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연애> 열아홉 번째 이야기
쓰다. 냄새는 꽤 그럴싸한데 막상 마셔보면 그 맛이 매우 쓰다.
“시럽. 펌프 세 번!”
뜨겁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불어내도 마실 땐 입천장이 데일까 무섭다.
“그러니까 또 얼음을 세 개? 아니 네 개, 다섯 개!”
근데 또 얼음이 녹으면…
“샷 추가! 투 샷, 투 샷 추가!”
물이 많아져 커피가 맹탕이 된다.
“아니, 학생. 이럴 거면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
“사장님 뭐라고요? 이 한겨울에 얼어 죽으라고요? 빨리 주세요. 얼음 다섯 개, 샷 두 개! 시럽 펌핑, 펌핑, 펌핑.”
대충 참고 먹으면 될 텐데 꽤나 까다롭게 구는, 자기주장이 강해 보이는 학생이다. 미술학원에 다니는지 꽤 큰 화구통과 화판을 씩씩하게 어깨에 짊어지고 머리엔 ‘라이언’과 같은 브라운색 세안 밴드를 두르고 있다. 물론 그 세안 밴드에는 ‘라이언’ 머리도 달려 있다. 지난번엔 교복 입은 걸 봤는데 방학은 방학인가 보다. 그 때 봤던 교복 치마도 딱 저 세안밴드 브라운색이었다. 치마랑 깔맞춤이 되서인가 머리 위 ‘브라운’이 그 땐 제법 잘 어울렸는데 지금은 많이 튄다. 하여간 요즘 애들이란.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이 카페 사장님에게 주문을 넣으며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밴드 위 ‘라이언’ 머리도 함께 주장을 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앜!”
카운터 계산대에는 조잡한 마블과 디즈니의 나노 블록 캐릭터들이 각각 편을 먹고 두 줄로 정렬되어 있었는데 ‘라이언’이 화구통으로 그중 하나를 건드렸다.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도 있었던 걸 사장님이 빠르게 잡아 막아냈는데 저 민첩한 움직임을 보니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나 보다.
“와, 빠르다.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라이언’이 정확하게 원하는 커피를 받아 벌컥벌컥 마시며 밖으로 나갔고, 잠깐 바깥의 찬 겨울 공기 냄새가 나더니 이 카페의 또 다른 단골손님이 들어왔다. 키가 나보다 작고 푹 눌러쓴 시커먼 야구모자 아래로 얼핏 보이는 얼굴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키만 작은 게 아니라 체중도 나보다 적게 나갈 것 같은 왜소한 체구의 아저씨로 테이블이 5개만 있는 이 작은 카페에 이 시간에는 항상 비어 있는 본인의 지정석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뭘 보다 간다. 아저씨의 지정석 앞쪽엔 레고로 만들어진 오페라 하우스가 있어서 저 왜소한 아저씨 테이블을 파티션처럼 가려준다.
오페라 하우스가 제법 커서 저 레고만 치우면 테이블을 한 개를 더 놓을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며 공간 활용이 아깝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했다.
“진짜 같죠?”
“네?”
“저 오페라하우스요. 그런데… 손님도 얼음 몇 개 넣어드릴까요?”
“아…”
“아니, 아까부터 계속 호, 호 불기만 하는 것 같아서. 지금쯤이면 다 식었으려나, 아니면 혹시 맛이 없는지… 요? 제 커피가?”
“아… 아…”
나는 사장님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어? 목이 많이 불편하세요? 감기? 인후통? 꽤 많이 잠기셨는데.”
“아… 그게 아니라… 그게, 제가 그냥 조금 아팠어요.”
두 달 전에 산부인과로 가슴 초음파를 받으러 갔었다. 특별히 무슨 증상이 있는 건 아니었고 매년 해오던 회사 건강검진의 일환이었다. 그저 올해, 40살 된 기념으로 얼마 안 남은 가슴살을 호떡 누르듯 납작하게 찍는 엑스레이에 초음파 하나를 추가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냥 가볍게 한 번 올라갔다 올까요?”
