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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08.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5. 마을버스



5. 마을버스

 

 

배고파. 서현은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다. 오전 내내 방을 정리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지갑 속 동전을 털어봤다. 2,730원. 10원 동전이 12개나 나왔다. 10원짜리 동전은 누가 가짜를 들이밀어도 진짜랑 구별이 안 갈 것 같이 ‘가짜 돈’처럼 생겼다.

‘이 사회는 나 같은 10원짜리에는 공들이지 않는다.’

 

“똑, 똑.”

 

진짜 웃기는 언니다. 문을 두들기면 될 것을 꼭 저렇게 입으로 소리를 낸다.

 

“서현아, 안에 있지? 잠깐 나와 봐. 똑, 똑, 똑.”

 

하… 쉽게 포기할 언니가 아니다. 하필 저런 사람이 이 싸구려 고시원 옆방이라니. 3교대 근무로 돌아가는 PCB 제조 공장에서 일한다 던데. 이 시간에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어젠 새벽 근무였던 게 틀림없다. 그럼 잠을 자야지. 아무튼, 저렇게 밖에 세워 두면 결국 욕먹는 건 방문 주인인 서현이다.

 

“왜요? …읔!”

 

문을 열자마자 참기름 냄새가 서현의 콧구멍을 후볐다.

 

“엄마가 참나물 무쳐줬어. 먹자!” 밤을 지새우고 일하고 온 사람이 목소리는 신났다.

“언니! 혼자 드세요. 저는 됐어요.”

“야, 나 혼자 무슨 재미야? 같이 먹자!”

 

서현은 다짜고짜 소맷자락을 붙잡혀 탕비실로 끌려갔다. 이 언니, 말도 안 통하고 힘도 쎄다. 행동은 또 어찌나 잽싼지. 서현을 식탁의자에 앉히자마자 이미 전자레인지에 돌려놓은 햇반 3개를 삽시간에 까 커다란 냉면 그릇에 밥 풀 하나 안 놓치고 털어 넣는다. 여기에 참기름 냄새 오지게 풍기는 참나물을 때려 넣고 역시 어머니가 싸주셨다는 고추장을 밥숟가락으로 막 퍼 넣는다. 서현은 턱이 아플 만큼 어금니를 세게 물어야만 했다. 내뱉은 말과는 다르게 침이 마구 솟아나 입 밖으로 ‘주르륵’ 흐를 뻔했기 때문이다. 뭐라 투덜대고 싶지만 이것도 침 때문에 위험하다.

 

“됐다. 먹자!”

 

서현은 저번에도 참나물 무침에 참기름이 많다고 투덜거렸었는데 밥이랑 비벼 먹을 땐 따로 참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되어 편리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서현아, 천천히 먹어… 천천히!”

 

열받게시리, 언니 얼굴을 똑바로 못 쳐다보겠다. 저 언니는 한 다섯 숟갈 먹었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현이만 냉면 그릇 바닥을 박박 긁고 있었다.

 

“이제 좀 사람 같네. 방에 없었으면 어쩌나 했다, 내가.”

“저… 약속 있어요. 이제 그만 나가봐야 돼요.”

“어디? 어디 갈 건데? 약속이 몇 신데? 누구 만날 건데?”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을까? “언니가 그걸 다 알아서 뭐 할 건데요? 걱정 마세요. 이건 제가 정리할게요. 그 정도 시간은 있어요.”

“아니야, 서현아. 내가 정리할게, 괜찮아. 약속 있다는 애가 세수도 안 한 거 같아서 그렇지. 얼른 가서 준비해. 무슨 약속인지 모르지만 예쁘게 하고 다녀와.”

 

재수 없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쁘게 하라 마라 참견이라니. 분명 설거지거리도 물에 담가 놓기만 하고 모자란 잠이나 청할 거면서. 언니 눈은 이미 풀려 있다.

 

“남이사. 신경 꺼요.”

