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보고서 (3)

Chapter-3 재시

by 옥광



Chapter-3 재시


스캇이 지구로 귀환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재시는 스캇에게 가장 강한 진통제를 먼저 주입했다. 마취제는 그다음이었다. 동시에 주입했더니 마취제가 진통제의 효능을 반감시키는 결과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진통제가 효과를 발휘해 고통이 감소가 확인되면 그제야 강한 마취제를 투여했다. 뒤틀린 채 마구 떨리던 스캇의 몸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왔다. 스캇은 키가 192cm에 100kg이 나가는 건장한 체격이었기에 몸부림을 치며 관절을 마구 꺾어델 때 재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힘들었다. 민수와 미하르가 돕겠다고 나섰지만 스캇의 배설물을 더러워하느라 제대로 도움이 되어 주진 못 했다. 결국 다 내보낸 채 포획유닛을 이용해 겨우 제압한 후 약물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재시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스캇이 더럽힌 자재는 모두 폐기처분시킬 것이다.


스캇의 냄새가 거의 빠진 후 미하르가 스캇을 보러 들어왔다. 그는 스캇의 얼굴을 쓱 한 번 보고 수고했다며 재시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서 안 그래도 좋지 않을 재시의 기분이 더 나빠졌다. 미하르가 충분히 토닥이고 나서도 재시의 어깨에서 손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손이 점점 목덜미 쪽으로 움직였다. 재시의 솜털이 바짝 서는 순간 거칠게 어깨를 흔들어 그 손을 뿌리쳤다.


“어이쿠, 미안, 미안 재시. 나도 모르게 그만, 이게 다 그루이트 때문이야. 나이 많은 재시에겐 아무 감정도 없다고, 알지?”


미하르는 멋쩍게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고 곧 민수가 들어왔다.


“왜 그래? 재시, 미하르가 왜 저렇게 나가지? 스캇은 이제 괜찮은 거야?”

“응, 그렇지 뭐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출발하는데 문제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

“무슨 대답이 그래? 하아… 재시, 그리고 미하르에게 좀 잘해줘. 알잖아, 얘들이 아직 어려서 그렇다는 거.”

“아… 그래… 어려서…”


***


여러 달 전, 탐사를 나간 스캇이 구조 신호를 보내왔었다. 미하르는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나서 탐사유닛과 포획유닛을 다 갖추고 스캇을 구조해야겠다며 나섰다. 나가기 전, 미하르는 민수에게 물어보았다. “민수, 진짜 같이 안 갈래?”


미하르는 민수 바로 옆에 재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같이 나가자고 물었다. 재시는 그런 미하르가 하나도 신경 안 쓰인다는 듯 뒤돌아섰고 민수는 어서 나가보라며 미하르의 등을 떠밀었다.


“자꾸 왜 물어보는 거야? 미하르, 나는 안 가. 어쨌든 구조 신호는 구조 신호니까 너는 서둘러서 나가보라고.”

“그래, 그래. 빨리 가야지.”


기분 좋게 대답한 미하르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갔다. 그렇게 미하르까지 나가면 그 둘은 그루이트 한 마리를 포획해 돌아왔다.


처음부터 스캇이 미하르를 필요로 한 건 아니었다. 스캇이 미하르를 끼워 준건 어느 순간부터 미하르가 그루이트를 포획하는데 자신도 껴 달라고 스캇을 졸랐기 때문이다. 미하르는 그루이트를 자기가 고르고 싶다고 했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의 완력이 보통 휴먼보다 강하긴 하지만, 거구의 스캇이 자기 키보다 조금 크거나 작은, 엇비슷한 키의 여성형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를 포획하는 건 포획유닛만 있다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스캇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포획유닛은 본래 신체가 가진 완력보다 더 강한 힘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노섬유로 만들어진 내복과 비슷한 형태의 의복으로 맨살에 착용해야만 한다. 대소변을 배설하기에 유용하도록 디자인적으로도 실용적인 면이 잘 반영이 되어 있다. 이걸 처음 착용하면 본래 가진 힘보다 강해진 힘에 스스로 적응을 못 해 되레 물 한잔 마시기도 어려워질 수도 있다. 잡는 컵마다 족족 깨트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미하르는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귀찮다며 포획유닛 훈련을 등한시 여겼다. 그러나 어느 날, 스캇이 포획해 온 그루이트와 어울리는 것을 보더니 그때부터 열심히 적응훈련에 매진했다. 트레이닝룸 밖에서도 유닛을 입고 함부로 돌아다닌 미하르 때문에 몇 번의 기물파손이 있었고 재시가 다칠 뻔했지만 그때마다 민수가 중재를 잘해주었다.


