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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22.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10. 내 자전거



10. 내 자전거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8월, 한여름 뙤약볕에 자전거 페달만 굴리면 3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째 걷고 있다. 앞바퀴가 찌그러진 자전거를 끌고서.


모처럼 일찍 일어난 일요일, 자전거를 타고 가볍게 동네 한 바퀴만 돌려는데 하 수상하게 바람이 세긴 셌다. 행여 비라도 내릴까 싶어 날씨 앱을 보았더니 구름 낀 하늘 소식만 있을 뿐 비 소식은 없었다. 차라리 비가 내렸다면 아예 밖에 나가볼 생각도 없이 집에서 편히 뒹굴었을 텐데. 적당히 낀 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반짝이는 저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가볍게 동네 공원 주변을 돌고 있었다. 간혹 멈칫거릴 만큼 센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눈 아래로는 라이딩 마스크로, 눈 위로는 얼굴 반만 한 고글로 햇빛과 날벌레 그리고 각종 모래 먼지를 방어 중이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대충 몇 바퀴만 돌고 집으로 들어가 허기진 뱃속에 뭘 채우면 좋을지 두근거리는 고민에 몰두할 때였다. 갑자기 자전거가 멈췄다. 그리고 잭나이프(이륜차 등에서 앞바퀴에 급제동을 걸 때 하중이 앞으로 쏠려 뒷바퀴가 들려 꺾이는 현상). 뒷바퀴가 살짝 들리더니 바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으악!”

 

핸들을 잡은 손을 얼른 놓았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한다. 비싸지도 않은 자전거 넘어지지 말라고 끝까지 붙잡을 필요는 없다. 방금 전 나뭇가지 하나가 날아오는 게 보였는데, 그땐 야구공만 한 굵기라고 생각했다. 넘어진 후에 보니 골프공만 한 굵기로 이것도 꽤 굵은 가지다. 어디서 어떻게 날아온 건진 모르겠으나 이 가지가 굴러가던 앞바퀴에 낀 것이다. 그냥 대충만 봐도 스포크 서 너 개가 너덜너덜해진 게 보인다. 나 다친 데는 없나 먼저 살펴봤다. 상당히 느린 속도로 가고 있어서 충격은 적었다. 오른 종아리 안쪽이 넘어지는 안장과 뒷바퀴가 쓸고 지나가 살짝 쓸렸다. 이 정도는 괜찮다. 마침 이 자전거를 구입한 자전거 가게도 근처에 있으니 거기로 가자. 그런데… 자전거를 세워 끌고 가려는데 “어라?!”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다.


“아저씨. 자전거 고장 났어요. 으허헝!”


눈물만 안 흘렸지 거의 울고 있었다. 아저씨 보기에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거다.


“휠이 완전 휘었어요. 아니 구부러졌어요!”

“안 더워요? 알았으니까 그 마스크는 벗고 말하지, 보는 내가 덥다.”

 

어지간히 경황이 없었는지 무더위에 눈 밑까지 올려 썼던 마스크를 내릴 생각 한 번도 못해보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아저씨, 저 여기 좀 앉을게요.”

 

선풍기 앞에 바짝 붙어 앉았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 선풍기의 머리를 따라 내 머리도 절로 따라 움직인다.


“이거 바퀴를 갈아야겠네.”

“그렇죠? 거기 구부러져서 림이 계속 브레이크에 붙으니까 브레이크 완전 세게 잡은 것처럼 딱 물려서 돌지 않더라고요. 저 여기 오는데 자전거 거의 들고 왔어요. 제 거 너무 무거워요. 진짜 이제 바꿀 까 봐요.”

“그래서… 브레이크 건드렸어요?”

“네… 바나나관 밀어서 고정시켜 보려고 좀, 약간, 힘으로…”

“…”

“왜요? 혹시 브레이크도 문제 있어요?”

“패드가 삐뚤어졌는데.”

“에에? 진짜요? 그거 지난달에 고친 거잖아요.”

“그때는 뒷바퀴.”

 

한 달 전에도 자전거를 수리하러 왔었다.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고 점점 속도가 붙길래 오른 핸들 브레이크를 살살 쥐었다. 갑자기 꽉 잡으면 급정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살살 쥐어 서서히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러니까 이러면 속도가 줄어야 하는데. 그래야 했는데! 브레이크를 끝까지 꽉 쥐었는데도 속도가 줄기는커녕 계속 가속됐다.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내리막 길의 끝은 10차선 큰 도로다. 바로 오른쪽이던 왼쪽이던 꺾어야 하는데!


[우당탕탕탕!]

 

아직 나에겐 하나의 브레이크가 더 있다! 급하게 왼쪽 브레이크를 쥐었다. 속도가 무서워 놀랐던 만큼 한 번에, 세게, 확! 가속도가 붙었던 앞바퀴에 급제동이 걸렸다. 급정거를 했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릎에선 피가 났고 팔꿈치는 까졌으며 어깨엔 멍이 들었다. 자전거 가게 사장님한테는 혼이 났다.


