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 그루이트
Chapter-2 그루이트
막 치료용 캡슐에서 나온 할은 습관적으로 코를 ‘승승’ 거렸다. 이미 온몸, 안팎으로 남아 있던 황화수소의 입자는 분자 단위로 분해돼 제거됐을 텐데도 코를 ‘승승’ 거리며 계속 그 냄새를 확인하게 된다. 냄새가 안 나면 그냥 다행으로 여기고 ‘승승’ 거리는 걸 멈춰도 될 텐데 그게 안 되고 끊임없이 냄새가 날 것만 같아 확인하려는 이 욕구.
재시는 끊임없이 ‘승승’ 소리를 내며 식사 중인 할을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째려봤다. 입 안에 고깃 덩어리를 잔뜩 물고 있던 할이 그런 재시와 눈이 마주쳤다. 재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재시, 재시? 재시, 바빠?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내가 진짜 엄청난 걸 알아냈다고!”
“… 좀 바빠. 할, 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데? 아, 민수한테 가는구나? 재시 나도 같이 가. 가면서 이야기하면 되겠다. 하… 재시, 정말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할은 치료용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재시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기회만 엿봤다. 미하르와 민수는 각자의 방에서 휴식 중이었고 현재 온전하게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재시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왠지 할을 피하는 듯 보였지만 그건 재시가 할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아서다.
“들어 봐, 재시, 난 정말 그 초록빛이 그 초록빛일 줄 몰랐다니까.”
할은 재시의 뒤를 바짝 쫓으며 민수가 방생했던 그루이트를 만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젤 속에 빠진 할을 밀어 올린 초록빛이 바로 그 그루이트였다.
할은 유로파의 핑크빛 젤이 발목 복숭아뼈 높이로 잘박잘박하게 퍼져 있는 너른 장소에서 눈을 떴다. 폐와 위로 넘어간 젤 중 체내로 흡수되지 못한 젤들이 역류하여 먼저 구토를 했고 이와 함께 큰기침을 하면서 눈이 떠진 것이다. 어느 정도 구토가 진행된 후 할은 슈트의 입구와 호흡기 필터를 확인했다. 삼켰던 젤과 공기의 냄새가 콧구멍 내벽을 긁고 넘어와 목젖까지 자극했기 때문이다. 침에서도 지독한 냄새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젤을 흡입하려 벌렸던 입구를 다시 닫고 필터의 강도를 최고 레벨로 올렸다. 체내의 냄새를 몰아내려면 할 스스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한다.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사실 숨을 쉬는 것도 이제 막 정신이 돌아온 할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록빛을 발광하는 그루이트가 할을 마구 만지는 걸 자각하는데도 시간이 수분 걸렸다. 초록빛 발광 그루이트는 뭔가를 찾는 듯 한쪽 손으로 누워 있는 할의 왼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할의 가랑이 사이를 마구 더듬고 있었다. 더듬을 때마다 꾹꾹 눌러대서 아직 팽팽하게 차오르지 못한 유닛의 공기가 이리저리 꿀렁거리며 움직였다.
‘정말 대단해.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일까? 단순 정보수집용 인식칩이나 이식해 놓은 줄 알았는데 진짜 홀로그램 표시색과 같은 초록색 발광나노칩을 박아놓다니! 그것도 저 위치에…’
초록색 빛의 진원지는 저 그루이트의 반투명한 우윳빛 피부 아래, 다리와 다리 사이 성기 안 쪽으로 그곳에서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초록빛 그루이트는 남성형 성기를 가진 그루이트와 달리 성기 주변에 카틀레야 같은 화려한 꽃잎은 없는 함몰형 여성 성기를 가진 그루이트였다.
