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광 May 18.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18. 좀비폰



18. 좀비폰



“이모 이거 뭐야?”

“뭐?”

“이거, 이모 핸드폰에 있는 거. 동그란 거.”

 

조카 태은이가 학교에 입학했다. 벌써 8살이라니! 물론 만 나이로는 아직 6살. 문경은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고 처음 사진을 보여줬을 때 바로 답을 해주지 못했다. 어… 상상이상으로 못생겼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먼저 결혼한 지인들 또는 친구들을 통해 막 태어난 신생아를 접해 본 다수의 경험이 있었기에 아기가 TV에 나오는 아기들처럼 하얗고 포동포동하지 않을 거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빨갛고, 너무 쭈글쭈글하고, 또 그에 비해 새까만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덮인 것이… 물에 삶은 자색고구마가 가발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자색고구마가 다음 주면 초등학생이 된다.

 

“그거 홈버튼이잖아.”

“홈버튼? 그게 뭔데? 내 거에는 아무것도 없어. 엄마 거에도 없어. 아빠 거에도 없어.”

 

태은이가 자기도 폰 생겼다며 아까부터 목에 걸고 있던 자신의 ‘갤럭시 A23’을 보여준다. 가로 74mm, 세로 157.9mm 자기 얼굴 만한 크기다. ‘저 큰걸 한 손으로 쥐다니 내 새끼, 아니 내 조카 정말 많이 컸구나!’ 문경은 태은이를 힘껏 껴안았다. 예전 같으면 아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러면 꼼짝을 못 했는데 이젠 제법 버둥거린다. 못 생겼는데 귀여운 건 변함이 없다.


“하지 마! 하지 마!”

 

이모 문경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땀까지 흘리는 태은이는 아기 때는 흐릿한 베이비파우더 향에 비릿한 우유 토한 냄새가 나더니 이젠 꼬순 땀내가 난다.  


“이모 폰 꾸졌어! 내 거보다 꾸졌어! 작고 다 깨지고 꾸졌어! 쓰레기야!”

“야, 쓰레기라니? 너 함부로 말하지 마.”


태은이는 이제 학교도 들어가는 어엿한 8살 언니가 됐으니 제법 이모한테 덤벼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어림도 없었으니. 물론 문경 입장에선 예전보다 더 힘을 써야 했지만 태은이는 이 사실을 알 리가 없고 결과는 변함없이 문경의 승이었으니 심통이 난 게다.


“태은아 왜 내 폰에 화풀이야. 이거 너랑 동갑이야.”

“어떻게?”

“이모가 이거 너 태어났을 때 샀거든.”


가로 67mm, 세로 138.1mm, 두께 6.9mm, 2014년도에 출시된 아이폰6. 현재 문경의 폰으로 2016년도에 이 폰으로 바꾸고 나서 동생으로부터 받은 (정확하게는 가족 단톡방으로 공지처럼 올라온) 톡이 조카 태은이의 탄생 톡이었다. 문경은 까만 가발을 쓴 자색고구마 사진을 이 폰으로 처음 확인했다. 아, 동영상이었나? 아무튼 이 폰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그 이전 폰의 회생불능 고장 때문이었다. 바로 너무나도 치명적인 침수.


문경은 아이폰6 전에는 아이폰4를 썼다. 2G폰 시대 초창기엔 삼성과 LG를 넘나들다가, 2G폰 말년엔 삼성의 애니콜 시리즈만을 고집했던 문경은 스마트폰으로 완전히 넘어오면서 애플만을 고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 스마트폰을 애플의 아이폰3G로 사용하면서 천지인 입력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연습을 하면 돌이킬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개 중소기업 사원으로서 거래처이면서 ‘갑 of 갑’이었던 삼성의 눈치도 꽤 보였지만 꿋꿋이 버텼다.


첫 스마트폰이었던 아이폰3G를 2008년에 구입했다. 이걸 2년 후 물속에, 하필이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변기 물속에 깊숙이 빠트렸고 어쩔 수 없이 그해 2010년도에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형 아이폰4를 구매했다. 4는 구입하고서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보도블록에 떨어트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오도카니 서 하염없이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호주머니에 있던 4가 저 혼자 스르르 빠져나가더니 ‘톡’ 하고 소리를 낸 것이다. ‘톡.’ 정말 하찮은 소리였다. 그런데 화면이 바사삭 깨졌고 애플 A/S센터에선 수리비로 30만 원이 넘는, 4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을 요구했다. 문경은 그럴 돈이 없었다. 보험가입을 하지 못해 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만일 돈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만큼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바로 집에서 가까운 비공식 사설 수리업체 P를 찾아냈고 그곳은 문경의 단골이 되었다.


