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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08.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4. 소주



4. 소주



펑!


오랜만에 껍데기 터지는 걸 직관한다.


“콜록콜록!”

 

거뭇거뭇 탄내가 묻은 고소한 껍데기 한 점을 입에 넣던 지형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서 물을 마셔야 할 텐데.


“어떡하냐? 물이 없다?!”

 

취기로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오른 세연이 켁켁 거리는 지형의 등짝을 두들겨가며 빈 물통을 흔드는데, 때마침 껍데기 이모님이 아슬아슬히 얼음이 낀 물병과 함께 계란 후라이 서비스를 들고 나타나셨다.


“그러니까 니! 콩가루 좀 작작 묻혀 먹으라 했냐, 안 했냐? 이게 콩가루를 먹는 거여? 껍데기를 먹는 거여?”

 

차가운 물을 콸콸콸 들이켜 되살아난 지형은 생명의 은인 이모님에게 지지 않고 대답했다.


“이게 뭐야, 이모? 세연이는 반숙이라고요! 노른자 안 익힌 거! 옛날부터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야, 홍지형 왜 그래? 괜찮습니다, 이모님. 충성충성 고맙습니다!”

 

세연이 이모님께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두들기기만 하던 배은망덕한 지형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아!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 거야! 후라이가 반숙이면 어떻고, 완숙이면 어때? 대충 먹으면 그만이지.”

“뭐가 그만이야? 너 옛날부터 완숙 싫어했어! 라면에도 노른자 익혀 내오면 싫다고 징징 거리는, 넌 그런 애야! 결혼하기 전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왜 그러냐? 왜 네가 다 맞춰주는데?”

 

이모님은 진작에 사라졌는데 남은 지형과 세연만 애꿎은 계란 후라이로 언쟁이 붙었다.

펑, 펑, 껍데기는 잘 구워지고.


“요새는 좀 어때, 괜찮아? 너 내가 집에 와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어떻긴 똑같지. 그리고 남세준이가 내 밑에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겠냐?”

 

남세준은 세연의 남동생으로 지형이 일하는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회계 사무보조 일을 하고 있다. 간단한 ‘엑셀 업무’였지만 아직 단축키나 엑셀 함수등이 익숙치 않은 관계로 툭하면 육아로 정신줄이 가늘어진 누나 세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난달 이맘때쯤엔 지형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나마 믿는 구석이던 지형이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자 세연의 전화기는 온통 세준의 콜로 끊임없이 울어댔다. 세연은 훗날 가상의 엑셀 홀로그램표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고 이때를 회상한다.


“아… 세준이 자식… 어쩐지 아침부터 하율이는 삼촌한테 맡기라고 노래를 부르더라니.”

“…”

 

지형이 말없이 세연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내 깔끔하게 빈 병을 만들어 내고 앞서 만든 빈 병 옆에 나란히 세웠다. 냉장고 가까이 앉은 세연이 세 번째 소주병을 가지러 일어났다. TV에서는 지난달 이혼 발표를 한 연예인 A 씨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며 파리 여행 중이라는, 그녀의 SNS에 업로드된 사진을 보며 떠드는 또 다른 연예인들 여서 일곱 명이 나오고 있었다. 이슬 맺힌 소주병의 뚜껑을 돌리며 세연이 말한다.


“대박, 부러워. 이혼 후 유럽이라니…”

“…”

“야, 저 가방… SNS에 메고 나온 거 협찬도 아니래. 이번 시즌 신상이라는데. 스트레스를 돈으로 풀었나 봐. 너무 부럽다… 스트레스로 돈 칠백을 쓴 거잖아. 나도, 칠백… 아니 칠십만 아니 칠만, 그래 칠만 원이라도 스트레스로 막 풀 수 있으면 좋겠다.”

“… 칠~~~~~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 가방만 칠백이지 여행경비는 생각 안 하냐? 호텔에, 호텔도 비싼 호텔일 거고. 비행기에, 비행기도 우리 타는 이코노미 아니고 일등석일 거고. 쇼핑도 그래, 가방 저거 하나만 샀겠냐? 그거 다 합치면, 와 기가 찬다, 기가 차!”

