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통신

by 인간 연습

지방의 소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FM 라디오가 가장 호화스러운 문화생활이었다. 볼륨을 높여요 를 들으며 나온 노래의 제목을 적고 마음에 드는 노래는 빈 테이프를 넣어 녹음을 해서 다시 듣는 일이 보람이었다.

라디오는 참 좋다. 초등학생 때 몇 천 원인가를 내면 간단한 조립과 납땜으로 라디오를 만들 수 있는 키트가 있었다. 어렵지 않게 라디오를 손수 만들 수 있다. 그 단순함이 사랑스러웠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기계만 있으면 누군가의 목소리를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넓은 세계와 접속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교무실과 별개의 정보열람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의 PC를 이용하면 PC통신을 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점심은 먹지도 않 아이들로 그곳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딱히 사용시간제한은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점심시간 내내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1,20분 정도가 한계였고, 그 시간이 넘으면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만화동아리에 가입을 했는데, 나중에는 서울에서 정모도 했다. 같은 PC통신 동아리에 가입했던 친구와 함께 서울로 가 정모에 참여했었다. 마침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봉하여 보고는, 동아리 모임을 가졌다.

그 사람들은 대개가 성인이었고, 고등학생은 우리뿐이었던 지라 귀여움을 받았다. 친척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과 그것도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과 연락을 하여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집으로 돌아와 모뎀을 대여하고, 몰래몰래 그 모뎀으로 동아리에 접속하여 글을 읽곤 했던 기억이 난다. PC 통신의 시대가 저물면서 동아리도 해체가 되었다. 그때 그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형, 누나들은 강릉에서 올라온 고등학생 두 명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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