“이게 갑자기 고장 난 게 아닌데. 분명히 이전부터 브레이크가 헐거웠을 텐데 여태 뭐 했어요?”

“네? 그게…”

“왜 미리미리 고치러 안 온 거예요? 헬멧은 어디 갔어? 자전거가 넘어질 거 같으면 혼자 넘어지라고 손을 놔 버려야지.”

 

하늘이 도와서 머리만큼은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라며 엄청 혼났다. 고장 난 뒷바퀴 브레이크 수리비로는 1만 5천 원을 냈다. 하아… 용돈 받아 쓰는 학생인 나에게 1만 5천 원 꽤 거금이다. 한 달 재정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게다가 내 자전거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너무 아까웠다. 오랜만에 자전거 가게에 들르니 평범한 내 것보다 훨씬 비싸고 좋은 자전거들이 눈에 막 밟혔다. 바퀴가 망가진 지금은 더하다.


“바퀴는 수리비 얼마나 나올까요? 수리비 너무 많이 나올 거 같으면 그냥 자전거를 바꿀까요?”

“… 이게 사이즈 맞는 게 있나 먼저 봐 야지.”

“아저씨, 저 픽시는 얼마예요?”

 

아저씨는 대답 없이 바퀴를 찾으러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벽에 걸려 있는 픽시 바이크. 순창 고추장색 바디가 참 예쁘다. 한 60 만원쯤 하려나? 브레이크는 따로 튜닝을 해서 달아야겠지? 튜닝하는 데는 얼마나 더 들려나? 아니다, 그냥 없이 한 번 타 볼까?


[Fixed gear. Steel flame. No breaks (고정 기어, 강철 프레임, 노 브레이크)]


영화 <프리미엄 러쉬>에서 주인공 조셉 고든 래빗이 한 말이다. 극 중 이름은 와일리. ‘픽시’를 타고 뉴욕에서 물건을 배달하는 바이크 메신저다. 우리나라로 치면 오토바이 퀵 같은. 그는 브레이크를 달고 가장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브레이크는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주인공 생각이고 현실의 일반인에겐 반드시 브레이크는 있어야 한다. 일단 없으면 내리막길 못 내려간다.  


‘픽시(fixie)’는 고정기어 자전거(fixed-gear bicycle)의 영어 약칭으로 ‘기어 변속기’와 ‘프리휠 메커니즘(한 방향으로는 회전하지만 그 반대방향으로는 회전하지 않게 만든 기어)’이 없다. 페달과 뒷바퀴가 하나의 기어로 고정되어 있으니 바퀴가 돌아가는 한 페달을 구르지 않고 발을 떼도 페달은 계속 돌아간다. 덕분에 페달을 강제로 멈춰 뒷바퀴를 잠가 미끄러트리는 ‘스키딩’과 제자리에 멈춰 세우는 ‘스탠딩’을 할 수 있다.  페달을 반대방향으로 돌려 ‘페이키(후진)’도 할 수 있다.


‘픽시’는 웹툰 <윈드브레이커>에도 등장한다. 길고 가는, 멋들어진 캐릭터들이 라이딩하는 걸 보면 그 간지가 진짜 장난 아니다. 나도 그렇게 스키딩 하면서 숏턴으로 멈출 수 있다면… 크으! 물론 그들의 자전거는 최소 1백이 넘는 비싼 자전거고, 걔네가 걸치고 다니는 옷들도 죄다 비싼 브랜드.


“어허, 그만 봐요. 안 판다니까.”

 

아저씨가 돌아왔다. 맞는 바퀴를 찾았나 보다. 손에 26인치 휠이 들려 있다. 다만 스포크 색이 뒷바퀴와 다르다.


“같은 은색이 없네. 검정 괜찮아요?”

“네… 아저씨 진짜 그냥 가격만 궁금해서 그래요. 저 픽시 얼마라고 했었죠?”

“…”

 

아저씨가 수리에 집중하니 말이 없어진다. 브레이크 고치러 왔을 때도 딱 저랬다. 여기저기 까진 손으로 내 것보다 비싼 자전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도 시큰둥하기만 했다.


“우와! 아저씨 저건 얼마예요?”


카본 프레임 자전거인가? 무계가 가벼워 한 손으로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다. 엄청 비쌀 텐데 어림잡아 3백쯤 하려나? 아니 더 비쌀 수도 있다. 5백? 6백?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탈 때면 딱 붙는 바이크 레깅스에 이런 비싼 자전거를 타고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진짜 무슨 조폭들도 아니고 유유자적 가고 있는 사람 옆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가 얼마나 겁을 주는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극소수 몇 명이지만 그 몇 명이 참으로 재수 없었다. 어쩌다 강변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꼭 욕을 해준다. 무지개빗 새까만 고글 낀 눈으로.  


“바퀴에 바람 이렇게 넣지 말라고 했죠?”

