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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16.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9. 6인용 식탁



9. 6인용 식탁



6시. 그리고 6시 30분.


오늘 예약된 배달 스케줄이다. 운이 좋다면 좋은 날. 가끔 이런 때가 있다.

‘석이 용달’을 운영하는 종석은 중고거래 당근 앱에 광고를 시작한 이후로 개인적으로 옮기기 어려운 가구 운반 의뢰가 더 자주 들어온다.


당근 거래를 통해 6인용 식탁을 구입한 분의 의뢰가 먼저 들어와 6시 약속을 잡았더니 또 다른 분으로부터 같은 날 4인용 식탁을 운반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지역도 같아서 30분 간격으로 약속을 잡고 두 출발지 주소를 확인하니 같은 아파트 동 호수까지, 주소가 같다. 한 집에서 6인용, 4인용 식탁을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 판매자분께 미리 연락을 드려 상황을 설명했고 식탁 두 개를 동시에 싣기로 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훌쩍. 석이 용달…?”

 

판매자분의 중학생 아들이 거들어 주어 꽤 수월하게 식탁을 1층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상판과 다리가 분리된 4인용 식탁을 먼저 싣고 나니 찬바람에 코 끝이 빨개진 어떤 아줌마가 훌쩍거리며 종석에게 인사를 한다. 6인용 식탁 의뢰자다. 4인용 식탁은 도착지에서 의뢰인 아내분이 받을 거라고 협의되었던 반면 6인용 식탁 의뢰자 분은 판매지로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 좀 봤다. 자기 눈으로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평소엔 보지도 않는 구석 아래까지 살펴보며 트집 잡는 사람들. 5시 40분쯤 오면 될 거라 했는데 그보다 10분 더 일찍 왔다.


“어머, 벌써 다 실으셨네요. 저 일찍 온다고 온 건데.”

“뭐, 아니에요. 저도 이제 막 싣기 시작했는데요. 안 그래도 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중학생 아들이 눈인사와 함께 6인용 식탁 아줌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니 아줌마도 같이 끄덕인다.


“제가 일찍 와서 어떻게 싣는 거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벌써 다 실으셨나 봐요. 그런데 어… 이거 제가 당근으로 본 것보다 좀 많이… 훌쩍, 다른 것 같은데, 좀 작은 것 같아요.”


6인용 아줌마가 용달 짐칸에 실린 4인용 식탁의 상판을 보더니 실망의 빛을 내비친다. 쯧쯧, 그거 아닌데. 중학생 아들은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저으며 아직 싣지 않은 6인용 식탁 앞에 바짝 다가가 선다. 6인용 아줌마는 중학생 아들의 발걸음을 따라 시선을 옮기더니 자신이 무언가 틀렸냐며 종석에게 확인을 구한다.


“네, 그거 아니고 이거예요, 이거. 이게 6인용.”

 

종석은 4인용 식탁과 마찬가지로 상판과 다리는 분해해 두었지만 아직 모포로 감싸지는 않은 6인용 식탁을 가리켰다.  


“아직 싸매진 않았으니까 한 번 보세요. 아까 제가 내리면서 봤을 땐 눈에 띄는 흠집 같은 건 못 봤는데 그래도 직접 보셔야 되니까.”

“네? 괜찮은데요. 저 안 봐도 되는데, 당근으로 이미 다 봤는데요, 뭘.”

 

종석 기준으로 두 식탁 다 깔끔하고 튼튼해 보였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종석 기준이다. 종석은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던 경우를 종종 봐왔다. 구매자가 가구를 구매하기로 해 놓고선 배송 직전에 찾아와 여기저기 꼼꼼히 살펴본 후 하자를 발견하고선 값을 깎아 달라고 한다거나 혹은 구매 취소를 하는 경우. 따라서 가격을 다시 흥정한다고 실랑이를 벌여 시간이 오버돼 다음 스케줄에 늦은 적이 있었고 갑자기 안 사겠다고 가버려서 기름값만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제발 예민하게만 굴지 않기를 바랐었는데 아예 볼 마음도 없다고?


“안 봐요? 그럼 여기까진 왜 오셨어요?”


6인용 아줌마는 아직 싣지 않았던 6인용 식탁을 대충 가리키더니 중학생 아들에게 “식탁 어머니? 그분 아들?”이라고 물었고 아들이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자 호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저요? 이거 식탁 값 드리려고, 훌쩍.”

“그것 때문에 일부러 온 거라고요? 그냥 계좌이체하면 되는데.”

“훌쩍, 그러게요. 제가 항상 천 원, 이천 원, 나눔 그런 거만하러 다녀서 현금으로만 거래했거든요. 그래서 그 생각을 못 했어요. 계좌이체, 여기 거의 다 도착해서 생각났다니까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훌쩍, 이미 와버린 것을.”