이후 문경은 거의 해마다 P를 방문했다. 다음 해 바로 전 해와 똑같은 이유, 액정파손으로 방문했고 그다음 해에 샤워하다 발생한 침수로 방문했다. (어쩌자고 샤워 중에 문자를 확인했을까?) 그다음 해엔 방문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연말에 눈 길에 미끄러지면서 또 액정파손, 그 이듬해 연초에 손가락 터치 움직임과 액정 움직임에 이격이 생겨 방문. 뮤트 버튼 고장. 사설업체 P는 4를 계속 살려냈다. 그렇게 2016년을 맞이했다. 이번엔 문경 자신과 함께 4를 바닷물에 빠트렸다. 바지 호주머니에 4가 있던 것을 깜빡한 거다. 문경은 바닷가에 살지 않는다. 고로 당시 문경은 집과 또 사설업체 P와 상당히 먼 타지방에서 4를 고장 낸 것이다. 문경은 함께 있던, 4를 바닷물에 휩쓸려 잃어버리지 않은 게 어디냐며 위로하는 남자친구의 조언에 따라 얼른 전원을 끄려고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데 전원이 꺼지고 나서도 폰이 따뜻했다. 그리고 사람이 아플 때 열나듯 점점 뜨거워졌다. 불이 날까 봐 겁이 날 만큼 뜨거워졌다. 실제로 과거 문경은 사용하던 2G 폴더폰에서 불이 난 걸 본 경험이 있다. 4가 심히 걱정됐고 역시… 다음 날, 찾아 간 사설 업체 P는 매번 반갑게 맞이해 주는 미소 대신 얼굴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P는 2시간여의 진단 끝에 4가 완전히 사망했음을 선언했다. 문경은 짧은 애도의 시간을 갖고 나서 그 해 출시된 아이폰7 덕에 가격이 급 하락한 6를 구입했다.


아이폰6. 6만큼은 4처럼 험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청 튼튼하고 단단한 케이스를 구매했고 액정보호필름도 바로 구매해 부착했다. 최소한 3년은 버티자고, 지켜주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망과는 달리 이 역시 두 달도 못 가서 ‘톡’ 소리를 냈다. 정말 하찮으면서 듣기 무서운 소리였다. 또 P를 방문해야만 했다.


“고객님, 저는 자주 봐서 좋긴 한데요. 이제는 제발 살살 쓰세요.”

“아니, 저 정말 살살 쓰려고 했는데 애가 자기 혼자 엎어진 거예요. 그런데 바닥이 평평하지가 않았다구요. 돌들이 막 울퉁불퉁하니까. 액정이 그렇게 된 거죠.”

 

정확하게는 액정에 잉크가 퍼지고 있었다. 처음엔 불량화소 같은 작은 검은색 점이 보였고 이 점은 금방 호박씨 만해지고 호두알만 해졌다. P는 30분 만에 6을 수리해 주었다.


“고객님, 케이스 바꾸세요. 그거 안 돼요. 딱딱하기만 하잖아요. 말랑말랑하고 충격흡수 잘 되는 걸로 바꾸세요. 저번에 4 쓸 때도 그런 케이스는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었는데 또 말 안 듣고.”

 

4를 사용할 때는 짱구그림 케이스를 씌어 주었고 6은 4 때보다 훨씬 두꺼운 아이언맨 케이스를 씌어 주었다.  


“고객님, 두께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문경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통신사에서 서비스로 받은, 말랑말랑하고 아무 그림도 개성도 없는 평범하고 투명한 젤 케이스로 바꾸었다. 야심 차게 구입했던 아이언맨 케이스가 너무나도 눈에 밟혔으나 P의 말에 귀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P는 옳았다. 이후로 몇 번을, 보도블록 위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시멘트 바닥에서, 바위 위에서 떨어트렸는데도 필름 아래로 금만 갈 뿐 액정이 사용 못 할 만큼 깨지는 일은 없었다.