유난히 기분 좋아 보이는 초음파 선생님이었다.
“네? 그 올라갔다 오는 게 뭐예요? 저는 가슴만 하자고 했는데요? 괜히 돈을 더 내야 한다던가 그러면 필요 없는데요.”
“아휴, 아니에요. 그런 건 없고 그냥 쓱 한 번 보는 거죠. 가볍게, 가볍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엄청 기분이 좋아 보이던 그 선생님은 신속하게 내 목에 젤을 바르기 시작했다.
“자, 휙 한 번 봅시다. 가슴은 깨끗하니까.”
무슨 곡인지 모를 콧노래까지 부르는 선생님의 손에 들린 탐촉자는 깨끗하다는 가슴 위에 원 하나를 그리고 빠르게 내 목젖 언저리로 올라왔다. 그리고 왜인지 선생님의 콧노래가 느려졌고 목 위에 머무는 탐촉자의 속도도 느려졌다.
선생님이 콧노래를 멈췄다. 그리고 걱정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또 다른 검사를 권유했다. 나는 추가 비용은 낼 수 없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화답했다.
그렇게 나의 목에서 2cm짜리 암덩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갑상선암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에 이 ‘2cm’를 제거하는 수술과 긴 휴가를 받았고 대신 목소리를 잃었다. 요새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고 한다던데, 막상 겪어보니 아니었다. 크고 작음이 있을 뿐 암은 암이었다. 이렇게 얻은 휴가는 편하지 않았고 어려웠다. 갑자기 생긴 시간은 부담스러웠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 목소리 돌아오는데 2달 정도 걸린 데죠?”
“어? 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그거 갑상선암 걸려봤어요.”
“사장님이요? 어떻게요? 아직 한참 어려 보이는데?” 나는 놀랬다. 납득이 쉬이 가지 않았다.
사장님은 이제 막 군 제대를 한 내 막내 삼촌의 막내아들과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처음엔 사장님이 당연히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다. 나중에 이 카페 주인이라고 해서 이미 적잖이 놀란적이 있다. 막내 삼촌의 막내아들은 내 사촌들 중에서 가장 어린데 그 나이 또래의 사장님이 갑상선암이었다니.
“21살 때 발견했어요.”
“네에? 그렇게 어릴 때?”
“네, 그래서 군대를 안 갔잖아요. 개이득!”
암에 걸려 군 면제를 받은 게 행운이었다며 웃는 사장님은 쇄골 뼈 중앙에 ‘웃고 있는 입’ 흉터를 힐끗 보여주었다. 내가 스카프로 가리고 있는 나의 ‘웃고 있는 입’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지금 휴직 중… 이신 거죠?”
“아, 어떻게?”
“아니, 옛날에는 아침에 들르셨잖아요. 아니면 퇴근길에 집에서 일 때문에 밤새야 한다고 들르시거나.”
아, 그걸 기억하는구나. 사장님 말이 맞다. 애들 때문에 야근을 할 수 없어 회사에서 못 한 일을 집에 들고 와서 할 때가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은 인터넷에 그대로 있고 내 몸뚱이가 회사에서 집으로 장소만 이동해 일하는 거지만. 그럴 때면 나도 아까 그 ‘라이언’처럼 샷을 두, 세 개씩 추가하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레고 스타워즈가 안 보이네요?”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이요?”
“아, 그건가? 그 우주선.”
“음, 그건 ‘레고’니까요. 잠깐 가져다 놨다가 다시 가져갔어요.”
“에? ‘그건 ‘레고’’가 뭐에요?”
