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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08.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7. 셔틀버스



7. 셔틀버스



매주, 월 수 금 3시 10분이면 아들과 통화를 해야 했다. 3시 15분에 출발하는 영어학원 셔틀버스에 제발 좀 늦지 말라고 잔소리하기 위해서다. 한데 이번 주부터 하지 않는다. 1년간 다니던 영어 학원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아파트 단지 앞에서 출발하는 학원 셔틀버스는 더 이상 타지 않아도 된다.


석 달 후면 13살이 되는 아들은 갑자기 키가 크고 갑자기 체중이 느니 활동량은 곱절로 급증했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만으로 부족함을 느낀 아들은 주짓수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는데 알아보니 월 수 금 영어 학원과 시간이 겹친다. 바로 학원 밸런스게임이 시작됐고 일말의 여지도 없이 주짓수가 깔끔하게 승했다.


주짓수 학원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화목도 갈 수 있었으나 수학학원과 애매하게 시간이 겹친다. 이 밸런스게임에선 주짓수 학원이 패한다. 아들은 현 수학학원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다며 수학학원에 승을 안겼다. 반대로 영어학원 담임은 별로였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약장수. 말이 청산유수인 것이 딱 약장수 같았다. 아들은 그 약장수 선생님이 반에서 1등 하는 애들만 예뻐한다고 했다. 이런, 영어 학원 패배의 진실이 따로 있었구나. 잘됐다. 내심… 나도 그 선생님 별로였다.


수학학원은 두 달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밸런스 게임에서 진 영어학원과 같은 지역, 같은 건물에 있음에도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마을버스를 이용해 등, 하원을 해야 한다. 이때부터 아들은 종종 불만을 제기하곤 했다. 셔틀버스는 지역 여기저기를 돌고 돌아서 가고 마을버스는 상대적으로 짧은 노선으로 가니 같은 목적지를 두고 셔틀버스는 40분이 걸리고 마을버스는 15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영어학원도 셔틀버스 대신 마을버스를 타고 다녔더라면 오 가는 시간을 상당히 단축시킬 수 있었을 거다. 또 셔틀버스는 한 번 놓치면 그대로 끝이지만 마을버스는 놓쳐도 다음 버스가 금방 늦어도 5분 안에 온다. 마을버스를 타면 셔틀버스를 놓치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그럼, 이제부터 마을버스 타고 다니면 되잖아.”

“그건 안 돼. 나 운행 선생님이랑 친하단 말이야. 내가 없으면 선생님이 심심해한다고.”

 

아들은 종종 셔틀버스를 운전해 주는 운행선생님 뒤편에 앉아 선생님의 말벗이 돼 드렸다고 한다. 괜히 운전하는데 방해하는 거 아니냐 염려하니 다른 동네 앞에서 친구들 기다리거나 신호에 오래 걸렸을 때 말 하는 거라 괜찮다고 했다. 또 자신을 경거망동하는 어린애로 여기지 말아 달라고 주의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버스 안에서 뭐 하냐고 물으니 다들 스마트폰만 본다고 했고 차량선생님은 학생들 탑승체크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40분이나 되는 시간이 지루하긴 지루했나 보다. 짠하면서도 큰삼촌 뻘 되는 아저씨와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는 아들이 희한해 보이기도 했다.


“너 이제 거기 안 다니니까 운행 선생님 너 안 보여서 섭섭하겠다?”

“음, 그건 아니야.”


아들은 영어학원을 그만둔 것이니 괜찮다고 한다. 학원에 다니면서 셔틀버스를 안 타는 건 섭섭해하실 수 있지만 그만둬서 어쩔 수 없이 못 타는 건 충분히 이해하실 거라고. 뭔가 묘하게 설득력 있다. 물론 디테일하게 따지고 들면 충분히 오류를 찾아낼 수 있겠으나 굳이 그랬다간 왠지 피곤해질 것 같아 반박하진 않기로 했다. 이렇게 영어 학원 셔틀버스는 안녕이다.



