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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ug 19. 2019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셨나요?

[에세이] 세계를 여행할 당신의 인터뷰 : 다섯 번째 편지

당신에게


괜찮은 하루였어요. 크게 화나는 일도 없었지만, 그다지 즐거운 일도 생기지 않았어요. 배는 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어 밥을 먹었고 어제처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였어요. 적당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끝난 하루의 끝에 아쉬운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째서 평화로웠던 하루가 어떤 색과 향기도 품지 못한 채 삭막하게 보일까요? 오늘따라 일상은 아주 지루했고 모든 감각이 무뎌져서 결국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까 두려워요. 당신의 하루는 괜찮으셨나요?


당신은 낯선 곳에서 눈을 뜨던 새벽을 기억하시나요? 아직 잠에 취해 눈을 뜨지 못한 채 맞닿은 촉감은 서늘한 바람인가요? 보드랍고 두툼한 이불의 포근함에 더 깊이 몸을 파묻으셨나요? 코 끝에 이국적인 향신료의 알싸한 향기가 퍼졌나요? 아님 자기 직전에 막 감은 머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 그도 아니라면 비 내리는 날의 흙냄새일까요? 힘겹게 잠에 취한 눈을 떠서 어떤 세상을 보셨나요? 방안을 채운 빛은 은은한 조명이었는지 한 줄기 햇빛이었는지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참 많은 아침을 낯선 곳에서 시작했어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을 다녔지요. 세본 적 없으나 적어도 10개는 훌쩍 넘을 도시를 지났고 몇몇 장소에서는 꽤 오랜 시간 머물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당신은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장소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요. 예약하지 않더라도 습관처럼 비행기표를 검색해요. 예전에 당신께 여행자가 되고 싶은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지요. 숙명이라는 듯 당연하게 세계 여행을 하고 여행자로 살아갈 거라는 당신의 대답에 잠시 놀라 말을 잇지 못했어요.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느꼈기에 그토록 의심치 않는 확신을 얻으셨나요?


당신 덕에 처음으로 이집트 다합이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어요. 물가가 저렴해 경비를 아낄 수 있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래요. 당신은 다합에 머무는 10일 동안 매일 스쿠버 다이빙을 했어요. 여러 여행자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숙소에서 눈을 떠 그들과 함께 바다로 향했어요. 걸어서 들어갈 정도로 얕은 바다는 일순간 깊어져 발이 닿지 않는 높이로 당신을 맞이했어요.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아래로 바다의 일부가 되어갔어요.


신비한 물고기를 가까이 봐서 좋았을 거란 추측은 보기 좋게 틀렸어요 깊은 물속에서 흐려진 시각 대신 다른 감각을 깨어났어요. 산소를 덜 사용하기 위해 움직임을 줄이자 평온한 상태가 되었지요. 공기 대신 물이 온몸을 강렬하게 감싸 안았어요. 평소엔 제대로 들을 일 없는 숨소리가 고요한 바다에서 당신의 귀에만 큰 회오리처럼 몰아쳤어요.


당신의 말을 따라 멋들어지게 표현했으나 사실은 모르겠어요. 여행의 감각은 머리로 어림짐작할 수 없고 직접 해봐야 알 수 있어요. 깊은 물속에서 뛰는 심장은 소리를 내나요? 일정한 박동으로 파동을 일으켜 촉감이 되나요? 바다가 주는 생경한 감각을 당신은 기억하시나요? 그곳의 온도와 블루홀이라고 이름 붙여질 만큼 푸르고 차갑나요? 내쉬고 뱉는 숨소리와 손에 닿는 모든 것이 그려지나요? 당신은 새로운 경험이 깨운 감각을 여전히 잊지 못하셨나요? 뭍으로 나와 폐 한가득 공기를 채워 넣고 뛰는 심장을 잠재우려 숨 고를 때의 감각까지요.


당신은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을 기억하시나요? 첫 여행지에 발 딛는 상상을 하며 무섭지는 않으셨나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긴장감에 몸을 작게 떠셨나요? 새로운 일이 불러온 위험과 공포, 불안감에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후회는 없으신가요?


당신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유를 느끼셨나요? 하나의 세계의 낯선 이방인으로 생활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아는 단어 하나 찾으려 애써본 경험이 있을까요? 언어는 때론 칼로 변해 당신을 찌르고 때론 노래처럼 마음을 녹이나요? 소수로 살아가며 다수일 때 모를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으셨나요? 아무리 용을 써도 할 수 없는 일과 간절히 소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셨습니까?


당신은 추억 속에 남아 문득 생각나는 사람을 만나셨나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그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카탈루냐 출신인 그분의 댁에 머물렀다고요. 좋은 집으로 기억하는 걸 보니 여행자에게 무척이나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이었겠지요. 다정한 친구를 만나 놓치기 쉬운 바르셀로나의 본모습과 지나쳐 버릴 골목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새로 만난 친구가 평범한 여행지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소로 바꾸었나 봐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덩달아 새 친구를 사귄 듯 마음이 들뜨고 기뻤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추억에 어떻게 남길 바라시나요?



