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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08.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3. 보조 책상

 

 

3. 보조 책상



*액정 태블릿 – 그래픽 태블릿과 디스플레이를 합쳐서 태블릿 펜을 대고서 모니터에 직접 그리는 느낌으로 작업할 수 있는 물건. 전용 태블릿펜을 사용하는 것은 아이패드나 갤럭시탭과 비슷하지만 손가락 터치는 안 된다.


그런 날이 있다. 딱히 계획한 게 아닌데도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들어맞는 날.


가구를 판매하는 사이트의 책상 카테고리 정렬 순서를 ‘인기순’에서 ‘낮은 가격순’으로 변경했다. 그러자 ‘인기순’ 일 때 보이던 제품 대부분이 안 보인다. 일전에도 이 사이트에서 거실에서 사용할 작은 밥상을 구매했더랬다. 결과는 참담했다. 택배로 받아본 저렴한 가격대에서 가장 있어 보이던 밥상은 상판이 3분의 1쯤 금이 간 불량이었고 교환해서 받은 제품은 다리 하나가 길이가 달랐다. 교환을 하고 한 번 더 하고 나서야 겨우 사용할 수 있는 밥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큰 책상이 갖고 싶었다. 큰맘 먹고 구입한 24인치 *액정 태블릿이 기존에 사용 중이던 책상을 제대로 채웠기 때문이다. 24인치 모니터를 책상에 깔아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짝꿍처럼 붙어 있던 키보드와 마우스는 24인치 거리만큼 멀어져 있다. 공간이 더 필요하다. 


꽤 예전부터 6인용 식탁을 책상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자재는 물론 원목으로. 미송 혹은 오크 집성목이나 무늬목 씌운 MDF 말고 오일이 고급지게 먹은 짙은 초콜릿색 호두목 식탁으로, 이왕이면 금속 하드웨어 없이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은 짜맞춤으로 만들어진 고급진 식탁이, 아니 책상이 갖고 싶었다. 문제는 일단 가격이다. 딱 원하는 식탁은 ‘낮은 가격순’으로 정렬하면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 마지막 페이지를 클릭해야 볼 수 있다. ‘낮은 가격순’의 낮은 순위의 제품을 살 돈은 내게 없다. 대신 ‘낮은 가격순’ 우선순위인 보조 책상을 하나 사기로 했다. 200만 원대 6인용 식탁 하나 살 돈이면 보조 책상을 100개는 살 수 있다. 


밥상으로 맘고생 시킨 지난번 사이트를 또 클릭했다. 은행에 저금하는 것보다 더 살뜰히 모은 포인트 때문이다. 최소 택배비는 거의 무료에 가깝게 절약할 수 있으니 맘고생 따위야 간단하게 레드썬 할 수 있다. 몇몇 제품을 후보에 올려놓고 모든 구매후기를 꼼꼼히 읽어 본 후 그중 가장 저렴한 것보다 1천 원이 비싼 제품으로 골라 구입했다. 대략 3일 후 도착 예정.


그리고 그런 날이 왔다. 정확히는 5일 후였다. 비좁은 책상 위, 전선을 하나라도 정리하기 위해 구입한 블루투스 스피커 택배 박스가 현관문 앞에 놓인 날이었다. 이 또한 최소 2,3일 걸릴 줄 알았는데 어제 주문한 것이 하루 만에 도착했다. 보조 책상은 알아서 오겠지 하고 아무 생각을 두지 않으니 이 날, 스피커와 함께 도착해 있었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것보다 오기로 한 택배들이 한꺼번에 온 것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안으로 들이고 거실에서 잘 사용 중인 밥상을 보며 행여 불량이 왔을까 우려됐지만 다행히 다 멀쩡하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같이 온 동글이로 데스크탑과 연결시키니 잘 잡힌다. 보조 책상도 마찬가지, 작은 흠집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할수록 눈은 더 더 매의 눈이 되어갔는데 희미한 흠집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반 조립 제품이라 동봉된 나사의 개수가 혹시라도 모자랄까 긴장했는데 작은 레고부품처럼 1,2개씩 더 넣어주었다. 좋은 시작이다.


조립을 진행했다. 함께 동봉된 도면을 보고 순서대로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간혹 나사 구멍의 위치가 틀리거나 나사 굵기에 비해 홀의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을 때 골치가 아파지지만 이 녀석은 그런 일 없이 딱딱 들어맞았다. 순조로웠다. 완성 후, 바닥에 세워 수평을 확인하니 흔들림 없이 단단히 서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일 하나만 더 처리하면 된다.


거실에 오늘 받은 택배상자들이 널브러져 있다. 종이와 비닐, 스티로폼 등등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보조 책상 상자가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좁아터진 집구석에 덩치가 큰 분리수거 품목들은 꽤나 골칫덩어리다. 집은 책상과 달라서 붙여서 쓸 보조 집이 없다. 정말 더 큰 집을… 더 망상에 빠지기 전에 분리 수거할 것들을 착착 정리해 현관에 내놓았다. 마침 오늘이 분리수거일이라 택배상자들을 집 안에 쌓아 둘 필요가 없다. 택배를 받은 날이 수거일이라니! 기대하지 않았던 날들이 마침맞게 맞아 들었다. 


‘운이 좋은 날이다.’ 같은 생각이 든 게 아니다. 저런 날을 보냈으니 이런 날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당당함이 차올랐다. 


작은 크기만큼 무계도 가벼운 보조 책상을 사용 중인 책상 옆자리에 두고 자잘한 문구류를 옮겼다. 이제야 책상 공간에 숨통이 트이는구나. 대신 좁아터진 작업방이 그만큼 비좁아졌다. 아, 처음부터 여기엔 6인용 식탁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구나. 비로소 미련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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