*****



12통의 부재중 전화. 종일 업무에 집중하다 퇴근하면서 비로소 폰을 꺼내 보고서야 알았다. 아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12번이나 전부 못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전화가 온 시간이 대략 4시 10분경. 오늘은 화요일. 보통 수학학원을 가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수학학원에서 보내주는 출석문자를 부랴부랴 확인해 보니 학원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문자가 와 있다.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아들에게 25번째 전화를 걸어 핸드폰이 꺼져 받을 수 없다는 말을 25번째 듣는다.


아들의 핸드폰은 스마트폰이 아닌 2D폴더폰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5년째 사용 중이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처럼 핸드폰으로 영상을 볼 수 없고 게임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그런가?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더 충전시키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것 같다. 지금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은 단순히 충전을 하지 않아 방전되어 그런 걸 거다. 제발 그런 것이길 바라며 일단 집으로 향해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 비, 삐. 서둘러 누르다 보니 2차례 틀렸고 세 번째에 성공해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비번 까먹었구나? 왜 이렇게 틀려?”

 

주짓수에 다닌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도 덩치가 부쩍 좋아지고 생기가 듬뿍 도는 아들이 잔뜩 신이 났다. 엄마가 비번을 틀렸다는 사실을 어서 놀리고 싶은 얼굴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번호를 잘못 눌렀는데.’ 욱했지만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거의 달려오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아무 일 없이 무탈해 보였고 반대로 내가 큰 일 난 사람 같았다.


“헉, 허억!”

“엄마 뛴 거야? 왜? 왜 뛰었어?”

“왜 뛰었냐고? 왜긴, 너 때문이잖아. 허억, 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엄마한테 전화를 여러 번 한 거야? 수학 학원은 왜 안 갔어?”

“진짜? 진짜 한 번도 안 쉬고 뛰었어?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경비실 앞에 오르막길도 뛰어 올라왔어?”

“너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대답해!”

 

스읍, 콧평수를 있는 대로 넓혀 미간을 모아 눈썹을 치켜뜨니 아들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은 아쉽다며 대꾸한다.

 

“거기 나도 겨우 뛰어오는데… 엄마, 나 수학학원 갔어.”

“뻥치지 마. 학원에서 너 안 왔다던데.”

 

천연덕스럽게 결석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학원에서 받은 문자를 내밀었다.


“이건 내가 지각해서 그런 거야.”

“지각? 지각은 왜 했는데? 어쩌다가?”

“버스 카드에 돈이 없었어.”

“뭐?”

 

맙소사. 아들의 버스카드에는 150원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한 건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잖아.”

 

680원. 마을버스 어린이 요금이다. 아들은 돈이 모자라자 버스에서 후다닥 내려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걸고 또 걸고 하는 사이 5%도 안 됐던 핸드폰은 방전되었고.


“그러니까 내가 너 충전 좀 잘하라고 했지.”


100번, 아니 10000번은 했을 잔소리를 하니 아들은 “그러게 말이야.” 라며 남이야기 말하듯 천하태평이다. 하긴 통화가 되었다 한들 별 뾰족한 수는 없었을 것이다. 통화가 됐다면 “할 수 없다. 오늘은 학원 제끼자.” 라고 했겠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 지갑에 현금이 있었어?”

“아니, 없었지.”

 

그렇다. 아들의 지갑엔 땡 전 한 푼 없다. 버스카드로도 편의점에선 필요한 걸 구입할 수 있으니 동전이나 지폐는 귀찮다며 가지고 다니길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아들도 나도 소진되어가는 버스카드의 금액 따위 잊은 것이다. 버스카드는 화수분이 아닌데. 그렇게 방전된 카드를 손에 쥔 채 방전된 핸드폰을 목에 걸고 5분도 안 돼서 온 다음 버스도 그냥 보내야만 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정류장 근처 아파트 입구에서 누가 빵빵하는 거야.”

