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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Oct 02. 2019

짜파게티 화재 사건

초등학교 3학년 , 쿵후 소년 친미를 같이 보자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비디오 테크에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짜파게티를 끓였다. 물을 올려놓고 친구와 거실에 앉아 친미를 보다가, 연기가 자욱해서 돌아보니, 부엌에 냄비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부리나케 달려가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달궈진 냄비를 찬물에 담그자, 치이익하고 연기가 올라왔다. 은색 냄비가 검정색 냄비가 되어 있었다. 불행한 사태를 예감한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나는 수세미로 냄비의 눌어붙은 부분을 박박 닦았다.


 



엄마가 밖에서 돌아올 때까지도 집안의 연기는   빠졌다. 그때까지도 나는 냄비를 닦고 있었다. 하지만 냄비의 검정 때는 벗겨질 줄을 몰랐다.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가 났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건지 몰라도, 나를 야단치지 않았다. 냄비는 못쓰게 되었으니 버렸고,  안의 창문은 활짝 열어 환기를 했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고, 아무 일도 없었다.

 



엄마가  나를 야단치지 않았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엄마는 때로   없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냈지만, 마찬가지로 엄청 자상했다.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나는  안에 누워 천장을 보며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쩐지 그때 엄마는  슬픈 표정을 했던 것도 같다. 엄마는  집을 싫어했다. 굉장히 넓은 집이어서 나도, 동생도, 아버지도 좋아했는데, 엄마는 싫어했다. 아마 친구를 부른 것도 넓은 집을 자랑하려고 그랬 것이다.

 



나는 우울해 보이는 엄마가 안쓰러웠고, 냄비를 태워 먹어서 죄송했다. 차라리 혼났더라면,  안쓰럽고  죄송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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