“그런가?”

“… 크. 그런데 너 말이야 혹시…”

 

지형이 꺾어 마셨던 소주를 비워내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똘똘똘똘똘’ 지형의 빈 잔을 채우는 세연은 듣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저 A 씨 걔 닮았다. 이영서라고 기억나?”

“이영서? 그 독일 간 선배랑 헤어지고 막 술 사줬던 애? 뭐 좀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우리가 마신 그게 막 술이 아니었어.”

“그치, 막 술은 아니었지. 그때 그런 걸 처음 마셔봤어. 그게 뭐였더라?"

"헤네시?"

"어, 헤네시. 생각해 보면 ‘과일 안주’라는 것도 그때 처음 먹어 본 거야.”

“나도 나도. 와, 비싼 과일로만 배를 채울 수 있다니!”

“맞아.”

 

세연과 지형이 사이좋게 잔을 부딪히고 비워냈다. 세연은 과일 안주를 추억하며 된장 바른 오이를 오물오물 씹었다. 지형이 세연의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을 채웠다.

 

“걔 그러고 어떻게 됐더라? 그 후로 휴학하고 못 본 거 같은데.”

“어떻게 되긴, 그러고 나서 우울하다고 뉴욕인가 엘에인가 갔다가 안 들어오고 거기서 공부한 거잖아.”

“걔가 그랬었어?”

 

지형이 불판 위 껍데기를 뒤집으며 행방이 묘연했던 옛 동창의 사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서 걔가 그렇게 유학을 간 거구나. 완전 영화 주인공이네.”

“주인공?”


지형이 말하는 주인공들은 이러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 홧김에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 거기서 좌충우돌 개고생하다 새로운 사랑까지 만나고 인생까지 풀린다.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아닐걸, 이영서는 개고생 같은 건 안 했을 거 같은데.”

“있어, 있어. 주인공이 하는 개고생이 따로 있어.”

“아휴, 그런 거면… 나는 평생 주인공은 못되겠다.” 세연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

 

지형이 입을 다물었다. 세연은 잔을 들었다. 당연히 지형도 잔을 들 줄 알았는데 꿈쩍 않자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며 꽉 찬 지형의 잔에 툭 하고 부딪혀냈다. 그래도 지형은 잔을 들지 않았다. 그저 못생긴 얼굴을 만들어 세연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뭔가 불안하다. 쟤는 뭔가 잔뜩 불만일 때 저 못생긴 얼굴을 만드는데. 세연은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잔을 비웠다.


“크! 쓰다, 써.”

 

세연이 빈 잔을 내려놓자 그제야 지형도 잔을 비워내고선 “깡!”. 쎈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에 잔을 내려놨다. 아니 잔으로 테이블을 때렸다.


“미쳤냐? 그러다 테이블 쪼개겠다. 왜 그래? 왜 급발진이야?”

“남세연 방금 뭐라고 했냐? 뭐, 주인공?!”

 

깡! 지형은 빈 소주잔으로 한 번 더 테이블을 내리쳤다.


“야, 말로 해. 잔 채워달라는 거야?”

“그 말이 아니잖아!”

 

지형은 세연이 든 소주병을 낚아채 자신의 잔을 채우며 점점 목소리를 키워냈다.

 

“남세연, 너 나한테 할 말없어?”

“무슨 말이 어디 있어? 뭐가?”

“와 진짜 섭섭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너… 왜 그래?

 

지형의 높아진 언성이 세연을 계속 찔렀다. 자신의 잔을 채우는 세연은 불현듯 곤란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가 한가득이다.


“… 세준이구만? 뻔하지. 그 자식이 입을 놀렸구만.”

“...”

 

지형이 계속 못생긴 얼굴로 세연을 째려봤다. 특히 턱을 빠질 듯이 내밀고 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오늘 보자고 한 거야?”

