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키우는 14살된 고양이를
오랜만에 볼 때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앙상해진 뒷다리와 말라진 몸통,
걸을 때마다 비틀거리고 끌리는 뒷다리.
잘 올라가던 소파에도 계단없이는 잘 올라가지 못했다.
그를 본 내 마음은 어디 한구석이 애잔했다.
소파를 올라가지 위해 머뭇거리는 그를 볼 때,
발목인대가 다 끊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겹쳐보였다.
어디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마음.
그곳을 가길 위해 누군가를 기다려야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
자유는 줄어들고
누군가의 손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을 때,
나는 나로 서 있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꼈다.
그때 생각이 난 나에게 지금 묻는다.
나는 과연 지금의 몸에 감사하며 잘 지키고 있는가?
지금의 몸은 우리가 지금까지 선택해온 결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미래의 몸을 만든다.
우리 몸은 가만히 있으면
점점 기능을 잃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삶으로 유도한다.
움직임은 더 적어지는데
수명은 길어지고 있다.
그 사이의 몸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움직임의 기능을 하나씩 하지 못한다는 건
단순히 근육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자유를 잃는 일이고,
선택권을 잃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줄어들면,
삶의 방향도 함께 좁아진다.
몸이 불편해도 정신을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몸이 정신까지 무너뜨리기도 한다.
몸은 정신을 지탱하기도 하고,
정신은 다시 몸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몸과 정신은 뗄 수 없다.
몸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한 운동.
우리가 더 오래, 더 자유롭게,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몸을 지켜야 우리를 지킬 수 있다.
우린 똑바로 서있는가?
제대로 걷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몸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