문경이 P를 재방문한 것은 2년 후, 조카 태은이가 우리 나이로 3살 되던 해였다. 홈버튼이 말을 안 들었다. 아무리 눌러도, 눌러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P에게 전화를 걸었다. 왠지 그 사이에 P가 영업장을 옮겼거나 해서 전화를 받지 않을 까봐 덜컥 겁이 났지만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당장 오래서 바로 갔다.


“이거 아무래도 침수된 거 같은데…”

“네? 침수요? 아닌데, 저 진짜 물에 안 빠트렸어요. 물가에 아예 가져가질 않았는데.”

 

진짜다. 문경은 물놀이 갈 일이 있으면 6를 방수팩에 담아서 짐가방에 모셔 놨었다. 사진은 전부 동행한 이들의 폰으로만 촬영했다. 샤워할 땐 당연히 화장실 밖에 두었고 변기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할 경우엔 부러 의식해서 6를 꼭 쥐고 있었다. 밥 먹을 땐 물병 혹은 물 잔 곁에 두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수라니. 그렇다면... 문경이 짚이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아니 뭐, 원인보다 문제 해결이 중요하니까. 아무래도 이거 홈버튼 교체해야 될 거 같아요.”

“교체요? 할 수 없죠. 해야 되면 해야죠. 해 주세요.”

 

문경은 조카 태은이가 몹시 의심되었다. 꼬꼬마 태은이는 이도 대충 다 나오고 구강기도 얼추 지난 거 같았는데 유난히 문경의 6를 입에 물곤 했다. 지지라고 더럽다고 볼 때마다 뺏었지만 그럴수록 태은이는 장난인 줄 알고 더 입에 물었다. 물고 빠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과자 베어 물듯이 하길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범인은 태은이가 맞는 걸까? 물고 꺄르르 웃으면서 도망칠 때 봐주지 말고 빨리 잡았어야 했나? 그 쪼끄만 거 한걸음이면 잡을 수 있는 걸 거의 매번 열 바퀴를 돌아줬는데.


“고객님, 그런데 문제가 또 있어요.”

“네? 또 왜요?”

“이거 기기색이 블랙인데 지금 저희한테 있는 게 흰색밖에 없어서.”

“아…”

“버튼 주문해서 하려면 며칠 걸릴 거 같은데요.”

“음… 그럼 그냥 흰색으로 하면 안 돼요?”

“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P는 정말 홈버튼 색이 달라도 괜찮냐며 몇 번의 확인 절차를 밟았다. 문경은 정말 여러 번 괜찮다고 대답했고 P는 대신에 수리비에서 자재비는 빼고 받겠다고 했다. 대신에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문인식이 안 될 거란다. 이 기능은 단순히 버튼 교체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고 했다. 물론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냥 예전처럼 비번 누르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네, 그런 거죠.”

“그럼 괜찮아요. 그냥 수리만 빨리 해주세요.”


6는 그렇게 약간의 최신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홈버튼마저 사라진 아이폰텐, X시리즈를 지나 아이폰11이 출시되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11로 갈아탔다. 심지어 X를 쓰던 사람들도 11로 갈아탔다. 그러나 문경은 여전히 6를 사용했다. 처음 P의 권유로 교체했었던 젤케이스도 계속 사용 중이라서 케이스의 투명한 안쪽으로 곰팡이 낀 듯한 때가 꼬질꼬질 껴 있었다. 아, 뒷면에는 그립톡이란 걸 붙여두었는데 ‘도끼’와 ‘더콰이엇’이 운영하던, 지금은 없어진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드’에서 일하던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가 준 홍보 굿즈였다.


“언니, 언니는 핸드폰 안 바꿔?”

 

조카 태은이의 엄마이자 문경의 동생은 시시때때로 문경에게 스마트폰을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이걸 왜 바꿔? 멀쩡한데.”

“뭐가 멀쩡해? 언니 폰만 보면 어디 전쟁터 나다니는 사람으로 알아.”

“뭘 또 전쟁터라고 그래? 그 정도는 아니야.”