“그래, 여긴 걱정 말고 어서 나가 봐. 오늘 춥더라.”

“그래서요?”

“예쁘게 따뜻하게 하고 다녀오라고.”    

“신경 끄시라고요.”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훌쩍… 그 언니 말이 맞았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말 추웠다.

 

“아저씨, 가양역 가죠?”

 

와… 버스 안에 들어오니 비로소 살 거 같다. 서현의 카드는 정지 중이니 버스비를 현금으로 내야 했고 최대한 동전의 개수를 줄이고자 ‘버스비 현금가’ 1,000원의 100원은 10원 동전으로 냈다. 혹시 동전 한 개라도 의심받을까 봐 또박또박 동전의 개수까지 말해 가며 지불했다.

 

“아이고, 학생 좀 모자라면 어때? 괜찮으니까 얼른 가서 앉아.”

 

‘역시… 내 노력엔 10원만큼의 관심도 없구나.’

 

빈자리가 하나 남아 있다. 평일 낮 이 시간, 버스 안에는 사람이 많진 않다. 특히 서현 나이 또래 사람은 더 없다. 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뻘이다. ‘이 어른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서현은 어제 하루 종일 방에만 있다가 한밤 중에 고시원 옥상에 올라갔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그들 대부분은 서현 또래로 보였다. 다들 시끄럽게 웃고 노는 것마저 바빠 보였다.

 

‘싸구려 고시원에, 싸구려 골목이야. 도대체 간판들이 왜 이렇게 튀어나와 있는 거야? 거기다 왜 이렇게 많아!’

 

좌로 삼삼 우로 삼삼, 우르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존재감을 뽐내려는 간판들에 서현은 부아가 치밀었다. 이 좁은 옥상에서 도움닫기라도 하라는 건지. 이래선 바닥에 닿기도 전에 간판에 먼저 부딪힐 것이다. 분명 아주 짧은 시간일 테지만 그렇게까지 아프긴 싫었다. 그래서 굶어볼까 했는데 그건 옆 방 언니 때문에 대실패다. 역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날은 너무 춥지만 한강에 나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서현은 수영을 못 한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양역, 마포 중고등학교 역’에서 내리면 된다. 거기서 30분만 걸어가면 가양대교 한가운데 설 수 있다. 강바람이 매섭겠지만 최대한 가볍게 입었다. 가져갈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고 어떤 식으로 처리될지 서현은 알 수 없겠지만 남겨진 짐들만큼은 최대한 깔끔해 보이길 바랐다. 사실 서현의 고시원 방은 한동안 개판이었다. 그걸 몇 시간 만에 정리했으니 뭔가 자신이 없다. 혹시라도 못 버린 쓰레기가 남아있지는 않을까? 미처 보지 못 한 흐트러진 옷가지가 발견되면 어떡하지? 1.2평 조금 넘는 작은방이 계속 눈에 밟힌다. 졸리진 않지만 눈을 감았다.

 

“엄마, 조심조심 빨리 올라와! 조심조심 빨리!”

“아이고,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조심조심 천천히 올라오세요.”


버스에 올라타는 어느 탑승객과 기사님의 소리가 요란하다. 서현은 추울 30분을 위해 편하게 앉아서 가고 싶었는데, 살짝 실눈을 떠보니 엄청 할머니의 할머니 같은 분이 어느 아줌마와 함께 하필 서현 앞에 불안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어차피 정거장도 몇 개 안 남은 것 같은데 아예 두 눈을 더 감고 자는 척을 할까? 아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기 할머니? 여, 여기… 여기 앉으세요.”

“어머, 학생 고마워서 어떻게… 괜찮다고 사양을 못하겠네. 엄마, 이 예! 쁜! 학! 생! 이 엄! 마! 여! 기! 앉으래.”