컨디션이 매우 좋아 보이는 스캇이 자신을 구조하러 온 미하르와 돌아왔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와 함께였고 그 그루이트는 일렉트릭 피시넷에 쌓여 있었다. 재시가 콜로니에서 봤던 생명체들은 일렉트릭 피시넷에 쌓이면 전기충격에 당황해 더 크게 움직이다 기절하기가 일수였는데, 이곳 그루이트들은 전기충격과 충격을 받을 때 튀는 작은 스파크를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과 한 마리 그루이트는 유로파 공기의 썩은 달걀 냄새를 씻어 줄 프레쉬룸에 먼저 들어가야 했는데 그루이트가 컨트롤하기 위해 주는 전기 충격을 오히려 당하고 싶어서 일부러 지시하는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스캇과 미하르, 두 사람은 그루이트한테 일어나는 스파크를 기꺼이 즐기며 프레쉬룸으로 들어갔다. 거기까지였다. 재시는 이후, 프레쉬룸과 그리고 포획룸까지 연결된 자신의 통신은 다 꺼버렸다.

잠시 후, 썩은 달걀 냄새가 씻겨진 그루이트는 포획룸으로 옮겨졌고 스캇과 미하르도 포획룸으로 따라 들어갔다. 둘은 일렉트릭 피시넷만으로도 충분히 그루이트 컨트롤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포획유닛을 착용을 계속 유지했다. 재시는 그들이 포획유닛을 진짜 속옷쯤으로 여기고 계속 착용하는 대신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에게 둘러진 일렉트릭 피시넷은 벗겨낼 거라 미루어 짐작했다.

한 번은 재시가 포획룸에서 막 나온 스캇과 미하르의 대화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어때, 미하르? 네 성기가 그 안을 들쑤시고 있는 걸 보는 기분 말이야.”

“아… 크크. 스캇, 그게 막 헤집고 다니는데 너무 좋아서 내가 침 흘리는 걸 까먹을 정도야. 작은 아버지 말 대로 여기 오길 잘했어! 그런데 조금만 더 잘 보이면 좋을 것 같단 말이야. 무슨, 더 좋은 방법 없을까? 움직이는 내 성기를 더 잘 보고 싶어서 자꾸 그루이트 엉덩이에 코를 박으려고 한다니까. 뭐, 이것도 나쁘진 않지만!”

잔뜩 아쉬워하며 움츠려 든 미하르의 어깨를 스캇이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미하르, 이것 좀 봐봐.”

미하르에게 자기만 믿으라던 스캇은 상당히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미하르의 얼굴 앞에 작고 투명한 나노칩 샘플 케이스를 들어 보여주는 게 보였다. 곧 스캇이 가볍게 홀로그램 키패드를 조작하니 그 케이스 안에서 밝은 노랑빛이 뿜어져 나왔다. 첨엔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아 구겨졌던 미하르의 얼굴이 빛에 대한 적응의 시간을 갖고 나니 그 빛보다 밝아졌다. 둘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게 보였다.

재시는 이 이야기를 우연히 보게 된 걸 저들에게 들킬까 침을 조용히 삼켰다. 키득키득거리며 걷는 저들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잘못한 것도 없는 재시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가만히 숨을 가다듬었다.


탐사기지의 공간과 자원의 제약으로 그루이트는 한 번에 한 마리씩만 포획이 가능하고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의해 조사관찰 후에는 최대 350시간 내에 방생을 해주어만 한다. 그 이후로는 이식해 놓은 칩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스캇과 미하르는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를 잡아오면 그루이트를 감금, 조사 관찰하기 위한 포획룸에서 거의 머물렀다.


