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연애> 열여덟 번째 이야기
9살 아들이 <청진동 해장국>의 ‘내장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김치도 매워서 못 먹는 애가 내장탕이라니…. 기이한 일이었다. 아무튼 먹고 싶다고 하니 사다 줘 보자. 요리하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나는, 특히 국물 나오는 요리는 더더욱 싫어해서 ‘라면’도 잘 안 끓인다. 그러니 해달라고 하는 건 못 해줘도 사달라고 하는 건 사다주자.
<청진동 해장국> 사거리에 도착했다. <청진동 해장국>은 집 근처 안양 변두리의 동네에서 아는 사람만 가는 밥집이다. 해장국집 횡단보도 건너편 모퉁이에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이 유난히 하얗다. 그렇다고 따갑지도 않고 매우 밝지만 신기하게 눈이 찌푸려지진 않는다. 밝은 걸로 봐선 대낮인데 사거리의 10차선 도로에는 차가 없다. 사거리이므로 90도 각을 두고 길을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각각 있는데 신호등의 불은 둘 다 빨간색이다.
'해장국! 해장국! 해장국 신호등아 어서 바뀌어라!'
내가 가야 할 해장국집 방향 신호등만 노골노골 간절히 바라보았다. 조속히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래서였을까. 노골적으로 해장국 신호등이 바뀌길 기대하니 다른 방향 신호등이 먼저 초록색이 되었다. 하여간 꼭 이런다.
내 쪽에서 지금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로 건너가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저편에서 내 쪽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인원수가 제법 많았고 그들 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내 친구 전금원. 키가 185cm쯤 되고 노느라 잠을 못 자서 여전히 마른 체형인 게 딱 금원이다. 빈티지한 NAVY색 면티에 적당히 헐렁한 카키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금원이는 약 15년 전, 그러니까 애 아빠를 만나기도 전, 어느 늦은 새벽 합정의 쪼마난 클럽에서 만난 친구다.
“너도 2차 갈 거야?”
“나? 좀 졸린 데.”
“그럼, 내 차에 가서 좀 쉬고 있을래? 형 정리 끝나면 데리러 갈게.”
“흠…. 그럴까? 근데 네 차가 뭔데?”
“내 차 몰라?”
“내가 너를 오늘 처음 봤는데 네 차가 뭔지를 무슨 수로 알아?”
정확히 말하면 지금 여기가 2차, 아니 3차쯤 된다. <NB>에 들러서 한 차례 놀고 오래된 <X세대 분식>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이 작은 클럽 <벙커>에서 마무리를 할 참이었다. <벙커>에는 새벽 2시쯤 들어왔는데 이 시간에는 거의 내가 아는 얼굴만 보인다. 몇몇은 아까 <NB>에서 봤고 또 몇몇은 <M2> 혹은 <코쿤>이나 <베라>에서 놀다 왔을 것이다. 나는 <벙커>에서 아껴둔 알코올 배를 채우려고 나만의 칵테일을 주문했다. ‘잭다니엘’, ‘코카콜라’와 ‘봄베이’, 레모네이드에 들어가는 ‘구연산 가루’가 주재료인데 정확한 레시피 비율은 <벙커> 사장 오빠만 알고 있다.
“뭐야? 형, 나도 똑같은 거.”
“안돼! 이거 나만 마실 수 있는 거야. 부러우면 너도 금원주 뭐 어쩌고 만들 던가. 나만 마실 거라 메뉴에도 없는 거라고!”
“아 진짜 지나치게 섭섭하네.”
오늘 <벙커>에서 처음 본 전금원은 불과 몇 분 전에 통성명을 하고 동갑이라며 바로 말을 짧게 하더니 10년 지기 친구도 잘 안 넘보는 나만의 메뉴까지 넘봤다. 그래서 내심 괘씸했는데 쉬라고 친히 차를 내주니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다.
“여기서 쉬고 있어.”