당신께 모로코 페스(Fes)에서 맡은 동물의 시체 냄새가 아직까지 남아있나요? 가죽 염색이 유명한 도시의 바닥을 색색으로 채운 염료에 호기심이 가졌었지요. 찌릿하게 역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민트 잎을 코 끝에 대야 하는 공간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미로같이 굽이굽이 복잡하게 얽힌 오래된 도시의 골목에 매력을 느꼈어요. 


당신은 여행으로 지금껏 만나지 못한 세계와 마주해요. 새로운 사람의 새로운 언어로 듣는 새로운 생각은 삶의 가치를 바꾸기도 하지만, 기존의 태도를 단단하게 만들어줘요. 아이스크림조차도 새로운 맛을 먹어봐야 하는 당신께 오감을 자극하는 여행의 새로움은 지나치게 강렬해서 끊을 수 없는 숙명인가요? 당신이 여행지에 오래 머물기 위해 절약하고 버티는 자신의 방법을 극단적이라고 여기게 될 지라도요. 


하나 그 세계가 유토피아는 아니겠지요. 페스를 다녀온 당신은 달라졌어요. 여행지의 인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당신이 스친 다양한 도시 중 하나로 남았네요. 비록 마주한 세계가 기대보다 실망스럽고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이라도 끝내 당신의 일부로 스며들어요. 당신이 끌리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되었어요. 



당신도 긴 여행에 지치셨었나요? 두고 온 사람들과 매일 머물던 집이 눈이 밟히지 않으셨나요? 예민해진 감각이 더 이상의 새로움을 거부하거나 모든 걸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셨나요? 


오히려 당신은 여행이 끝나는 게 더 속상했다지요. 강렬한 감각은 진한 후유증을 남겨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긴 여행 전부터 여행기를 써서 더 많은 사람에게 여행을 알리고 경험을 나누길 원했어요. 오랜 여행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기록했으나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흩어졌어요. 여행이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 들어 떠나기 전보다 당신의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어요. 


한동안 상실에 빠져 보낸 후, 다시 떠난 여행에서 이전의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어요. 이전의 여행에서 만난 사람이 당신께 소중한 기억을 숨겨놨어요. 그의 나라 사람들과 더 대화하고 싶어 그들의 언어를 배웠고 다시 그들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네요. 강렬했던 감각은 당신을 행동하게 만들고 여정의 시작에 발판이 되었어요.


올해 목표가 여행 줄이기라는 당신에게 다시 멍해졌어요. 여행을 말하는 내내 신난 당신의 목소리로 정반대의 말을 들어서요. 당신은 차근차근 마음을 설명했어요. 가끔은 여행을 억지로 다녔을지도 모르겠다고, 단지 밖에 머물고 싶은 사람 같았다고, 소비되는 시간과 돈 대신 당신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잠시 머물더라도 당신은 분명 떠나는 걸 멈추지 않겠지요. 


당신은 다음에 어디로 떠나실 건가요? 최근에 관심이 생겼다던 티베트나 스리랑카, 네팔 같은 나라인가요?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던 뉴욕인가요? 당신이 어떤 땅에서 어떤 태도로 쏟아지는 감각을 마주할지 예측할 수가 없네요. 당신은 낯설고 새로운 감각에 온몸을 내줄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이기에 당연하다던 말 대로 여행자가 될 거라 확신해요. 당신의 바람처럼 눈 앞의 세상을 풍경처럼 보내줄 수 있는 여행자요.


당신은 말라비틀어지던 감각을 깨웠어요. 후각은 낯선 감각을 예민하게 인지하지만, 금방 익숙해져 아무런 향기도 맡지 못해요. 일상의 향기에 너무 익숙해졌을까요? 당장 먼 곳으로 떠날 수 없어도 감각은 깨울 수 있어요. 매일 지나치던 카페에 들어가요. 갓 볶은 원두의 고소하고 쌉싸름한 냄새가 은은하게 코에 머물러요. 더운 날씨에 맺힌 땀방울이 차가운 에어컨의 냉기에 사라지기도 전에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려요. 곳곳에 채워진 식물들이 공간에 생명력을 불러일으켜요. 얼음이 가득 찬 커피에 빨대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얼음과 유리컵이 닿는 소리를 들어요. 투명한 컵에 더 투명하게 반짝이는 얼음이 찰랑거리며 부딪혀요. 당신 덕에 생긴 감각의 소란스러움이 반가워요.



늦은 밤엔 매미가 하염없이 울어 자신을 알리고 있어요. 애처롭고 간절한 외침에도 매정하게 문을 닫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잠시 집중해봐요. 제법 서늘한 여름밤의 공기를 창문 사이로 맡아봐요. 당신도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바람을 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공기의 흐름이 느리게 바뀌고 매미 소리가 까무룩 멀어지네요. 그만 자야겠어요. 당신도 안녕히 주무세요.


당신이 여행자라 의심치 않는 제이드가



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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