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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Sep 28. 2022

9월 26일,
그리움이 불안으로 번진다.



오전 6시 30분, 정신없이 아침 준비를 마치고 모두 잠든 집을 나선다.

매주 월요일 용인에서 구리 본사 출근을 위해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하늘을 맞는다. 이 긴 출근 시간은 미국에 계시는 친정엄마의 안부를 묻는 여유를 만들어 주고 무뚝뚝한 나를 효녀로 만들어준다. 오늘도 나는 효녀가 되보겠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바쁘신지 받지를 않으신다. 못 받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아쉽고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오전 10시 30분, 작은언니에게 ‘하늘색이 곱다’라는 문자와 함께 사진 한 장을 받았다. 타국에 사는 작은언니의  집 앞 풍경사진이다. 그 사진 속에는 야자수와 선인장이 들쑥날쑥 불규칙적으로 자라 있고 빨간색 물감을 찍은 붓에 물을 잔뜩 묻혀 하늘색 종이에 칠을 한 듯한 노을이 있었다. 언니의 사진을 보자마자 회사 주차장으로 나가 내 눈에 바로 보이는 하늘을 찍어 언니에게 답문자를 보냈다. 문득 나라는 다르지만 언니와 나는 같은 풍경 속에 있다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많이 서툴지만 ‘그리움’을 표현해본다.



오후 2시, 다시 여름이 온 것 같이 해가 쨍하게 뜨겁다. 아니 덥다. 

귀엔 에어 팟을 장착한 채 입은 계속 떠들고 손은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며 눈은 서류의 오타를 걸러낸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오후의 태양처럼 나는 칼퇴근을 목표로 내 안에 에너지를 모조리 불태웠다. 드디어 ‘오늘의 할 일’의 마지막 줄에 ‘v’ 쓰며, 작성한 모든 문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저장한 후 노트북 전원을 껐다. 책상 위 커피잔, 과자봉지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먼길 떠나기 전 필수 코스 ‘화장실’까지 다녀오면 퇴근 준비 완료다. 이제 큰 소리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는 기분 좋은 문장을 내뱉고 사무실 밖으로 나온다.

나는 업무 시간만큼은 이기적인 이성주의자가 된다. 내 일을 마치면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또한 나의 팀원에게도 계획한 일을 기간 내로 끝낸다면 조기퇴근을 하건 야근을 하건 나는 어떤 간섭하지 않는다. 



오후 6시 25분, 퇴근길, 빨간 신호등에 멈춰 차창 밖 노을 바라본다.

붉은 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둠이 가라앉은 노을이다. 왠지 업무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진 조금은 지친 나와 닮은 것 같은 노을이다. 운전하는 동안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니, 일 할 때 이성적이었던 나는 지는 해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겁 많고 걱정이 많아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작정 엄마, 아빠 그리고 두 언니들에게 기대는 어리광쟁이 막내, 진짜 내 모습이 보였다.


새벽에 듣지 못한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그리워지고 오전에 언니가 보내준 사진 속 나의 가족이 살고 있는 그 공간도 그리워진다. 낮 동안 붉은 태양 뒤에 숨어있다 어두운 하늘 틈 사이로 나타난 진짜 나는 이 그리움의 감정을 마치 가족을 잃어버린 미아의 두려운 감정으로 해석한다. 그 두려운 감정은 까맣게 어두워진 하늘처럼 아빠와 엄마가 내 눈에 영영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으로 떠나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으로 번져버린다. 

수명이 늘어 100세까지 살 수 있다지만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 언제가 죽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멀리 사시는 부모님에 대한 나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간다. 


그 불안감은 운전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더 불안하게 헝클어놓는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한국에 모든 일을 던져버리고 미국으로 떠날 수 있을까?’

‘한국에 사는 내가 갑작스러운 슬픈 소식을 듣는다면 미국까지 어떻게 빨리 갈 수 있을까?’

‘내가 미국에 도착할 땐, 다 끝나버리진 않을까?’

‘다 사라져 버려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 어떡하지?’

‘엄마, 아빠 없이 나의 버팀목 없이,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왜 나만 여기에 두고 다 멀리 떠나가 버린 건가?’

‘그냥 다들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는 없는 건가?’


집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꼬리에 꼬리는 무는 불안은 계속됐다.

그러다 독서 클럽장 3기 수업시간에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작가는 먼저 불안의 원인 이야기하고 그 원인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다섯 가지 불안의 원인 중 나의 원인은 언제 부모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또 언제 이상한 바이러스가 발생해 멀리 사는 가족을 못 만날 것 같다는 ‘불확실성’, 부모가 죽은 후 나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 이런 ‘불확실성’이다. 책에서 나의 불안에 대한 원인은 찾았지만 작가가 제시한 다섯 가지 해법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안) 중 내게 맞는 방법은 없었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의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면서, 내가 가진 불확실성 한 불안의 시작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생각보다 단순하게 해결된다. 나의 불안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했으니, 이 그리움을 잘 해결하면 동시에 불안도 해결될 것 같았다. 그렇게 찾은 나의 불안에 대한 해법은 ‘있을 때 잘 하자!’이다. 떠난 뒤 후회 말고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부모의 죽음에 대한 불안이 완전하게 사라지진 않겠지만 조금 줄어들 것이다..


이젠 가족을 잃을까 걱정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어리광쟁이 막내가 아닌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들을 활짝 웃게 해 주는 재간둥이 막내가 되어 불안의 원인이 되는 그리움이 아니라 행복한 추억이 가득 찬 그리움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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