“아파트 입구? '방구대장(무인 문방구)' 옆에 무궁화 아파트 입구?”

“응”

“누가 있었어? 누구였는데?”

 

익숙한 노란 버스. 아들은 그만둔 영어학원 운행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3주? 거의 4주쯤 되려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하준아 오랜만이야. 방금 버스 왔다가 가던데 왜 안 타고 있었어? 수학학원 안 가? 거기는 계속 다닌다고 했잖아.”

“아, 선생님 저 돈이 없어서 그래요.”

“돈이 없어? 왜?”

 

아들은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라 여유가 넘쳤다. 어슬렁거리며 영어학원 셔틀버스 쪽으로 걸어가 창밖에 고개를 내민 운행 선생님에게 버스를 못 타게 된 이유와 핸드폰이 방전되어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것 등을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놨다.  

 

“아이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 그래서 학원 안 갈 거야?”

“그게 아니라요.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죠.”

 

아들 하준은 겉으로는 무탈해 보였지만 사실 속은 엄청 복잡했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안 왔으니 걱정할 것이고 엄마는 이유를 말하면 혼내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섭섭해할 것이다. 오늘 안 가도 숙제는 나올 것이니 다음에 갈 때 두 배로 해야 한다. 이러면 힘만 더 들뿐이다. 그래서 지박령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던 건데.


“우리 차 타고 갈래?”

 

마침 마지막 팀을 데려다준 차량선생님이 돌아온다.

 

“이게 누구야? 하준이네. 잘 있었어? 그새 키가 엄청 컸다.”

 

운행 선생님이 하준에게 눈을 찡긋 해 보이자 하준은 방금 한 이야기를 차량 선생님께 한 번 더 설명했다. 두 번째 설명에는 어쩐 일인지 방금 전보다 감정이 더 실려 있었다.


“어머, 어떡하면 좋아. 하준아 우리 지금 원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태워줄까? 같이 타고 갈래?”


차량선생님도 운행선생님과 같은 제안을 해주셨다. 하준은 핸드폰이 꺼져 있으므로 셔틀버스 안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4시 25분. 수업은 4시 반에 시작한다. 이미 지각은 확정이다.


“네. 그럼 저 좀 태워주세요.”


어차피 늦은 거 셔틀버스를 얻어 타고 더 늦게 가더라도 별 상관없을 것이다. 가는 길에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과 ‘모자 사이에 있는 신은?’, ‘손님이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사장님은?’, ‘땅이 울면?’ 등의 난센스 퀴즈 풀이를 했다. 다행히 돌아가는 셔틀버스는 여기저기 들르지 않고 원으로 바로 가주었기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지각했다. 하준이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넘쳤다. 지각임에도 천천히, 천천히 내리는 하준이에게 차량선생님은 서두르라고 일렀고 운행선생님은 잊지 말고 수학학원 데스크에 핸드폰 충전을 부탁하라고 일렀다. 아들 하준은 걱정하지 마라 호언장담을 하며 90도 인사를 한 후 핸드폰 충전에 관해선 바로 잊었을 것이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네가 잊어 먹었으니까 핸드폰이 계속 꺼져 있었던 거잖아.”

“그게 아니라 바로 까먹은 게 아니라고, 엘리베이터 탈 때까진 기억하고 있었어.”

“그럼 언제 까먹었어?”

“그건 모르지.”

“거 봐, 바로 까먹은 게 맞잖아.”

“그건 아니라니까.”

 

아들은 평소에도 가끔 희한해 보일 때가 있었지만 이런 날은 유독 더 희한해 보인다. 저 알 수 없는 붙임성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도 아이 아빠도 썩 사교적인 성격은 못 되는데 말이다.

