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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Oct 02. 2019

조기축구회 총무

지는 조기 축구회 총무였다. 주말이면 서울 같은 데로 원정 경기를 떠났고, 나랑 동생, 엄마도 함께 갔다.  버스를 대절해서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과 가족들이 모두  버스에 탔다. 아저씨들은 이상한 야한 농담 같은  떠들면서 신나 했다. 내가  알아들을 거라면서 낄낄거렸다. 그러다가도  시간쯤 지나서는 바위섬 같은 노래를 불렀다. 나는 홍도야 울지 마라를 불렀다.

 




지극히 외향적인 아버지와는 달리 내성적이던 나는 그런 자리가 싫었다. 웃겨보라든가, 춤을 춰보라든가 하는 어른 들의 요구가 난감했다. 그래서 차라리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백일섭 씨가 드라마에서 홍도야 울지 마라를 부르는  보고 감명을 받아,  뒤로 노래 가사를 외운 , 그런 자리가 있으면  노래를 불렀다. 반응이 괜찮았다.

 



아버지는 공격수였다. 레프트 윙을 하기도 하고,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 선수였다. 다리가 빨랐고, 드리블도 괜찮았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스탠드석에 앉아 김밥을 까먹었다. 경기에 이겼는지 졌는지 상관없이 내려갈 때는 모두 지쳐 잠을 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재밌는 이야기 발표 시간이 생겼다. 돌아가면서 웃긴 이야기를 해서 아이들을 웃겨야 했다. 나는 사촌 형에게 도와 달라고 했고, 형은 마늘을 무서워하는 드라큘라 이야기를 웃기게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형은 유머러스했고 사교성이 좋았다.


 



 덕분에 재밌는 이야기 발표 시간을 무사히 넘어갔다. 이야기가 웃겨서 웃었는지, 벌벌 떠는  모습이 웃겨서 웃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웃었다.

 



취업을 하고  회식 , 나는 땡벌을 불렀다. 홍도야 울지 마라는 너무 옛날 노래가 되어 있었다. 반응이 괜찮았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버스 안에서 즐거웠을까. 예전엔 분명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물어볼 수도 있지만, 아마 물어보지 않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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