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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y 10.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17. 회색 비둘기



17. 회색 비둘기



회색 부직포 방석 혹은 쿠션. 차 안에선 항상 그렇게 보였다.


“어? 차 세워 봐. 빨리. 저기, 요 옆에. 멀리 가지 말고, 그래 저 앞에다 데면 되겠다.”

 

아빠의 오래된 그랜저 유리창엔 차만큼 오래된 선탠도 되어 있다. 그게 제법 짙어서 차를 운전할 때면 나는 항상 긴장됐다. 과속은 꿈도 안 꾸고 제한속도에 가까운 속도만 겨우 내며 창 밖은 언제나 나름 꼼꼼히 살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보고 동생 준경이는 귀신같이 알아본다. 처음엔 운전석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있길래 자는 줄 알았지. 그런데 언제 알아챈 건지 일말의 요란스러움 하나 없이 조용히 눈 뜨더니 어서 차를 세우랜다. 그런 준경이가 신기하다.


“저기 오네. 이제 가자.”

 

잠시 후, 조금 멀리 SUV 자동차 한 대가 오는 게 보였다. 차 겉면에 ‘로드킬 수거 차량’이라고 쓰여 있다. 그 차를 확인한 준경이가 이제 됐다며 이만 가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시동을 걸었다. 그 자리를 어서 피하고 싶었다.


“너는 신고만 하면 됐지, 왜 꼭 기다리자고 그래?”

“뭐가? 언니 너는 핸드폰만 봤으면서.”

 

방금 전까지 로드킬 당한 사체 앞에서 파수꾼처럼 눈을 번득이던 준경이 차가 출발하니 다시 눈을 감았다. 쳇, 나의 불평은 준경이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동생 준경이는 언제부터 저랬더라? 아마 준경이가 대학교 입학 후 친구들을 따라 ‘유기견 보호소' 자원봉사를 다니고 나서부터였을 거다.


우리 집은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엄마, 아빠 모두는 준경이가 어느 날 갑자기 유기견을 입양하자고 할 까봐 늘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이를 무색하게 준경이는 한 번도 입양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대신 함께 외출 중인, 지금같이 로드킬 동물을 만나면 항상 기다려줘야 한다.


“이미 다친 애잖아. 더 다치지 않게 잠시만 지켜주는 거야.”

 

‘다친 게 아니고 죽은 거잖아.’라고 대답하려다 말았다. 나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챙겨야 하니까.


“언니 진짜 자전거 타고 다니는 거야?”

“어.”

“언니 네가 그럴 체력이 되나?”

“아, 몰라. 그냥 몇 번 하니까 탈 만하더라. 아빠가 독립하는 대신에 차는 반납하라고 해서 반납했지, 차 살 돈은 없지. 그러면 뭐 별 수 있나? 형편에 맞춰 굴려야지.”

 

첫 인턴 생활을 서울 대도시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회사에서 시작했다. ‘을 중의 을’ 인턴으로서 잦은 야근으로 오밤중에 빈번하게 택시를 이용하니 아빠는 그동안 한 번도 손에 쥐어 주지 않았던 차키를 순순히 내주었다. 당신은 차 쓸 일이 별로 없다는 말도 덧붙여 가며 내어 주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뉴그랜저 2.0. 당시 아빠 친구분이 중고로 내놓은 것을 엄마 몰래 잽싸게 업어온 차였다. 디지털 느낌은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올드카’. 마냥 좋았다. 레트로 감성 3000%였기 때문이다. 적응은 금방 했다. 처음엔 평일에 출퇴근할 때만 썼는데 나중에 가서는 주말에도 신나게 썼다. 내 차가 된 것 같았다. 아니 내 차였다, 거의.


“그래, 사람이면 양심이 있어야지. 그렇게 어물쩍 구렁이 담 넘어가 듯 아빠 차를 먹으려고 하면 안 됐던 거야.”

“먹긴 누가 뭘 먹는다고 그래. 그런 적 없다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은근슬쩍 구렁이처럼 담을 넘길 것 같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이직할 회사 근처, 혼자 살 집을 알아볼 때도 이 점을 적극 반영해 알아봤다.