 

서현은 그냥 이 할머니의 할머니 같은 분께 자리 하나 내줬을 뿐이다. 앉아서 가나 서서 가나 그게 그거 같았다. 따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서현에게 여러 번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말없이 할머니의 할머니 곁에 서 있다가 갑자기 다음 정거장에서 몇 걸음 옮긴다. 그리고 굳이 서현을 부른다.

 

“학생, 학생! 여기 자리 났다. 빨리 와, 여기 앉아.”

 

마침 다른 승객이 내려 생긴 빈자리를 가리키며 정말 큰 소리로 서현을 계속 부른다.  

 

“괜찮아요. 저 금방 내릴 거라서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따님의 자리권유 열정이 과해 서현은 정말 여러 번 거절 의사를 반복해야만 했다. 서현은 조용히 목적지에만 가고 싶었다. 괜찮다고 거절한 만큼 ‘고맙습니다’도 빼먹지 않았다. 서현이 끝까지 거절하니 그 빈자리엔 따님이 앉았다. 이제 모든 게 해결된 거겠지. 아무래도 이 어른들과는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 싶어 조용히 이동하려는 찰나 턱 앞으로 사탕이 불쑥 들어왔다. 냄새가 ‘청포도 맛’이다.

 

“먹어~ 맛있어~”


할머니의 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서현에게 사탕을 내민다. 할머니의 눈빛이 너무 멍해서 서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 나한테 먹으라는 건가? 갑자기?'


“네?”

“먹어~ 맛있어~”

“아, 그…”

“어머 엄마, 그러면 안돼!”

 

할머니의 할머니 같은 엄마와 잠시 떨어져 숨을 돌리던 따님이 서둘러 다가왔다.

 

“엄마! 그러지 마!”

“아가~ 먹어~ 맛있는 거야~”

“엄마! 하지 말라니까!”

“네? 아… 할머니 저, 저는 괜찮은데.”

“엄마, 하지 말라고! 학생, 미안해요. 우리 엄마가 학생이 예뻐서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 아휴, 엄마 요새는 이러면 안 돼. 싫어해.”

 

따님은 엄마의 메마르고 갈라진 손을 퉁퉁 붓고 버석한 손으로 급하게 감쌌다.

 

“엄마, 요새 애기들한테는 이러면 안 돼. 하지 마, 응? 하지 마. 그렇지, 학생? 이러면 잡혀가지?”

“저기, 저기요? 아니, 네?”


할머니의 할머니 같은 분의 따님도 나이는 꽤 있어 보인다. 명절 때만 가끔 만난 큰어머니 또래쯤? 그 큰어머니는 서현이 재수 끝에 입학한 학교의 이름을 물어보고선 항상 '걱정'을 해 줬다. 그러면서 다 잘되라고 해주는 말이라는 것도 꼭 덧붙였다. 문제는, 이걸 만날 때마다 반복한다는 것이다. 매번, 들어본 적이 없는 학교라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제 그 큰어머니는 못 뵌다. 지금은 명절 때마다 해외로 여행을 가시기 때문이다.

 

“먹어~”

“아휴, 엄마 애기들한테 이러면 안 된다니까.”

“아이고… 할머니가 학생이 많이 이쁜가 보네. 그래도 어르신! 요새 젊은 학생들은 이런 거 안 먹어요.”

 

할머니의 할머니 뒤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따님을 거든다.

 

“거 봐, 엄마! 여기 아주머니도 이러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냥 따님이 여기 앉으셔! 내가 일어설게! 보니까 따님도 다리가 안 좋네.”

 

따님이 앉았던 자리는 방금 정차했던 정거장에서 올라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심드렁한 얼굴로 차지해 버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귓구멍에 숨어 있는 에어팟이 얼핏 얼핏 보인다. 정확히 봐야 알겠지만, 두어 달 전쯤 서현이 갖고 싶어 군침을 흘렸던 모델과 흡사하다. 만약 맞다면 성능이 매우 좋은 것이다. 우리 전부를 노이즈로 캔슬시킬 만큼.

