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행복한 삶이 어딨냐고 생각했어
[소설] 달을 타는 아이 : P.S 당신에게
by Jade in x Jun 27. 2019
여보. 연애할 때 당신 꼬시려고 손편지 쓴 이후로 이렇게 편지 쓰는 건 처음이네. 글 쓰는 게 직업인데 말이야. 그것도 가족들 사랑한다며 남들한테 보여주려고 편지는 많이 쓰면서 정작 가족한텐 안 써 버릇했구나. 쓰는 나나 보는 당신이나 낯간지러운 건 똑같을 테니까 일단 그냥 한 번 써볼게. 우리, 대화가 필요하니까.
참, 장인어른, 장모님은 잘 계시지? 나도 얼른 뵈러 가야 하는데 지금 찾아가면 감히 당신들 귀한 딸 울리고, 애들까지 데리고 친정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고 두들겨 맞을까봐 조금 겁난다. 조금? 아니, 엄청. 그래서 얼굴 보고 얘기할 자신이 없어서 비겁하게 편지를 쓰는 걸지도 몰라. 아마 그게 맞겠지.
어제 먹짱 아버님을 뵙고 먹짱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같이 촬영했어. 아마 내일 업로드될 거야. 다 얘기했어. 피터랑 먹짱은 같은 반 친구다, 근래 부쩍 친해져서 같이 다니다 보니까 밤늦게까지 놀러다닌 모양이다, 두 아이가, 아니, 우리 아이가 언제부터 밤마다 집을 나가서 야산을 돌아다녔는지는 모르겠다, 자기들 말로는 부모들 몰래 다이어트를 한다고 야밤에 등산을 했던 것이지, 절대 가출이 아니었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는데, 언제부턴지 모를 정도로 오랜 시간 아이들이 밤에 집을 나선 것도 모르고 잠이나 잔 주제에, 이제 와서 밤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아이 방이 비어있는 걸 발견해 놀라서 덜컥 실종신고부터 해버려 큰 논란이 일었다, 모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리 부모들 잘못이다, 평소 우리 가족들과 먹짱 가족들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심려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
인스타그램 글처럼 멋들어진 말로 변명하지도 않았고, 괜한 자존심이 상할까봐 내 잘못을 회피하지도 않았어. 이 편지에 적은 것보다는 더 부드럽고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고,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당신과 나, 우리 아이들이 서로에게 받은 상처가 더 크기에 감수할 각오도 하고 있어. 그 각오는 내가 하고 있으니까 당신은 아이들이랑 잠시만 친정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고 있어.
사실 난 말이야, 우리 가족이 너무 괜찮은 가족이라고 생각했어. 당신과 나만큼이나 다정하고 든든한 부모가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 아이들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총각 때는 내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고, 소위 말하는 SNS 스타가 됐을 때도 역시 내가 자랑스러워서 날 자랑하기 바빴어. 그러다 당신과 사랑하고, 결혼해서 우리 닮은 이쁜 애들도 낳았을 땐 이만큼 완벽한 삶이 없다고 생각했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뽐내려고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올리고 영상도 올리고 짧은 글도 올려서 팔로우 수도 늘고, 좋아요 수가 터질 듯이 올라가고, 수많은 협찬과 광고가 들어왔을 땐, 이것 봐,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넘쳐나잖아, 이보다 행복한 삶이 어딨냐고 생각했어.
아무리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을 마냥 사랑만 하지 않고, 우리 욕도 하고, 애들 욕도 하고, 심지어 당신과 나의 부모님 욕까지 서슴없이 해대도, 다 우리 같은 완벽한 가족을 시기질투하기 때문이니까. 피터보다 벨 사진의 좋아요 수가 더 많아서 피터 사진을 더 이상 찍지 않았을 때도, 잘 됐다, 사람들은 갓난아이 사진을 더 좋아하고, 피터는 곧 있으면 사춘기도 오고 예민할 테니 사진 찍는 거 싫어할 거라며 지레짐작만 했어. 피터는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 아들은 다 컸으니까, 이제 태어난 동생에게 훨씬 손이 많이 가는 걸 당연히 알고 이해해주겠거니 싶었어.
가족들을 향한 내 사랑이, 우리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그 안일한 생각 때문에 우리 아들은 그 위험한 밤에 산을 올랐고, 그 정상에서 산 아래 땅을 바라보며 떨어지고 싶단 생각을 했대. 자기가 사라져도 몰라주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부모의 사랑을,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어린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
실종신고를 한 날 아침에 피터와 먹짱을 찾았을 때, 피터가 울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을 때 당신과 나는 마냥 화만 냈잖아? 어린 놈이 겁도 없이, 어린 놈이 살면 얼마나 살아봐서 대체 뭘 안다고 가족들을 자기 적으로 만들어서 집을 나서느냐며 화를 냈었잖아. 그렇게 화를 냈을 때 우리 아이가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
배신감. 그래, 어린 놈이 뭘 알겠어, 다만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받지 못한 사랑을 졸라보지도 못하고, 어디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자기 혼자서만 끙끙 앓으면 되겠다고, 아무에게도 피해주지 않으려고 몰래 나갔다가 몰래 들어왔던 건데, 그런 자기 마음은 까맣게 몰라주는 부모에게 배신당해 상처 받은 그 표정이 나는 너무 아팠어. 말마따나 요즘 애들 사춘기도 일찍 와서 얼마나 예민한데. 그런 성숙한 아이들조차 아이들일 뿐인데,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건데.
어린 건 우리였어. 아무 것도 모른 것도, 다 아는 척 아이의 상처를 쉬쉬했던 것도 우리였고. 만약 먹짱이라도 피터 곁에 없었다면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리가 들어주지 못했던 피터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그 어둠 속에서 홀로 감내했을 상처를 함께 보듬어줘서 난 먹짱에게 너무 고마워. 사람들은 피터보고 순진한 친구 꼬드겨서 같이 가출했다고 욕하고, 가출하는 친구 말리지도 않고 같이 어울렸다고 먹짱을 욕하지만, 난 알아. 이제 알겠어.
우리 아이들은 가출한 게 아니라 그저 잠깐 밖에서 놀다 온 것뿐이라고. 아무 일도 없었던 지금까지 너무 다행이었으니, 이제 밤마다 위험하게 나가 놀지 않도록 우리가 아이들을 지켜줘야 해.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 싫은 건, 그 집에서 사랑받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줘야 해.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만큼 더 좋은, 나은 부모가 되도록 하자. 우리도 부모는 처음이니까 서투른 건 당연해. 그러니 이제 틀린 시험문제를 모아 오답노트를 만들 듯 우리 잘못 인정하고 아이들한테 더 잘하자.
기다릴게. 언제든 준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