여성형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는 보고서로 전해 본 것보다 훨씬 근사하고 아름다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할의 다리 사이를 향해 상체를 숙이고 있었는데, 이때 아래로 향한 두 가슴이 유리처럼 매끈한 커다란 물방울처럼 보였고 성기에서 올라오는 빛 때문에 둥글고 아름다운 물방울 두 가슴은 초록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나저나 왜 자꾸 내 가랑이 사이를 더듬는 거냐.’ 할이 다리를 오므리려고 발목에 힘을 주자 그제야 초록빛 그루이트가 고개를 들어 할의 얼굴을 보더니 할의 왼발을 놨다. 할을 놔준 초록빛 그루이트는 천천히 상체를 천천히 들어 바로 섰다.
“재시랑 키가 비슷했던가? 아니야, 조금 더 큰 거 같아. 어? 아니네. 재시 보다 조금 작구나. 그럼, 재시 보다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길어서 커 보였던 건가? 암튼 와, 진짜 너무 예쁘더라고! 아니, 다른 여성형 그루이트들도 다 예뻤어, 진짜 전부 다 근사했어.”
할은 곤히 잠을 자는 미하르의 바이탈 체크를 하는 재시에게 자신이 본 그루이트들의 예쁨을 설명하느라 몹시 흥분했다.
“재시! 재시, 재시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아! 재시는 이미 많이 봤었겠구나. 미안, 미안. 지겨웠겠네, 내가 걔네들 예쁘다고 하는 거 지겹지? 와 진짜 몸매가! 아니 진짜 어떻게 그렇지?”
재시는 그런 할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묵묵히 할 일을 이어갔다.
“도대체 누구 생각이었던 거야? 여성형 그루이트들한테 심어놓은 나노칩을 전부 발광으로 심었더라. 그것도 성기 안쪽에 쑤욱.”
재시가 잠깐 할을 쳐다봤다. “그건 칩을 넣기 위한 방법이었겠지. 처음엔 미세절개도 위험할 수 있었거든. 알잖아? 피부를 잘못 건드리면 표면장력이 흐트러지듯 수분화 되면서 죽는 거. 단순 피부이식이 어려웠으니. 물론 연구가 더 진행되면 방법은 개선되겠지!”
“아, 아. 나도 그럴 거 같았어. 나는 누구 생각인지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 그루이트들이 그 빛에 거부감도 없어 보이는 게 관찰하기엔 최고의 조건이었어. 이건 혹시 스캇의 아이디어?”
재시가 웬일로 길게 답을 해준다 싶더니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하르는 그 새 얼굴이 반쪽이 되었지만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는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낮게 코까지 골았다. “미하르는 괜찮아? 내가 없는 사이 엄청 아팠다면서?” 할이 미하르 안위를 물었지만 재시는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겼고 할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재시의 뒤를 쫓았다.
“그래서 말이야, 재시. 초록색이 다가 아니었어. 나 다른 색 발광도 봤잖아. 스캇이 생각보다 추적 표본을 여러 마리 만들었나 봐. 결국 그 덕은 내가 다 본거 같지만 말이야. 들어봐, 내가 뭘 봤냐면 말이야, 재시.”
재시는 할의 이야기를 무시하려고 더 빠르게 걸었지만 할은 신경 쓰지 않고 재시를 신나게 쫓아가며 목소리를 키웠다.
할은 젤 위에 누운 채 고개만 들어 그 초록빛 그루이트의 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때, 초록빛 뒤로 오렌지색과 노랑색 빛이 보였다. 또 다른 여성형 그루이트들이 다가왔고 저 초록빛 그루이트처럼 성기 안쪽에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 둘 다 초록빛 그루이트보다 키도 가슴도 더 컸고 오렌지빛 그루이트는 허리는 훨씬 가늘었다. 엉덩이는 매끈한 피부 때문인지 탱탱한 두 개의 짐볼 같았다. 할은 손가락을 튕겨 홀로그램 지도를 꺼내봤다. 할의 위치는 탐사기지와 그녀가 빠졌던 젤 호수의 거리보다 두 배는 먼 곳이었다. 그리고 할의 현재 위치 좌표 주변으로 아름다운 초록빛, 오렌지빛, 노랑빛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빛을 뽐내는 그루이트 주변으로 만개한 카틀레야 꽃잎을 두른 돌출 성기를 가진 작고 왜소한 체격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도 있었다. 키가 여성형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들의 어깨 정도 높이쯤 되려나. 각각 초록빛, 오렌지빛, 노랑빛을 따르는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은 따르는 여성형성기 그루이트 주변에 모여 있었다.