“그럼, 그걸 아는데 모른 척이 되냐? 네 일인데?"

“내 이 자식의 세 치 혀를 순비치 빠여버려야지. 그렇게 단단히 입을 채우라 명했거늘.”

“기지베야, 너는 세준이 욕할 자격이 없어! 네가 이영서야? 몇 년을 못 봐서 행방을 몰라? 우리 지난달에도 만났어! 그때 네가 유난 떨어서 3일 내내 만났어!”

“어머 맞아, 그때 너네 이모님들이 우리 하율이한테 용돈을 너무 많이 주셨는데. 이모님들한테 잘해. 그런 이모들 없다, 너!”

“우리 이모들이 안 그래도 하율이같이 예쁜데 순한 애 처음 봤다고 아직도… 아니지! 야 딴 소리하지 말고!”

 

잠시 딴 길로 샐 뻔한 지형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목청을 드높였다. 세연도 지긴 싫었다.


“홍지형 그때 그 3일, 네 어머니 상중이었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었겠냐?”

“왜 못해? 그전에 하율이랑 우리 엄마 병문안도 왔을 때 그때도 말할 수 있었던 거잖아!”

“아니 어머니 병문안 가서는 또 그런 말을 어떻게 해? 너는 애가 왜 이렇게 물색없이 나오냐?”

“뭐가 그런 말이야? 그래도 그런 건 말을 했었어야지!”

 

아휴! 세연이 답답해하며 잔을 들었다. 지형이 반사적으로 잔을 부딪혔는데 그것이 둘 다 못마땅해 잽싸게 잔을 비웠다.

 

“네가 섭섭해만 할 일은 아니라고. 내가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잖아.”

“뭐가 못 한 거야? 우리 어제까지 통화도 거의 매일 했거든. 그런데 당장 봐봐. 너 하율이랑 집에 온 것도 세준이한테 들어 알아야겠냐고, 내가!”

 

둘은 성량 대결하는 불협화음 듀엣이 되었다. 둘 다 각자의 섭섭함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로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그러니까 그렇지! 아니 내 맘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꼭 그런 얘기하지 않아도 너랑은 이것저것 할 말이 많았으니까 그랬다는 거! 너는 알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 먼저 말을 해줘야지!”

“자꾸 왜 그래? 너는 알아야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 그냥 알아야지!”

“야!”


지형은 모르는 게 아니다. 어머니의 병환을 왜 이제야 알렸냐며 지금의 나처럼 자신을 타박하던 세연에게 띄엄띄엄 그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후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픈 어머니 이야기만 할 때, 자신도 그들과 같이 할 말이 그것 뿐일 때, 지형은 수없이 다양했던 홍지형은 사라지고 '불쌍한 딸 홍지형' 하나만 남는 걸 느꼈다. 싫지만 그래야만 했다.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니 다양한 홍지형을 제일 잘 알아주는 세연에게만큼은 더 늦게 말하고 싶어졌다. 세연이 앞에선 다양한 홍지형을 지켜내고 싶었고 그래야 지형 스스로도 견딜 수 있을것만 같았다. 매뉴얼처럼 읊조리는 위로들은 이미 충분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천천히 말하자. 그때 지형도 그랬다.


“왜?!”

"뭐?"

"네가 먼저 불렀잖아. 왜?!"

 

세연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려 한다. 지형도 지기 싫어 눈을 부릅뜨는데!

 

펑, 퍼벙! 뻥!

 

두 사람보다 먼저 튀어 오른 게 있다. 노래방에서 악쓰듯 소리를 지르던 두 사람이 일순 침묵했다. 껍데기 조각 하나가 튀어 올라 지형의 얼굴을 때렸다. 그 껍데기가 아까워 주워 먹으려던 세연의 얼굴에는 여러 개의 껍데기가 날아들었다. 이 중 한 개는 세연의 얼굴에 그냥 붙었다. 세연이 갑자기 웃었다. 어제도 웃고 오늘 아침에도 웃고 집에서 나오기 전에도 웃고, 이미 여러 번 웃었는데 웬일인지 오랜만에 웃는 것 같았다. 작은 소리 하나 없이 웃는 건데도 몇 년 만에 크게 웃는 것 같다. 지형이 소리 없이 웃는 세연의 얼굴에서 껍데기를 떼내자 제대로 큰 웃음소리가 터졌다.


