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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Nov 12. 2019

당신은 선택한 길을 확신하나요?

[에세이] 취업 대신 다른 선택을 한 당신의 인터뷰 : 열 번째 편지

당신에게


밤에 길을 걷노라면 가끔은 앞장선 그림자에 기대어 주저앉고 싶어요. 무기력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기운 없는 발걸음을 내디뎌요. 생기를 잃은 눈빛으로 멍하니 바닥만 보고 걸어요. 잠시 뒤적인 휴대전화는 고요하고 무엇도 즐겁지 않아요. 겨우 고개를 들어 본 거리에 괜히 더 서러워져요. 노란빛의 가로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자신의 존재를 뽐내요. 신호등은 제 역할을 다 하고 깜박이네요. 초록불을 기다리며 본 하얀 횡단보도가 유독 잔인하게 선을 지켜요. 달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내밀어요. 모두 쓸모 있게 거리를 채우는데, 저만 없어도 될 존재처럼 초라하게 느껴져 심술이 납니다. 알아요. 길은 아무 잘못이 없고 오늘따라 기분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지금쯤 길을 걷고 있을까요? 평소에 산책을 자주 하니까요. 귀에 흐르는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했지요. 걸으며 보는 풍경이 매번 다르기도 하고 바람을 느끼고 햇볕을 듬뿍 받는 기분은 런닝머신과 큰 차이가 나요. 산책의 장점을 줄줄이 말하다가 결국 그냥 걷는 대요. 생각이 필요하거나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요.


지금 그곳은 한 낮이겠네요. 당신의 선택은 생활하는 시간을 바꿨어요. 대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이라는 길 대신 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거짓된 말을 적기가 어려웠대요. 자신을 억지로 꾸며 포장하고 알맹이 없는 텅 빈 외침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고요. 운 좋게도 가정 형편에 여유가 있어서 공부를 더 하고 있어요. 가장의 무게 때문에 학업을 멈춰야 했던 아버지께서 당신의 선택에 대해 무한한 지지를 보냈겠네요. 한국에서는 대학원을 마쳐도 당신의 자리가 없을 거라는 막연한 걱정과 경제적으로 빠듯해도 삶의 질이 높은 생활을 꿈꾸며 외국으로 떠났어요.


사람들은 인생을 하나의 길이래요. 우리는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라 불러요. 그래서 꽃길만 걷게 해 준다며 애정을 표현하고 고통스럽고 팍팍한 현실은 가시밭길로 여기지요. 화려하고 주목받는 삶엔 레드카펫이 펼쳐져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의미를 만들어요. 이별의 순간엔 각자의 길을 걷자고 하네요. 당신은 무슨 길을 가고 있나요? 뻥 뚫린 탄탄대로인가요? 혹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가리어진 길 위를 서성이나요?



취업과 학업, 갈림길에 서있던 당신을 움직인 건 고등학교 시절에 본 한 편의 영화일지도 몰라요. 그 영화엔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청년들이 나와요. 그들은 사회의 잣대에 무모할 만큼 반대되는 선택을 하지요. 젊음이란 가로등이 내뿜는 빛은 강렬해서 홀린 듯 끌려가게 만들어요. 길 끝에 기다리는 존재를 알지도 못 하면서요. 그 빛에 눈이 멀어 헤매고 자신을 망가트려요. 막다른 골목길에 부딪히면 오히려 벽이 무너질 거라 믿으며 맨 몸으로 질주해요.


패배자 같은 영화 속 청년들의 삶까지 멋있었던 건 아니지만 세상이 강조하는 성공이 진정으로 옳은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는 대사도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하기에 충분해요. 영화가 건넨 가치와 당신이 쌓은 경험이 합쳐져 화살표가 되었어요. 사회의 기대에 맞춰 늘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선택한 길은 달라도 장애물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겠지요. 외국인으로 산다는 개 쉽지만은 않아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정보를 얻고 알아서 해결해야 해요. 집을 구하고 이사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겠네요. 태어나 줄곧 가족들과 살았기 때문에 집을 구하는 과정을 모를뿐더러 의사소통도 외국어로 해야 하니까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곳에서 꽤 지냈지만 여전히 당신은 막막해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타지에서 혼자 지낼 때 무엇이 가장 무서운가요? 당신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게 제일 걱정이래요.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아프면 어떡하나요?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지 못하면 누가 알아채고 도와줄까요? 끝내 혼자 남겨질 거라는 공포가 당신을 조여와요. 현실감이 없어서 점점 더 극단적인 두려움에 떨어요. 상상만으로 설움에 겨워 지금의 선택을 포기하고 싶어요.