처음에 스캇은 화려한 카틀레야 모양의 성기가 달린 작고 왜소한 그루이트를 잡아왔다. 잡아올 땐 멀쩡했던 이 작고 왜소한, 귀여운 그루이트들 중 어떤 것들은 자주 아팠다. 아플 때면 입으로 젤을 마구 토해냈다. 어떤 그루이트는 몸이 뒤틀리면서 아파하기도 했다. 바이러스 및 박테리아 검사를 면밀하게 진행했지만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깨끗했다. 그루이트들은 죽고 나면 외피가 바로 분해되고 표면장력이 무너지듯 체내 젤이 모두 쏟아졌다. 키핑캡슐에 표본으로 넣는 것도 몇 번 실패하고 쏟아진 젤 치우는 것도 귀찮고 당연히 치료방법도 모르니 아프면 바로 기지 밖으로 내보냈다.


곧 스캇이 포획유닛을 장착하고 여성형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를 잡아왔다. 지금까지 잡아온 그루이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미끈한 젤이 발라진 보드라우면서 녹녹해 보이는 피부 때문일까, 재시도 몇 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한두 번 정도는 혀를 대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캇이 포획룸에서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와 무엇을 하는지 눈치채고는 이런 욕구는 사라졌다. 민수에게 말해 그만두게 하려고 했는데 미하르까지 스캇이 하는 일에 합세해버리니 재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 민수는 포획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때부터 스캇이 가끔 속이 거북하다고 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건강체질이라 그런지 진통제와 몇 가지 소화제, 구토 억제제를 복용하면 금세 나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스캇에 이어 미하르까지 소화불량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동안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만 잡아오던 스캇이 평소 하듯이 그루이트 탐사를 먼저 나가 그루이트 무리를 발견하고도 미하르를 부르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스캇이 미하르를 부르지 않고 거의 죽기 직전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를 포획해 그걸 키핑캡슐에 넣어 그대로 혼자 돌아왔다. 죽기 전 잡힌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는 키핑캡슐에 넣지 마자 그대로 죽었다. 형태가 제대로 유지된 첫 그루이트 표본이다. 모두들 스캇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캇이 돌아오자마자 지독하게 아팠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아프면서 돌아온 게 맞다고 해야겠다.


미하르는 스캇을 축하해주면서도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는 언제 잡으러 나갈 거냐며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못하는 스캇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단단히 삐진 미하르의 배회는 나날이 늘어나는 짜증과 함께였다. 진짜 못 봐주게 부리던 미하르의 짜증은 참다못한 스캇이 온갖 진통제를 이용해 가까스로 여성형 그루이트 한 마리를 잡아오고 나서야 누그러졌다. 그날도 스캇은 미하르를 부르지 않고 혼자 골라서 잡아왔다. 미하르는 자신이 그루이트를 고르지는 못 했으니 발광색이라도 자신이 고르겠다고 나댔고 초록색을 골랐다. 스캇이 나노칩을 성기 깊숙이 넣어주자 그제야 미하르의 삐진 속이 완전히 풀렸다. 웃는 얼굴이 된 미하르는 이 그루이트를 돌보느라 그제야 스캇을 귀찮게 하는 걸 멈췄다. 허나 미하르도 속이 거북 해지는 빈도수가 높아져 재시와 민수에게 짜증이 느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스캇의 증세가 몹시 심각해졌다. 재시는 원인 파악이 안 되니 대증치료밖에 할 수 없었다. 가능한 모든 진통제를 투여했고 자꾸 경기를 일으키는 걸 가라 앉히기 위해 강한 마취제도 함께 투여했다. 무슨 이유인지 마취제가 들어가니 진통제의 효과가 반감되어 스캇이 다시 고통에 몸부림쳤다. 스캇의 관절이 말도 안 되게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캇이 똥과 오줌을 쌌다. 민수가 돕겠다며 쫓아 들어왔다가 코를 막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미하르는 너무 더러운 나머지 구토까지 했다. 뒤늦게 스캇에게 투여된 마취제가 약효를 내기 시작하고 스캇의 배설이 잦아들었다. 진통제를 한번 더 투여한 후에야 스캇의 바이탈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두 번을 더 겪고 나서 스캇은 콜로니 복귀 신청을 했다.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따라 블라디미르 우주탐사 정규 팀원의 복귀 신청은 이유 불문 무조건 받아들이여진다. 스캇의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바로 지구유니언에서 파견된 대체 인력이 곧 출발한다는 통신이 들어왔다. 이 무렵 스캇은 여성형성기 그루이트 포획보다 자신이 일전에 잡아온 죽은 남성형성기 그루이트 연구에 더 큰 공을 드렸다. 이미 진행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검사를 여러 번 반복해 진행했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니 이와 함께 스캇 자신의 혈액과 골수액, 정액 검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별다른 소득은 없어 보였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에서 보내오는 나노정보도 열심히 분석했는데 주로 임신, 출산에 관한 정보를 비교 분석하는 것 같았다.


