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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ug 23. 2019

상실의 시대

워킹대드 주짓떼로 3편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듣는 말이 있는지? 나는 있다.

 

 .  빼라. 그렇게 힘만 쓰니 되니?”

 

도장에서 스파링 중인 우리들을 보며 맨날 관장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힘을 빼려고 힘을 쓰는 중입니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도 듣던 말이다. “회원님은 근육이 딱딱하고 짧은 시간에  힘을 내는 형태로 발달되어 있어요. 그래서 힘을 빼셔야 해요.”   수영강사가  팔을 잡고 자세 교정을 해주며 말했다. 나는 물에 대한 공포가 심했는데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물에 들어가면 몸에 힘이 들어갔었던 모양이다. 빠지지 않으려고. 물론 그렇게 하면   가라앉는   비밀.

 

스파링을 하면 무섭다. 서브미션(마무리 기술) 걸려 목이 졸리거나 팔이 꺽이는 일도 무섭고 니온밸리(상대의 배를 무릎으로 압박하는 기술) 깔려 몸부림치는 일도 괴롭다. 그러다보니 안깔리려고 발버둥치고  잡히려고 도망치게 되는데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힘을 빼라고요?

 

깔려줘. 많이 깔려야 . 그래야 늘어.”

 

관장님의 솔루션. 깔려 본다. 힘들다.  깔려 본다. 역시나 힘들다. 언제쯤 느는 건가.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 사람들은 책을 읽을  암송을 했다고 한다. 그걸 ‘소독이라고 한다나? 요즘엔 엄두도   일이지만, 굳이 외우지 않아도 머리에 남고 기억에 남는 말은 있는  같다. 살아가면서 많은 말을 접하고  내뱉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남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상실의 시대라고 번역한 문학사상사 버전의 책이 있었는데,  그꼴이다.

 

**

 

고집하지마. 인정해.”

 

기술이 제대로  먹히면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라는, 관장님의 말씀.    거다. 상대방의 기술이 나보다 나아서  가드(방어) 뚫렸으면 무식하게  써서 막거나 이기려고 하지 말고 인정하고 밑에 깔려라.

 

말은 쉽지만 이게  어렵다. 나보다 그랄이 많은 사람에게 깔리는 거야 그렇다쳐도 그랄이 적은 사람이나 신입에게 깔리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왠지 자괴감이 들고 심하면 운동이 하기 싫어지기도 한다. 중학생이 초등학생 한테 삥뜯기는 기분이랄까 (뜯긴 적은 없다).

 

**

 

내가 운동을 하면서 정신 수양까지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운동이란  원래 이런 건가. 뭔가 잘못된 건가. 번민을 거듭하면서도 도장에 나간다. 그거 외에는 달리 계속할 방법이 없다. 매트에 몸을 던져 상대와 치고 받지 않고는 (실제로는, 관절을 꺾고 목을 조르지 않고는) 답을  수가 없다. 관장님처럼 주구장창 옆에서 말해준다고 알아듣는 것도 아니다.

 

조금씩이나마 오랫동안 이것저것 운동을   결과, 알게  사실 하나. 세상에는 내가 몸으로 부딪힌 경험으로만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런  글로 쓰거나 영상을 찍어 보여준다고 해도 전해  수가 없다. 두발 자전거를 타는 일과 같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요령을 아무리 말로 설명을 듣느니, 직접 자전거를 몰고 한강으로 나가 넘어지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 보는  ‘자전거를 타는  직빵이다.

 

**

 

주짓수를 다른 말로 ‘증명의 무술이라고도 한다. 중국 무술처럼 단지 오래 수행했다고 대접을 받는  아니라, 무조건 실제 대련(스파링)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술의 우월함을 ‘증명한다. 관장님과 스파링을 해보면  사람이 가진 기술의 깊이를 느낄  있다. 거대한 절벽이 앞에 있는 듯하다. 블랙벨트가 가진 권위를 느낀다. 그래서 머리로는 이해가  안됨에도,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

 

, 그러고보니, 관장님이 늘상 하는 말이 하나  있다.

 

괜찮아. 어차피 나중에  만나. 조급할 필요 없어.  빨리 가나, 늦게 가나  차이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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