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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내 인생의 챕터 2

by 재비


20대 중반까지 제주도도 한번 가보지 못한 내가 갑자기 일본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솔직히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비행기 한 번을 타본 적도 없고, 기껏 해봐야 집에서 제일 멀리 간 게 서울일 정도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부산을 크게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가 왜 일본에 가기로 결심했을까. 어쩌면 대학교 때 읽은 책이 생각나서일까? 디자인에 관한 책이었는데, 저자가 일본 사람이었다. 막연하게 '일본에는 이런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멋진 결과물을 내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일본에 있는 디저트가 맛있다.', ' 일본에는 편의점 빵도 맛있다.'라는 말을 어렴풋이 들어왔기도 했고, 내가 일했던 제과점에서는 공장장님이 보시던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중에 일본어로 된 책도 몇 개 있었다. 그렇게 은연중에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일본에 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건 두 가지였다. '비자' 그리고 '일본어' 솔직히 말하면 '돈'은 안중에 없었다. 그 두 개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심의 불씨는 큰 화롯불이 돼서 순식간에 추진력을 발휘하게 됐다. 일단 지금 일하는 제과점에서 일을 하면서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 시기적으로 좋지가 않아서인지 공장장님도 그만두기보다는 오전만 일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먼저 물어보고 싶었지만, 들어주실리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장장님이 말씀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서 새벽에 출근해서 점심시간 전까지만 일을 하고, 급여는 절반만 받고, 당분간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만 있기로 했다.



바로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다. 레벨테스트를 할 것도 없는 게 히라가나만 겨우 알고 있을 뿐인 실력이었는데, 가타카나는 알지도 못했고, 히라가나는 순서대로 적어야지만 적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왕초보반을 듣게 됐고, 메이저 브랜드 학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이대도 다양하고, 수강생도 많지 않았다. 한 반에 5명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학생들이 자주 빠져서 어느 날은 선생님과 단둘이 수업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학원을 가서 어학을 배우는 생활을 지속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최대한 많은 일을 해주고 와야 내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일하는 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내 입장에서는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서 일해야 했고, 다음날 준비까지 마치고 오후에도 딱 반죽만 치면 되도록 계량을 다 해두고 퇴근했다.



20대 때는 자유롭게 세계를 다니며 일도 하고, 다른 곳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취지의 비자가 있다. 바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비자는 1년짜리로, 우리나라에서 신청을 하고, 각 나라의 대사관에서 심사를 하고 발급을 해준다. 조건은 다르지만, 일도 할 수 있고, 어학원도 다닐 수 있고, 이 비자만 발급받으면 그 나라에 1년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다. 평일에 학원을 다니면서 비자를 신청해야 했다. '워홀협회'라는 곳이 있었는데 유학원 같은 곳이었다. 아마도 현지에 있는 어학원이랑 연계를 맺어서 수수료를 받고 진행하는 곳인 거 같았는데, 그때당시에는 무료로 비자신청하는 걸 도와주었다. 나도 어차피 현지에 있는 어학원에 짧게 다닐 생각이어서, 일단은 6개월 코스를 신청했다. 아주 저렴한 곳은 아니지만, 비교적 저렴한 곳으로 선택했다. 뭐 언어를 배우는 곳은 다 비슷하니까, 크게 걱정은 안 했다. 100만 원 후반대로 결제를 했고, 비자를 준비했다. 잘 준비했고, 한 번만에 합격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가장 부족한 언어만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일본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설레었다. 예전에 내 사수언니가 다녔던 '동경제과학교'를 찾아봤다. 현지에서 제과 학교를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홈페이지에 찾아본 순간 멈칫했다. 등록금을 보고 많이 놀랐기 때문이다. 제과나 제빵 과를 선택하면 본과 2년인데, 등록금은 7,000만 원 정도였고, 거기서 집구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면 2년 동안 못해도 1억은 들것이다. 일하면서 2,000만 원 정도 되는 대학교 학자금 대출도 겨우겨우 다 갚았는데, 그 7,000만 원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이래서 집에 돈 많은 애들이 유학 간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집에 돈이 없다면 이런 유학은 꿈도 못 꿀 테니까. 돈은 없는데 제과학교를 너무 다니고 싶었던 사람은 일단 대출받아서 등록금 넣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를 다녔다는 글도 봤다. 정말 밤낮없이 일해서 다녔다고 한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 시급은 4,500~5,000원 정도였는데 도쿄 시급은 900엔에서 1,000엔이라고 했다. 거기에서 일을 많이 하면 좋긴 하지만, 일본인들은 아르바이트를 오랜 시간 써주지도 않고, 매일 써주는 곳도 드물다고 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여러 군데 뛰어야지 그 돈을 겨우 마련할 수 있다는 건데 그것도 일본어를 잘해야 가능한 거라서 일단 그 생각은 접어 두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기본문법은 어느 정도 익히고 나니, 회화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한마디 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맞는 단어들과 문법들이 얽히면서 뭐가 맞는지 조립한 후 말을 해야 하니까 말도 잘 안 나오고 어려웠다. 그리고 언어를 배우면서 내가 이렇게 소극적인 사람인지도 처음 느끼게 되었다. 그냥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쉽게 말을 할 수 없어서 회화수업을 더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생각 들었는데, 다니던 학원이 영세한 탓에 회화수업 중에 점심에 하는 수업이 인원이 없어 폐강이 됐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학원을 알아보던 중 서면에 있는 유명한 언어학원 'P'에 방문해서 등록을 하게 됐다. 시간이 조금 있어서 문법과 회화 수업을 같이 듣기로 했다 하루에 총 2강을 신청했고, 기존에 듣던 가격보다 더 비쌌지만, 나만 노력하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어 회화를 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새로 옮긴 학원에서의 첫 수업이 기다려졌다.