이때, 노랑빛 그루이트 주변의 남성형 성기 그루이트 중 몇 마리가 어딘가 아픈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기 시작했다. 또 그중 몇몇은 입으로는 젤을 쏟아내서 가뜩이나 왜소한 체격이 더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 서 있던 더 작고 어려 보이는 그루이트들이 쏟아내는 젤을 다시 입에 넣어줘 그나마 잘 버티는 그루이트도 있었지만 쏟아내는 양이 다시 넣어주는 양보다 많아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그루이트도 있었다. 그것들의 주인처럼 보이는, 성기에서 노랑색을 빛내는 큰 그루이트는 오렌지빛 그루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젤을 토해내는 왜소한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아했다. 할은 기지에서 구역질로 토사물을 토해내던 미하르와 민수 생각이 났다.
[키, 끼끼, 키이, 끼, 끼이]
[이, 이끼, 키]
의사소통을 완전히 소리로만 하는 건 아닌가 보다. 둘은 중간중간 서로의 손을 이마에 짚기도 하고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를 자랑하는 오렌지빛 그루이트가 노랑빛 그루이트의 배에 손을 얹어 보이는 것도 보였다. 초록빛 그루이트도 노랑빛 동그랗게 나온 배에 다가가 가까이 들여다보는 게 보였다. 오렌지빛 그루이트는 중간중간 노랑빛 그루이트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이 젤을 역류해 낼 때 흐뭇하게 그것들을 바라보았고 노랑빛 그루이트는 그것들이 쏟아내는 젤이 바닥의 핑크색 젤과 섞이는 걸 장난치듯 자신의 발로 휘휘 저어 보이며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아니, 저게 뭐야?! 저 그루이트 새끼를 가졌구나!’
노랑빛 그루이트의 배가 볼록 올라와 있던 이유가 있다. 할이 그들의 아름다운 가슴과 엉덩이에 눈이 먼저 가 볼록 나온 배를 자세히 못 본 것이다. 단지 배의 모양 때문에 임신을 확신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나노칩 정보를 확인한 것도 아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노랑색 불빛이 성기에서 뿜어져 나와 밝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반투명한 피부 안, 함몰형 성기 윗부분 휴먼으로 비유하자면 여성의 뱃속 자궁 위치에 아기 형태의 작은 그루이트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지구의 포유류와 생식기적으로 흡사하다니! 할은 몹시 흥분됐다. 이건 스캇의 보고서에는 없던 거였어! 할은 유닛에 탑재되어 있는 블랙박스에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이 잘 기록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엄지와 네 번째 손가락을 튕겼다. 이때, 홀로그램 지도에 보랏빛 점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할은 보랏빛 점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였다.
“빙고. 그때 딱, 멀리서 보라색 빛이 보이더라고!”
민수 대신 기지의 몇 가지 체크사항을 점검하던 재시가 미간을 구기고 할을 노려봤다. 그런데도 할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엔 성기에서 보라색 빛을 뿜는 그루이트였어. 이것도 장난 아니게 근사했지! 어? 어디 가, 재시? 민수한테 가는 거야? 같이 가. 가면서 계속 들어봐!”
성기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내는 여성형성기를 가진 근사한 그루이트가 카틀레야 꽃잎을 달고 있는 남성형성기의 그루이트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네 개의 빛이 모여 반짝반짝 빛났다. 네 마리의 돌고래 소리는 두 마리, 세 마리 때 들리던 돌고래 소리와는 비교가 안 되게 요란했다. 처음 할이 만난 초록빛 그루이트가 보랏빛 그루이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보랏빛 그루이트가 가볍게 손짓을 했고 보랏빛을 따르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이 위를 바라보며 일제히 누웠다. 그것들은 얼굴의 눈, 코, 입과 상체의 가슴 약간, 그리고 카틀레야 꽃잎이 둘러진 꼿꼿한 성기를 젤 밖에 내놓았다. 너른 핑크색 젤 바닥에 카틀레야 꽃밭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아름다웠다.