이때, 막 학원 수업을 끝낸 애들을 데리고 이 동네 이웃 어머님들이 들어왔다. 어른 한 명, 아이 한 명씩 짝지어 6명이 들어왔지만 주문한 음료는 3잔이다. 아이들 손에는 각자 마트에서 사 온 간식거리가 들려있다. 사장님은 정신이 없어졌다. 아이들이 마트에서 사 온 음료를 굳이 한겨울에 얼음컵에 마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주문한 음료는 3잔이지만 은근 마음 약한 사장님은 6잔을 서빙해 갔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장사를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아닌 이 작은 카페의 실내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혹은 반셀프로 만든 물건들로 가득하다. 특히 저 레고 오페라하우스. 저만한 크기의 레고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으려나. 가격도 꽤 나갈 텐데. 그래서 그런가? 사장님 카운터 안쪽 컴퓨터를 보면 어딘가에 설치해 놓은 CC카메라 화면도 보였다. 카메라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저 오페라하우스 자리에 레고 밀레니엄 팔콘이 있었다. 팔콘은 직접 제작한 걸로 보이는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었는데 오페라 하우스는 따로 상자 안에 들어있진 않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주말마다 블록방에 갔었다. 한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이용료만 지불하면 따로 레고를 사줄 필요가 없고, 따라서 집에 레고를 진열할 필요도 없었기에 블록방에서 레고를 만드는 것은 나에겐 매우 편리한 일이었다. 그때 블록방에서 레고로 만들어진 저 오페라 하우스 같은 건축물들을 여러 개 보았는데 블록방 사장님은 전시만 해놓고 따로 아이들에게 체험해보라고 권유하진 않았다. 레고 제작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블록 수가 많아 만들어놓은 레고를 분해하는 것도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레고 건축물들은 조용히 치워졌다. 여기 사장님도 저 오페라 하우스를 치워버리고 테이블을 하나 더 놓는 게 훨씬 이익일 텐데. 아직 어리긴 어린가 보다.
‘어, 오늘 비나 눈이 온다고 했었나? 날은 맑은데.’
오페라 하우스 쪽을 면밀히 쳐다보다 그 너머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게 되어 잠시 머쓱해졌다. 아저씨는 바지 안에 3단 우산을 넣어 가지고 온 것 같다. 이 카페 단골 아저씨. 머리가 작은 건지 쓰고 다니는 야구 모자가 큰 건지 모자가 얼굴의 반을 가려 눈까지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게다가 테이블에 앉아서는 항상 핸드폰만 들여다보는데 뭘 그리 열심히 보는 건지. 너무 오페라 하우스 쪽을 보고 있어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살 거 같아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읔!'
아저씨의 야구 모자 그늘에서 나를 향해 낼름거리는 혀를 봤다. 나는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방금 들어온 이웃 어머니팀 6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왁자지껄 카페 밖으로 나가고 있다.
‘뭐지? 내가 뭘 본 거야?’
손으로 턱을 궤는 듯 입을 가리고 카페 밖으로 나가는 6인을 보는 척 고개는 고정하고 천천히 눈알만 굴려 아저씨를 향해 초점을 옮겼다. 눈이 마주쳤던 게 나의 착각이었는지 아저씨는 하던 대로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주시하고 있다.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봤다. 낼름거리다 쏙 들어가는 아저씨의 혀를. 그런데 그 혀보다 더 어색하고 쎄한 게 눈에 들어왔다.
‘왜 저게 더 커진 것 같지... 왜 저렇게 흔들고 있는 거야?’
테이블 아래로 아저씨 바지 안쪽에 3단 우산이 아까보다 커진 게 보였다. 그보다 3단 우산을 왜 바지 안에 넣고 다닐까? 저렇게 다리 사이에 세워 두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미쳤을 때, 옛날 일이 떠올랐다. 그 시절 여학생들이라면 모두 한 번씩 겪어봤을 ‘바바리맨’. 고2, 밤 10시까지 하는 ‘야자’를 겨우 버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바바리맨'은 저 아저씨보다 더 왜소했고 나는 지금보다 훨씬 체구가 컸다. 그래도 그 자가 무서웠다.
아니, 저 아저씨는 다리 사이 '3단 우산'을 바지 밖으로 꺼내 보이지 않았으니 ‘바바리맨’이라고 하면 안 되나? 아무리 커져도 저 체구에 저 3단 우산만한 사이즈가 가능한가?