“뭐가? 당연히 차 가져갈 줄 알고 그 아파트로 구한 거잖아. 그 동네 대중교통 겁나게 꼬여 있더구만.”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긴 무슨, 다 이 차로 움직일 거라고 계산한 거잖아. 딱 봐도 견적 나오는데.”

“아,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계산한 게 아닌 건 아니다. 새로 근무할 회사는 수도권 어느 언저리 신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또 다른 수도권인 현 부모님 댁과 회사가 서울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잘못하면 자차를 이용해도 출퇴근 시간으로만 하루 5시간을 꼬박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를 이유삼아 독립할 것을 선언했다. 즉각적인 엄마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으나 아빠가 극적으로 나서 설득해 주었다. 대신 붙은 조건. 그간 내 것처럼 쓰던 차는 두고 가란다. 아무래도 집을 먼저 다 알아보고 의논할 것을 가장한 통보였기에 괘씸죄가 적용된 것 같았다. 당신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물론 처음엔 원룸을 알아봤다. 수도권 신도시답게 깨끗하고 살기 좋은 원룸들이 회사 지척으로 널려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보증금이, 월세가 비쌌다. 아무리 이런저런 가전제품이 빌트인 되어 있다고 해도 너무 비쌌다. 갓 인턴 생활 몇 개월뿐인 사회 초년생에겐 하나같이 부담스러운 그림 속 떡이었다. 그래서 외곽으로 눈을 돌렸고 단순 거리로 봤을 땐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단지를 찾아냈다. 단지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오래된 단층 아파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얼마나 오래됐냐면 단지 안 나무들이 아파트보다도 키가 컸다. 가끔은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숲으로 드나드는 것 같았다.


“뭐, 자전거로 출퇴근하긴 좋겠네. 생각보다 평지야. 외곽이라 그런지 오히려 차도 별로 없고, 시내에서만 조심하면 되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전거로 20분이면 갈 거리가 버스를 타면 40분이 걸린데? 이건 대중교통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차 뒷좌석의 짐 내리는 걸 돕던 준경이가 동네를 또 한 번 둘러본다. 투덜거리면서도 상당히 마음에 든 눈치다. 아마 길냥이 몇 마리와 눈을 마주쳐서 일거다. 나도 봤던 애들로 젖소 같이 흰 바탕에 검은 얼룩이 있는 둥글둥글한 아이와 호랑이 줄무늬가 있는 날렵한 아이다. 여기 애들은 유난히 여유가 넘쳐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잘 도망가질 않는다. 저번엔 황토색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엄마 고양이 뒤를 쪼르르 따르는 걸 봤는데 걔네는 내가 봐도 몹시 귀여웠다.


“여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어때?”

“어휴.” 한숨부터 나왔다. “어떠긴, 말도 마. 남친도 없는 주제에 간접 시집살이 체험하는 듯.”

“진짜? 역시…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잔소리 대마왕의 질량도 보존되는구나.”

 

잔소리 대마왕. 엄마는 큰소리 대마왕이고 잔소리 대마왕은 아빠다. 차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잘 졸라대서 가져와 보려고 했다가 결국 이사 가서 발생할지도 모를 여러 사건 사고 가능성에 관한 잔소리를 끝끝내 이기지 못해서 레트로 감성 듬뿍인 뉴그랜저 2.0을 순순히 포기했던 거다. 그런데 이사 온 이곳에서 경비 아저씨라는 New 잔소리 대마왕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특히 분리 수거할 때 죽는 줄 알았다.