다른 빛을 따르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은 몇 발자국 물러났고 젤을 토해내던 그루이트들 몇몇은 질질 끌려 물러났다. 그것들이 움직이는 바람에 꽃밭을 향한 할의 시야가 가려졌다. 할은 조심스럽게 상체를 숙여 네 발 자세로 그루이트들 사이를 지나 카틀레야 꽃밭으로 다가갔다. 그 꽃밭을 가까이 보고 싶었다. 그런 할을 신경 쓰는 그루이트는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할의 눈앞에 눈부시게 화려한 장관이 펼쳐졌다. 그리고 할이 처음 만났던 초록빛 여성형성기 그루이트가 할 곁을 지나 카틀레야 꽃밭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그 그루이트는 꽃수술 같은 그것들의 녹진한 성기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길고 매끄러운 손가락을 이용해 튕겨도 보고 만져도 보고 단단함을 보려는 듯 지그시 눌러도 보았다. 건드릴 때마다 성기 주변의 카틀레야 꽃잎이 파르르 떨렸다. 곧 그루이트들의 성교가 시작됐다.
그것들의 성교와 성기를 사용하는 방식은 지구 포유류의 사용법과 매우 흡사했다. 아니 거의 같았다. 그래서 여성형성기 그루이트가 가진 초록빛이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깜빡깜빡거렸다. 깜빡임 때문인지 할은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고 남성형 성기를 가진 그루이트가 성교 끝에 사정을 하는 것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삽입 운동 끝에 미세한 젤 형태의 액체가 돌출성기에서 나와 초록빛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의 체내에서 퍼지는 것이 보았다. 다 성기 안에 삽입되어 환하게 밝혀주는 발광나노칩 덕분이다.
한 마리의 남성형 성기의 그루이트가 남성 휴먼과 같은 삽입 운동을 하는 동안 다른 남성형 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들은 초록빛 그루이트의 주변에서 그것의 피부를 비벼대며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다. 그럴수록 음낭처럼 보이는 꽃잎이 만개되어 가는 것이 발기된 성기가 누그러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삽입 운동을 하던 그루이트가 사정을 마치면 초록빛 그루이트는 가까이 있는 다른 남성형 성기의 그루이트의 머리를 낚아 채 성교를 이어 갔다. 그렇게 초록빛 그루이트는 작은 그루이트들과 여러 마리와 성교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와 성교를 마쳤을 때 크게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이 먼저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초록빛 그루이트는 뭔가 아쉽다는 듯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의 힘없는 성기를 툭툭 건드렸다. 몇 마리가 노력하는 듯 보였지만 실패했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자, 재시! 이제부터가 진짜야! 내가 진짜 엄청난 걸 봤다고.”
할은 이렇게 떠들어대는데도 재시가 눈길 한 번을 안 주자 재시의 팔을 붙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재시, 들어보라니까.”
“할, 그걸 꼭 지금 이야기해야 돼?”
민수의 바이탈 체크를 하던 재시가 지금까지 중 가장 크게 할에게 짜증을 냈다. 거의 소리를 질러 할이 미하르와 마찬가지로 수면 약물을 주입받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민수가 깰 까 눈치를 봤다. 다행히 민수는 미동도 없이 잠을 이어갔고 할은 안심하고 자신의 그루이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재시? 재시, 들어 봐!”