 

6인용 아줌마는 새로 산 것 같은 하얗고 빳빳한 편지봉투를 중학생 아들의 손에 내밀었다.

 

“오는 길에 어머니랑 통화했어요. 아들한테 대신 주라고 하시던데 맞죠? 훌쩍.”

 

머뭇거리던 중학생 아들은 6인용 아줌마가 어머니와 통화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오므려 쥐었던 손가락에 힘을 풀어 봉투를 받았다.


“그냥 가지 말고, 돈 맞는지 세어 보고, 맞죠? 그럼 얼른 들어가요. 고마워요.”


돈봉투를 손에 쥔 중학생 아들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종석은 혹시 모르니 식탁 확인을 안 해 봐도 되는지 한 번 더 물었고 괜찮다는 대답을 또 듣고 난 후에야 식탁을 짐칸에 실었다. 4인용도 그렇고 6인용도 그렇고 무계가 꽤 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는 있다. 옮기는 도중 행여나 작은 상처라도 날까 감쌌던 두터운 모포를 더 꼼꼼히 잡아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다고 하지만 언제 갑자기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특히 운반 중에 트집 잡히긴 싫다.


“아저씨...”

“네?”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훌쩍.”

“부탁이요? 뭔데요?”

“…”

“편하게 얼른 말해 보세요.”

“어차피 저희 집 가는 길이시니까, 훌쩍, 저도 그냥 태워 주실 수 있을까요?”

“뭐, 그러세요. 거기 옆에 타세요. 거기를 손으로 잡고, 그렇지. 그 밑에 발 판 밟고 그렇지. 손으로 당기면서.”


트럭 좌석은 보통 자동차의 좌석보다 높게 위치해 있어 탑승하는데 약간의 난이도가 있는데 6인용 아줌마는 제법 경험을 해 봤는지 아주 능숙하진 않아도 어렵진 않게 올라탄다. 종석은 아줌마가 올라타는 걸 보면서 동시에 서둘러 그녀가 앉을 옆 좌석을 정리했다. 낯선 이가 탄다고 하니 이것저것 거슬리는 게 눈에 띈다. 평소에 지저분하지 않도록 잘 정리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저씨 죄송한데요 휴지 좀 쓸 수 있을까요? 콧물이 멈추질 않네요. 제가 비염이 심해서.”


종석은 편하게 쓰라며 고갯짓을 했고 그녀는 대시보드 위에 놓여 있던 여행용 티슈를 여러 장 뽑아 코를 연신 눌러댔다. 퇴근 시간이지만 차는 막히지 않으니 생각보다 빠르게 6인용 아줌마의 집에 도착할 것도 같았다.


“저 저렇게 큰 식탁 처음 사 봐요.”

“그래요?”

“네. 그래서 저 식탁 들여놓으려고 소파를 버리려고요.”

“아, 그럼 소파는 새로 안 사는 거예요?”

“일단 없이 살아보고 필요하면 그때 또 정하려고요.”

“그래요. 사실 집에 소파가 꼭 필요한가.”

 

마침 종석도 소파 없이 생활하고 있다. 종석의 집엔 소파 대신 아내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평상을 들여놓았다. 어차피 소파엔 앉아 있던 적 없이 드러눕고만 살았는데 누우면 허리가 아팠다. 아내 말대로 평상에 매트를 깔고 누우니 허리가 안 아팠다. 청소도 훨씬 편이했다.

 

“우리 집도 소파가 없는데… 어, 잠시 통화 좀 할게요.”


종석이 소파 없는 생활에 관해 찬사를 늘어놓으려던 찰나 4인용 식탁 구매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시간 여유가 많은데 무슨 일인가 싶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제가 판매자분이랑 통화를 했는데 벌써 저희 식탁 실었다면서요? 그럼 6시까지 올 수 있는 거죠?”

“네? 처음 약속이 6시 반인걸로…”

“아니, 물건 실었다면서요? 그럼 바로 와야지. 어디 들러요?”

 

4인용 식탁 아저씨가 다짜고짜 시간을 당겼다. 왜인지 목소리에 화까지 담겨 있다. 종석은 괜히 6인용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듣고 있기는 한 건지 휴지로 본인 코를 부여잡는데만 열심이다. 저러니까 더 신경 쓰인다.


“저희가 이게 어디를 들르는 게 아니라 사전에 약속된 시간에 최대한 맞춰서 움직이는데...”

“그럼 약속대로 움직여야지. 멋대로 물건은 빨리 싣고서 어딜 돌아다니다 오겠다는 겁니까? 요새 검색하면 차로 이동하는 시간 다 나와요. 늦어도 10분까진 도착하네. 10분입니다. 6시 10분! 그 안에 가져다 놓으세요!”

 

4인용 아저씨는 본인 할 말만 와다다 하고 종석에겐 몇 마디 말 할 기회도 안 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걸어야 하나 어쩌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거 참, 지 멋대로구만.”