그나저나, 왜 당황은 내가 하는가!
급하게 사장님이 뭘 하고 있나 봤다. 카운터 앞에 앉아 있던 사장님은 내가 갑자기 자기를 쳐다보자 뭐가 필요하냐는 듯 해맑게 웃어 보인다. 지금 저렇게 웃을 상황이 아닌데. 하긴 ‘오페라 하우스’ 때문에 카운터에서는 저 ‘3단 우산’ 자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저기는 사장님에게는 사각지대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3단 우산’의 왼손이 바지 호주머니 안에서 끊임없이 꼼지락 거리는 게 보인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나는 나만 원망할 수 없었다.
“사장님, 저기 잠시만요.” 쇳소리를 내며 사장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마치 리필을 부탁할 것처럼 커피잔을 들고 갔다. 사장님은 카운터 안쪽에서 또 뭔가를 작업 중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퍼즐. 대충 봐도 1000피스짜리다.
“아니, 뭘 또 그렇게 만드세요?” 나는 약간 초조하고 다급하게 쇳소리를 냈다.
“아, 그냥 항암 하고 시간이 많아졌을 때부터 생긴 버릇 같은 거예요. 커피 더 드릴까요?”
“아니, 지금 커피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쇳소리에 짜증도 약간 섞었다.
나는 ‘오페라 하우스’ 너머 벌어지는 ‘3단 우산’의 만행을 고스란히 전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쇳소리는 작게 속삭이기에 매우 편했다. ‘자위행위’니 ‘딸’이니 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사장님은 금방 이해했고 고개를 쑥 내밀어 힐끔힐끔 '3단 우산'쪽을 확인하며 내 말을 충분히 믿어주는 듯했다.
‘자, 이제 보여주세요! 남자잖아! 지금 웬 미친놈이 너의 사업장에서 변태짓을 하고 있다고!’
라고 속으로 응원하고 있는데 사장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눈만 꿈뻑이며 마른침만 연거푸 삼키는 게 보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가서 쫓아내야죠. 여기 애들도 오는 덴데.” 사장님만 들리게 더 힘주어 속삭였다.
“아… 네. 그럼 제가…”
사장님이 자리에서 이동하려고 일어섰다. 무릎에 덮고 있던 담요를 치우고 카운터 밖으로 나오는데 두 다리가 내 팔뚝 굵기만 한 게 보였다. 내 팔뚝만큼 가는 다리라니. 지금 가게 손님으로는 나와 ‘3단 우산’ 뿐이다. 나는 사장님이 이야기하기 편하게 자리를 비켜주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왔을 때는 저 미친 ‘3단 우산’은 안 보이겠지. 그래도 사장인데 알아서 잘 하겠거려니 하고 나는 내 할 일은 다 했다 싶어 카페를 나서려는데 아까 본 자기주장이 강한 ‘라이언’이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우와, 밖에 엄청 추워요! 사장님, 저 카페모카 휘핑크림 산같이, 주세요! 단 게 필요해. 오늘 학원에서 끝도 없이 깨졌단 말이에요.”
주문을 하던 ‘라이언’이 들고 있던 화구통으로 카운터 위 나노 블록을 쓰러트릴 뻔했다. 사장님은 이번에도 빠르게 화구통을 막아냈다. 나노 블록은 쓰러지지 않았다. ‘3단 우산’은 아직 그대로 있다.
“오, 빨라. 죄송합니다, 진짜 진짜 조심할게요. 사장님, 지금은 마시고 갈 거예요.”