 

“아이고 저는 괜찮아요! 앉으세요! 괜찮아요.”

“아니야, 여기 앉아요! 나는 아직 다리는 튼튼해! 따님이 편해야 어르신도 편하지.”

 

보기보다 힘이 쎈가 보다. 다리가 튼튼한 아줌마는 따님을 힘으로 눌러 앉혔다. 그러고 보니 따님도 엄마를 쫓아오면서 두 발을 힘겹게 질질 끌며 걸었다. 버스 계단도 손잡이를 부여잡고 힘겹게 올라왔던 것 같고.

 

‘이제 조용히 갈 수 있으려나. 진짜 몇 정거장 안 남았다.’

 

“먹어~ 맛있는 거야~”

“아니! 엄마! 그러지 말라니깐!!”

 

따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랬는지 할머니의 할머니 얼굴이 잠시 허공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손만큼 메마르고 갈라진 피부 사이 파 묻혀 있던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설마 우는 건가? 에이… 아니겠지?

 

“아니, 엄마! 그렇다고 울면 어떻게 해!”

 

아, 진짜구나. 할머니의 할머니는 처음 서현에게 들이밀었던 청포도 사탕을 휴지로 감싸 소중하게 쥐고선 눈물만 흘렸다. 얼굴은 울지 않았다. 그냥 처음 봤던 멍한 표정 그대로 눈물만 흘렸다.

 

“엄마 왜 그래? 내가 엄마를 혼내고 싶어서 혼내는 게 아니라고, 요새 애기들한테는 그러는 게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거라고!”

 

따님이 곤란한 얼굴이 되어 달래니 할머니의 할머니는 손에 휴지를 쥐고 있으면서도 담겨 있는 청포도 사탕 때문인지 흐르는 눈물을 맨손으로 닦았다. 따님도 마땅히 닦을 게 없는지 퉁퉁 불어 보이는 맨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아휴, 할 수 없지.

 

“저 괜찮으시면 그 사탕 주시면, 저 주시면 그냥 먹을게요. 사실, 저 사탕… 좋아해요.”

 

서현이 맘에도 없는 억지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만일 저게 인삼맛 혹은 계피맛이었으면 억지소리였겠지만 청포도 맛은 꽤 좋아한다. 권고사직을 당했던 회사의 과장님 자리에도 청포도 사탕이 놓여 있었다. 서현은 그만둬야 했던 마지막 날까지 ‘저 사탕을 몰래 훔쳐먹을까?’ 고민했었다. 저거라도 훔쳐야 덜 억울할 것 같은데… 끝까지 그러지 못했다. 그깟 사탕이 뭐라고.

 

“고맙습니다.”

 

서현은 건네받은 사탕에 후, 후 입바람을 몇 번 불어 먼지를 털어내고 입에 넣었다. 보기보다 사탕이 컸다. 서현의 한쪽 볼이 동그랗게 부풀었고 할머니의 눈물은 그제야 잦아들었다.

 

“예쁘네~ 아가 예쁘네~”

“아휴 학생, 내가 다 고마워! 이렇게 친절한 학생이 다 있었네. 어쩐지 처음부터 인상이 좋더라니.” 요상하게 사탕을 준 건 할머니인데 친절은 서현이 베푼 걸로 됐다.

“아휴, 그래도 그러면 안 돼, 학생! 다른 데 가선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이렇게 넙죽넙죽 받아먹으면 큰 일 나.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조심해야 돼!”

 

곁에 서 있던 힘 좋은 아줌마가 한 마디 거들자 따님이 괘씸한 듯 그녀를 쳐다본다. 방금 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금방 서먹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니이, 어르신더러 뭐라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 말은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니, 요새 그렇잖아요. 세상이 좀 험 해? 거 참, 다 알면서 그런다.”

“그래도 그걸 꼭 지금 이야기했어야 겄어요? 우리 엄마 이래 봬도 다 들려요! 이 양반이 이렇게 보여도 다 알아듣는다고!”