웃음 터진 둘은 껍데기한테 당한 얼굴보다 바닥에 떨어져 못 먹을 껍데기 걱정이 앞섰다. 불판을 보니 다른 껍데기들도 튀어 오르려 시동을 걸고 있다. 이대로 까맣게 터트릴 순 없다. 지형은 껍데기 세 점을 한 번에 집어 된장소스를 잔뜩 발라 우걱우걱 씹으며 세연을 노려봤다. 세연도 이에 질세라 껍데기에 청양고추까지 야무지게 올려 입에 넣고 또 넣었다. 잔도 각자 채웠는데 세연이 먼저 따랐다.


“아, 모자라잖아.”

 

나중에 따른 지형의 잔에 술이 반만 담겼다. 세연은 이미 새 병을 꺼내 왔고 마저 채워줬다. 아주 꽉꽉 눌렀다.


“야야, 넘친다, 넘쳐!”

 

지형이 세연을 노려보던 못생김을 조금은 거둬내자 세연의 날 선 마음도 말랑말랑 누그러졌다.

 

“나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율이 낳고 이렇게나 편하게 마시는 거.”

“… 그러니까 왜 바보같이 회사도 그만두고 말이야. 그깟 결혼이 뭐라고.”

“그러게, 그깟 결혼이 뭐라고, 어쩌자고 그렇게 바보 똥멍청이처럼 그랬을까?”

 

멍청했다던 세연이 연거푸 한숨을 뱉어냈지만 얼굴에 비쳤던 결혼의 지난함은 점점 옅어졌다.

 

“그래서 너…”

“뭐, 언제 말하려고 했냐고? 아휴, 지금 말하려고 했어. 너 연락 왔을 때부터 그냥 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말하려고 했다고.”

“아니 그게 아니고…”

“걱정 마. 도장도 잘 찍고 원본에 사본에 빠트린 거 없이 한 번에 잘 끝냈어. 합의서는 공증까지 확실하게 받아냈고.”

“그거야 피피티 여왕, 엑셀 여왕 남세연이 어디 가겠냐? 어련히 잘했겠지. 그런데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야, 진짜 웃긴 게 오랜만에 서류작성 하고 준비하는데 옛날 회사 다닐 때 기분도 나고 막 신나더라. 아이가 있으니까 숙려기간 3개월 잘 챙기라는데 그것도 스케줄 관리한다 생각하니 기분이 새롭데.”


기분 좋게 잔을 비운 세연의 입으로 지형이 속전속결 껍데기 한 점을 들이밀었다.


“아휴, 그래서 너 괜찮네!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안 물어봐도 괜찮네! 완전 괜찮네!”

“아무야, 뜨거자나!”

 

세연이 하으하으거리며 껍데기를 씹으니 지형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찬물로 입을 헹궈낸 세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이밀었다.

 

“미친놈이 우리가 수억 자산가도 아니고, 괜히 재판 같은 걸로 변호사한테 몇 백씩 줄 돈은 없지 않냐 했더니 그런 건 바로 이해하더라.”

 

이후로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양육권과 친권도 그 어떤 기싸움 하나 없이 엄마 쪽이 가져왔다고 했다. 이 점은 둘 다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섭섭하여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앞으로… 앞으로의 일은 생각해 봤어?”