 

“그래도 다음부턴 그렇게 차 얻어 타지마. 그랬다가 무슨 일 생기면 엄마한테 연락도 바로 안 닿고 위험하단 말이야. 절대 안 돼. 진짜 진짜 안돼. 알았지?”


아들은 그 위험한 무슨 일이 무엇인지 물어왔고 나는 상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처음엔 간단히 하려 했으나 설명을 하면 할수록 구구절절해진다. 물론 끝자락엔 오늘 호의를 베풀어 준 전 영어학원 운행선생님, 차량선생님을 곡해하는 말이 아님을 명백히 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핸드폰 충전은 하고 있어?”

“응.”


마치 이미 완충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대답하더니 그제야 충전케이블을 찾아 핸드폰에 꽂는다. 아이고, 그럼 그렇지.


“됐고, 편의점이나 가자.”


아들덕에 크게 널 뛰었던 마음이 진정되자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어물쩍 미루어 두었다간 잊어버릴 수 있다. 이 사단의 원인은 미리 버스카드충전을 챙기지 않았던 내게도 있으니 먼저 심심한 사과의 의미로 아들에게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기로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가 2+1 행사를 한다며 세 봉지씩 세 종류를 고른다. 기가 막히게 좋은 선택이다. 짜고 달고 고소한, 셋 다 나도 좋아하는 과자들이다.


“버스카드도 가지고 왔지? 충전하자.”

“아니, 안 가지고 왔는데.”


라면서 천연덕스럽게 매대 충전기 위에 카드를 올려놓는다. 호시탐탐 장난을 걸어오는 아들의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이쯤에서 으르렁 한 번 해줘야겠다.


“너 이 짜식이 증말, 가지고 왔으면서 안 가지고 왔다고 뻥을 쳐.”


아들에게 꿀밤을 한 대 쥐어박으려 주먹 쥔 손을 휘둘렀더니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요리조리 피한다. 진짜 확 쥐어박아 볼까 진지해지려는데 충전금액을 어서 말해 달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진지한 눈빛을 느껴 얼른 삼만 원을 말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셔주세요, 제발.”


사이좋게 각 과자 일 봉씩 깠다. 나는 짠맛, 아들은 단맛이다.


“너! 그럼 집에는 어떻게 왔어?”

“집에?”

“그래. 갈 때 돈 없어서 얻어 탔으면서 올 때는 어떻게 왔냐고.”

 

갑자기 깨달았다. 버스 카드에 돈도 없고 현금도 없기는 하원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다행이지만, 무사히 돌아온 거지?


“나 돈 빌려서 왔는데.”

“누구한테? 친구? 그때 그 샤프 들고 다닌다는 애?”

“아니, 우리 선생님.”

“뭐?!”

 

아들이 먹던 과자봉지를 건넨다. 어느 정도 먹었으니 바꿔 먹자는 뜻이다. 나도 내 손에 들려 있던 반만 먹은 과자 봉지를 넘겨주었다.


“선생님한테? 네가 그냥 빌려달라고 말했어? 얼마나?”

“응. 선생님이 만원 빌려준다고 했는데 내가 천 원이면 되니까 천 원만 빌려달라고 했어. 그래서 선생님이 천 원짜리는 없다고 했는데 옆에 데스크선생님 있어서 데스크선생님이 대신 빌려줬어. 그래서 버스 탈 때 천 원을 냈는데 버스 아저씨가 거스름돈을 안 주는 거야.”

“진짜? 왜? 그래서 어떻게 했어?”

“거기가 사람이 많이 타잖아. 내가 거스름돈은 괜찮다고 했지.”

“애가 또 남의 돈으로 인심 썼네. 그리고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건 아저씨가 안 준 게 아니라 네가 안 받겠다고 거절한 거잖아.”

