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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Sep 15. 2019

당신은 오늘 밤도 분주한가요?

[에세이]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당신의 이야기 : 일곱 번째 편지

당신에게


아름다운 밤이에요. 이뤄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시간이 멈추길 바라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을 만나 현실을 잊을 만큼 실컷 웃고 떠들기만 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쉬워요. 왜 즐거움은 이리도 짧고 고통은 재빨리 돌아와 무한대로 길게 느껴지는 걸까요? 손을 뻗어 제법 쌀쌀한 밤공기를 품에 채우니 마치 아름드리 가득한 꽃다발을 안은 기분이에요. 꽃의 아름다움 만큼 세상이 아름다운 날도 있네요. 신나서 거리를 뛰어다녀도 오늘만큼은 말리지 말아 주세요. 오늘이 지나면 이런 용기도 사라지겠지요. 이왕 즐거운 밤이라면 내일의 피로나 현실의 걱정을 잊은 채 끝까지 즐겨볼까 해요. 지금 안고 있는 꽃다발이 아침에 모두 져버릴 나팔꽃일지라도.



언제나 당신의 시간도 아름답길 원하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밤에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어요. 오늘 밤도 당신은 분주한가요? 해야 할 일이 여전히 쌓여 있나요? 당신은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활동이 많은 동아리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일은 의외로 손이 더 많이 가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지나버렸다고 했어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부담스러웠지요. 과정과 효율성의 문제 사이에서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고 다시 화해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함께한 동아리 부원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어요. 그래도 끝까지 올해 맡은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던 당신의 일 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네요.


대학생인 당신은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갔어요. 이제 고학년이 되어서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을 하면서 보냈어요. 방학이라 아무도 없는 학교가 더 편할 정도로요. 원체 느긋하게 쉬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방학 때도 넘치는 할 일의 목록이 때론 답답하고 달갑지 않았겠지요.


당신은 예전부터 그러했어요. 20살의 열정을 기억하나요? 영상 제작을 좋아하는 당신은 친구들과 12시간 밤을 꼬박 새워서 촬영을 했어요. 인적이 없는 장소라서 먼지도 많고 벌레도 많아 모두 고생했지요. 앉을 곳도 없고 물도 없이 소품으로 챙겨간 사과 하나로 6명이 버텨야 했어요. 무모했던 열정과 미숙함도 이젠 아름답게 기억하는 추억이 되었어요.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당신의 입꼬리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어요.


당신의 성실함과 노력이 눈에 띄게 잘 보여서 되려 당신을 걱정하는 이유가 돼요. 오늘 나에겐 아름다운 꽃이 두 손 모자랄 정도로 아주 많으니 당신 걱정에 몇 송이 정도 써버려도 괜찮아요. 꽃 잎 하나를 떼며 할 일을 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건 아닐지, 다른 잎에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떨어지는 꽃 잎에 걱정을 하나씩 내려놔요. 이윽고 마지막 꽃 잎을 떼고 아픈 곳이 없게 해달라고 빌어요. 덩그러니 대만 남은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당신이 힘들어도 덩그러니 지켜볼 수밖에 없고 아무것도 대신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속수무책으로 쌓이는 걱정에 당신은 더 씩씩하게 웃으며 “괜찮아 안 죽어.”라고 말해주겠지요. 요즘 당신이 제일 자주 하는 말이잖아요. 평소에도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 해보자라고 내뱉는 사고방식을 지녀서 무턱대고 시도하거나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요. 죽진 않으니까 괜찮다는 말이 당신에게 꼬리를 무는 고민을 끊어주고 은근히 용기를 북돋아주며 부담을 덜어줘요. 때론 무모했던 선택에 후회도 하지만 더 이상 이미 내린 선택에 미련을 두지 않고 살아가요. 곱절의 노력으로 책임지는 사람이지요. 튼튼하게 내린 뿌리가 거센 바람에도 꽃이 꺾이지 않도록 든든하게 버텨주는 것처럼요.


시간을 쪼개고 휴식을 줄이며 지내는 당신에게도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20살의 풋풋한 열정이 필요하대요. 20살의 당신은 영원히 같은 마음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늘 같은 의욕을 갖는 게 쉽지 않았나 봐요. 그래도 아직 20대라는 나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준다고 했어요. 미래를 위해 중요하게 선택하되 뭐든 시도해도 괜찮다고 판단했어요. 당시엔 괴롭더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 주었다고요.


그래서 최근엔 당신이 평소 하는 공부와 일과 다른 새로움을 경험했더군요.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고요. 작곡에 관심이 생겨 따라 해 보거나 학교라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여러 활동에 지원하고 면접도 봤어요. 당신은 언제나 다가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스스로를 위한 기회를 찾아 고군분투해요.


올해가 가기 전에 취미를 하나 정도 가져보고 싶다는 목표가 이젠 놀랍지도 않아요. 주변에서 다양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보며 부러웠다고요. 독서나 영화 같은 문화생활도 물론 즐기고 싶지만 최근에는 자전거 타기같이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일이나 운동에 관심이 생겼어요. 당신에겐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고 단체를 운영하고 꿈을 위해 도전하는 중에도 여가시간마저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충실히 당신의 시간을 채워요.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해낸 하루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삶. 이런 생활이 당신에겐 행복의 일부예요. 몸은 조금 고되고 지쳐도 편안하게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겠지요. 당신은 지금 행복한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지만 행복의 기준을 설명해주었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냈고 의미 있는 성취를 해냈다는 뿌듯함이라고 했어요. 그저 하루하루 행복하길 바란다고요.


당신이 추구하는 행복과 차이는 있지만 아름다운 밤과 함께한 나팔꽃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모든 사람의 기준이 같을 수 없으니까요. 각자의 시기와 기준에 맞춰 꽃이 자라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코스모스, 겨울엔 동백꽃이 펴요. 그 틈 사이로 이름을 다 말할 수 조차 없이 많은 꽃들이 피고 저물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도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으로 물들길 기다리겠지요.



어쩌면 당신이 가꾸는 건 이름 모를 씨앗이 가득 심어진 정원 같아요. 당신에겐 이미 피어난 꽃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겠지요.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씨앗부터 고개를 내민 새싹과 잎 하나하나 피어나는 과정을 당신이라면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거예요. 쑥쑥 자라도록 꾸준히 물을 흠뻑 주고 방해가 되는 돌멩이를 골라내요. 어쩌면 꽃이 아닐 수도 있어요. 키가 갑자기 자라는 대나무일지도, 어쩌면 꽃 없이 열매를 맺는 무화과 나무라도 자라는 매 순간 기쁨으로 가득하겠지요. 당신이 행복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매일이 빛나고 아름다운, 영광의 순간이 될 거예요.


부디 아주 오래 행복하세요.


당신을 만나 영광스러운 제이드가



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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