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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15. 2019

당신은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합니까?

[에세이] 타인 앞에서 가면을 쓰는 당신의 인터뷰 : 열두 번째 편지

당신에게


휘영청 보름달은 커져가는데 마음엔 저 달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겼습니다. 오래 알던 이의 추악한 얼굴을 마주한 까닭입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불규칙하게 뜨거운 숨을 내뱉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립니다. 정지된 머릿속을 다시 움직여야 하는데 멋대로 뛰는 심장을 빼고는 모든 기관이 제 역할을 잊은 듯합니다. 작은 부분을 보고 좋은 사람이라 단정지은 자만이 원인일까요? 아니면, 그가 보여준 가면이 전부라고 판단한 순진함의 결과입니까? 이제 누구를 믿고 누구를 멀리해야 합니까?


믿음이 흔들립니다. 당연하게 넘기던 사람들의 표정이 낯설어집니다. 아침에 탄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는 그들은 어떤 얼굴입니까? 평범한 메시지를 주고받던 이들은 화면 밖에서 어떤 눈빛을 가졌습니까? 저기 서있는 자의 시선은 어디를 향합니까? 거울 속 스스로마저 이상합니다. 앞에 있는 이의 표정은 진심이라고 확신합니까?


장자는 꿈속에서 자신이 나비인지 인간인지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좋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장자의 가치를 이해하려면 멀었나 봅니다. 차라리 꿈이라도 나비가 되어 그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그에게 온기라는 꽃을 찾아 날갯짓하는 한 마리의 나비였습니다. 그가 촘촘히 만든 거미줄에 걸려 꼼짝할 수 없습니다. 아, 스스로도 모른 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 어리석은 자의 최후입니다. 보름달에 드러난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감정에 무딘 사람이라 말합니다. 슬픈 일에도 울지 않고 티 내지 않는 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알고 있습니다. 돌같이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한다고 여깁니다.


오히려 당신은 가끔씩 떠오르는 옛 모습을 그리워하며 초등학교 때 활발했던 기억을 꺼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즐겁기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럭저럭 비슷했던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점점 내성적인 아이가 됩니다. 낯선 사람을 의심 없이 믿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했던 당신은 하나 둘 늘어나는 상처에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았습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자리합니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때때로 큰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주변을 신경 쓰는지 모를 겁니다. 특히 당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크게 반응합니다. 기대한 일에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음과 동시에 남에게 바라던 반응이 주어질 때 자격지심을 갖습니다. 또한 당신은 자신을 숨기려 가면을 쓸 줄 압니다. 괜찮은 척도 자주 합니다. 솔직하게 싫지만 좋은 척을 하고 다툰 후 화가 풀리지 않아도 다 잊은 척을 합니다. 요동치는 감정을 가리고 표정을 지웁니다. 생각을 투명하게 드러내던 얼굴로 관계를 이어 나가기 힘들었던 당신은 여기 없습니다


나름대로 관계를 나누는 선도 생겼습니다. 아르바이트처럼 일과 관련된다면 당신의 속 이야기 대신 업무에 대한 내용만 언급합니다.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에겐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험담 같은 소모적인 이야기는 될 수 있는 한 누구에게도 하지 않습니다. 입에서 시작된 날갯짓이 어딘가 도착할 땐 태풍이라는 걸 당신은 아는 듯합니다.


가면을 써야 할 때면 당신은 서글퍼집니다. 더 이상 사람을 순수하게 좋아하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마음을 주지 않으니 이젠 사람으로 생긴 작은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인간에 대한 미움이 커지는 날엔 놀라기도 하고 이러다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닐지 착잡합니다. 사람이 낸 흠집으로 인해 하얀 밤에 붉은 초승달을 품게 된 영화 속 악당처럼 말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무감각하게 만들었습니까?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던 날에 외로움 때문입니까? 당신은 생소한 땅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인연이 아니어서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잘못한 일 없이 친구와 멀어졌습니다.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 당신은 오롯이 혼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어린 당신이 받았을 충격을 헤아려 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당신의 건강마저 앗아간 끔찍했던 악연 때문입니까? 함께 일하기를 제안한 동료가 문제였습니다. 과거에 당신이 받은 도움 때문에 감수했으나 3달 동안 겨우 60만 원을 받으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해야 하는 열악한 일자리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동료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업무를 당신에게 넘겼습니다. 기간이 끝나기를 바라며 버티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돈을 더 챙겨준다며 허울뿐인 약속을 하던 동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착한 척으로 뒤덮인 변명만 늘어놨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믿어야 했습니까?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극심한 불안으로 지하철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식은땀까지 흘렸었단 이야기에 글 쓰는 손이 에이는 듯합니다. 친구들의 연락을 무시한 적도 있지만, 걱정하는 그들을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만난 자리에 당신은 꽤 오랜 시간 눈물만 흘렸습니다. 잔인했던 사람 탓에 소중한 친구를 잃을 뻔했습니다.


믿음에 생긴 균열은 벌어지며 점차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괴로움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야 상처에 딱지가 덮였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딱딱한 껍질로 상처를 숨기고 스스로를 방어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사람에게 편안히 마음을 열던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또 아플 것을 알기에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항복을 외치던 하얀 날개가 수만 번의 날갯짓 끝에 알록달록 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당신이 흔들던 흰 천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당신만 달라진 건 아닐 겁니다. 한 사람은 고고하게 걸어가는 한 마리 고양이 같습니다. 나비라고 불러 관심을 얻으려는 계획을 가볍게 무시해 더 안달 나게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울고 있습니다. 온 마음을 가장 화려하게 불태우고 재만 남았습니다. 사랑이 자신의 전부라 믿었던 불쌍한 나비부인 같군요. 모두가 서로에게 데이고 다치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가면을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해결될 만큼 인간관계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이용하려고 접근하는 가식적인 사람들이 넘칩니다. 당신은 진심 없는 웃음에 같은 가면을 쓰고 지나치게 친한 척을 하는 사람은 먼저 의심합니다.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나중에 도움이 되거나 더 불편한 사이가 될까 걱정하며 참습니다. 티도 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주는 공허함에 허덕이는 입장으로 당신에게 현명한 해답을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이 악연을 용서해야 편해질지 원망이 나을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별 거 아니란 말도 거짓말 같아 속으로 삼킵니다. 사람에게 받은 괴로운 기억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 나아질 거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순간은 언제나 찾아옵니다.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시간이 흘러 같은 가치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어제 만난 듯 대화를 주고받는 기이한 인연이 있습니다. 나비를 만진 손이 눈을 비비면 눈이 먼다는 옛 말이 떠오릅니다. 나비처럼 새로운 사람에게 눈이 멀어 의외로 쉽게 마음을 여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림의 꽃은 달맞이꽃으로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 앞에선 아주 크게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픈 일이 생기면 차라리 시원하게 함께 펑펑 우는 건 어떠합니까? 당신이 지금 무슨 표정을 짓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한껏 올라간 입꼬리로 재잘거리길 소원합니다. 요새 당신의 삶이 낙이 되는 연인과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까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처럼 말입니다.


여전히 둥근달을 바라봅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을 잊고 더 많이 사랑하겠다는 말은 못 합니다. 텅 비었던 마음을 당신에게 보내는 바람으로 채웁니다. 마지막 사랑을 놓지 않는 것, 오늘은 딱 그만큼만 하려 합니다. 갓난아이처럼 팔을 위로 뻗고 순수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잠이 듭니다. 사랑이 기다리는 내일을 향해 나빌레라.


당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제이드가.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촛불만큼이라도 온기가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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