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는 어떤 단어 하나로 정해질 수 없다고.
나를 구성하는 특징들을 나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나를 100% 설명해내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나는 가끔 물건을 빠뜨리거나 잃어버린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를 덤벙거리거나 덜렁거린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일 365일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실수가 늘고,
여유가 있을 때는 잃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다.
일할 때는 더 분명하다.
회원들과 스케줄을 조율하며 일정 실수를 한 건 손에 꼽는다.
개인적인 일정은 가끔 놓치지만,
적어도 일을 할 때만큼은 '덤벙거린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대범한 사람인가, 소심한 사람인가?
어떤 선택 앞에서는 나를 믿고 과감하게 전진하지만,
관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깔끔한 사람인가, 지저분한 사람인가?
집을 방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리정돈을 완벽히 해내는 타입도 아니다.
바빠질수록 정돈은 더 느슨해진다.
무던한 사람인가, 예민한 사람인가?
상대방의 돌려 말하는 화법은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표정과 말투, 분위기의 미세한 결에는 예민하다.
말은 솔직해야 하지만, 솔직함에도 결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단 하나의 말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고,
어떤 자리에서는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물들기도 한다.
학창 시절 나는 스스로를 ‘카멜레온’ 같다고 느꼈다.
그때는 그것이 정체성의 혼란처럼 느껴졌다.
어디에 속하든 그 집단의 색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늘 따라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모든 모습이 결국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그 결론을 잊고 살았다.
나도 모르게 나를 단정 짓고,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나에게도 여러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틀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색이 바뀌는 건 혼란이 아니라,
여러 색을 낼 수 있는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