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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Apr 27. 2021

환자분은  편두통입니다?

아니요, 저는  편두통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지금껏 크게 세 번 바뀌었다.

하나는, 결혼이었고,  내 인생에 아직도 후회 없는 결정이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두 번의 출산이었다. 역시 후회 없는 결정이었으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경험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그 녀석"을 만난 것이었다. 피할 방법은 없었을까... 후회하고 있다.


사실 원래도 그렇게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다. 항상 위장이 약해서 잘 체하고, 입시공부를 할 때면, 신경성 위장병을 데리고 살았다. 그리고 결혼과 임신 이후, 본의 아니게 화학적 약물을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그렇게 내 몸은 "약 없이 건강해지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두 번의 임신과 출산 덕분에, 나는 약물에 대한 의존도를 많이 낮출 수 있었다.




달고 살던 위장약도 이젠 거의 끊었고, 잘 체하지도 않고, 체질적으로 살이 크게 찌지 않아 내 몸에 문제적 변화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건강하게 잘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방심했다.

내가 건강한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방심했다.


작년 2020년 1월 내게 아주 큰 시련이 왔었다.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도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 위기를 덮으려고 애쓰던 과정에서 내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처음에는 한 번씩 안부 인사하듯 오더니, 점점 내 집에 꿀발라 놓은 마냥 자주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장성 두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국에 파는 흔한 진통제를 한 알씩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5월쯤, 두통은 주기성을 가지게 돼버렸다. 2주에 한번.

약국에서 파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는 상황이 왔고, 결국 신경내과 진찰을 받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몇 가지 뇌 검사를 받고, 의산 선생님에게 병명을 들었다.

"환자분은 편두통입니다."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환자분은 편두통입니다"


내가 아파서 온건 맞지만, 내 이름이 편두통인가......

내가 편두통이란 사람이 돼버린 것 같은 억울함마저 밀려 올라왔다.

내가 편두통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겠지......

하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 하나에 나는 새 정체성을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 나는 편두통이 돼버렸다.


나는 완치가 가능한지에 대해 궁금해했고, 선생님은 덧붙여 말씀하셨다.

"아니요. 힘들 거예요. 환자분의 경우, 다른 규칙적인 변수가 원인이 되어 편두통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지 않고요... 아마 노화로 인한 호르몬 변화가 와서,  편두통이 온 것 같습니다, "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선고라는 말인가...

내가 편두통이 됐다는 것 까지도 받아들였는데, 나는 완치가 안된단다.


게다가 그 실력이 출중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마 호르몬 변화가 있어야 편두통이 끝이 날 거예요. 가령, 셋째를 임신하다거나, 폐경을 한다거나......"


아 네......

솔직히 그럼 폐경이 더 빠르겠네요.....

10년은 아파야 한다는 말씀이시고요......




지금 나는 1년을 넘게 2주마다 오는 편두통과 싸우고 있다. 내 싸움의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술은 이미 끊었다. 원래도 많은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반주 한잔씩 하는 것을 즐겼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이젠 없다. 나는 부부동반자리, 가족 모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아주 조신하게 앉아 물컵만 만지고 있다.


둘째, 늦은 시간 취침도 이제 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했음에도, 나는 7시간 이상을 자고 있다. 밤 10시쯤에 취침을 시작해 5시에 일어나려고 한다. 가끔은, 8살 우리 막내보다 더 빨리 잠자리에 든다.


셋째, 꾸준히 걷기 운동, 요가 운동도 하고 있고, 최근에는 수영도 배우기 시작했다. 유산소 운동이 편두통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원래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를 배우는 새로운 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넷째, 이 중에 제일 힘든 것이 커피를 끊는 과정이다.

커피 안 마시고 열심히 하루를 버티는 게 내게 너무 힘든 일인 것 같다. 특히 여기 호찌민은 커피 파라다이스 그 자체이다. 내가 원하는 맛의 커피가 모퉁이마다 즐비하게 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커피 한잔의 유혹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다.  최근 다행히도 나는 디카페인 커피를 찾기 시작했고, 완벽하게 커피를 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지향점을 향해 노력 중에 있음은 분명하다.


다섯째, 이번에는 한의원도 주 3회 다니며 이 녀석을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해 싸우고 있다.