 

아들의 텅 빈 지갑을 열었다. 엄마가 행여 현금이라도 넣을까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돈을 주겠다는데, 주는 사람이 제발 좀 받아 달라고 사정사정해야 하는 형국이라니. 일단 데스크선생님께 갚을 돈 천 원을 챙겨 넣었다. 아파트상가 디저트 가게에 들러 작은 마카롱 상자도 샀다.


“너 천 원만 덜렁 드리지 말고 이것도 잘 챙겨서 드려, 알았어? 아니야, 너 천 원 다시 내놔 봐.”


마카롱 사장님한테 작은 디저트용 비닐팩을 얻어 천 원을 담아 마카롱 상자와 함께 쇼핑백에 넣었다. 또 더 늦기 전에 전 영어학원 운행, 차량 선생님에게 감사의 메시지도 보냈다. 아들은 그러든가 말든가 반만 남았던 짠맛 과자 봉지를 다 비우고 고소한 과자 봉지를 뜯는다.


“너 또 먹게? 그렇게 과자로 배 채우면 오늘 저녁밥은 패스한다.”

“안 돼! 밥배는 따로 있고 과자배도 따로 있는 거라고 했어.”

“누가 그래?”

“운행선생님이 그랬어. 밥 잘 먹으라고. 그러니까 밥 줘야 돼. 밥 고프단 말이야.”

 

아들이 밥 밥 거리며 졸라댄다. 방금 과자를 먹어 그런가 어째 에너지가 넘친다. 저렇게 잘 먹으니 이렇게 쑥쑥 크지. 속으론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겉으론 줄까 말까 약 올리며 아들과 맞바꿨던 단 맛 과자봉지에 손을 넣었다. 나도 아까 단지를 가로질러 달려왔더니 당충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째 잡히는 게 영… 순 가루뿐이다.

 

“야, 이거 다 먹었잖아. 왜 가루밖에 없어?”

“아니야, 다 안 먹은 거야. 엄마 생각을 좀 해 봐. 그 가루가 원래 뭐였겠어, 어디에서 온 거야?

“뭘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 과자에서 왔겠지.”

그래 엄마. 가루도 과자에서 온 거잖아. 그러니까 가루도 과자라고, 엄마는 지금 가루를 무시하고 있어.

“흥! 어이가 없네. 정하준,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너 그거 먹고 끝이야. 밥 없어.”

“안 돼! 밥은 줘야지. 밥배는 따로 있다니까!”

 

녀석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힘차게 밥을 먹겠다고 외친다. 이것은 기회다.


”OK. 그럼 대신에 돈 받아. 콜 하면 밥 준다. 오랜만에 고기도 구워 준다.”

”와, 치사하다. 밥 가지고 이렇게 나오냐? 너무해, 너무해.”

 

이 제안을 거절하면 편의점에서 거두었던 꿀밤 주먹을 다시 날려 보이겠다는 액션도 선보였다. 진심으로 진지하게. 결국 밥때문인지 주먹 때문인지 아들이 뾰로통해진 입을 삐죽 내밀며 지갑을 내어주었다.


”천 원만 줘도 되는데.”

”싫어. 내 마음이야.”


성공이다. 혹시 모를, 오늘 같은 상황에 필요할 마을버스 요금용으로 가지고 있던 천 원짜리 일곱 장을 몽땅 아들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 또 혹시 모를 비상금으로 만원 짜리 몇 장을 더 넣어볼까 하는데 아들이 그건 안된다며 지갑을 낚아 채 뛰기 시작하더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봐야 한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소리친다. 옆에 나란히 걷던 아들이 어느새 저 앞으로 멀어진다.


“하율아 <흙, 흙, 흙>이 뭐야? 지금 차량선생님한테 답장 왔는데 <흙, 흙, 흙,>이래!”

“있어! 땅이 울면 나는 소리야!”

”그러니까 땅이 우는데 왜 흙이야? 선생님한테 문자 온 것 좀 봐보라니까! 정하준, 천천히가! 같이 가자고!”


휴우,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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