여긴 매주 목요일이 분리수거일이고 그날이 오면 단지 내에 지정 분리수거 구역이 설정된다. 아저씨는 목요일이 되면 거의 분리수거장 곁을 지킨다. 거의 집착 수준이다. 순찰을 도느라 안 보이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신출귀몰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분리수거장 한가운데 들어서 잔소리를 외친다. 빨간색 고무대야에 물을 한가득 받아와 음식물 묻은 플라스틱 용기를 닦아내는 것도 봤다. 연꼬리처럼 매달린 종이박스의 셀로판테이프는 귀신같이 찾아내 떼어내 버린다. 꼬장꼬장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보기엔 낡은 동네에 비해 기가 막히게 깨끗이 정리된 분리수거장인데도 뭔가 아저씨 성엔 차지 않는 거다. 그 한가운데서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해 대는 모습을 직관하면 대충 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질려서.


“언니 오늘은 별로 안 무거우니까 혼자 올릴 수 있지?”

“음… 응.”

“그럼 나는 그냥 간다. 아빠가 아까부터 언제 오냐고 난리야. 빨리 오래.”

“너 말고 차 빨리 오라는 거겠지. 너는 내 덕에 차키 빨리 잡은 거야. 진짜 나한테 고마워해라.”

“그래, 어.”

“… 어휴, 진심이 없어. 아무튼 그래, 정리는 나 혼자서 몹시 쓸쓸하게 외로이 하면 되니까 너는 어서 가보도록 해. 우리 아빠 목 빠지겠다.”

“그러니까 용달 불렀을 때 한꺼번에 옮겼어야지. 계속 이거 빠트리고 저거 빠트리고. 도대체 이사한 게 언젠데 주말마다 몇 번을 옮기는 거야? 이러니까 주말이 없잖아, 주말이.”

“왜 너까지 잔소리야? 갈 때 운전이나 조심히 해.”

“내 걱정은 접어두고 나 진짜 가. 언니 더 필요한 거 없지, 확실하지?”

“없어. 완벽해. 빨리 가.”

“나는 몰라.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잘해 봐. 간다. 그리고 언니 자전거 조심해서 타고, 또 무슨 이상한 기술 써보겠다고 깝치지 말고 진짜 차조심해야 돼.”

 

마지막 짐을 (아마도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짐을) 옮겼다. 아무래도 준경이는 아빠를 닮은 것 같다. 뉴그랜저 2.0은  동생 준경이와 함께 떠났다. 이제 나의 운신을 책임져 주는 건 자전거 전용 주차장에 세워진 저기 저 자전거 한 대뿐.


약 14kg. 인근 초등학교 앞 ‘삼천리 자전거’에서 구입한 내 자전거의 무계다. 20만 원대의 26인치 바퀴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적당히 필요한 기어 변속기가 달려 있다. ‘자전거 벨’과 ‘전조등’은 점포 사장님이 서비스로 줬다.


나는 자동차 운전과 마찬가지로 안전운전을 지향한다. 여간해선 속도를 내지 않는다. 그러니 자전거 타는 나를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걷는 걸로 치면 어슬렁어슬렁, 자전거 페달도 어슬렁어슬렁 밟는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두리번거릴 여유가 생기고 자꾸 뭘 줍는다. 불로소득으로 동전을 주운 적도 있고 동네 꼬마가 떨어트렸을 머리핀을 주운 적도 있다. 그중 최고는 사슴벌레 암컷을 발견한 것이었다. 처음엔 엄청 큰 바퀴벌레라고 생각해서 몸서리치게 혐오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이걸 잡아 동네 놀이터로 가져가니 당시 거기 있던 어린이들이 일제히 몰려왔다. 쉽게 누려보지 못한 인기였다. 막판에 세 아이가 서로 갖고 싶다며 접전을 벌였는데 너무 오래 걸려 누가 가져갔는지 끝까지 보지 못하고 결국 제일 연장자인 아이에게 사슴벌레 암컷을 맡기고 집에 와야만 했다. 그 사슴벌레 암컷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그냥 제일 연장자 아이가 가져갔으려나?