이 두 분, 점점 시끄러워진다. “저기, 저기요. 저는 정말 괜찮은데요.” 역시 이 분들과는 진작에 거리를 뒀어야 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가는 게 이렇게나 힘들 일인가.

 

“예쁜 손~ 왜 이렇게 차?”

 

따님이 잠시 한 눈 판 이때, 할머니의 할머니가 버스 의자 손잡이를 붙잡고 있던 서현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차라리 덥석 잡히는 게 나았을까? 살그머니 느껴진 메마른 감촉에 서현이 화들짝 놀랐다.

 

“엄마! 그 손을 왜 잡아!!”

 

힘 좋은 아줌마를 향했던 따님의 큰 소리가 다시 엄마에게 향한다. 그 소리에 더 놀란 서현이 할머니의 손을 얼른 뿌리쳤다. 할머니를 또 혼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또 울릴 순 없다.

 

“미안해~ 손이 차~ 어디 아파~?”

 

뿌리친 건 서현인데 사과는 할머니가 한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게 또 보인다. 그런데 어라? 서현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아가~ 아파?”

“학생, 왜 그래? 학생!!”

 

처음 할머니한테 손을 잡혔을 때인지, 아니면 따님 목소리에 놀랬을 때인지, 그 사이 어디쯤인지 모를 순간에 입 속에 있던 사탕이 목에 걸렸다. 느낌상 목젖 어디쯤인 것 같다. 서현의 얼굴이 금세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숨을 못 쉬나 봐! 학생!! 정신 차려 봐, 학생!”

“아이고, 아저씨! 차 좀 세워 봐요!!”

 

숨이 안 쉬어지니 서현이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이상한 쇳소리만 나왔다. ‘키잌, 키이잌.’ 고시원에선 잘 참아냈던 침들이 입 밖으로 줄줄 새는 게 느껴졌다. 눈알도 튀어나올 것 같다. 쪽 팔려!

 

퍽, 퍽! 힘 좋은 아줌마가 인정사정없이 서현의 등을 때린다. 목에 낀 사탕은 꿈쩍 않고 등짝은 너무 아프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기사님까지 무슨 일이냐며 예의 주시한다. 서현은 헛기침을 시도했지만 ‘쇳소리’ 가득한 ‘새소리’만 나는 것 같았다. 정글에만 사는 괴물같이 이상한 ‘새’의 소리. 헛기침을 시도하지 않아도 괴물 같은 ‘새소리’는 계속 나온다.

 

“일단 바닥에, 바닥에라도 누워 봐요!”

 

서현은 침과 눈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직 정신줄을 놓은 것도 아니니 더러운 버스 바닥에 눕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여기다 눕힙시다!”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아저씨가 바닥에 롱패딩을 깔아 놨다. 그래도 눕기 싫었는데 힘 좋은 아주머니가 아까 따님을 의자에 앉히듯 서현을 힘으로 눕혀 버렸다. 서현이 괜찮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는데, 이를 보고선

 

“학생이 괴로운가 보네! 이걸 어떡하면 좋아! 누가 119 좀 불러요!!”

 

누군지 모를 어떤 이의 이미 119에 전화를 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버스째 병원으로 갈까요? 혹시 바쁘신 분들은 다음 차를 타시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제가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압니다!!”

 

에어팟을 끼고 있던,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그 학생이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 후다닥 다가오더니 서현의 흉부를 세게 압박했다. 숨은 숨대로 못 쉬겠는데 구토까지 할 것 같았다. 으! 아까 먹은 참나물…

 

“맞다! 기도 확보부터 하라고 했지!”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 쬐끄만 것이 중학생 같기도 한 학생은 진지한 얼굴로 서현의 머리를 붙잡았고.

 

“어?! 이게 뭐야? 목에 뭐가 있어요!”

“뭐?”