할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교를 마친 초록빛의 그루이트가 보랏빛 그루이트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 중 한 마리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세 마리 그루이트의 성기를 번갈아가며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한 마리로 좁혀진 것이다. 그렇게 한 마리 그루이트의 성기를 잡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다른 한 마리의 성기를 더 잡았다. 최종적으로 양손에 각각 한 마리씩, 두 마리의 그루이트 성기를 잡았고 이내 보랏빛 그루이트에게 무언가 돌고래 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는 듯했다. 보랏빛 돌고래도 길게 돌고래소리를 냈고 두 초록빛, 보랏빛 그루이트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돌고래 소리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듯 중간중간 초록빛 그루이트가 손을 세게 쥐락펴락했고 그때마다 성기를 붙잡힌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은 아픈 듯 끽끽 고통의 소리를 호소했다. 이때, 오렌지빛 그루이트가 아까 초록빛 그루이트가 잡았던 할의 왼발을 잡더니 번쩍 들어 올려 던졌다. 할은 빠르게 날아가 초록빛과 보랏빛 한가운데에 핑크색 젤을 튕기며 찰바닥대며 떨어졌다. 떨어진 할의 양 발목을 보랏빛 그루이트가 잡았다. 초록빛 그루이트는 여전히 양손에 남성형성기 그루이트의 성기를 하나씩 쥐고 있었고 보랏빛 그루이트는 할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린 채 돌고리 소리를 뱉어냈다. 여기에 할을 던진 오렌지빛 그루이트까지 끼어들어 서로 머리와 가슴, 엉덩이, 어깨를 만져가며 돌고래 소리 주고받기에 합세했다.
할은 유닛 때문인지 바닥의 젤 때문인지 내동댕이쳐진 충격의 고통은 없었지만 이것들이 왜 이러는지는 빨리 파악해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행동도 스캇의 보고서에서는 보지 못했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의 힘이 이 정도까지 세구나. 아름다운 외모에만 정신이 팔려 이들의 완력에 대한 부분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할은 거꾸로 매달린 채 기지에 구조신호를 보냈다. 사실 매달린 게 무서워 몸부림을 치느라 이 때는 신호를 제대로 보냈나 싶다. 스캇이 사용하는 포획유닛을 장착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점점 아까 젤 속에 잠겨갈 때보다 더 무서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매우 안 좋은 징조다. 무서움은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움직임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 때다. 부드럽고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고래의 고함소리가 할의 무서움을 멈추게 했다.
[휘이! 기휘이이이이 휘이기이!!]
성기에서 노랑색 빛을 뿜어내던 임신한 그루이트가 크고 깊은 소리를 내고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그 노랑빛 그루이트를 따르는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이 일제히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졌다. 그중 몇 마리는 이 자리에서 멀어지고 싶은 듯 노랑빛 그루이트로부터 도망치는 게 보였다. 보랏빛 그루이트가 할을 대충 던져 놓고 도망가는 그루이트들을 잡아왔다. 다리가 길어 큰 보폭으로 몇 발자국만 걸어 가 금방금방 낚아챘다. 떨어진 할은 똑똑히 보았다. 큰소리를 내고 여유 있게 웃어 보이는 노랑빛 그루이트의 얼굴을 보았고 성기 안, 노랑빛을 뿜어내는 다리 사이에서 작은 머리가 조금씩 삐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의 출산이 시작되었다. 작은 머리가 만든 원 주변으로 노랑색빛이 번지는 것이 동면 전에 본 일식 같았다. 오렌지빛 그루이트가 기쁜 듯 다가가 노랑빛을 가리고 있는 동그란 머리를 조심스레 뽑아냈다.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은 조금씩 뽑아내는 속도에 맞춰 더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말이야 재시, 내 구조신호를 받고도 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거야? 신호를 여러 번 받았을 거 아니야? 내가 여러 번 보냈는데.”
할은 자신의 구조 신호를 여러 번이나 무시한 재시에게 이유를 물었다. 원래는 깨어나자마자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 뭘 먹어야만 했었다.