자전거는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벽이 없어서 그런 지 이동하는 중에도 많은 것들을 눈에 들어오게 해 주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날벌레가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입으로 콧구멍 안으로 들어올 때도 많고. 그러니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다. 대신 차를 끌고 다닐 때의 주차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좁은 골목 지름길로도 갈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체력소모가 큰 것은 둘째치고 진짜 예상하지 못 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는… 회색 부직포 방석 혹은 쿠션. 차 안에서 볼 때는 회색 부직포 방석 혹은 쿠션으로만 보이던 것이 자동차 벽 없이 직접적으로 보게 되니 하나도 그렇게 안 보였다. 방석과 쿠션에는 미처 마르지 못 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비둘기였다. 시커먼 아스팔트 도로, 인도에 가까운 가장자리에 어떤 덩어리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오면 만나는 가까운 도로에서였다. 출근길이라 다른 누군가가 준경이처럼 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갔는데 퇴근길에도 그대로 있었다. 안일했다. 형체는 아침과 달리 많이 변형되어 있었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준경이 말 대로 이미 다친 아이를 계속 다치게 내버려 둔 거였다. 순간 고개를 돌렸고 어슬렁 밟던 페달을 힘차게 굴렸다. 이미 또렷이 본 것을 또렷이 보려 하지 않았고 빨리 지나치고만 싶었다.


“와, 이거 뭐야?!”

“우와, 죽은 거야?”

“오, 잘 봐봐, 비둘기야!”


뒤통수 너머로 애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학원 셔틀버스에서 막 내린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였다. 순간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죽은 비둘기 곁으로 가까이 가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 준경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거다. 아니… 준경이라면 아침에 그렇게 못 본 척하지도 않았겠지.


“얘들아, 절대 만지지도 말고 가까이 가서도 안 돼. 그냥 딴 데 봐. 아니 그냥 가.”

 

웬 낯선 어른이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내리는데도 네 명의 아이들은 순간 멈칫 만 할 뿐 순순히 비둘기와 거리만 유지하고 계속 힐끔힐끔 쳐다본다. 무슨 자기들끼리 담력테스트라도 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니 핸드폰을 꺼내 촬영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110이던가?”  

 

준경이 어깨너머로 봤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바쁜가? 신호는 가는데 연결이 쉬이 되질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었는데 다소 당황스러웠다. 다산콜센터. 지역번호+120으로도 거는 것도 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한 번만 더 110으로 걸어보고…


“그냥 경비 아저씨 불러요. 그러면 돼요.”

 

그중 한 아이가 당황하는 어른인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더 어른스럽게 아저씨를 부르자고 한다.


“아저씨? 여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 그 아저씨가 이런 것도 해 줘?”

“네!”

 

네 명의 아이들은 대답과 동시에 나만 비둘기 곁에 남겨 놓고 우르르 이동하더니 금세 우르르 돌아왔다. 아이들 뒤에는 잰걸음으로 달려오는 아저씨가 있었다. 고무장갑과 집게를 들고 오는 폼이 제법 익숙한 눈치다.


“아이고, 이거 오토바이에 치였나 보네.”

“네? 아, 네.”

“이거 이거 사람들이 참 못 됐어. 내가 그렇게 동네 안에서는 살살 다니라고 해도 다들 제 멋대로야. 아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걸 빨리 못 가서 이 사달을 내는지, 원. 비둘기랑 부딪친 놈 그놈 분명히 알았을 텐데 이것도 뺑소니야, 뻉소니!”

 

아저씨가 조심조심 가지고 온 봉지에 비둘기를 옮긴다. 아이들이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파할 때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 했다.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흐린 눈으로 계속 근처에 서 있었다. 중간중간 110 연결도 잊지 않았다.


“아니 요새 비둘기는 사람을 안 무서워하니까요. 그러니까 문제예요.”

 

옆에 가만히 서 있기가 멋쩍어 한 마디 거들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노려본다.


“사람이 안 무서운 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네?”

“비둘기가 만만해?”

“네? 아니요. 전혀요. 저는 비둘기 무서워합니다.”

 

진짜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따릉 따릉’ 울려도 잘 비켜주지 않는 비둘기가 나는 무섭다. 나는 뭐가 찔리는 건지 계속 전화기만 붙들었다.


“어?! 전화받았어요!”

 

그 사이, 110 번호가 연결이 되었고 그쪽에서 물어보는 대로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저씨 곧 방문한다고 하네요.”