미하르의 메슥거림과 헛구역질, 소화불량 증상도 점점 심해져갔다. 미하르는 기지에서 먹는 영양 큐브가 지겹다며 민수에게 지구의 요리를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수, 나 지구 요리를 먹어야겠어! 요새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건 다 저 맛없는 큐브 때문이라고!”


민수는 본사에 요리 재료를 대체인력과 함께 보낼 것을 요구했고 재시에게는 재료가 도착하면 미하르를 위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했다. 재시는 저 짜증 나는 블라디미르 미하르를 위해 다른 은하계 우주에서까지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별수가 없었다.

미하르는 콜로니로 귀환할 스캇에게 재시가 만들 지구의 요리를 먹으면 금방 나아질 텐데 뭣하러 가는 거냐며 설득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스캇이 없으면 미하르 혼자서는 이것저것 할 일이 더 많아질 테니 신경 쓰이긴 할 것이다. 스캇은 예전에 비하면 눈에 띄게 미하르를 피하고 귀환 전까지 각종 진통제의 도움으로 조사와 연구만 진행했다.

재시는 의아했다. 블라디미르 미하르를 향한 스캇의 교언영색한 말수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스캇이 연구하고 분석한 데이터량에 비해 보고서에 작성되는 양도 현저히 적었다. 그러나 민수를 조용히 떠 보니 이미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재시는 스캇이 떠난 후 미하르로부터 민수를 떼놓을 방법을 생각하느라 이미 골치가 아팠다.


말수가 줄어든 건 미하르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다며 떠나겠다는 스캇을 아쉬워하던 미하르도 막상 아파하는 스캇을 직접 보고 나니 스캇이 어서 콜로니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미하르 눈에 스캇은 너무 더럽게 아팠다.


━━━━ “재시… 미하르… 어때?”


드디어 스캇이 지구로 떠나는 시간, 스페이스십에 탑승해 스탠바이를 하던 스캇이 재시에게 말을 걸어왔다. 몇 시간 전까지 심하게 앓았던 터라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응? 스캇, 뭐가? 다시 말해 봐, 잘 못 들었어.”

━━━━ “미하르… 말이야, 이번에 잡아온 그루이트랑 어떻냐고… 아니, 그 그루이트는 어떤지 좀 알아?”

“아, 뭐가? 뭐가 어떻게, 어때야 하는데? 그 그루이트가 왜?”


그 그루이트는 저 변태 놈이 초록색 발광 나노칩을 박아 놓은 그루이트를 말하는 거다. 새로운 대체 인력이 도착할 때 즈음엔 그 그루이트는 방생해야 줘야만 한다. 재시는 생각 했다. 스캇이 방생 일을 걱정하는 건가? 설마… 미하르도 그 정도는 알아서 잘하겠지. 아니면 이제 와서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의 윤리강령을 걱정하는 건가? 다 발각될까 봐?


“스캇, 네가 뭘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뭘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지금이 딱 좋아, 만족해.”


만족스럽다는 재시의 표정에서 스캇은 일종의 불쾌감만 읽었다. 그러나 미하르, 미하르 블라디미르를 믿기로 했다. 스캇은 미하르 블라디미르를 믿고 [블라디미르 3rd 스페이스 콜로니]에서 지내고 있다는 세 자녀에 대해 자랑할 때 본 오만함으로 가득했던 재시의 얼굴을 믿기로 했다. 스캇은 지금 포획룸에 있는, 성기에서 초록빛을 뿜어내는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확실하지 않은 사실로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위배되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커리어를 망칠 필요는 없다.


