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현실부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방학 Oct 02. 2019

과수원집 아들

아버지는 직업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사업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는 설문 조사를 했는데, 아버지 직업을 쓰는 란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 직업이 뭔지 몰랐고, 농부라고 적어냈다. 주말이면 할아버지가 사시는 시골에서 농약을 치곤 하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아버지에게는 혼났고, 엄마는 웃었다.


 



아버지는 농부가 아니었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은 그게 전부였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농부라고 적었다. 그리고 농부는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 중에는 과수원 하는 친구도 있었다. 때때로 배나 사과를 선물이라며 가져다주곤 했는데, 맛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서 농업을 배워 과수원을 물려받을 거라고 중학교 때부터 말하곤 했다. 나는 그게  멋있어 보였다.


 



 친구는 장기랑 바둑 두는  좋아했는데, 마침 주변에   아는 친구가 나뿐이어서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아이를 만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곤 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안에 있던 소설을 빌려가곤 했는데, 그중에 시드니 셀던의 책이 제일 재밌었다. 나는 과수원을 물려받을  시드니 셀던을 읽는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할아버지 댁에는 책이 없었다.  비슷한 거라고는 할머니가 만든 전화번호부 정도가 전부였다. 전화번호부에는 과수원  할머니 연락처도 있었고, 마을회관 연락처 같은 것도 있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만한  없었다.

 




가을이면 나는 할아버지 댁에서  삼주씩 지내다 오곤 했다. 심심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한옥이어서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과 거기서  이어진 하늘이 보였다.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를 가짜 총으로 쏘아 맞추는 상상의 놀이를 했다.

 



아버지가 정말 농부였다면 나도 시드니 셀던을 읽으며, 놀러 온 친구에게 나는 장차 이런 사람이  거야 라고 확고하게 말할  있었을까. 나는 내가 뭐가 될지 도통   없었다. 그건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과수원  아들은 결국 과수원을 물려받았다. 대학에는  갔다고 했다. 여전히 시드니 셀던을 까.



 

 

 

 




매거진의 이전글 솔방울 축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