 

목에 무언가 있다는 말에 따님은 바로 주저앉아 서현을 자신의 무릎에 반쯤 기대 앉혔다. 힘 좋은 아줌마가 바로 서현의 턱을 위아래로 벌려 입 속을 들여다보더니,  

 

“꽉 잡아 봐! 내가 끄집어낼게!”

 

따님이 서현을 뒤에서 안아 단단히 붙잡았다. 힘 좋은 아줌마가 한 손은 서현의 어깨를 같이 잡고 나머지 손을 서현의 입에 넣으려고 한다.

 

“아가씨! 입을 벌려야 돼! 정신줄 놓으면 안 돼!!”

 

서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눈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 위아래로 움직이던 고개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졌다. 숨을 못 쉬니 무조건 숨 쉬고 싶었던 서현의 몸은 갑자기 축 쳐졌다. 힘 좋은 아줌마가 손을 넣기 직전이었다. 따님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힘 좋은 아줌마도, 따님도 어서 서현의 정신줄이 돌아오라며 잡고 있던 어깨를 진심으로 흔들었다. 흔들림에 눈이 반쯤 떠진 서현이 희미한 정신줄을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다. 힘 좋은 아줌마가 일단 목에 걸린 것부터 빼야겠다며 다짜고짜 서현의 고개를 더 꺾어 입을 벌렸다. 그때였다.

 

<꿀꺽!>

 

사탕이 삼켜졌다. 그새 조금이라도 녹아 작아진 건지 아니면 서현도 모르게 목구멍이 넓혀진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삼켰다. 아팠다. 제대로 녹지 않은 큰 사탕이 목구멍을 넘어가 진짜 아팠고 그래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배와 가슴이 개구리처럼 부풀려지며 크게 들이마시고 땅을 꺼트릴 만큼 큰 숨을 내쉬었다. 튀어나올 것 같던 눈알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서현의 시야에 엄마를 원망하는 따님이 들어왔다.

 

“아니, 엄마 이러다 진짜 저 아가씨 큰 일 났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렇게 숨겨놔도 어디서 그걸 찾아내서 왜 자꾸 퍼주냐고 퍼주길!! 엄마 진짜 큰 일 날 뻔했다고!! 저 아가씨 잘못됐으면 진짜로 엄마 큰 일 날 뻔했다고!! 내가 엄마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아! 못 살아!”

 

서현 때문에 주저앉았던 따님은 무릎이 많이 아픈지 옆에 있던 버스 좌석을 양손으로 붙잡고 힘겹게 일어서며 엄마를 다그쳤다. 할머니는 가만히 울고 있었다. 힘 좋은 아줌마는 서현의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고 어려 보이던 학생은 어느새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와 서현의 얼굴을 살살살살 닦아주고 있었다. 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숨을 쉬고 있었다. 편안하게 숨을 쉬며 아까보다 더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그 밖에 다른 승객들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다행’이 충만한 얼굴로 서현을 내려다보는 걸 올려다봤다.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또 쪽팔려!

 

“아이고, 이제사 숨이 돌아왔나 보네.”

“살았네, 살았어!”

“얼굴색이 돌아왔어!”

 

남은 쪽팔려 죽겠는데 자기들끼리 안심하고 난리다. 어디선가 119를 취소해도 되겠냐는 말들이 오갔고 서현은 양손을 들어 제발 취소해 달라는 뜻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모르는 아저씨의 롱패딩에 묻었을 검댕이를 털어내려고 했지만 유난히 새까만 롱패딩 어디를 털어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니 아저씨가 멋쩍게 웃으며 그냥 달라고 뺏는다. 어차피 빨 때가 된 옷이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걸 말한다. 롱패딩 신세를 진 건 서현인데 이 아저씨도 자기가 미안해한다. 안 보이는 검댕이 대신 서현의 눈물자국, 침자국이 잘 보인다.

 

“학생, 괜찮아?”

