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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Oct 02. 2019

솔방울 축구

고등학생  학교가 공부에 엄해서 1학년 때부터 3학년 졸업할 때까지 매일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서울대에 몇십 명씩 보내는 명문의 명성을 유지하고 싶었던  같다. 우리 학년이 졸업하고    되어 평준화가 되는 바람에  명성도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우리 학교를 오겠다고, 재수를 하는 아이도 있었고, 멀리 타지에서 전학을 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 나와  친구는 솔방울 축구를 했다. 학교에 소나무 숲이 크게 있어서, 솔방울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우리는 점심시간, 저녁 시간,   다양한 시간에 솔방울을 차면서 드리블 연습도 하고  하나를 골대로 놓고 골키퍼와 공격수가 되어 축구도 했다. 솔방울이 망가지면 다른 솔방울로, 종이 울릴 때까지, 가끔은 종이 울리고 나서도 축구를 했다.

 



학교가 감옥 갔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죄수 같다고 생각했다. 솔방울 축구는 우리의 유일한 여가였고 취미였다. 솔방울을 차며 학교 뒷문을 통해 대로 쪽으로 달려 나가면 허균 시비공원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기도 했다. 우리는 거기에 놓인 벤치에 앉아 졸업 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졸업을 하면, 남대천 정화운동을 하자, 환경오염이 심각해졌다, 자연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는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있었던 터라, 졸업을 하면,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자,  하자 맹세했다.

 



환경정화활동은 못했다.  친구는 다른 친구와 결국 자전거 전국 일주를 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아무것도 없는 너른 벌판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미래를 자주 생각했지만, 우리가 바라보던 벌판처럼 미래에 뭐가 있는지 도통  수가 없었다. 막연한 불안이 느껴질 때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불렀다.

 



나뭇잎이 온통 갈색에다, 하늘은 잿빛이고, 음울한 분위기의 노래였지만, 우리는 활기차게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를 불렀다. 가사는  몰랐지만, 아아아아아아하는 부분을 목청껏 불렀다. 그러다 종이 치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 교실로 돌아갔다.

 



결혼 , 아이를 안고 되돌아가 본 허균 시비공원은 예전의 벤치가 없었다. 하지만  앞의 너른 벌판은 그대로였다. 어떤 것은 변했고 어떤 것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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