금원이 차는 제법 큰 차였다.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아우디. 처음엔 조수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봤다. 아주 편하진 않았다. 그래서 뒷좌석으로 옮겼다. 발을 차 창문에 걸치고 누우니 만족스럽게 편했다. 그래서 눈을 좀 오래 감았다.
“뭐야? 너 막 발냄새나는 거 아니지?”
<벙커> 사장 오빠의 청소가 끝났나 보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차창 밖에서 나를 깨우는 금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오빠가 뭐 먹으러 간데?”
“뭐, 별 거 있나. 형이 저번 주에 회 먹었다고 오늘은 삼겹살 땡긴 다는데?”
“아…”
“왜? 그냥 가고 싶어?”
“응. 졸려. 삼겹살도 별로고.”
“그래? … 그럼 잠깐만 있어 봐.”
나는 계속 뒷좌석에 누워 있었고 금원이는 차 밖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물어보나 마나 <벙커> 오빠와 통화하는 거다. 통화를 마친 금원이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너는 택시 태워 보내고 나는 오라는데?”
“그래?"
집에 가려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금원이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너 왜 타? 더 안 놀아?”
내리려던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아 다시 뒷좌석에 편히 눕고 물어봤다.
“에이, 어떻게 그러냐? 너 광화문 산다며?”
“응. 세종문화회관 뒷 쪽.”
금원이는 자기 집이 서대문이라고 했다. 같은 방향이라고 집까지 태워주겠다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럼 광화문에서 혼자 사는 거야?”
“어.”
“얼마나 됐어?”
“왜?”
“아니 뭐, 먹는 건 잘해 먹고살아? 괜히 걱정되네.”
토요일 아침 광화문 가는 도로에는 차가 정말 없었다. 나는 계속 누워 있고 싶었지만 차가 움직이니 좌석에 맞닿은 머리가 덜덜 울려서 바로 앉았다. 그렇다고 굳이 앞자리 조수석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아우디가 금호터널로 진입할 때 즈음 또 눈을 오래 감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론 이때, 대차게 코까지 골았다고 한다.
현재의 금원이는 결혼을 했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계속 서대문에 살고 있다. 나는 아들이 세 살 되던 해 지금의 안양으로 이사 나왔다. 이후, 서울 갈 때마다 애들끼리 놀리면서 밥 먹고 가끔 금원이 아내의 요리 솜씨 덕에 술도 맛있게 한잔 하면서 연을 이어오고 있다. 금원이의 아내는 SNS에 쿠킹 영상을 업로드하는 꽤 유명한 인싸다.
몇 주 전에 금원이 아내의 SNS에 올라온 어느 유명 카페의 아포가토 사진에 ‘좋아요’ 하트를 보냈다. 해시태그 내용은 내 아이보다 세 살 많은 큰 딸이 학원에서 본 수학시험에서 백점을 획득했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은 ‘아포가토 맛있겠어요.’ 2할에 ‘따님 백점 받은 거 축하해요.’가 8할이었다. 나도 ‘하트’와 함께 축하 댓글을 남겼다.
그런데 이 시각에 전금원이 왜 여기 있지? 내 기억에 의하면 금원이는 안양에 온 적이 없다. 최소한 내가 이사 온 이후로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안양 시내도 아닌 외곽 변두리의 <청진동 해장국> 사거리에 금원이가 있다. 도로 건너편에서 여전히 서대문 살고 있는 금원이가 내쪽으로 걸어온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다. 옆에 여자가 있다. 그것도 꽤 귀여운 느낌의 여자가 금원이의 팔짱을 끼고 찰싹 붙어 함께 걸어오고 있다. 대충 흘낏 봐도 여자는 금원이 아내가 아니었다. 키가 금원이 아내보다 더 크다. 결정적으로 약 10년 전부터 전금원 부부가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충분히 바람직하지 못한 정황이다. 저 금원이의 모습을 핸드폰에 남겨야 하는데. 더듬더듬 호주머니를 향해 팔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움직이고 싶었다. 그런데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왜 이러지? 아마도 호주머니에 있을 핸드폰이 잘 있기는 한지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손과 팔이 얼어붙은 것 마냥 꿈쩍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전금원 저 자식 시야에는 내가 들어오지 않나?
