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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이열치열 / 이한치한

by 재비


더위가 시작되는 6월부터 오븐파트에 들어가기로 한 나는 더위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새로 배워갈 것들에 대해서 걱정이 좀 됐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못'하는 걸 싫어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못'하고 어버버 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지만 그냥 내가 느끼기에 내가 능숙하지 못한 느낌을 받는 게 싫다. 그래서 처음 파트에 들어가면 당연히 적응 기간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빨리 단축시키고 싶었다.



오븐파트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닥치는 대로 일하게 되는 파트. 작업대에서 빵을 성형(*빵의 모양을 만드는 것을 성형이라고 함)해서 발효실에 넣으면 발효가 어느 정도 됐는지 확인하면서 그에 맞게 위에 계란물을 발라준다던지, 오븐에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발효가 과하지 않게 미리 빼둔다던지 하는 일들을 한다. 빵이 발효되는 걸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반죽 파트에서는 오전에 빵 말고 다른 카스텔라 종류라던지 틀에 종이를 깔거나 준비해야 될 일들을 던져주면 그거에 맞게 준비하고 구워내야 한다. 오전에 할당량이 있기 때문에 오전일을 오전에 끝내지 못하면 나중에 오후에 일이 밀린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븐 안에 들어간 빵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2~30초 만에 제품 색이 진하게 날 수도 있어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오븐은 철판 3장이 들어가는 칸이 3개가 있는 데크오븐(난방오븐)과 바람으로 말려서 굽는 10매짜리 컨벡션 오븐이 있다. 그 안에 빵이 다 들어가 있고, 또 다른 빵도 발효실 가득 준비 돼있다. 나머지 토핑물을 올리거나, 발효점을 보는 것, 색을 균일하게 내는 것, 오븐에서 나온 제품을 식힘망에 옮기는 것, 더러워진 철판을 긁어내고 닦는 것(철판이 쌓이면 나중에 성형할 때 철판이 부족해진다.) 반죽파트에서 오는 제품을 구워내기 위해 준비하고, 굽는 것. 을 동시해 해야 한다. 오븐 파트는 멀티태스킹이 생명인 파트다. 오븐 보는 사람은 한 명인데, 빵을 성형하고, 반죽을 만드는 사람은 3~4명이다. 그래서 일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없고, 컨트롤할 수없지만, 시간분배는 컨트롤할 수 있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제품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게 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고, 완성되어 가는 제품을 직접 보는 것도 좋았다. 다만 반죽상태나, 성형이 예쁘지 않을 때는 제품도 엉망으로 나올 때가 많아서 속상한 날도 많았다. 작업대에 사람이 부족해서 성형속도가 늦으면 전반적으로 일이 밀리는 경우도 있고, 식사시간까지 빵을 구워야 하는 일도 있어서, 오븐 파트에 있는 사람은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하기 힘들 때도 많다. 오븐 안에 제품이 들어가 있을 때는 자리를 뜰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 오븐을 봐줘야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날이 점점 더워질수록 땀도 많이 흘리고 물을 엄청나게 마셔댔다. 4리터짜리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 3~4번은 마셨으니 하루에 10~12리터는 마신 듯하다. 피부는 좋아졌다. 엄청나게 더웠지만, 더워서 짜증 난 적은 없었다. 그냥 찜질방이거니... 하면서 촌각을 다투고 쪼으는(?) 맛이 있는 오븐파트를 즐겼다. 한 달 정도 되니 매우 능숙해진 모습에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고 뿌듯함에 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오전이 일이 많아서 재밌고, 오후로 갈수록 체력도 떨어지고 루즈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오븐파트가 좋았다. 어느 날은 칭찬을 많이 아끼시는 사장님이 빵색도 예쁘고 발효점도 잘 보고 잘 구웠다고 한마디 해주셨는데 정말 뛸 듯이 기뻤다.



3개월이 넘어가니 여유가 생겼다. 정신없이 적응하는 시간도 지나고, 뭔가 준비도 다 됐는데 2~3차로 구울빵은 아직 발효가 안 됐고, 반죽파트도 아침빵반죽 치고 있어서 중간에 비는 시간이 생길 때도 있었다. 같이 케이크파트를 하던 언니가 '오븐 보면서 여유로운 사람 처음 본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 정도로 3개월 만에 완벽 적응을 해버린 거다. 적응을 하니 파트의 끝판 왕 '반죽 파트'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제 슬슬 공장장님께 파트 돌려달라고 말해봐야지 했는데, 때마침 반죽파트하는 사람이 퇴사하게 되어서 바로 공장장님께 얘기했다.