 

기사님까지 왜 이들과 같이 서 있을까? 버스는 언제부터인지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기사님은 서현이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계속 권유했고 서현은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다. 정말 괜찮기 때문이다. 목은 좀 아프지만… 기사님은 기사석으로 돌아가서도 서현이 정말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마포 중고등학교 역’이요.”

 

어려 보이는 학생이 귓속 에어팟을 톡톡 치며 뿌듯한 얼굴로 알려준다. 서현이 내리려 했던 역이다. 기사님이 차 델 곳이 마땅치 않아 정거장 몇 개를 지나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애, 너는 학교 안 가니?”

 

힘 좋은 아줌마가 물어보니 학생이 말하길 지금 방학이랜다. 게다가 쬐끄만 중고등학생이 아니라 키가 큰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으며 지금 내려서 반대로 걸어가면 된다고 모두를 안심시킨다. “아이고 씩씩하네.” 서현도, 서현도 지금 내려야 한다. 그런데… 따님한테 혼나는 할머니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저 괜찮아요. 할머니 저 이제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주머니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응? 뭐라고? 아가씨 뭐라고?”

 

따님이 눈이 뎅그래져서 서현이 하는 말에 열심히 귀 기울였지만 잘 못 알아듣는 눈치다.

 

“아주머니, 저 괜찮다고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응? 뭐? 왜? 어디가 불편한 거야?”

답답한 서현이 더 말하려는데 “이 언니가, 이제 자기는 괜찮데요. 그래서 아줌마가 할머니 혼내는 거 그만하라고 하는 것 같애요. 그렇지, 언니?”

 

서현은 초등학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신이 하는 말은 못 알아듣고 초등학생이 대신 알려주는 것은 이해하는지 따님이 조금은 못마땅했지만. 그러나… 그럴 만도 하다.

 

“울지 마~ 예쁜 아가~ 울지 마~”

 

서현은 울고 있었다. 그것도 목놓아 울고 있었다.

처음 사탕이 목에 걸렸던 순간이 애매했던 것처럼 숨이 돌아온 어느 지점, 갈비뼈가 크게 움직이며 숨이 쉬어지는 걸 느꼈을 때? 갑자기 목 넘김 한 사탕 때문에 목이 아프다는 걸 느꼈을 때? 아니면 울고 있는 할머니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인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울고 있다. 그 울음이 점점 커져 자신을 걱정해 줬던 버스 안 사람들과 한 명 한 명 눈이 마주쳤을 땐 꺽꺽 소리를 내며 오열까지 하고 있었다. 침에, 눈물에, 콧물까지 아주 난리도 아닌 것이 참아지지도 않는다. 멋대로 얼굴에서 콸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학생!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이대로 병원으로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기사님! 저 갈 거예요!! 정말 괜찮아요!!”

“기사님! 이 언니 그냥 갈 거래요! 괜찮다고 그냥 가고 싶데요!”

 

모두들 서현의 울먹이며 오열 섞인, 숨 넘어가 듯 말하는 소리를 못 알아듣는데 요 초등학생만 유일하게 제대로 알아듣는다.

 

“이 언니, 급하게 할 일 있다고 정말 괜찮으니까 이대로 가도 된데요!”

“어머, 애? 너는 이 우는 소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듣니?”

“아! 제가 동생들이 많거든요. 걔네는 다 잘 울어가주고 이렇게 말할 때가 많아서 저는 웬만한 건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우리 엄마보다 동생들 우는 소리는 제가 더 잘 알아 들어요!”

“어이구, 효녀네. 아이구 기특한 것, 야무지기도 하지.”

 

서현은 버스 안 모두에게 민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싶었다. 물론 이 역시 꺽꺽거리며 말 해 제대로 전달 되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 사과는 초등학생이 대신 말 해주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것만큼은 초등학생 도움 없이도 모두들 제대로 이해한 듯하다. 서현의 손과 발, 고갯짓 때문일까?

 

“아이고 미안허긴 뭐가 미안해!”

