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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Sep 25. 2019

여름이 머물렀다 간 자리

#마르셀의 여름 #샤인머스킷

언제나 그랬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건 나의 맨살, 하루 종일 말없이 외피가 되어주는 겉가죽이었다. 찬 바람에 닭살이 돋은 순간, 당기는 피부에 주름 한 가닥이 잡히는 순간 깨달았다.   

 

     가을이구나.    


 공기 중의 낮아진 습도를 먼저 알아챈 것도 손이었다. 땀으로 축축했던 손바닥이 뽀송하게 말라 거친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을 비비며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지난겨울 쓰고 남은 핸드크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은품과 선물로 받은 것들이 쌓여 핸드크림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요무렵 사용하기 좋은 가벼운 크림을 집었다. 뚜껑을 열자 라벤더를 글리세린에 용해한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인공향으로 범벅된 손가락이 미끌거리는 느낌이 싫어 쓱쓱 비벼 흡수시키는데 방에서 놀던 아들이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엄마! 참외 깎아주세요!


 십 초만 더 일찍 말하지. 필요한 게 있을 때면 존댓말을 쓰는 아이가 ‘요’까지 붙여가며 달라고 하는 걸 못 이기고 수돗물을 틀었다. 겉돌던 크림이 미련 없이 씻겨나갔다. 라벤더의 잔향이 남은 손으로 냉장고의 참외를 꺼내고 내친김에 샤인 머스킷까지 들어냈다. 처음 입에 넣었던 순간, ‘웰치스 같다’며 감탄했던 청포도다. 자꾸 손이 가는 걸 가격대를 생각하며 참아야 하는 맛이었다. 올여름의 마지막이 될 머스킷을 세 알 정도 먹은 후, 나머지를 아들에게 넘겼다.    

 창문을 열자 수돗물처럼 찬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얼마 전만 해도 팔뚝이 탈 것처럼 뜨거웠는데. 일주일 만에 세상이 뒤바뀌어 버렸다. 구글 위성지도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지형도는 처음에 찍어놨던 모습 그대로일 테지만. 실제로는 바뀌는 공기와 함께 그 밖의 많은 것들도 따라 물갈이를 하는 중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여름내 묵혀 두었던 긴팔로 갈아입었고, 길가의 나뭇잎은 예전보다 세차게 흔들린다. 더위가 물러간 자리에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종종 거리며 발짓을 하다 다른 개를 만나면 왕왕 짖어댄다.    


 여름의 부재는 새로운 변화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같이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몰랐는데 떠나고 나면 빈자리를 안다는 뜻이다. 가을의 길목에서 여름을 생각하는 내 심정이 그랬다. 곁에 있을 때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게 싫어서 어서 갔으면 싶었는데 막상 없다고 생각하자 아쉬움이 남았다. 미웠던 사람도 헤어질 때가 되면 묘하게 아쉬운 것처럼 어느새 미운 정이 들어 버린 걸까.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들었던 날씨에 이상하게 미련이 남았다.    


 지난여름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미련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었다. 숨 쉬자마자 입안으로 밀려드는 용암 같은 공기와 땀으로 젖은 겨드랑이에서 풍기던 퀴퀴한 냄새, 데일 것처럼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최대한 생생하게 끄집어냈다.


 

안 좋은 기억이 끌려 나오자 의도치 않게, 좋은 기억도 덩달아 떠오르고 말았다.   


 달달한 즙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과 우유를 얼린 눈꽃빙수… 포실포실하게 익은 감자와 찐 옥수수의 맛. 경쾌한 물소리를 배경으로 소설을 읽던 나른하고 태평한 정오의 독서… 스릴러 영화를 보기 위해 들어선 영화관의 서늘하고 낮은 온도와 암전 된 어둠에 탄산과 얼음을 넣으면 완성되던 코카콜라. 해가 길어 24시간짜리 하루에 플러스 얼마가 추가된 것 같던 여유로운 오후… 두꺼운 겨울 옷에 비해 저렴하고 화창한 여름옷들.     


 미련을 떨치려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 도리어 그리움이 짙어지고 말았다. 여름을 견디려고 동원했던 대책 마련은 지나고 나니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영화 <마르셀의 여름>이라도 보면서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았다.


 영화 <마르셀의 여름>은 여름휴가를 맞은 마르셀의 가족들이 시골에 있는 별장을 빌려 휴가를 보내는, 지극히 평범하고 가족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극적인 내러티브가 두드러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는커녕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화면을 채우는 아름다운 여름날의 풍경과 더불어 사는 가족들의 단란함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밤. 야외 테이블에 모인 가족들이 등불을 켜고 와인과 빵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나 빵에 잼을 바르며 아들에게 어떤 잼을 발라줄까 묻는 어머니의 미소는 별다른 사건 없이도 시선을 사로잡는 스토리텔링이 되어 준다.     



 <마르셀의 여름>을 뒤이은 후속작 <마르셀의 추억>에서도 마르셀의 가족들은 시골 별장으로 향한다. 전편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분명 슬픈 비극이지만 감독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로 만드는 대신 지난날의 추억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필름에 박제하는 쪽을 택했다. 영화는 침대 위에서 병들어가는 어머니의 병색에 주목하는 대신, 온 가족이 함께 바스켓을 들고 별장으로 떠나는 들뜬 표정과 일상을 구성하는 온갖 소박한 사건을 유쾌하고 잔잔하게 그리는데 공을 들였다. <마르셀의 추억>은 <마르셀의 여름>과 마찬가지의 따스한 온도로 우리에게 인생에 한 번뿐인 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건전하지만 건전함 그 이상의 매력이 있는, 가족영화 이상의 인생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자 마음이 조금 정리되었다.    


 이렇게까지 그리운 걸 보니 지난 계절, 나는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좋은 징조라고 여기며 허전함을 달랬다. 허전한 마음에 찬 바람이 들어오는 건 조금 낯선 감각이지만. 사계절에 적응해나간 지난날의 경험을 살려 다가오는 가을에 최선을 다해 물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그녀의 부재를 견딜 수 있었던 마르셀처럼. 벽에 걸린 달력은 모르는, 맨살로 바람을 맞는 우리들만이 아는 감각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먼저, 미루고 미뤄 두었던 옷 정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추억을 접어두는 일에도 노동이 필요한 법이니. 리빙박스를 꺼내 가을 옷을 꺼내고 여름옷을 넣어야 한다. 짙은 주름이 진 긴팔을 다리다 보면 마음에 접혀 있던 불필요한 주름도 펴질지 모를 일이다. 지난 계절의 흔적은 리빙박스에 봉쇄될 테지만 여름이 머물렀다 간 자리는 그대로 남아 또 다른 계절의 터전이 되어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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