“아니야, 그래도… 선생님은 못 본 척 안 하고 이렇게 전화도 걸어주고 잘해 주시네.”

“선생님? 누구요? 저요? 하하하, 제가 뭘…”

 

아저씨가 떨떠름한 얼굴로 칭찬을 해줬다. 그런데 떨떠름한 칭찬에도 나는 부끄러웠다.


“오늘이 목요일이라 내가 이걸 못 봤어. 사람들도 참, 아침부터 이렇게 있었을 텐데 어떻게 아무도 말을 안 해주나. 직접 치우라는 것도 아닌데.”

“네? 하하, 네… 그러게요.”

 

나도 아침부터 본 한 명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저씨한테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고 말 하긴 싫었다. 회사 도착 후에 전화라도 해 볼 것을. 이미 준경이 같은 다른 사람이 해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한 거였다. 뒤늦게 갖고 싶지 않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목요일, 자전거를 끌고 오늘만 열리는 분리수거장 앞을 지나갔다. 경비아저씨는 어느새 나타나 이 사람 저 사람 쫓아다니며 분리수거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 중이다. 그새 로드킬 수거 차량이 다녀갔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곳 주민들, 저 아저씨 말에 크게 반하지 않는구나. 막 웃으면서 반겨주진 않아도 싫은 얼굴로 토를 달지도 않는다.


분리수거장 옆엔 음식물쓰레기 수거함이 있는데 아직 며칠 안되었지만 주변에 음식물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음식물 수거함에 쓰레기가 넘쳐 뚜껑이 열려 있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또 주말이 되었다. 지난주, 분명히 준경이에게 마지막이라고 선언했건만 또 가져가야 할 물건이 남아 있었다. 다시 집으로 갔다. 동생 준경이는 이럴 줄 알았다며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쩐지 그 아파트 경비실 옆에 길냥이 밥그릇이 있더라고. 물그릇도 있고.”

“뭐? 진짜야? 너는 그걸 언제 봤어? 나는 못 봤는데. 진짜 거기 그런 게 있다고?”

“아휴, 이 언니야, 사람은 딱 아는 것만큼 보이는 거야. 그러니 언니 너는 못 볼 수밖에.”

 

준경이는 비둘기 이야기를 듣더니 그 아저씨 그럴 거 같았다면서 별로 놀라질 않는다. 나는 준경이 놀라지 않은 모습에 출근길에 먼저 비둘기를 봤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런 게 싫었다.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것 같은 상황이 싫었다.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준경아, 나 유기견 입양할까? 이제 혼자 사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어때? 우리 동네 산책하기 좋잖아. 괜찮지? 응?”

 

꽤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유기견을 입양하겠다는 건에 관하여 준경이 반겨 줄 알았다. 그런데 안 반겼다. 그냥 나를 빤히 쳐다만 봤다.


“뭐야? 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왜 대답이 없어?”

“… 언니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왜? 뭐가?”

“심심하다고 입양하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강아지, 고양이 한 마리 돌보는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데. 게다가 지금은 입사 초기라 그렇지 조금 있으면 맨날 야근할 거잖아. 심심하다는 말이 그때 가서도 나오겠어? 아서라, 아서. 괜히 막 아름다운 상상만 먼저 하면서 흥분하지 마.”

“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혹시 알아? 일단 해보면 다를지도 모르지. 도전 정신 몰라?”

“그런 마음 가짐이라서 안 된다고 하는 거야. 하아… 됐고. 언니 뭐 무슨 일 있었어? 큰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이거 딱 보니까 무슨 보상 심린데? 뭐야?”

 

헙, 보상심리? 맞나? 정말 그런 건가?

 

“언니, 나는 언니가 다른 생명체를 돌봐주겠다는 어떤 욕심에 앞서 언니라는 생명체 스스로를 먼저 잘 돌봐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말을 진심으로 해주고 싶다. 쫌, 제발.”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아빠야? 왜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

 

준경이는 대답대신 소파에 있던 쿠션을 던졌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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