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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01. 2019

당신은 20대의 마지막을 향해 가나요?

[에세이] 조금씩 스스로를 알아가는 당신의 인터뷰 : 열한 번째 인터뷰

당신에게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다른 세상으로 변했어요. 분명 20살이었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을까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도 돼버렸나 봐요. 마법에 걸린 게 분명해요. 또 눈을 깜박하면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나이로 살아야 할까요? 산타할아버지가 듣고 계신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시간을 멈추는 묘약을 달라고 빌게요. 머리말에 제일 아끼는 양말을 걸어 놓을 테니 가져가도 괜찮아요. 새해에 뜨는 해님한테 떼를 쓸래요. 맛있는 떡국을 참는 대신 나이를 취소해달라고요. 시간이 왜 이리 빠르냐고 한숨 쉬던 어른이 된 걸까요? 새삼 억울해요. 푸른 봄이던 내 잎사귀가 자꾸 물들어요. 


당신은 나와 다른 마음일까 궁금해요.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해요. 그동안 철없이 살았다고 생각하는지 이렇게 30대를 맞이해도 괜찮은가 고민한대요. 사람들의 머리엔 나이에 맞는 그림이 있어요. 10대를 떠올린 모습이나 바람이 70대의 그것과 같지 않아요. 물론 30대도 있어요. 당신이 그렸던 30대는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번듯한 어른이었어요. 편한 옷차림보다 정장을 즐겨 입고 운전을 해요. 공손하고 점잖은 말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드러나는 나이인 줄 알았대요. 


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어른의 기준이 나이가 아님을 느껴요. 아직 당신은 어른이 아니래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어서요. 예전보다 호기심을 잃어가는 자신을 볼 때 가장 슬퍼진대요. 곰곰이 궁리해도 더 이상 잘하고 싶은 일이 없고 과거에 참 좋아했던 일도 시들한가 봐요. 분명 잘하지 못해도 즐겁고 추억으로 남기던 시간이 당신에게도 있었을 텐데요. 순수했던 어제를 떠올리며 괜히 짠한 마음이 들겠지요. 이젠 애매한 능력과 애매하게 많은 관심사를 갖고 그저 그런 애매한 사람으로 남을까 겁이 나요? 숫자만 늘리다가 추하게 늙지 않을까 심란한가요?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던 어린 당신을 그려봐요. 인생의 첫 기억이라고 할 만큼 강렬했던 날도 있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을 갔고 잘 모르는 선수가 준 사인볼도 받았어요. 어두운 통로 끝으로 새어 나온 빛에 찡그린 표정도 잠시일 뿐, 밝고 소란스러운 경기장이 나타났겠지요. 뜨겁던 야구장의 열기가 다시 느껴지나요? 생생하게 기억나요? 야구를 하나도 모르고 긴 경기시간에 지쳤던 어린아이는 지금 야구를 가장 좋아해요. 친구들과 야구장에 자주 갔던 학창 시절과 달리 일 년에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지만요. 

생경했던 이별의 감각도 배웠어요.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가물가물한 기억에서요. 영어학원에서 만난 친구와 학원이 끝나면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친해졌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친구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다시 만날 수 없었지요. 하룻밤 사이에 친구에서 생판 남이 되어버린 상황이 이상했을 거예요. 이후로 학원이나 대외활동처럼 돈과 관련된 집단에서는 구태여 친구를 만들지는 않게 되었다고요. 친구와의 헤어짐이 익숙지 않았던 당신은 이제 사람 간의 일정한 거리가 자연스러워요.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점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사소한 문제로 다투고 서로를 잃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은 또 변했어요.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배려심 없는 언행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 부단히 자신을 되짚었나 봐요.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고려한다고 평가하는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해요. 한 해가 지날수록 만남과 헤어짐이 쌓였고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통하는지 알아가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나이가 들며 변했고 예전 모습과 달라져 있기도 해요. 그들이 일상의 전부이고 평생을 함께 할 거라 순진하게 믿던 시절도 있었는데, 세월의 힘은 때론 그들의 손을 놓는 결정을 내리게 해요. 당신이 현재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대학교에서 만난 인연이래요. 정확히 답을 내릴 수 없어도 당신과 죽이 잘 맞는 이들에겐 분명 비슷한 분위기가 흐를 거예요. 


어른의 인간관계를 보면 우리는 모두 야구 경기의 투수 같아요.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건 동료 야수들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경기를 풀 수 없는 모습이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살 수 없는 우리와 닮았어요. 그러면서 결국 9명의 타자와 외롭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와요. 각자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은 경기에 나선 투수처럼 막중하고 실점은 인생의 자책점으로 남아요. 얄궂은 운명이네요. 