“살다 보면 이런 꼴, 저런 꼴, 별꼴 다 보는 거지.”

“날도 추운데 그렇게 얇게 입고만 나오니까 사탕이 걸리는 거야.”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탕이랑 옷이랑 무슨 상관이야?”

물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왜 저렇게 운데? 사탕은 해결 됐잖아? 아니야?”

“모르지. 궁금하면 네가 가서 물어봐라.”

“아니, 미쳤냐? 사람이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지.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매너 없는 짓을 하라는 거야?”

“너는 갑자기 웬 매너 타령이야?”

 

그리고

 

“그래도 울지 마~”

 

그 할머니의 할머니 같은 할머니다. 할머니가 서현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예쁜 아가 울지 마~ 손이 차~ 아프지 말고 울지 마~”

 

따님은 서현의 손을 잡은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서현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엄마지만 엄마의 손을 잡은 서현의 희고 예쁜 손이 무척이나 짠해 보였다. 할머니의 할머니 손은 오래된 나무젓가락처럼 말랐고 메마르고 거칠었지만 보드라웠다. 그리고 거뭇거뭇하고 칙칙한 피부색에 반해 따뜻했다. 또 힘이 있었다. 덕분에 절로 서현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힘주어 누군가의 손을 잡아 본 게 언제였더라? 서현은 자신의 손이 차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따뜻한 손을 꼭 잡아보고 나서야 왜 자신의 손이 차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메마르고, 거칠지만 보드랍고 따뜻한 손이 서현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눈물을 닦아주려는 것뿐인데 어째서인지 이 때문에 더 눈물이 나는 것 같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 이제 정말 괜찮아요. 진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진짜! 정말 괜찮아요!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다는 말과 동시에 울음이 더 터진 서현은 한동안 울먹거리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따님도 말 없이 한 껏 움츠린 서현의 등을 도닥여줬다.

“할머니! 이 언니 이제 정말, 완전, 괜찮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초등학생은 “이 언니 이제 집에 가야 된데요!”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가까스로 추스려 그러니 그만 가보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안 그러면 자신이 모두를 붙잡는 꼴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에.

 

“학생, 그냥 간다고? 진짜 병원엔 안 가 볼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 한 번 가보는 게 좋지 않겠어?”

 

끝까지 병원행을 권유하는 기사님께 서현은 겨우겨우 숨을 고르며 대답했고,

 

“아니, 아저씨! 이 언니 진짜 집에 빨리 가야 된 데요. 빨리 가서 이 언니, 언니가 깨기 전에 설거지해 놔야 된 데요. 안 그러면 더더 큰 언니한테 혼난 데요. 아니 언니! 언니네 언니들이 그렇게 무서워요? 나는 안 그러는데?”

“응?”

 

아직도 눈물범벅인 서현의 얼굴에 웃음이 삐져나왔다그렇게 울다 웃는 뒤섞인 얼굴로 콧물을 훌쩍이며 모두에게 인사했다할머니와 따님에겐 여러  인사했다서현은 퉁퉁 부어 보이던 따님의 손도 힘주어 잡아봤다물론  좋은 아줌마도 잊지 않았다롱패딩 아저씨도 잊지 않았고 119 불렀다 취소한 여러 명도 잊지 않았다다들 떠들썩한 잔치를 치른  같은 분위기로 서로 인사하며 살아가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언니, 언니는 어느 쪽으로 가세요?”

 

바깥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서현은 한 정거장만큼 초등학생과 걸어갔고 거기서 그 애와 헤어졌다. 초등학생은 걸음이 엄청 빨랐으며 ‘오늘의 마을버스 사건’을 동생들에게 이야기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서현은 가양대교 반대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녀를 다시 데려다줄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마음이 급했다. 참나물 언니가 걱정이다. 초등학생이 큰 언니라고 말했던 총무 언니는 진짜 무섭기 때문이다.

 

날은 춥지만 따뜻했고 손은 시리지만 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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