 

6는 건재했다. 물론 홈버튼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건재했다. 사실… 홈버튼 하나로만 보자면 약간의 문제는 아니었다. 홈버튼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P는 이번엔 아예 수리하지 않을 것을 권유했다. P입장에서도 수리비가 아깝다는 이유였다. 대신 설정에 들어가 가상 홈버튼 Assistive Touch 기능을 활성화시켜 주었다. (문경은 이때까지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걸 몰랐다.) 이것만으로도 당장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리고 문경의 동생이 지적한 대로 잦은 추락으로 인해 액정 몇 군데에 금이 가 있었지만 뭐 괜찮았다. 액정의 가장자리가 바삭바삭 깨져 있어 웨하스 같은 부스러기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것도 뭐 역시 괜찮았다. 어쨌든 저쨌든 사용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언니, 그럼 잘 있어. 우리 3년 후에 만나.”

“그래, 잘 가. 우리 물고구마 태은이도 잘 가. 이모 얼굴 잃어버리면 안 돼.”

“그래, 이모 안뇨옹. 내일 만나.”

“그래, 내일은 핸드폰으로 만나. 제부도 건강하게 잘 다녀와요.”


동생 부부가 3년간 싱가포르에 머물게 되었다. 회사 파견 근무였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쳤고 겨우 출국할 수 있었다.


“이모, 엄마가 영상통화 하면 된데. 우리 영상통화 많이 해.”

“그래, 우리 물고구마야, 이모랑 영통 자주 하자.”


문경은 물고구마 같은 태은이를 으스러지기 직전까지 꼭 껴안아주고서 세 식구의 공항버스 탑승을 허락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정도 꾸준히 영통을 하다가 곧 못 하게 되었다.


[언니 영통이 왜 안 된다는 거야?]

[iOS가 업그레이드가 안 돼서.]

[그러니까 그게 왜 업그레이드가 안 되냐고?]

[아오음… 기기가, 기기 때문에, 기기가 오래됐나 봐. 자꾸 오류가 발생된데.]

[아니, 그러니까 폰 때문이네. 좀 바꾸라니까.]

[그건 아니지. 겨우 영통 안 된다고 폰 바꾸는 건 아니지. 진짜 그건 아니지 않냐?]

 

이때 즈음 문경은 폰 바꿀 것을 권유하는 소리를 자주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폰13을 기다린다고 둘러댔더니 진짜 13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래도 안 바꿀래.”

“왜요? 하팀장님 13 나오면 바꾼다고 했잖아요. 지금 폰 몇 년째 쓰고 있는 건데요?”

“몰라. 생각 안 해봤는데 대충 5년 됐나?”

“5년이요?”

“응. 그런 거 같은데.”

“그런데 왜 안 바꾸세요?”

“5년이 왜? 아직 멀쩡해. 나는 정말 한 번도 폰이 멀쩡할 때 바꿔 본 적이 없어.”

 

그렇다. 문경은 지금까지 통신장비기기를 사용해 오면서 단 한 번도 기계가 완전히 회생불능이 되기도 전에 교체한 적은 없었다. 이건 2G폰을 사용할 때부터 쭉 그래왔던 일이다. 그러니 아직 통화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일도 없는 6를 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동생네와의 영통은 부모님 폰으로 하면 되는 거였다.


다음 해, 아이폰14가 출시되었다.


“문경아, 이거 너 해라.”

“뭐야?”

“엄마가 주는 승진 선물.”

“그게 왜 선물이야? 필요 없어. 안 해”

“네 폰 못 못 봐주겠어서 그래. 그냥 해.”

 

문경의 엄마가 아이폰14로 교체했다. 그래서 사용하던 X를 문경에게 넘기겠단다. 문경의 아빠도 함께 14로 교체했는데 아빠는 직전에 갤럭시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아빠의 ex폰은 당연히 고려대상에서 열외 되었다.


“…”

“뭘 고민해? 그냥 가져가서 유심만 갈아 끼우면 되잖아? 얼른 가져가서 바꿔.”

“…”

 

문경은 코 앞에서 예순과 일흔을 넘긴 엄마, 아빠가 페이스 아이디로 폰 잠금을 헤재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문인식도 안 되는 6로 페이스 아이디는 당연히 꿈도 못 꾼다. 만일 문경이 길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면 큰일이다. 당장 가까운 지인에게 연락을 해야 할 텐데 문경의 6로는 지문인식도 안 되고 페이스아이디도 안 되니 말이다. 일리네어 남자 친구와는 몇 주 전에 헤어졌다.