기대하던 회화 수업 첫날 나이가 지긋하고 인자한 얼굴을 한 여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첫날이니까 각자 소개로 진행해 볼까요?'

거기 있는 수강생은 약 10명 정도였는데, 다들 회화는 처음이라 더듬더듬 말은 했지만 정말 기초적인 용어를 얘기하면서 1,2분 안에 스피치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수강생들에게 일본에 가는 이유를 한 명 한 명에게 물었다. 그리고 본인이 일본에 가서 있었던 얘기를 해주면서 첫 강의시간이 끝났다. '뭐지? 이거 맞는 건가?'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이거는 수업도 아니고, 스피킹 연습도 아니고, 뭐랄까... 그냥 기분이 살짝 이상했지만, 첫날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그 선생님은 결국에 수업시간의 1/3 혹은 심한 날은 1/2 이상을 개인적인 일본에서의 경험담 얘기로 허비했다. 얘기 듣는 건 즐거웠지만, 배워가는 건 관용구 1,2개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정식으로 수업해 주는 게 아니라,

'일본에서는요 아르바이트를 바이토라고 하거든요?'

약간 이런 식이었다. 유명한 학원이라고 해서 등록했더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그전에 있었던 학원과 너무 비교됐고, 내가 지불한 금액도 너무 아까웠다. 반을 바꾸려고 하니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결국에는 한 달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에 비해 문법수업은 나름 괜찮았지만,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는 보지 못했다. 그때 일본어에 대한 열정의 불꽃이 약간 사그라들었다.



내가 나중에 제과점을 하게 되면 어떤 경력을 더 쌓으면 좋을까 고민하다 커피를 배워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과점에 계속 있는 것보다, 짧게라도 다른 경력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러 카페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카페라고 하면 개인이 하는 카페는 거의 없었고, 유명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만 있던 때였다. 몇 번 면접을 보고 퇴짜를 맞으면서 열심히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벨기에 와플을 판매하는 카페 프랜차이즈 회사에 지원하게 됐는데, 벨기에와플은 빵반죽으로 만드는 제품이라 사장님이 나를 좋게 보셔서 입사를 결정하게 됐다. 더 좋은 건 서울에서 1주일간 커피랑 와플을 만들며 본사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였고, 그 교육비와 숙박, 식사비는 그 사장님이 다 지원해 준다는 거였다. 일본 가기 전에 내가 원했던 대로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처음 빵을 배우던 제과점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그 자리 한 개의 매장에서 15년간 장사해 오셨던 곳이었는데, 내가 있는 동안 직영점 매장이 2개가 더 생겼다. 그리고 내가 있던 본점에 사람이 채용이 됐기도 했고, 나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공장장님께 얘기해서 퇴사하게 됐다. 퇴사가 결정됐고, 얼마 안 있어 회식자리가 있어서 참석했는데, 사장님은 술에 취해 외치셨다.


'야! 이 배신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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