“야, 일어나. 너네 집 어딘지 알려줘야지.”
금원이가 처음 집에 바래다줬던 새벽 아니 이른 아침, 차 안에서 눈을 오래 감고 있는 나를 금원이가 깨웠다. 눈을 떠 보니 세종문화회관 뒤 골목 안이었다. 저만치 <GS25> 편의점이 보였다.
“저기 GS앞에.”
“뭐야? 여기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연신 하품이 나와서다. 골목이라 천천히 운전하던 금원이는 더 천천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너 진짜 배는 안 고파?”
“어.”
“아 나는 좀 고픈데… 너네 집에 시리얼 없어?”
“어.”
“오, 있어? 그럼 나 그것 좀 주라.”
“아니 없다고. ‘없냐?'라고 물어서 '어.’ 없어. 없다고!”
“왜 그래? 없으면 없는 거지. 왜 짜증을 내고 그러냐?”
금원이는 실실 웃으며 나에게 짜증 내지 말라했었고 나는 원래 짜증까진 안 났었는데 짜증 내지 말라는 말에 진짜 짜증이 났었다.
“너 요리 못 하지?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지? 내가 파스타 좀 하는데.”
진짜 짜증이 났었기 때문에 대답 없이 미간만 구기고 있었는데,
“그러지 말고, 너 파스타 뭐 좋아해? 로제? 봉골레? 오일?”
“흠… 까르보나라.”
“오! 역시… 까르보나라. 오빠가 까르보나라 진짜 잘하잖아. 몰랐지? 언제 나 불러. 내가 싹 장 봐다가 너네 집에서 파스타 해줄게. 너 진짜 까르보나라엔 화이트소스 안 들어가는 거 알아? 사람들이 까르보나라라고 하면 보통 화이트소스 기반 파스타로 아는데. 아, 나 샐러드도 좀 한다.”
파스타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자신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금원이는 내가 알기론 지금까지 아내에게 한 번도 파스타를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 저 여자한테는 해줬으려나? 금원이가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너왔다.
“어때? 아침부터 파스타가 좀 그러면 오빠가 저녁에 파스타 해 줄까?”
그날 아침 아침, 파스타를 해주겠다는 금원이를 나는 빤히 노려봤다. 졸린 눈에 힘주기가 참 어려운데 그걸 해낸 거다.
“왜? 왜 그렇게 봐?”
“너 웃긴다?”
“뭐? 왜?”
“진짜 무슨, 파스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왜 갑자기 내 오빠야? 그리고 파스타는 무슨 파스타야?!”
금원이는 대답 없이 먼 데만 보며 GS앞에 차를 세웠다.
“전금원… 어설픈 수작 부리지 마. 찔러보지 말라고.”
금원이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운전대만 꼼지락 거렸다.
“내가 너 같은 애들 한두 번 보겠냐? 먹든 안 먹든 일단 눈에 띄는 감마다 다 찔러보는 거, 그걸 내가 모르겠냐고.”
“아니, 내가 무슨 감을 찌른다고 그래?”
“그래, 그래. 예의상 시치미 떼는 걸로 양심은 있다고 해 줄게. 암튼 데려다준 건 고맙다.”