휴지를 코로 막고 있던 6인용 아줌마가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그 아저씨 집은 어디로 가야 돼요?”

“아, 거참… 이 분 새로 생긴 월드메르디앙보라 아파트요. 일단 약속대로 사모님 댁에 먼저 갔다가 갈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신경 끄세요. 저런 사람 많아요.”

“어?! 아니에요. 아저씨 지금 우회전해야 돼요! 여기서 좌회전받으면 한참 가서 유턴해야 되잖아요. 빨리 우회전이요, 빨리!”

 

마침 종석의 트럭은 갈림김에 있었다. 좌회전을 하면 6인용 사모님 댁, 우회전을 받으면 4인용 아저씨 집이다. 그런데 6인용 사모님이 큰 맹꽁이 소리로 우회전을 외친다. 종석은 얼떨결에 차선을 변경했다.


“아휴, 괜찮겠어요? 거기 들렀다 가면 6시 반은 돼야 도착할 텐데?”

“그럼요. 기다려야 될 사람이 여기 나와 있잖아요. 괜찮아요. 덕분에 저도 새 아파트 구경해 보는 거죠.”

 

4인용 아저씨 분명히 처음 약속 잡을 땐 오늘 안에만 배송해 주면 된다고 인심 좋은 소리만 해댔었는데 갑자기 난리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와이프랑 싸웠나 봐요. 저 식탁을 몰래 산 거지. 아니면 가격을 다르게 말했다가 걸려서 와이프한테 제대로 혼났거나.”

“아… 그런 가요?”

“저도 잘은 몰라요. 그냥 그런 당근 썰이 많으니까 혹시나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6인용 아줌마가 맹꽁이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 사이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차가 들어갈 수 없어 지하로 들어가 알려준 동과 가까운 입구에 차를 댔다. 인터폰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4인용 식탁 아저씨의 아내 분 목소리는 생각보다 밝았다. 6인용 사모님은 그 밝은 목소리에 오히려 실망하는 눈치다. 종석은 요청받은 대로 알려준 호수 앞, 복도에 올려다 두었다.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니 확인하고 배송료 입금을 해주겠다는 문자를 보내온다.


“많이 기다리셨죠?”

“저 뭐 하는 것도 없이 기다리기만 해서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새 아파트 정말 좋긴 좋네요.”

 

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6인용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제일 안 쪽 동이다.


“다행히 저희 집 1층입니다.”

 

여전히 맹꽁이 소리로 말하는 6인용 사모님은 짐칸에서 분리된 상판과 다리를 엘카로 옮기는 동안 집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사모님 말대로 1층이라 확실히 옮기는데 수월하긴 하다. 종석은 사모님이 원하는 위치에 최대한 가깝게 식탁을 가져다 놓았다.

 

“상판이랑 다리 연결은 할 줄 아시죠?”

“그럼요, 그럼요.”

 

원하는 가구가 집에 들어와 신이 난 듯한 사모님이 아까 중학생 아들한테 건넨 것 같은 흰 봉투를 종석에게 꺼내 든다.


“아저씨, 여기 배송료요. 오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휴, 고맙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사모님도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계좌이체 하세요. 까먹지 말고.”

“그러게요. 제가 오늘 가구 산다고 너무 긴장했나 봐요.”

 

종석은 가구를 옮기면서 깔았던 담요를 걷어내며 안녕히 계시라 인사를 했다. 아직 들러야 할 곳이 두 군데 더 있다. 시간에 쫓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퇴근 시간. 길이 언제 어떻게 막힐지 몰라 서둘러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 몹시 거슬린다. 사실…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너무 거슬렸다.


“사모님, 이 소파 버린다고 했죠?”

“네… 너무 오래돼서 팔 수도 없고 그냥 버리려고요.”

 

6인용 식탁을 들여놓으니 거실이 꽉 찼고 소파는 자리를 내주느라 현관 앞으로 밀려와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소파를 넘어가야만 한다. 종석은 이 집 거실 시계를 슬쩍 봤다. 시간이 모자라지도 않고 여유롭지도 않고…


“사모님! 저 좀 도와주세요. 거기 잡고 조금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네? 어?! 진짜요?”


집에 왔으니 편하게 코를 풀어보려던 사모님이 종석의 요청에 살짝 놀랬다. 종석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사모님이 살짝 거들자마자 소파의 맞은편을 엘카에 실었다. 역시 소파는 그 무계보다 그 부피가 버겁다. 쓰러트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 옮기는 게 관건이다.


“가구 버리는 데 단지 끝에 분리수거장 옆 맞죠?”

 

사모님이 쫓아 나와 거들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 사모님 급하게 나온다고 신발도 짝짝이로 신고 있다.


종석은 혹시 자신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싶은 의심이 생겼다. 집에 가면 아내에게 물어봐 볼까? 아내는 분명히 있어도 없다고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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