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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Oct 06. 2019

당신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에세이] 남에게 베풀 때 더 기쁜 당신의 인터뷰 : 여덟 번째 편지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몇 밤을 부질없이 흘려보내야 했어요.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문장들이 물안개처럼 뿌옇게 흩어져 한 글자도 잡히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어요. 대단하지만 때론 안쓰러운 모습에 만감이 교차해요. 겉보기에 부드러워 보여도 내면은 아주 강한 사람 같아서 더 어려웠어요. 마음은 복잡했고 정신은 산만했어요. 발을 헛디뎌 깊은 물에 떨어진 것처럼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렸어요.


당신에게 필요한 게 위로와 걱정일까요? 화나는 일에 같이 욕해줄까요? 아님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이 변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둘까요? 전부 오답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이런저런 이유로 지우고 걷어내니 단 하나만 남았어요. 당신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요? 당신과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부터 꺼내 봐요.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파도 같다고 말한 일이요. 인간관계에서 항상 파도처럼 휩쓸려왔다가 다시 쓸려간다는 뜻이래요. 무심코 했던 말일까요? 혹시 친구는 알고 있나요? 당신이 그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걸요. 뇌리에 박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걸요.



당신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고집도 부리지 않았다지요. 물론 친구들과도 싸우지 않고 원만하게 생활했어요. 친구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고 누구와도 어울리는 착한 아이요. 당신은 성격이자 본성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면 보답을 해야 하는 마음이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성심성의껏 도우려는 행동으로 자랐어요.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하고 그들의 선택에 따른 적도 많다지요. 무엇이든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뿌듯하고 기쁘다고 했어요. 예전보다 더 단단한 인간관계를 쌓고 소홀해진 관계가 되어 아쉽지 않도록 신경 쓰고 늘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너무 잔인해요. 사랑과 행복을 나누려는 예쁜 마음은 순식간에 욕심이 되기도 해요. 무얼 바라고 하는 거냐는 주변의 오해와 과하게 이타적이라는 걱정을 한 마디 씩 내뱉어요.  당신을 의심하고 답답하게 보는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스스로가 이상한 존재라고 느껴졌겠지요. 경계하는 사람에게 상처도 받았지요. 점차 스트레스는 쌓이고 주변에서 하는 말에도 전보다 예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당신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잔인한 세상에 상처 받아 의심을 갖게 된 거겠죠. 그러나 다른 곳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과 잔인한 세상 때문에 되려 당신이 다쳐야 하나요? 왜 당신이 변해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당신을 억지로 이기적으로 살라며 강요하나요?


당신이 파도를 볼 때마다 친구의 말과 겹쳐져 그동안 겪은 의심과 걱정을 떠올릴까 겁이 나요. 투명했던 마음이 하얗게 거품으로 흐트러져 불투명하게 부서지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당신은 말을 들을 때마다 곱씹어 보고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고민한대요. 단점으로 여기며 고쳐볼까 했지만, 오히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요. 당신에겐 여전히 어떻게 생각을 바꿔야 할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어요.


슬픈 사람에겐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울음처럼 들리고 바다를 가득 채운 물이 눈물로 보이겠지요. 당신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해일처럼 밀려오는 말과 기억에서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길 원할 뿐이에요.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하고 주저하던 마음은 간절한 염원이 되었어요. 이제야 아주 작은 유리병에 담긴 편지를 당신이란 파도에 띄어보네요.


당신이 파도라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될래요. 친했던 동기들이 각자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고 고향 친구들은 전부 군대에 있어서 당신은 혼자 있는 시간이 예전보다 늘었어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특히 좋아하기에 더 외롭고 심심하겠지요. 게다가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 홀로 살고 있어서 허전함이 커진 듯해요. 우연히 친구 집에 갔다가 가족들과 같은 공간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했어요.


그래도 혼자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려 힘써요.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가고 쇼핑도 해요. 특히 영화를 자주 봐요. 거리는 조금 있지만 화면이 큰 영화관에 일부러 찾아가요. 바글바글한 사람들과 팝콘 냄새를 맡으며 들뜬 기분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된대요. 아직 해본 적 없지만 홀로 여행도 가보고 싶어 해요. 지평선이 보이는 낭만적인 곳으로. 아무리 홀로 고군분투해도 한순간 밀려오는 공허함은 당신도 어쩔 수 없어요. 혼자라는 기분은 아직 어렵고 멀리하고 싶겠지요. 당신이 외로운 파도라면, 물고기가 되어 외롭지 않도록 당신 주변을 이리저리 떠돌게요.



당신이 지쳐 기운을 잃은 파도라면, 모래사장이 될래요. 하얗게 흐트러져 힘을 잃었을 때 잠시 들러 쉴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이 울적한 파도라면, 외로이 서있는 등대가 될래요. 여기에 당신처럼 외로운 이가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는 말라고 공감해줄게요.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알려 줄게요. 당신이 상처 받은 파도라면, 하늘의 하얀 구름이 될래요. 마주 보며 당신과 눈을 맞추어 두둥실 흘러가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보여줄게요. 그러니 굳이 흔들리지 않으려 안간힘 쓰지 마세요.


당신이 진정으로 파도라면, 그곳은 썩지 않을 거예요. 움직임 없는 고인 물은 썩고 악취가 나기 마련이니까요. 당신이 바닷속 많은 것을 어딘가로 흘러가게 하고 원활한 흐름을 만들고 있어요. 누군가는 당신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며 화해하고, 버거운 시간을 위로받았겠지요. 휩쓸리는 선택을 멈추지 않아도 괜찮아요. 행복을 나누고 도움을 건네는 일이 즐겁다면 계속 그렇게 행하세요.



당신의 친절에 누군가는 웃을 수 있고 고마워해요. 만에 한 명일 지라도 호의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 더 큰 행복을 함께 나눌 사람이 분명히 당신 곁에 있어요.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던 당신을 활발하게 지내도록 도와준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아직도 고마워하는 것처럼요. 당신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거예요. 고마움이 오래 남아 언제라도 다시 보고 싶을 만큼요. 첫 문장을 헤매고 허우적거리던 난 당신에게 휩쓸려 이제 마지막 문장을 씁니다. 안녕, 오늘도 투명하게 반짝거릴 파도 같은 당신.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제이드가.



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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