“할… 그것들은 온순해. 이전에 스캇도 구조신호를 몇 번이나 보낸 적이 있었지만 모두… 전부 다 장난이었거든. 진짜 구조가 필요할 만큼 위험했던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응, 그랬구나. 하지만 재시, 스캇은 스캇이고… 나는 나잖아. 그러니까…”
“흠…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었니, 할? 너는 지금 아무 문제없이 돌아왔잖아, 안 그래? 오히려 좋은 것들을 많이 봤다면서? 그렇잖아, 모든 일이 다 잘 풀렸는데… 왜?! 왜 이제 와서?! 뭐를 문제로 만들고 싶어서 따지고 드는 거야? 왜 그런 거야?”
“아니… 그건 그렇지만 재시,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단지… 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아직 못 해서 그래! 응? 들어봐, 재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말이야.”
재시는 할이 떠드는 동안 안정적인 수치를 보여주는 민수의 바이탈 체크 화면을 한참 노려봤다. 그리고 할의 말을 끊고 잠든 민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보면 모르겠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 너는 이것도 이해 못 하겠니? 민수와 미하르가 상태가 안 좋았잖아. 너도 알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너 혼자 나갔던 거고.” 할은 잠시 숨을 고르 화를 이어갔다. “할, 나는 의사야! 거기다가 미하르는 그때, 갑자기 너무 위험해서 죽을 뻔했다고! 다 말해준 거잖아! 도대체 무슨 말이 얼마나 더 필요하니?”
할은 재시의 화에 놀라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말을 하던 중 끊긴 터라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벌린 채 있었다. 놀란 눈만 끔뻑거렸다. 어서 재시의 흥분을 가라 앉혀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재시… 제발 흥분을 잘 가라앉히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줘. 재시, 나는 네 말 다 이해한다고. 그냥, 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못 해서 그래. 응? 한 번만 들어 봐 줘, 재시. 응?”
“할! 너 진짜 안 되겠구나! 가! 네 방으로 가라고!”
재시가 이게 마지막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먼저 룸 밖으로 나서려 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민수의 바이탈 이상 알람이었다. 경고음이 몹시 요란했다. 그만큼 민수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재시, 민수… 갑자기 왜 이런 거야?”
거의 동시에 미하르의 경고음도 울리기 시작했다. 재시는 민수의 바이탈을 체크하면서 동시에 화면을 띄워 미하르의 바이탈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잘 자고 있던 민수가 목과 허리를 비틀더니 경기를 일으켰다. 다만 잠에서 깨지는 못 하는지 눈이 감긴 잠든 얼굴만 평화로워 보였다. 화면 속의 미하르도 마찬가지였다. 곤히 자는 얼굴로 입에 거품을 물더니 위액 같은 토사물도 올렸다. 경기를 일으키고 고통을 호소하며 꺾어 대는 몸은 너무 기괴했다. 할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 손으로 코를 움켜쥐었다. 민수가 항문 배설을 했는지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꼭 노랑빛 그루이트가 새끼를 낳을 때 옆에서 괴로워하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 같았다.
“재시, 왜 그런 거냐고? 민수랑… 또 미하르까지 도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거야?”
재시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약물을 더 주입했다. 할은 계속 투덜거렸다.
“나는… 오늘 누가 아픈 걸 왜 이렇게 자주 보는 거야. 아까 그루이트들도 그렇고, 지금 민수도, 미하르도 그렇고.” 재시는 투덜거리는 할을 닥치게 하고 싶었지만 민수의 룸에서 미하르 상태까지 원격으로 컨트롤하느라 바빴다. “아, 미하르까지 세트로 전부 더럽네.” 할의 투덜거림은 끝날 줄 몰랐다.
재시가 민수와 달리 미하르에게는 약물의 종류를 바꿔서 더 주입했다. 할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명 강력한 진통제, 혹은 마취제, 아니면 둘 다 일거라 짐작했다. 그루이트들이 저럴 때는 매우 흥미로워서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는데 할과 같은 휴먼 남성이 저러고 있으니 기괴하고 옆에 있기도 힘들었다. 너무 더러워 보였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