 

“그러지 말고 이거 가져가라니까.”

“… 싫어.”

“왜?”

“…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어머, 얘, 여기서 자존심이 왜 나오니?”

“몰라, 싫어.”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은 아닌 것 같았다. 비록 블루투스 기능도 몹시 약해져 에어팟을 사용하려면 폰을 거의 귀 아래 어깨 위에 위치시켜야 가능했지만 유선 이어폰이 있으니 괜찮았다. 에어팟 따위 어차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무섭기만 했고 따로 충전시키는 것도 귀찮았다. 그러니 이런 이유로 하는 폰 교체는 용납할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블루투스 문제로 P를 또 방문했는데 P는 더 이상 수리할 수 없음을 고했다. 6의 부자재 공급이 끊겼다는 거다. 그리고 P의 영업장도 곧 이사를 할 예정이라며 작별 인사도 함께 고했다. 문경은 그간 의지해왔던 P마저 멀리 간다고 하니 자신이 더더욱 6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15 나오면 그걸로 바꿀 거야. X는 당근에 팔던가 누구 주던가 엄마 맘대로 해.”

 

작년에 13을 핑계 삼아 6 사용을 고집했듯이 이번엔 15를 핑계 삼기로 했다. 그때즈음 ‘버거킹’ 앱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앱을 사용하고 싶다면 ‘버거킹’ 앱을 업데이트하라고 했고 업데이트를 하고 싶다면 iOS를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iOS 업데이트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iOS를 업데이트해보려고 하면 알 수 없는 기기 오류로 가능하지 않다는 메시지만 나왔다. 이래서 ‘버거킹’ 앱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경의 6는 iOS 버전 12.5.7에 멈춰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버거킹’ 햄버거가 먹고 싶다면 가서 사 먹으면 된다. 그리고… ‘버거킹’ 앱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 쇼핑할 때 즐겨 들어가는 ‘무신사’ 앱을 ‘버거킹’과 같은 이유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뭐,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절약을 해 보자! 하나, 이 다짐은 곧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문경은 스마트폰 대신 컴퓨터로 하는 인터넷 사용량을 늘렸고 ‘무신사’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결국 크게 변한 건 없었다. 곧 인증서 사용이 불가능해져 은행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것도 컴퓨터를 사용하면 되었다. 6는 여전히 통화만큼은 잘 되었고 문자를 주고받는데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대신 ‘카카오톡’ 사용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6의 용량 때문이었다. 문경은 6중 가장 적은 용량 16GB를 사용 중에 있었는데 지나온 시간만큼 점점 6에 쌓이는 사진이며 동영상, 데이터량이 많아지면서 자꾸 용량이 꽉 찼던 것이다. 용량이 거의 다 차면 ‘카카오톡’으로 파일이며 사진, 동영상을 주고받기가 어려워지더니 완전히 차 버리면 톡 전송도 불가능해졌다. 받는 것도 안 됐다. 그래서 수시로 ‘카카오톡’에 쌓인 파일을 비워 봤으나 역부족이었다. 부지런히 컴퓨터로 사진들을 백업하고 사진 폴더의 사진들을 싹 다 지워버렸다. 이러니 톡 주고받는 게 간신히 나아졌다.


마침내 ‘카카오페이’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당연히 '카카오톡'을 이용한 송금도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톡으로 송금할 때 문경 혼자 은행 계좌를 물어보고 컴퓨터로 송금해야만 했다. 절차가 조금 복잡해서 그렇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 특히 6를 사용하는 걸 꾸준히 봐 온 가까운 지인들은 이제 폰 바꾸라는 소리는 잘 하지 않았다. 대신 폰케이스를 바꾸라고 했다. 투명했던 케이스가 누렇게 변색되었고 시커먼 때는 더 번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립톡의 일리네어 마크는 완전히 닳아져 그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아 이것도 싫어. 15 나오면 그때 다 같이 바꿀 거야.”