잠깐 나와 눈이 마주친 ‘라이언’은 화통과 화판을 조심조심 끌어안고 하필이면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3단 우산’과 레고 ‘오페라 하우스’를 사이에 두고 주섬주섬 짐을 푸는 ‘라이언’을 본다.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고2 때 만났던 그 ‘바바리맨’. 나는 그놈 때문에 엘리베이터도 못 기다리고 아파트 계단을 전력질주로 뛰어서 올라가야만 했다. 울음소리와 고함 소리를 섞은 이상한 괴성도 질렀다. 그때의 내 나이로 보이는 ‘라이언’이 또 그와 비슷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라이언'을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장님한테 이 모든 걸 책임지고 빨리 해결하라고 계속 밀어붙여야 할까? 내 막내 삼촌의 막내아들은 복학을 기다리며 놀고 있기만 하지 저렇게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 보겠다며 움직이지 않는다. 또, 충분히 받은 용돈이 항상 적다며 징징거리기만 하지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해보겠다고 나서진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나도 뭔가를 해야 한다.
“사장님, 여기 CC카메라 잘 찍혀요?” 잘 나오지 않는 쇳소리를 쥐어짜 최대한 큰소리를 내어 말했다.
“네?” 이 상황에 갑자기 카메라는 왜 묻느냐는 듯 놀란 얼굴로 사장님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뭔가 알았다는 듯
“아, C! C! 카, 메, 라! 요?” 사장님이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했다.
“네, C! C! 카, 메, 라! 잘 찍히냐고요. 카메라는 어디에 있어요?” 나도 또렷한 쇳소리를 냈다.
“아? 아, 카메라가… 카메라가 저기 문쪽이랑 그리고 저쪽이랑 이쪽이요.”
사장님이 카운터 밖으로 성큼성큼 나오더니 ‘오페라하우스’ 윗편 선반에 놓여 잘 안보였던 카메라를 쑥 꺼내 자리를 다시 잡았다. 다시 잡힌 자리에서 카메라는 ‘3단 우산’ 테이블을 향해 있다. ‘3단 우산’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쯤에서 눈치를 채고 나갈 것이다.
“이거 성능 되게 좋은 거예요. 저번에 그 팔콘이 워낙 고가의 물건이라 제가 장만했던 거거든요. 줌 기능도 있어요.”
사장님이 어색하게 씩씩한 목소리로 카메라의 성능을 또박또박 자랑했다. 카운터와 카메라를 왔다 갔다 하며 컴퓨터 모니터에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떠들었다. 보기에는 나에게만 하는 말인데도 엄청 크게 말했다. 이제 '3단 우산'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카페를 나가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3단 우산’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 ‘3단 우산’은 우리 이야기에 관심 없다는 듯 미동도 없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벌떡 세워진 3단 우산도 그대로다.
“왜 갑자기 카메라 타령이에요? 제 산 같은 휘핑모카는 언제 만들어주냐고요. 저 쓰러진다고요.”
대화에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3단 우산’은 정작 가만히 있는데 아무것도 몰랐으면 하는 ‘라이언’이 카메라보다 카페모카를 만들어 달라고 투정이다.
사장님 대신 내가 경찰에 신고를 해볼까? 신고를 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3단 우산’이 보고 있을 핸드폰 동영상이 분명히 수상하지만 이걸로 경찰에 신고가 될까? ‘3단 우산’이 괜히 가게 안에서 깽판을 치면 어떡하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이때,
우당탕탕탕!! ‘오페라 하우스’가 무너졌다.
“이 변태 새끼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라이언’이 소리쳤다. 진짜 크게 소리쳤다.
‘라이언’은 ‘3단 우산’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 여파로 ‘3단 우산’의 머리는 자동차에 놓인 동물 인형의 머리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저렇게 흔들리는데 시커먼 야구모자가 머리에서 안 떨어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런! 학생!” 사장님도 놀랬다.
“사장님! 내가 다 봤어요. 이 변태 새끼가 겁도 없이 공공장소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사장님이 ‘라이언’과 함께 ‘3단 우산'을 잡으러 다가갔고 ‘3단 우산’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3단 우산’을 향해 손을 뻗고 ‘라이언’이 그런 사장님을 보며 흔드는 걸 멈추니 ‘3단 우산’은 갑자기 ‘라이언’의 손을 뿌리치고 무너진 ‘오페라 하우스’를 폴짝 뛰어넘었다.