그럴수록 당신은 한국에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해요. 가족이 보고 싶고 애틋한 감정이 생겨요.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과 집 앞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친구들을 떠올려요. 시대가 바뀌어 아무리 연락하기 쉬워졌다고 해도 얼굴을 마주한 만남보다 나을 수 없겠지요. 당신의 외로움을 엿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고독이 계속해서 고립이 되고 당신의 길마저 흔들게 될까 봐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국에 두고 계속 이 길을 가야 할지 갈등하나요? 당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혹은 당신의 이상적인 삶에 가까워지려 꾀를 부리는 기분이 들어요? 혼란스럽겠지요. 그러나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는 당신에게 속 시원히 답해줄 수 없어요. 언제나 우리를 더 괴롭게 만드는 건 현실의 장애물보다 자신의 존재나 미래에 걷게 될 길이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는 불안 같아요. 


당신의 길은 외국어로 수업을 듣고 능동적으로 논문을 찾아가며 공부를 하고 끊임없이 문화의 낯섦을 대면해요. 자신이 없다고 했지요. 졸업은 둘째치고 다음 학기까지 무사히 버티길 바란다고요. 공부가 안 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갈 수도 있고, 그만둬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다시 갈림길에 서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과거에 걸어온 길이 도움이 될지 언정 해답은 아니겠지요.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도 당신은 고민했으니까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는 의문을 가졌으나 주체적으로 선택하기엔 너무 어렸고 용기가 없었다고 했어요.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막연히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대요.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마음속 암묵적인 규칙을 따라 재수를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꾸역꾸역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돌이켜보면 후회 없는 선택이라도 당시엔 틀린 것처럼 위태로워요. 


결국 당장 결론을 내릴 수 없나 봐요. 선택한 길이 부디 맞길 바라거나 맞는 길이 되도록 열심히 살뿐이에요. 당신이 불안과 걱정에 대처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자의 방법과 비슷해요. 운이 좋은 편이라 여태껏 했던 걱정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거나 무사히 해결되었다고 했지요.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될 거라 여유를 가져봐요. 그리고 당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면 걱정도 소용없겠네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신경 끄고 편하게 판단해요


자신이 걷는 길을 굳세게 확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만약 누군가 확신한대도 그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우리는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며 어디로 가야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젊은이가 고민할 질문이자 생애를 두고 해결할 문제겠지요. 그래서 하찮은 위로나 어쭙잖은 격려는 하고 싶지 않아요. 의지만 있으면 어디든 길은 통한다는 명언도 꺼내지 않으려고요. 힘들어도 버티며 같이 걷자고 보채는 투정도 그만둘래요. 


그럼에도 조심스레 전하는 마지막 바람이 하나 있어요. 각자의 길이 서로 얽히고설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오래된 관계와 멀어져요. 간혹 당신을 망치려는 사람이 찾아오고 누군가가 당신의 남은 길을 함께 걷고 싶어 할 수도 있지요. 그동안 잘 살아왔다면 반드시 해낼 거라고 응원해주는 이들도 생기겠네요. 무척 멋진 일이나 누구도 당신의 길을 대신 만들어주고 평생 똑같은 길을 걷지 못해요. 세상은 너무 바쁘고 그들도 자신의 길을 만들기도 벅차니까요.


오직 당신의 그림자만 당신에게 꼭 붙어 따라다녀요. 아이만큼 작고 흐릿해서 나약하게 사라질 듯싶다가 금세 거인처럼 몸집을 키울 거예요. 외로운 날에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아요.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을 때 당신의 그림자에 기대어 쉬세요.



당신은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요. 더 똑똑한 사람, 더 건강한 사람이거나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도 상관없대요. 그냥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고 있어요.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지는 품격이 완성되고 자랑스러운 자신을 꿈꿔요. 이게 당신이 바라는 미래라면 어떤 험난한 길에서도 스스로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길을 믿을 수 없다면, 당신의 그림자를, 당신을 믿어주세요. 남은 밤, 당신의 길은 밤새 켜있을 가로등과 그림자에 맡기고 이만 떠나야겠어요. 숱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당신을 믿는 제이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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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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