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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Jan 10. 2020

당신은 열정적인 사람인가요?

[에세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당신의 인터뷰 : 열네 번째 편지

당신에게


당신과의 첫 만남을 기대했어요. 잠들기 전 본 적도 없는 당신의 생김새를 그려봤어요. 날렵한 눈매에 갸름한 턱을 가졌을지, 동그란 눈에 어울리는 둥그렇고 큰 입으로 말할지, 안경은 썼는지, 어떤 옷을 입을지 혼자만의 수수께끼를 했어요. '평소 말투는 생각한 대로 재치 있으려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말고 예상과 전혀 다른 사람이 나와서 당황하면 어쩌지 걱정했어요. 바보같이 긴장해서 당신 앞에서 말을 더듬거나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피곤에 반쯤 감긴 눈으로 연신 침대 위를 뒤척거렸어요.


우리의 만남은 지난밤 했던 우려가 무색하게 아주 즐거웠어요. 당신은 웃는 모습이 잘 어울렸어요. 말투에선 자신감이 느껴졌고 생각만큼 언변이 능숙했어요. 눈동자는 열정적이고 순수한 모험가인데 얼굴에서는 큰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가 얼핏 스쳤어요. 그리고 일상에서 좋아하는 게 정말 많았어요. 탐스럽게 열린 과일나무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설렘에 취한 사람처럼 말이에요.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취미라고 할까요?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연주하고, 직접 노래를 만들고, 마술의 속임수를 연습하고, 묘기용 자전거를 타고, 캘리그래피를 해요. 하나만 찾기도 어려운 취미를 이렇게 많이 가질 수 있나요? 심지어 실력이 뛰어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믿기지 않았어요. 거짓말에 가까울 만큼 다양한 취미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해요. 당신이 하면 진짜 멋지겠대요. 멋있다는 세 글자로 설명하기엔 연습에 긴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알면서도 도전하는 당신이 놀라웠어요.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도전이 어려워져요. 지켜야 할 게 늘어나고 책임질 의무가 생겨요. 도전할 이유는 줄어들고 늘 해오던 것들의 익숙함에 만족해요. 틀리지 않았지만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어요. 그래서 당신이 더 멋있었어요. 세 글자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요.


당신이 말한 멋짐이 외형만은 아닐 거예요.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당신을 움직여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마주하는 기분은 상상을 초월한대요. 소중함, 고귀함, 자랑스러움. 세상의 멋진 단어를 전부 나열해도 부족한가 봐요. 매서운 태풍을 견딘 열매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요. 스스로 조금 더 성장하고 능력의 일부가 늘어나는 느낌이 당신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만들어요.


결과를 마주하기 위한 시간은 길고도 험했겠지요. 그런데 정작 당신은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공을 들일수록 맘에 드는 결과가 나온대요. 취미에 몰두하니 모르는 사이에 12시간을 훌쩍 넘긴 적도 있어요. 주변에서 미친 사람이라고 부를 만큼 그 순간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당신 내면의 열정만 따라가야 해요.


당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내려 손을 바라봤어요. 폴 세잔이 겹쳐져요. 패기 넘치게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던 화가의 독한 열정 때문이겠지요. 그거 아나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오랜 시간 사물을 관찰하고 그림에 물감을 계속 덧칠하느라 부패가 느리게 진행되는 딱딱한 사과를 선택했대요. 심지어 나중엔 밀랍으로 만든 모형 과일로 그렸어요. 당신도 취미에 빠지기 전에 모든 자료를 미리 조사하고 가장 적절한 도구를 준비해요. 끝없는 검색으로 이론에 완벽 해져야 직성이 풀려요. 마치 그 분야를 정복할 듯이요.


하나에 꽂히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어요. 7살 즈음 누나의 멋진 피아노 연주를 보고 어머니에게 보채 학원에 다니게 되었대요. 피아노 치는 모습이 멋지다는 어머니의 칭찬에 힘입어 즐겁게 배우던 도중 어려운 곡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어요. 정박자로 이루어진 기존의 곡들과 달리 양손이 엇박자로 구성된 라쿠카라차라는 멕시코 민요였다고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 되는 곡을 반복해서 연습했대요. 어린 마음에 화가 나서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해냈고 누구보다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었어요.


당신은 항상 활기차게 움직여야 해요. 노트북으로 포토샵을 만지작거리다가 심심해지면 엠프에 연결해서 기타를 쳐요. 하다못해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봐도 좋아하는 창작자의 썸네일과 제목을 분석해요. 스스로 말하길 가만히 있는 걸 참을 수 없대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의미가 없어요. 언제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려요.


그래서 당신에게 무기력은 아담과 이브의 사과예요.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고통을 겪게 되듯 당신은 점점 무기력해지는 걸 견딜 수 없어요. 더 이상 해야 할 이유를 잃었을 때 회의감이 찾아와요. 조금의 열정마저 바닥나 다음 단계로 벗어날 행동을 할 수 없어요. 그럴 때면 당신도 침대에 누워 멍하니 어두운 밤을 보내나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생각의 뱀이 당신의 머릿 속을 헤집고 다니나요?


특히 입시를 위한 고등학교 공부는 당신과 맞지 않았나봐요. 관심 없는 분야를 배워야 하고 외우는 공부법이 싫어도 억지로 암기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겠어요.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이 계속 공부해야 했어요. 왜 해야 할까 의문을 억누르며 무기력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네요.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틈틈이 했던 취미는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었어요. 공부와는 달리 하고 싶을 때만 할 수 있고 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엔 그 외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취미에도 조금씩 욕심이 생겨요. 다양한 취미를 살려서 더 커다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나요. 지금보다 한 단계 나아가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어디에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많고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어요. 대단한 결과물과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당신은 작아져요. 주변의 칭찬에 기분은 날아갈 듯 기쁘지만 스스로를 인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다음 단계를 위한 원동력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자꾸만 위축되고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마음대로 되지 않아 상실감을 느낄 수 있지만 작곡을 하며 잘 풀리지 않던 노래를 생각해봐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묵혀 두고 새로운 작업을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고요. 4년 동안 당신이 만든 250곡 중에 100곡 정도는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지금의 좌절도 지나갈 거예요. 열정과 노력이 계속 쌓이고 있으니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귀인이 찾아오겠지요. 속설이지만 운명처럼 눈 앞에 사과가 떨어져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뉴턴도 있잖아요.


앞으로 당신은 어떤 사과를 손에 쥐고 있을까요? 세잔이나 아담과 이브, 뉴턴이 아닌 새로운 사과일까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로고인 당신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는 건 어때요? 주변의 확실한 신뢰와 지지를 얻고 앞으로 보여줄 새로움이 기다려지는 사람이요. 지난밤처럼 오늘 밤도 당신에게 기대하고 싶어요. 많은 어른들이 꿈꿨으나 대부분이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고요. 현실적인 문제가 당신을 가로막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도 끝까지 새로운 일에 도전해주세요. 나이 들어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주세요.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불태우고 무엇도 중요치 않은 듯 몰입해주세요.


우리의 첫 만남은 기대보다 훨씬 멋졌어요. 바라건대 당신에게도 멋진 기억으로 남길 꿈꾸며 무거운 눈꺼풀을 감아봐요. 훗날 더 멋있어진 당신을 다시 만나길 내일 밤도 기대하고 기다릴게요.


당신이란 두글자를 담아

제이드가

2020년에 으쌰으쌰한 글로 여러분을 만나 기뻐요!


편지는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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