“어딜 도망가! 이 변태 새끼가!”
‘라이언’이 도망가는 ‘3단 우산’의 목덜미를 잡으려고 했지만 놓쳤고, 사장님은 반사적으로 ‘3단 우산’을 쫓았다.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우두커니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카페 통유리 너머로 빠르게 도망가는 ‘3단 우산’이 보인다. 뒤이어 전력질주로 쫓아가는 사장님도 보였다. 다소 소극적이었던 사장님은 밖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물론 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해서 꼭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카페 안에서 입던 얇은 패딩 베스트 차림으로 나갔던 사장님은 오들오들 떨며 ‘3단 우산’을 놓친 채 돌아왔다.
“아, 저희 가게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제가 빠르게 대처 못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돌아온 사장님은 얼굴이 빨개져서 나와 ‘라이언’에게 연거푸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사과는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거… 다 부서져서 어떻게 해요?”
사장님의 사과를 듣던 ‘라이언’이 자기가 더 큰 잘못을 했다는 듯 무너진 ‘오페라 하우스’를 가리키며 사장님께 사과했다. 사장님은 잠시 동안 ‘오페라 하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작게 한숨 쉬고는
“괜찮아. 나중에 다시 만들면 되지. 그건 그대로 놔두고 카페모카, 산 같은 휘핑크림. 빨리 만들어 줄게. 걔들은 그냥 그대로 둬.”
“아니, 어떻게 그래요? 제가 다시 만들게요.”
“아니야 괜찮아. 정말 괜찮아. 됐어, 됐어. 진짜 괜찮아.”
사장님은 괜찮다고 말하며 ‘오페라 하우스’ 잔해를 모아 한쪽에 밀어 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손님도 잠시만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제가 서비스로 드릴게요. 학생, 네 것도 서비스야. 알겠지? 그리고 아까 그놈은 또 오면 못 들어오게 하겠습니다. 약속드릴게요.”
“아, 네... 그러지 말고 제가 저 학생 거를 계산 할게요.”
“네? 아닙니다. 괜찮으시면 카페모카 같이 드실래요? 오늘 제가 드리고 다음에도 또 서비스드릴게요.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은 끝까지 나의 계산을 거절했다.
“진짜 카페모카 같이 마시고 가세요. 학생 그거 괜찮아. 어차피 진짜 ‘레고’도 아니거든.” 사장님 목소리에 뭔가 시무룩함이 묻어났다.
진짜 ‘레고’가 아니라고? 사장님 말을 듣고 보니 네모난 블록 동그랗게 튀어나온 L, E, G, O라고 쓰여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일명 중국산 호환 레고, 짝퉁이었다. 그래서 팔콘과 달리 유리상자도 만들어주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니! 짭레고는 저절로 만들어지나? 진짜든 가짜든 다 사람 손이 만드는 거지.”
내가 구해야 할 학생이라고 생각했던 ‘라이언’이 말했다. 어쩜 반박할 게 하나 없는 너무나도 옳은 소리다.
“이거 짭레고 책 지금 없어요?”
“아… 있긴 있는데.”
진짜 레고가 아니어도 조립할 때 사용한 설명서는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주방에 있던 사장님이 주장이 강한 ‘라이언’의 성화에 못 이겨 카운터 한쪽에 꽂혀 있던 책들 사이로 주섬주섬 레고 책을 뒤지는 게 보인다. '라이언'은 부서진 블록들을 색깔별로 분류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중에 내가 제일 한 게 없다.
“저기… 나도 레고 만드는 거 거들어도 될까? 우리 아들 어렸을 때 나도 블록 방 따라다녀서 꽤 잘 만드는데.”
‘라이언’이 ‘오페라 하우스’ 잔해 옆에 내가 앉을자리를 내주었다. 두 사람이나 책을 기다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초조해 보인다. 말로는 천천히 찾아보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사장님이 책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나도 빨리 뭐라도 하고 싶다.
3단 우산. by 옥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