그렇게 금원이와 나 사이에 파스타는 없었다. 그래서 친구로만 지내올 수 있었던 금원이가 왠 모르는 여자와 붙어서 의심쩍은 모습으로 걸어오니 나는 몇 가지 경우의 수로 고민을 했다. 이대로 금원이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치길 바라야 하나? 아니면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또 금원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 와이프를 대신해서 저 전금원한테 한 소리 해줘 버릴까? 아니면 안양에는 무슨 일이냐며 자연스럽게 근황 토크나 해야 하나? 짧은 시간 동안 짜증 나게 고민했고 발을 동동 굴려 보려는데 문득 나의 두 다리가 마비가 온 것처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러지? 땀이 삐질 났다. 어라, 턱마저 위아래가 붙은 듯 안 떨어진다.
드디어 <청진동 해장국> 방향 신호등에도 초록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움직일 수가 없고. 온몸이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다 건너온 금원이는 가던 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초록불이 들어온 <청진동 해장국> 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아닌 내가 모르는 얼굴의 여자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나는 금원이 눈에는 안 보이는 유령이 된 것처럼 깨끗이 무시당하고 있었다. 이때, 금원이가 자기 팔뚝에 붙은 여자에게 무언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출발! 비디오 여행.”
뭐? 웬 '출발! 비디오 여행'?
“출발! 비디오 여행!”
금원이에게 웬 ‘출발! 비디오 여행’ 이냐며 간절히 물어보고 싶었는데 옴짝달싹 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급기야 입에서 끙끙 소리가 새 나왔다. 순간, 내가 가위에 눌린 것을 깨달았다.
“일어나! '출발! 비디오 여행' 시작했다고! 엄마!”
갑자기 팔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나는 우리 집 소파에 누워 있었다. 아마도 9살 아들에게 계란밥을 해주고 잠깐 눈을 붙였나 보다. 어쩐지 아들 녀석이 해장국을 찾았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국물 요리도 달달한 갈비탕이나 뚝배기 불고기만 찾는 녀석인데. 김치도 매운 거 싫다고 백김치만 먹는 앤 데.
“엄마가 '출발! 비디오 여행' 시작하면 깨워달라고 했잖아. 벌써 시작했단 말이야. 앞에 조금 못 본 거 나 때문이 아니다.”
내가 잠들기 전에 깨워달라고 했었나? 아마도 막 잠들고 나서 중얼거렸나 보다.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아들은 '출발! 비디오 여행!' 앞부분을 놓친 것에 대해 잘잘못을 정확하게 따지고 들었다. 그럼 그럼,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잠깐 까무룩 졸면서 가위에 눌린 내 잘못이지. 그것도 개꿈까지 꾸고 10년도 더 된 옛날 일까지 떠올리면서.
“엄마, 나 배고파.”
“음… 벌써?”
“응.”
“그럼! 꼬칼콘 먹자. 나도 먹자.”
아들이 꼬칼콘을 가지러 간 사이 나는 금원이에게 장난 삼아 카톡을 보냈다. 꿈 이야기는 쏙 빼고.
ㅡ너 어제 그 여자 누구야? 키 큰 애. 내가 다 봤어. 너무 붙어 있던데ㅡ
꼬칼콘을 먹으면서 보니 내가 보낸 카톡 앞에 숫자 ‘1’이 사라졌다. 금원이가 확인 한 건데 답톡은 없다.
아들과 둘이서 꼬칼콘 한 봉지는 왠지 아쉬워 한 봉지를 더 텄다. 처음 먹은 건 ‘고소한 맛’이었고 두 번째는 ‘매콤한 맛’이다. 매운 걸 안 좋아하는 아들은 ‘매콤한 맛’을 많이 먹지 않았다. 여전히 금원이에게서 답톡은 없다. 그렇게 '출발! 비디오 여행'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금원이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 반가웠다. 그리고 금원이가 해주는 이야기를 잠깐동안 말없이 듣기만 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야! 너 정말 왜 그러고 다니냐? 왜? 진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언성을 높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진짜 그렇게 살다 사달나. 진짜 큰 사달 난다고! 지금 네 애들이 몇 살인데. 정신 차려!”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하던데 그게 모양만 바뀌는 거지 강이 산이 되고 산이 강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읽씹. by 옥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