“아니… 사실은 이제부터 해야 돼. 돈이라도 많으면 좋을 텐데 그러질 못 하니까. 어떤 연예인처럼 힐링여행, 힐링쇼핑 같은 건 나는 꿈도 못 꾸고, 당장 직장부터 구해야 하는데… 일단 예전에 알던 동료들, 선배들한테 구직 소식부터 돌리고 예전 거래처에도 좀 알아보고. 사실 가장 먼저 이걸 했어야 했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됐어.” 세연이 요 근래 가장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어! 일단 살고, 살아내고! 그리고 살궁리를 해야지. 그놈이랑 살면서 그 궁리를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 죽어가면서 하는 살궁리는 말이 안 돼! 잘했어! 아주 잘했어!” 지형은 진심으로 드물게 칭찬했다.

“그보다 지형아, 이제 와서 말인데 그때 진짜 아팠지? 나도 정신이 없어서 어영부영 사과를 못했었네.”

 

세연은 지형의 어머니 소식을 처음 듣자마자 하율이를 둘러업고 병원에 찾아갔었고 왜 진작 자신한테 말하지 않았냐며 지형의 등짝을 마구 쳤었다. 어머니 병간호로 지쳐 있던 지형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세연의 구타에 크게 반항 한 번 안 해 보고 얌전히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사과한다.


“와, 그때 아프긴 아팠어. 게다가 맞은 건 난데 우리 엄마는 네 편들었어. 지금도 살아 계셨으면 우리 엄마는 나한테 뭐라고 했을걸.”

“그러니까 미안하고 어머닌 내 편이고 네 맘은 내 맘이고.”

 

세연의 읊조림을 듣던 지형은 잠시 눈을 감았고 뭔가 큰 결단을 내린 듯 입맛을 다지며 다시 눈을 떴다.

 

“안 되겠다, 세준이를 해고하고 네가 당분간 우리 회사에서 일 하자.”

“뭐? 너네 회계 파트타임 그거?”

“응, 내가 우리 회사에서 그 정도 입지는 되지 않을까? 세준이야 아직 어리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고 네가 일 해. 그러면서 좋은 자리 알아보면 되지. 따로 인수인계할 것도 없잖아? 너 이미 다 알지?”

“그렇지… 그거 아주 효과적으로 괜찮은데?”

“그래, 그러다 너 다른데 취직하면… 그때는… 다시 세준이더러 하라고 하면… 되겠지? 될까?”

“오… 좋아… 일리 있어.”

 

지형은 이제 겨우 2년 차에 접어든 일개 사원일 뿐이다.


‘탁’ 이모님이 계란 후라이를 들고 또 오셨다. 원래 계란 후라이 서비스는 한 번에 한 번인데. 이번엔 두 번이나?! 지형이 소소하게 감동받는 순간 세연의 물색이 없어졌다.

 

“아니 이모님, 이번엔 둘 다 반숙이잖아요? 반숙은 저만 먹는 거고요. 지형이는 노른자 익힌 것만 먹는다고요.”

“남세연 하지 마. 그냥 둘 다 네가 먹으면 되지. 나 이제부터 계란 후라이 안 먹을 거야.”

 

이미 취한 지형이 아무리 말려봤자 취기가 잔뜩 올라온 세연의 투정은 쉽사리 멈춰지지 않는다.

 

“아이고 이것들아, 느그 둘 다 뭐라고 하는지 나는 한 개도 모르겠다. 아까부터  혀는 단단히 꼬부라져가주고는!”

 

!’ 이모님이 공평하게 지형과  등짝을 매우 세게 쳤다소리만 컸지 하나도  아프다이모님이 이것들을    벌써  년째 더라 지들 속상할 때만 찾아와서 저러더라그래도 최근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했는데.


“남세연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이모! 우리 여기서 제일 비싼 거! 제일 비싼 거 주세요!”

“그래요! 껍데기! 제일 비싼 껍데기 주세요!”

"우리 진짜 비싼 껍데기 먹을거에요!"


상태를 보아하니 곧 취한 누나들을 잡으러 그 남동생 놈이 출동할 것이다. 그놈은 저런 적을 못 봤는데 저것들은 어쩌자고... 오기 전에 저것들한테 매실물이라도 한 잔씩 맥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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