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나는 운동의 이유를 존엄에 두었다.
그런데 나는 그 기준대로 살고 있지 않았다.
한 때, 나에게 운동은 삶이 아니라 다이어트였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살찌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내 삶은 다이어트를 하는 삶과 다이어트를 포기한 삶으로 나뉘어 있었다.
관리된 몸의 상태에선 나를 꾸몄고
관리되지 않은 몸의 상태에서는 헐렁한 옷으로 나를 숨겼다.
나는 그 겉모습이 없어지면 내 가치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이어트 할 때나 운동을 했던 내가 달라졌다.
입시체육을 하면서 운동을 하며 땀 흘리는 가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운동코치를 꿈꿨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자
나의 트레이닝 방향이 사람들의 니즈에 끌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배우러 왔다곤 했지만
대부분 그 결과를 체중감량으로 기대했다.
운동의 결과는 늘 수치로 확인되었고
그 숫자가 변하지 않으면
운동의 의미도 쉽게 흔들렸다.
나 역시 그 흐름 안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왜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만 묻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여전히 내 기준은 안이 아닌 바깥에 있었다.
외부의 기준으로 몸을 바라보고, 운동을 바라보면
그 기준은 언제든 흔들린다.
그래서 운동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왜 운동해야 하는지를 나에게 묻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운동을 삶에 들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운동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 되었다.
나는 왜 운동하는가?
그것의 목적이 내 안에 있는가?
아니면 외부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