한의사 선생님도 그러셨다. "제가 다 낫게 해 드릴게요. " 양 의원, 한의원 모두 다 이용해보자. 마치 부처님, 하느님 모두 다 내편이라고 하는 기분이다. (일단 제가 다 나으면 한쪽으로만 줄 설게요.)


여섯째, 다양한 영양제를 털어 넣기 시작했다. 유산균을 시작으로, 종합 비타민, 비타민 C, 마그네슘과 비타민 B, 오메가 3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 중에 하나는 효과가 있겠지...... 원래 비타민 한 알도 안 먹던 내가 이러한 영양제를 먹는 일도 꽤 귀찮은 일이었다. 사람이 좀 아파봐야 정신을 차리나 보다.


주변에서 친구들은 항상 격려해준다. 참 대단한 노력이라고......

그렇다면 이쯤 되면 편두통이라는 "또 다른 나"는 이제 점멸해줘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말이다.


나의 지난 1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도전과 가상한 노력에도 이 녀석은 미동도 없다.

오히려 내 머릿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더 굳건히 앉아서 낄낄대며 웃고 있는 사악한 기분까지 든다.




우아...... 너란 녀석을 어떻게 하면 내가 끝내 줄 수 있을까......

점점 더 악랄해져 가고, 점점 독해져 가는 치료에 대한 집착이 내 영혼을 다 잡아먹는 기분도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참 기분이 나쁘다. 그럴 때마다 그 녀석은 더 비열한 소리로 비웃고 있는 걸 나는 느낀다.


작년, 한국에서 이사 오기 전 편두통 약을 충분히 받아왔고 앞으로 1년은 버틸 수 있다. 내게 생명수와 같은 진통제 1년 치이다. 누구에게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내 무기이자 방패이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1년 후에는 내 미래를 나는 장담 하지 못한다. 호찌민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약이며, 한국으로 가서 약을 받아오는 수밖에 없으나, 이것 역시 코로나 펜더믹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1년의 시한부 같은 위기감이 나의 치료에 대한 집착을 더 독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난 나아야 한다! 안 나으면 큰일이다! 그 녀석이 약 없이 오게 되면, 나는 눈을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짜며, 새우처럼 온몸을 굽은 상태로 며칠을 침대에서 굴러다니겠지. 그리고 구토를 하겠지. 아이들은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배달음식을 의존해가며 살아야겠지. 그렇게 엉망이 되어가겠지.

나는 1년 안에 나아야 한다! "




그러던 이틀 전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정엄마에게 나의 집착에 대한 이야기를 통화로 전했다.

" 지연아. 내 생각에 그냥 낫겠다는 생각을 좀 버리면 어떨까?!"


(엄마...... 나 빨리 낫고 싶어요.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힘들어요......)


"편두통을 나아볼 거라고 생각하는 네 의지가 너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네가 잘못한 것 없이 자연스럽게 온 것처럼, 편두통도 네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 천천히 멀어질 거 같다. 그냥, 아프면 약을 먹어. 그다음을 걱정하지 마라. 방법은 다시 생길 거야. 그냥 아플 때마다 먹다 보면, 어느 순간 2주가 3주가 되어 있을 수 있어.

낫겠다는 스트레스가 널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사실, 이 이야기는 남편도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뭐라는 거야? 약이 1년밖에 안 남았다고!)


그러나 이제 나도 지쳤던 걸까. 아님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던 걸까... 그동안의 나의 무서운 독기는 통화 이후 눈 녹듯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독사 같은 그 녀석"도 그냥 "그 녀석"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 녀석은 오늘도 내 머릿속에서 한 번씩 발길질을 해댄다. 그럴 때마다 내 오른쪽 안구와 뒤통수가 망치를 맞은 듯한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편두통이 오기 전인데도 나는 이 녀석과 이러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다음 주에 자리에서 일어나 또 불놀이를 할 것이다.  자신이 내 머릿속에 있음을 내게 상기시켜서 잔인한 장난을 치려고 할 것이다.


"이봐! 아줌마! 나 장난 아니지??? 어때? 엄청 아프지? 약 오르지?"


(그래, 너 장난 아니다. 많이 아프네. 아줌마 너한테 겁먹었다. 엄청 무섭네. 그래서 약 좀 먹을게. 넌 좀 놀다 가라.  난 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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