 

뭐든 바꾸라는 말은 전부 싫다고만 대답했고 폰케이스 바꿀 것을 거부할 때도 15를 핑계 삼았다. 그리고 진짜 얼마 안 가 15가 출시되었다. 문경의 꽤 많은 주변인들이 15로 갈아탔다. 솔직히 문경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혹시, 이 정도면 6에 대한 의리는 지킬 만큼 지킨 건 아닐까?’

 

이런 흔들림 때문이었을까? 비가 오는 날이었다. 문경이 용케 긴 시간 동안 침수 한 번 안 시켰기에 방심했었나 보다. 평소 같았으면 호주머니에 잘 넣어놓고 빈 손으로 우산을 폈을 텐데 그날따라 6를 손에 쥐고서 우산을 폈다. 왜인지 손은 미끄러졌고 6는 던져지듯 날아갔다. 날아가고 날아가다가 빗물에 젖어 있는 보도블록을 박치기하는 듯 때렸다. 하찮은 ‘톡’ 소리가 아닌 팤!! 심장이 철렁했다. 6가 앞으로 고꾸라진 채 뒤집지 못하고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었다. (6가 스스로 못 뒤집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이때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놀라 잠시 얼음이 되었던 문경은 스스로 ‘땡’을 해주고 얼른 6를 집었다. 액정이 쪼개져 있을 것만 같았고 뒤통수에 비를 맞았으니 침수되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멀쩡했다.


“뭐야? 왜 이래?”

 

너무 멀쩡했다. 이것은 6의 확고한 의지가 되었다.


“아직 나를 보내선 안 돼!!”

 

6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6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고 주변에선 이런 6를 최소한의 본능 (통화 기능)만 남은 ‘좀비폰’이라고 명명했다.


동생네가 돌아왔다. 자색고구마였다가 물고구마였던 작은 아기도 까맣게 탄 군고구마가 되어 돌아왔다. 태은이는 부쩍 자랐고 이제 자기 소유의 스마트폰까지 있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못생긴 건 여전한데 더 예쁘고, 더 커졌는데 더 귀여웠다. 그러나 아무리 잘 자란 조카가 기특하고 귀엽다 하더라도 6를 그저 허름함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쉬이 용납할 수 없었다.


“동갑 아니야. 그냥 고물 쓰레기야.”

“태은이 너, 말 다 했어?”

“어, 다 했어.”

“어어, 그래? 그러면, 내놔.”

“뭐를?”

“이모가 네 입학 선물로 사준 책가방 도로 내놔.”

“왜?”

“어?! 저기 있다.”

 

문경은 태은이 방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가방을 바로 발견했다. 아직 비어 있었다. 문경은 작은 어깨끈에 자신의 두 어깨를 욱여넣어 가방을 메었다.

 

“이모 왜? 왜? 왜? 그거 이모가 왜 가져가는데? 나 학교 가야 되는데 그거를 이모가 왜 가져가? 왜?”

“실내화 주머니는 어딨어? 그것도 도로 가져갈 거야.”

 

태은이는 이모의 돌발 행동에 어이없어했다가 화를 냈다가 끝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태은의 엄마, 문경의 동생은 자기 자식 화내는 소리에 쫓아 들어왔고 아직 철없는 자기 딸과 철 들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언니의 싸움을 잠시 지켜보며 상황파악을 했다. 이윽고,


“태은아, 이모 핸드폰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엄마가 태은이 핸드폰한테 촌스럽고 깡통 같다고 그러면 태은이는 괜찮겠어?”

“어! 난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딸 태은이는 눈까지 부라리며 괜찮다고 외쳤다. ‘쉽지 않은 화해가 되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30분 만에 금방 풀렸다. 태은이 외할아버지가 진작에 주문했던 치킨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두 철없는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은 사이좋게 치킨을 나눠 먹었다. 곧 배가 부른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누워 유튜브를 보며 낄낄거렸다. 유튜브는 당연히 태은이 폰으로 봤다. 문경의 6는 ‘유튜브’ 앱을 업데이트하라는 메시지만 보여주고 동영상은 보여주지 않는다.