 

아저씨는 동문서답. 앞바퀴 고치다 말고 멀쩡한 뒷바퀴 트집이다.


“아니 바람 빠지면 또 넣기 귀찮으니까 넣을 수 있을 때 빵빵하게 넣은 거죠.”

 

자전거 타이어 바람은 예전에는 자전거 가게에 와서 넣었지만 요새는 동네 주민센터 앞 공기주입기로 넣는다. 물론 공기주입기에는 내 자전거 타이어 측면에 있는 적정 공기압을 확인하고 게이지의 지침이 적정 공기압 수치에 다다를 때까지만 공기를 주입하라고 적혀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냥 느낌상 터지기 직전까지 넣는 것 같다. 아저씨는 그러지 좀 말라고 인상을 쓰며 타이어의 공기 주입구를 열어 되려 바람을 뺀다.


“타이어에 이렇게 바람 넣는 게 더 위험하다고 말해줘도 자꾸 이런다.”

“아저씨, 자전거 좀 바꿔 보고 싶은데 지금처럼 자꾸 수리하면 본전 생각나서 못 바꾸잖아요.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나중엔 수리비가 자전거 값보다 더 커지겠어요.”

“…”

“카본은 너무 비싸니까 아직 안 되고… 아저씨 저 진짜 픽시로 갈아타 보면 안 돼요? 저 우리 동네 오르막길은 기어 안 바꾸고 잘 올라간단 말이에요. 문제는 내리막길인데… 브레이크 달면 괜찮지 않을까요? 쇼바 달린 걸 살 바에는 역시 픽시가 나을 것 같단 말이죠.”

 

아저씨는 앞바퀴 뒷바퀴 전부 손 봐주고 브레이크 와이어도 점검해 줬다. 매일 밤 밖에 세워 놔 밤이슬로 녹이 올라오려고 하던 체인엔 시커먼 기름옷도 입혀줬다. 수리를 마치고 다시 보니 그럭저럭 내 자전거도 조금은 봐 줄만 했지만 역시 픽시에 비하면 별로다. 그냥 시커멓고 흔하고, 흔하고, 흔하디 흔한 내 자전거. 물욕 가득한 눈은 자꾸만 순창 고추장색 픽시로 옮겨간다.


“아무리 물어봐도 픽시는 안 돼요.”

 

아저씨 참 단호박이다. 픽시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위험한지는 지난번에 귀에 피나게 들었었다. 사실 그동안 유튜브로 픽시 라이딩의 위험성을 숙지해 놔서 진짜 잘 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픽시, 픽시 외치는 건 픽시가… 정말 예뻐 보여 그러는 건데. 아니, 이렇게나 영업 당해 줄 마음을 어필하는데 그냥 못 이기는 척 영업 좀 해주면 아니 되냔 말이다. 이런 내 마음도 이해 못 해주는 아저씨, 너무 야속하다.


“자전거 밖에다 잘 세워 놓죠?”

“…네. 그래도 지금은 비 올 때는 들여다 놔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요. 아무 데나 세워 놔도 맘은 편하잖아요. 여기서 조금만 더 비싸 봐요. 그리 맘 편하게 되나.”

“아무래도… 그렇죠.”

“뭐, 예쁘고 비싼 거 사서 머리에 이고 다닐 거예요?”

“…”

“그 SNS에 막 자랑하고 그러려고?”

“… 그건 아니거든요.”


지난번에도 저 비슷한 논리에 무너졌다. 그땐 쇼바(쇼크업소버) 달린 자전거가 갑자기 좋아 보였다. 약간 ‘헐크 버스터’ 느낌의 헤비 한 외관이 맘에 들었다. 가격은 40만 원 정도 했었는데. 지금 아저씨의 논리에 일반 자전거보다 무거운 무계까지 더해져 내 물욕이 패했었다. 아니다, 45만 원이었던가?


“사, 오.”

“네?”

“자전거 휠, 오늘 수리비 4만 5천 원 만이요.”

“어?! 정말요?”

 

예상했던 수리비보다 적다. 그래도 찔러보는 나의 속물근성.

 

“조, 조금 까, 깎아도 될까요?”

 

“왜 비싸요? 그럼 사, 삼.”

“우와! 진짜요?!”


다시 보니 앞바퀴와 뒷바퀴의 스포크 색이 서로 다른 것이 아주 흔한 자전거에서 조금 덜 흔한 자전거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내 자전거 밖에 세워 놓을 때 깜빡하고 체인을 묶어 놓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가끔은 급하게 버스정류장에 묶어 놓고 거의 일주일을 가지러 가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래도 항상 안전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혹시라도 없어지면 어떡하나 마음 졸인 적도 없었다. 벌써 원래 가격의 30%에 가까운 돈을 수리비로 썼다. 예쁘고 있어 보이는 자전거도 좋지만 역시 본전이 우선이다. 들인 만큼 뽕은 뽑아야겠지.


“헬멧! 헬멧 좀 쓰고 다녀요.”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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