타자로 산다고 별반 다를까 싶어요. 어차피 홈으로 돌아오는 지루한 쳇바퀴처럼 보여요. 1루에서 2루로 다시 3루를 지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듯 우리도 각자의 현실을 벗어나려 3루까지 이 악물고 뛰어도 결국 제자리인 느낌이에요. 안 그래도 빨리 지나버리는 20대를 네모 반듯한 사각형으로 그려진 선만 따라간다니 서글퍼져요. 꼬맹이 주제에 인생이 별 건가 치기 어린 소리를 해요.

당신은 20대를 야구장에 처음 온 어린아이라고 표현했어요. 당신의 말을 그대로 빌려봐요. 아이는 처음으로 크고 시끄러운 경기장에 와서 매 순간이 신기하고 낯설어서 얼떨떨하겠지요. 경기의 규칙도 모르니 슬슬 피곤해서 전광판의 숫자만 보게 된다고요. 투수가 던지는 공과 타자가 쳐낸 타구를 수비수가 글러브로 받아 다른 동료에게 던지는 세세하고 아름다운 과정과 동료애, 열정을 놓친 채 이기고 진 결과만 볼 수밖에 없어요. 어느새 각종 수치만 남은 20대의 모습과 똑같대요. 학점이나 영어성적, 학자금 대출이라는 이름의 숫자요. 우리가 삶을 더 사랑하고 소중한 기억을 더 많이 남기면 좋겠다던 당신의 끝맺음이 잊히지 않아요.


당신은 숫자투성이의 20대가 떠오른다고 했지만, 시간만큼의 취향이 쌓였어요.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바빠서 밤이 늦어서야 집에 가곤 했대요. 그러니 집은 잠자는 곳 정도의 존재였는데 대대적으로 인테리어를 한 후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고요. 벽에 못 박는 일도 부담스러워하던 당신이 드릴로 벽을 뚫고 선반을 달고 벽지에 포스터를 붙였어요. 꾸며진 방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의 공간에 대해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생활 방식을 만들었고 추구하는 가치가 생겼어요. 아무렇게 사는 대신 제한된 상황에서도 나은 삶을 고민해요. 가격이 더 나가더라도 당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고 물건을 사요. 당신의 삶에 갖는 만족감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요.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고 하루를 버티느라 힘겹기보다 당신에게 가장 아깝지 않은 것들과 만족스러운 오늘을 바라고 있어요.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20대를 만족했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아쉬운 순간들은 있어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할 수 있나 봐요. 이미 지난 일은 미련을 가져도 소용없다는 말도 덧붙이면서요. 당신의 30대는 어떨까 상상했어요. 크게 다르지 않아도 또 무엇인가에 영향을 받아 변하겠지요.


누군가 인생은 9회 말 2 아웃부터라고 했대요. 지고 있는 인생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요. 엄청난 역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대요.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그 정도의 큰 반전은 일어나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요? 매일을 9회 말 2 아웃처럼 치열하게 살면 힘들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이가 9회 말 2 아웃처럼 살겠다면 말릴 수 없지만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겨둔 채 평생 긴장감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는 건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연습부터 수 없이 휘둘렀을 야구방망이와 굳은살 박히도록 잡았을 야구공이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로 정해지니 약간 분하네요. 이기고 지든 상관없이요.

 

그래서 당신의 인생은 매년 새로운 시즌이면 좋겠어요. 오늘 경기는 져도 내일 경기는 이길 수 있는 하루이길 바라요. 긴 슬럼프가 찾아와도 괜찮을 만큼 많은 경기가 있는 한 해는 어때요? 새로 시작하는 시즌에는 우승팀의 영광도 작년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팀의 아쉬움도 지워질 거예요. 당신의 다음 시즌은 평소보다 조금 더 특별해요. 왁자지껄 소란하고 전광판 속 숫자만 보던 20대가 끝나가요. 다가올 시즌엔 예전보다 경기장의 풍경과 찰나의 빛나는 순간들을 삼삼하게* 채울 수 있어요. (*삼삼하다: 잊히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또렷하다.)


당신에게 시작될 새로운 시즌에 경기장을 찾아갈래요. 제일 좋은 자리를 잡고 떡하니 서서 지켜볼 거예요. 승부와 상관없이 당신을 위해 응원가를 부르겠어요. 막대 풍선을 불어 큰 박수도 치려고요. 사소한 부상에 애달프고 행복을 목놓아 소리칠게요. 당신이 등장할 마지막 경기까지. 


당신의 열성팬, 제이드가


제이드가 여러분의 12월을 응원할게요!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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