**********



여전히 6가 통화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던 어느 날, 문경이 폰을 바꿀 것을 선언했다. 이유는 문경이 자주 가는 ‘M 커피 프랜차이즈’ 앱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다. M은 문경의 집 인근에 체인점이 있고 회사 인근에도 체인점이 있다. 음료 한 잔을 구입할 때마다 'M커피' 앱의 스탬프 페이지를 이용해 스탬프를 하나씩 찍고 10개를 다 찍으면 아메리카노 1잔 무료 쿠폰을 받을 수 있다. 문경은 당연히 앱을 사용 못 하더라도 매장 카운터에서 스탬프 현황을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고. 본인 앱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이 이유 때문에 단골 프랜차이즈를 바꿔야 하나? 그러기엔 다른 곳의 가격이 좀 애매하게 비싼데. 문경은 너무 고민됐고 본격적으로 괴로워지기 전에 결정을 내렸다. 곧 핸드폰 대리점을 하는 지인의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들, 문경의 주변인들은 문경이 그 지인의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고 하면 “드디어 아이폰 15로 바꾸려고? 에이, 그러지 말고 이왕 바꾸는 거 더 기다렸다가 16으로 사.”라는 반응을 보였다. 16이라… 그러나 문경은 반응은 반응대로 흘려버리고 6를 구입했을 때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 문경은 현 최신 모델 15를 구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알 수 없는 미래의 16을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문경은 최신폰을 마다하고 아이폰13mini를 구입했다. 단종되지 않고 현존하는 현 아이폰 중 가장 작은 모델이라는 이유가 13mini를 선택한 이유는 아니고 지인의 동생이 이 기종이 무료로 풀렸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요금제에서 약간의 옵션이 붙겠지만 꽤 괜찮은 선택이다.


“이야, 언니 결국 폰 바꾸는구나.”

 

문경의 동생은 자신의 15보다 한참 작은 13mini를 요리조리 보았다.


“정말 작다. 그런데 언니 카메라 왜 이래? 렌즈에 뭐가 껴.”

 

문경은 13mini의 크기에 맞춰 새로운 케이스와 그립톡을 구입했다. 컨셉도 잡았다. 구황작물! 케이스엔 잘 익은 옥수수가 프린트되어 있었고 그립톡엔 먹음직스러운 군고구마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립톡의 크기였다. 13mini의 크기는 가로 64.2mm, 세로 131.5mm. 그립톡은 가로 40mm, 세로 82mm로 그립톡을 13mini와 나란히 긴 방향으로 두면 그립톡이 13mini의 카메라에 걸린다. 문경의 동생은 이 점을 지적했고 문경은 말없이 그립톡의 방향을 90도 돌려주었다.


“이제 괜찮지?”

 

문경의 동생은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이제 이 그립톡은 군고구마에서 탄고구마가 될 때까지 13mini와 함께 가겠구나. 옥수수도 잘 익은 노란색이 바래고 바래 갈색으로 변색될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고.


“으이그… 그래서 6는 어떻게 했어? 그래도 아이폰인데 중고폰으로 사가는 데 있지? 팔았어?”

“아니, 그걸 왜 팔아? 저기 있어.”

 

문경은 턱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리켰다. 6는 그 곁에서 브레인을 담당하고 있다. 아직 mp3음악 파일을 담을 수 있기에 종종 6를 이용해 음악을 듣곤 한다. 배터리 문제가 발견되어 완충을 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전력이 닳고 있어 끊임없이 수혈을 해야 하듯 충전케이블을 엉덩이에 꽂아두고 있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하얀색이었는데 회색이 된 충전케이블은 핀헤드 연결부의 피복이 벗겨져 검은색 절연테이프가 감겨 있다.


“언니, 나는 예전부터 6가 너무 불쌍했어.”

 

문경의 동생은 6를 짠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문경은 그녀가 왜 6에게 불쌍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반박하지도 않았다.


13mini는 마의 두 달을 무사히 넘겼다. 물론 폰을 안 떨어트린 건 아니다. 물가에도 몇 번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정에 금 하나 없이 무사히 넘겼다는 건 폰이 튼튼해졌다기보다 케이스의 성능이 좋아진 것이라 여겨진다. 구황작물 잘 샀다. 오래가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자적 잔디밭 위를 지나가는 게 보인다.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기려고 13mini의 카메라 앱을 켰더니 그립톡이 렌즈를 가린다. 문경은 얼른 그립톡을 돌렸고 그 사이에 고양이는 사라졌다. 음… 뭐 괜찮다. 고양이는 또 만날 수 있을 거다.









18.



이전 17화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