모든 정복지를 혼란과 전쟁속에 남겨둔 것은 지혜로운 자의 덕망이 아니라 본다. 솔로몬 왕도 성경에선 지혜의 왕으로 나오지만 후계자 선정에 실패하고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분열 후 다른 나라에 망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솔로몬은 결코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위대한 왕이란, 자신의 이름과 업적을 모든 역사책에 남긴 존재들이 아니라 백성들과 후대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선견지명을 가진 왕이 참으로 위대하다고 본다. 이를 테면 세종대왕처럼. 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훈민정음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과 심지어 오늘날까지 우리는 한글이라는 위대한 언어로 혜택을 받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나에게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킹덤 오브 헤븐>이라 말한다. 3시간 감독판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지겨움이 전혀 없다. 일단은 동서양 음악의 조화로 민감한 내 청각이 즐겁다. 


영화는 12세기 2차와 3차 십자군 원정쯤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있다. 발리안과 시빌라 공주의 로맨스나, 발리안이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약속받을 때까지 살라딘의 군대로부터 성을 지켜낸 장면은 허구이다. 중동의 위대한 술탄 살라딘에 대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쓰기로 하고, 한 줄로 그를 표현하자면, 덕망 있고 신뢰 가는 리더였다. 영화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인물은 보두앵 4세나, 발리안이 아닌 살라딘이라고 본다. 


최진기의 끝내주는 전쟁사 특강 책에선 십자군 전쟁에 대한 큰 비중이 없는데, 일단은 역사에 남을 만한 전투도 기원전 그리스인들이 싸우는 방식보다 별반 발전된 무기나 전술도 없기에 언급할 껀덕지가 많이 없다. 서로마의 멸망에서 동로마의 명말까지의 중세시대는 그냥 무난하게 강력한 종교의 힘으로 현상유지만 하고 있었으니 역사에 기록될 유명한 전투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십자군을 까지않을 수 없는게, 신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악인들이 자신의 죄를 선량한 타인의 목숨(무슬림)으로 용서받으려 한 발상 자체가 너무 괘씸하다! 십자군 비난하면 끝이 없으니 진정하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두 장면이 가슴에 남는데; 


고프리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서자 발리안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 앞에 결코 두려워 말라

늘 용기 있게 선을 행하라

죽음의 위험이 있을지라도 진실만을 말하라

약자를 보호하고 의를 행하라

그것이 너의 소명이다


영어로 들으면 더 멋있는데, 한국어로 표현하다 보니 부족한 면이 있지만, 저렇게 사는게 예수가 설파했던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또 한 장면은 발리안이 아버지 고프리의 충신 중 한 명과 신앙에 대해서 대화하는 장명이 있는데, 발리안은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에 가서도 신은 자신에게 말이 없었고 이제는 신앙도 없다는 발리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신앙은 믿을게 못됨

폭력의 광기를 신의 뜻으로 합리화하는 자가 많음

너무나 많은 살인자의 눈에서 광기 어린 신앙을 보았음

선행과 약자를 돕는 용기만이 참된 믿음의 모습이고 의로움임

신의 뜻은 우리 속에 있으며 선한 이 가 되든 악한이가 되든 매일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음


중세시대 가톨릭과 교황청을 타락의 온상으로 치부하고 그래서 종교혁명이 일어나고 개신교는 다르다고 말하는데, 글쎄... 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넘어가도록 하고. 


영화의 제목인 킹덤 오브 헤븐 (하늘나라)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죽음 후에 가는 천국 같은 상징적 장소가 아닌 정의가 이루어지고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발리안이 살라딘과 협상을 하고 마지막으로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의 가치를 묻는데, 살라딘은 주저함 없이 nothing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서서 everything 모든 것이라 답한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욕망하는 모든 것의 가치는 무엇일까?

돈, 명예, 꿈, 생명, 사랑, 평화 -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 동시에 누군가에겐 모든 것일 수도 있는 것. 

어쩌면 세상엔 공공의 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는 건 아닐까. 

일부에겐 평화가 목숨 바쳐 지키고 싶은 것이고 일부에겐 그저 지루하고 돈 안 되는 것이기에, 

인류가 문명사회를 만들고 부턴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많이 일어나겠지. 


전쟁은 영화와 책, 게임으로 경험하면 너무너무너무 재미있는데, 

그 전쟁 속에 살아간다면 그곳은 지옥이 된다. 


전쟁을 원하는 자들 편에서 이익을 나눌 것인가? 

평화를 원하는 자들 편에서 투쟁 할 것인가?




-번외-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의 입장으로 회사의 이익창출과 직원들의 복지를 저울질 하다보면

호주 노동법을 존중하지 않는 사장에게 직원들편에서 투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지면서도, 

당장 내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상관없으니 또 몸을 사리게 되고, 

그렇게 여러 직원들을 보냈고 또 떠나려는 동료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무겁다. 

이 작은 회사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한국과 호주, 세상을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야망은

너무도 역설적이구나... 


라인홀드 리버의 Serenity Prayer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수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수 있는것들은

변화시킬수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가지를 구별할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도대체 이 기도는 언제 어떻게 삶에 적용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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