미하르 블라디미르는 포획유닛만 입고서 초록색 빛 속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스캇이 떠나는데도 포획룸에서 나와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기 근처에 부유하고 있는 꼬물대는 작은 이물질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스캇이 떠난 수 시간 후, 지구 유니언에서 아웃소싱한 대체 요원 할이 도착했다. 할과 함께 지구의 요리 재료도 도착했다. 요리의 원자재를 구하는데 발생한 자원보다 운반하는데 들어간 자원이 몇 백배는 더 들었을 거다. 파견 요원 할이 해동이 될 동안 요리 원자재도 해동을 시켜야 했는데 재시가 유로파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각 원자재의 특성에 맞게 해동 시간과 타이밍에 따른 온도를 전부 따로 컨트롤해야만 했다. 스캇이 떠난 후 미하르가 민수를 하도 불러서 재시가 민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민수는 포획룸 근처에서 화상으로만 미하르와 대화했다. 재시는 식자재 해동을 컨트롤하면서 기지 내 민수의 위치를 끊임없이 파악했다.


“싫어! 안 가! 나 지금 속이 안 좋다고. 막 메슥거리고, 자꾸 트림도 올라오고 심하게 체한 것 같다고. 민수가 해 줘, 이것 데리고 나가서 방생하는 건 민수가 하라고.”


갑자기 민수는 곤란해졌다.


━━━━ “원래 스캇이 하던 거였잖아, 이제 민수가 해 줘. 민수가 우리 팀장이잖아, 아니 대장인가? 아무튼 민수가 책임자니까 민수가 해. 해 줘, 민수가.”


다이닝룸에서 보낸 재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 “미하르, 하지만 곧 스캇의 대체 요원이 캡슐 밖으로 나올 시간이야. 그때 민수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소화제며 진통제 다 처방해줬잖아. 그리고 저 그루이트는 미하르 네가 계속 돌본…”

━━━━ “싫어! 재시! 싫다고! 저 밖에 나 혼자 가는 건 싫어!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게 멀미도 나고, 싫어! 민수를 보내! 그게 싫으면 재시 네가 가던가!”


미하르 블라디미르가 재시의 말을 끊었다. 공식적으로 최종 결정권은 대장인 민수에게 있으니 결정은 민수 스스로 해야만 한다. 재시는 어쩔 수 없이 민수가 미하르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다이닝룸에서의 일에 집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촉박하니 크게 별일은 없을 것이다. 재시에겐 저 짜증 나는 미하르 블라디미르를 위해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제일 급선무였다.


미하르는 캡슐에서 알몸으로 눈만 깜빡이며 웃고 있는 대체 요원을 보았다. 안 그러려고 했지만 그루이트와 비교되었다. 이곳 그루이트는 정말 엄청난데 휴먼 여자라는 건 참 볼품이 없구나.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꽃을 달고 있는 남성형성기 그루이트 같았다.


재시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고 민수는 겨우 얻은 재시의 동의 하에 포획룸으로 들어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포획유닛을 단단히 챙겨 입었고 또 만약을 위해 탐사유닛은 아직 착용하지 않았다. 방금 전, 복도에서 마주쳤던 미하르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민수에게 고맙다며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미하르는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일렉트릭 피시넷을 그루이트에게 감아놓지 않았다. 처음 몇 번 봤을 때보다 배가 둥그스름하게 볼록 나온 아름다운 그루이트가 길고 쭉 뻗은 두 다리를 벌려 초록빛으로 빛나는 부드럽게 벌름거리는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민수의 마음이 급해졌다.


***


━━━━ 삐이 ━━━━━━━━━━━━━━━━━━━━

할이 재시를 귀찮게 하는 사이 자기 룸에 있던 미하르의 심정지 소리가 들렸다. 미하르는 할이 탐사 중일 때도 한 번 크게 아팠었다고 했는데 안정을 찾자마자 다시 찾아온 위험증상으로 심장에 무리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재시는 원격으로 의료키트를 컨트롤하며 토하고 싸면서 뒤틀리는 민수를 내버려 둔 채 미하르의 방으로 뛰어갔다. 할도 재시를 쫓아가고 싶었는데…


“할! 넌 여기 있어!”


재시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할은 이대로 민수를 남겨둔 채 재시를 쫓아갔다간 재시 손에 죽을 것 같았다. 최소 맞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할이 민수의 고약한 냄새에 코를 있는 힘껏 비틀어 버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민수의 룸 문을 열었다. 이때, 재시가 터벅터벅 돌아왔다.


