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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Nov 17. 2022

무식, 용감, 무모_이런 내가 좋다.

나는 어린 시절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싫어해 무줄 놀이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잘 생긴 테니스 코치를 만날 마음에 레슨을 신청했지만, 테니스 공 줍기가 힘들어 레슨 첫날 그만뒀다. 그 뒤 중고등 시절 내내, 오래 매달리기 0초, 윗몸일으키기 10개, 100m 달리기 25초 등 체력장 하위 등급에 만족할 정도 ‘운동’에는 소질도 관심도 없었다.


꾸준히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내가 둘째 쌍둥이 출산 후, 세 아이 육아로 발병한 목 디스크와 오십견을 치료하고자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1년 동안 필라테스 레슨을 받았지만 매 수업이 첫날 같았고, 마치 녹음해 둔 것처럼 강사는 ‘회원님, 어깨에 힘 빼시고, 갈비뼈는 쪼이세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향상이 되지 않는 내 필라테스 실력에 화가 났고 잔소리 같은 강사의 멘트를 더 이상 참지 못해 1년이 좀 지날 때쯤 필라테스를 그만뒀다.


쌍둥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나는 낯가리는 성격 탓에 어떤 프로그램도 신청하지 않고 방에만 콕 박혀있었고 하도 심심한 나머지 그때 출간된 책 중 가장 인기 있고 두꺼운 책인 ‘1Q84’을 주문했다. 작가나 책 내용에 대해 사전 지식도 없었지만 있었다 한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정도로 정말 어려운 책이었다. 한글 읽기게 급급했던 1권이 끝날쯤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해 2권, 3권 모두 주문을 했고 완독을 한 뒤 이제 처음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너무 좋아졌다. 그 뒤 나는 꾸준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의 최애 작가가 되었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뜬금없이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무모한 아니 불가능한 꿈이 생겼다.


어릴 적 일기나 독후감 같은 글 쓰기 숙제를 제일 싫어했고 심지어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작가가 꿈이라니. 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쓰기’에 관련된 행위를 하고자 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텐데,  난 ‘쓰기’는 뒷전이고 무작정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과 행동을 따라 하고 싶었다. 왠지 이렇게 하면 하루키처럼 글을 잘 쓸 것 같다는, 세상의 이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무척이나 "나"다운 생각이다. 그의 루틴과 행동을 파악하다 마라톤을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따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참 무식하고 용감하고 무모하다.


그 엉뚱한 결심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참가했던 보스턴 마라톤 출전을 목표로 달리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100m 달리기 25초, 1500m 오래 달리기 기권의 소유자인 내가 보스턴 마라톤이라니. 보스턴 마라톤 출전 결심을 세우고 검색해보니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하려면 대회 직전 2년 동안 공인 대회에서 3시간 이내의 기록 보유한 완주자만 가능하다고 한다. 검색 후 바로 보스턴 마라톤 출전은 포기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계속 뛰는 사람이 되어야 글을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2020년 3월 어느 날 새벽, 이날이다 싶어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내 사전에는 사전 조사라는 단어는 없다는 듯이 운동복과 운동화 그리고 나이키 러닝 앱 시작 버튼을 누르고 무작정 뛰었다. 얼마 안 뛴 것 같은데 숨이 차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수백 장의 벽돌 무게가 느껴질 만큼 다리가 무거웠다. 달리기를 멈추고 앱을 확인하니 시간 3분, 거리 400 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일주일을 매일 달렸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졌다. ‘운동?’, ‘작가?’ 이 나이에 뭘 해보겠다고 새벽마다 이 난리를 떠나 싶어 그만 달리기로 했다. 유명한 보험 광고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시작했던 나의 무모함에 대한 결과였다. 


다른 운동의 경우 그만두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달리기는 달랐다. 

달리기를 할 때는 ‘못 하겠다’, ‘재미없다’, ‘그냥 싫다’라는 생각만 했는데 막상 그만두니 달리기가 자꾸 생각났다. ‘다시 뛰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해보는 무모한 성격이라 한 번 더 달려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과 다르게 시작했다. 러닝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나보다 2년 먼저 달리기를 시작한 남편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사실 하나를 물으면 열 이상을 답하는 남편의 투 머치 토크는 나를 지치게 만들어 웬만하면 묻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알려 준 팁을 따라 하다 보니 그 어떤 영상보다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1km도 완주하지 못했던 나는 3km, 5km 조금씩 거리가 늘어났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 앞이 깜깜했던 내 시야에 주변 풍경이 들어왔다. 남들의 속도와 거리가 아닌 나만의 달리기 페이스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아직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못 달리지만 나의 무모함 덕분에 뛰어볼까 하는 용기가 생겼고 지금은 그 달리기를 통해 내 삶이 즐거워졌다. 만약 달리기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알았다면, 아무리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다 해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모했기에 많이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고 실패해도 많이 실망하지 않았고 포기해도 아깝지 않았다.


10km 대회에  2번 참가한 경력자라며 나는 또다시 무모하게 남편을 따라오는 10월! 하프코스 마라톤을 신청했다. 한번 도전해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10km 코스와 동일한 참가비를 내지만 하프코스가 증정 선물을 더 준다는 것도 신청 이유 중 하나였다. 10km의 두 배 이상 거리로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거리이지만 나의 무모함과 물욕 덕분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지금 나는 10월 하프코스 완주를 위해 알람을 설정했지만, 매일 아침 따뜻한 이불속에서 내적 갈등 중이다. 


달리기를 통해 나의 무모함이 도전하겠다는 용기를 낳고 그 용기가 내 삶을 즐겁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깨달음을 이제 글쓰기에 적용하려고 한다. 

이 무모한 도전이 어떻게 내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 줄지 기대가 된다.


10월에 참가한 생애 첫 하프코스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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