“재시… 미하르는 괜찮아?” 할이 재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할, 너 어딜 가려던 거였어? 민수는? 민수는 별일 없었어?”

“아, 아무 데도. 민수, 민수는… 아마도…”


재시가 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수의 곁으로 가 민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더러운 몰골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민수는 다행히 미하르만큼의 위험한 고비 없이 무사히 넘긴 것 같다. 미하르와 민수 사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동분서주 움직인 재시의 얼굴은 할이 처음 봤을 때보다 족히 10년은 늙어 보였다.


“저기… 재시, 괜찮…”

“뭐?”


할이 재시는 괜찮은지 물어보려 했는데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재시가 날카롭게 끊었다. 재시는 몹시 예민해 보였다. 사실 재시는 훨씬 이전부터 예민했었는데 그걸 할이 이제야 알아주는 것이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저기 재시도 좀 쉬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재시는 괜찮아?”

“나야 머…”

“아니야, 그래도 다들 한숨은 돌린 거 같은데 재시도 좀 쉬어. 식사는 했어?”

“할… 너 같으면 밥맛이 있겠니?”

“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할은 큐브가 아닌 태어나 처음 먹어본 재시가 만든 요리 생각이 났다. 정말 자극적이었는데. 할은 입속 점막이 그렇게까지 예민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입술, 혀는 말할 것도 없고 잇몸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걸 알게 해 준 재시가 대단하면서 짠해 보였다.


“재시, 아무튼 좀 쉬어. 여기는 내가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을게.”

재시는 피식 웃더니 “됐어. 할 그보다 너 아까부터 하려던 중요한 이야기라는 게 뭐야?”

“아, 그거?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하자. 재시는 좀 쉬어야 하니까.”

“할, 네가 중요하다며! 그래서 지금 물어보잖아. 그게 뭐냐니까?”

할은 매우 친절하게 대답했다. “재시, 아니라고. 중요하긴 한데 아니라고. 재시는 가서 좀 쉬어.”

“하… 할! 그냥 좀 말해. 아까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쫓아다니면서 닦달을 하더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재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깜짝이야. 재시… 아니 그러니까 재시, 지금 듣고 싶은 거야?”

“할!” 재시가 진짜 크게 소리를 질렀나 보다. 약에 취해 잠든 민수가 움찔했다.

“알았어, 재시. 이야기할게. 할게… 그래서 말이야…” 할은 또 뜸을 들이다 재시가 못 참고 움찔하려고 할 때 입을 뗐다. “우선 스캇이 남기고 간 기록을 확인 좀 해보고 싶은데. 재시가 내가 열람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이전 스캇의 보고서는, 물론 훌륭했지만 뭔가 중간중간 듬성듬성 비어 있는 부분이 보였거든. 기승전결에서 ‘승’과 ‘전’이 뭐랄까… 아주 누락된 건 아닌데 뭔가 다른 크기, 다른 글씨체로 쓴 것 같달까? 내가 봤을 때 중간중간 연결이 매끄러워 보이지 않는 지점이 있었다고나 할까?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랭크가 많이 발견됐어. 그래서 보고서 작성 전에 스캇이 직접 작성한 개인 기록이 보고 싶어. 재시, 열람 가능하지?”


아… 스캇… 스캇 이름을 들은 재시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재시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듯 혀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 재시는 작은 한 숨을 몇 번 쉬고 마지막으로 크게 한 숨을 내쉰 후에야 할에게 스캇의 소식을 전했다.


“그게… 할. 스캇이 죽었데.”

“뭐? 왜?”

“나도 자세한 이유는 듣지 못했어. 콜로니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는 통신만 들어왔어.”


할은 스캇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스캇이 죽었다는 소식에 막 어떤 슬픔 같은 게 밀려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재시도 위로가 필요할 만큼 슬퍼 보이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할은 그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또 재시가 스캇이 죽었다는 이유로 본사 규정에 따라 개인 기록 열람을 쉽게 안 해줄까 봐 그게 우려됐다. 아니, 도대체 스캇은 왜 하필 언제, 지금 죽은 거야?!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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