'공장장님! 반죽파트에 넣어주세요! 사람 나가니까 반죽칠 사람 필요하잖아요!'

어이없어하셨지만 다행히도 오븐파트를 충실하게 이행해 온 모습이 플러스가 되었는지 생각보다 쉽게 파트를 돌 수 있었다. 기존에 대타로 들어가서 반죽하던 사람이 메인으로 들어가면서 반죽파트를 나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 사람이 쉴 때 나는 혼자 반죽파트를 책임져야 했다. 새로운 걸 배우고, 내가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파트를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도파민이 또 마구 분비됐다.



여름에 오븐파트, 이제 곧 겨울인데 반죽파트. 오븐은 여름에 더워서 힘든데, 겨울에 반죽파트는 왜 힘들까?

일단 그 제과점은 반죽자리가 바깥으로 나가는 뒷문을 열면 바로였다. 그래서 겨울에는 찬바람이 엄청나게 들어왔다. 게다가 반죽파트는 계란을 깨거나, 계량을 할 때 물이나 버터등을 만지는 경우가 많아서 손이 바로 거칠어지거나 심하면 엄청나게 텄다. 카스텔라를 만들 때는 팔꿈치까지 넣어서 직접 가루를 섞어줘야 하기 때문에 손등과 전완근 쪽에 계란독이 오르고, 피부가 갈라져서 심지어 피까지 났다. 피나는 팔로 제품을 만들 수 없어서 (사실 엄청 따갑기도 했다.) 랩을 감고 반죽을 섞을 때도 있었다. 그게 2~3개월 갔다. 그리고 대망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있다. 기존 케이크 시트를(*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카스텔라를 시트라고 한다.) 만드는 것보다 10배씩 며칠을 반죽 쳐야 수량을 맞출 수 있어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해야 했다. 거품은 기계가 내주지만, 수십 판의 계란을 깨고, 계량하고, 또 중탕시켜 계란과 설탕을 녹여서 기계에 넣어줘야 안정적으로 제품이 나오는 배합이라 손이 많이 갔다. 날씨가 많이 추우면 거품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밑에 따뜻한 물을 끓이며 믹싱볼 밑에 댈 수 있게 작은 이동식 가스선이 있었는데, 급하게 하다가 그걸 쏟아서 발등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믹싱볼은 그 무게가 10kg가 넘는 것도 있는데 그 믹싱볼을 하루에 들었다, 끼웠다, 내렸다, 씻었다 몇 번을 반복하게 되면 몸이 엄청 고되다.



오전에는 빵반죽을 25~30개 정도 친다. 전날에 일부 계량해 놓은 가루와 당일 아침에 계량하는 액체 종류는 3개의 믹서기에 각각 돌려준다. 식빵반죽은 무게도 많이 나가기 때문에 힘들긴 한데, 반죽느낌도 좋고 생반죽 냄새도 좋아서 카스텔라 같은 시트류 보다는 빵반죽을 치는 게 좀 더 재밌었다. 그곳에서는 스펀지 도우법이라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었는데, 미리 사전반죽을 쳐놓고 다음날 그 반죽을 포함해서 반죽을 치는 거다. 그래서 스펀지 반죽도 쳐야 했는데 스펀지 반죽은 엄청나게 되직하고, 양도 많아서 그거 옮기다가 허리 망가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견디기 위해 쉬는 동안 운동을 배웠지.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자세를 잘 잡고 일을 잘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빵반죽이 끝나면, 사장님이나 공장장님이 나중에 작업할 페스츄리를 반죽하고, 큰 덩어리를 나눠서 냉장고 숙성해 둔다. 그다음 바로 오전에 다른 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보통은 케이크시트를 칠 때도 있고, 다른 머핀이나 제과종류를 작업하는데 5가지 정도 하면 오전시간이 다가서 반죽을 만들어 오븐에 보내고 난다음에는 찹쌀도넛이나 생도넛 같은 앙금 싸는 종류를 만들어서 두기도 하고, 찜케이크이라고 술빵같이 찜솥에 쪄서 동그랗게 나온 제품을 피자처럼 잘라서 만드는 것도 만들기도 한다. 사실 오전 중에 반죽파트에서 하는 일은 엄청 많다. 오후에는 주로 치즈케이크나, 롤케이크, 파운드 같은 선물용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반죽파트는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나랑 잘 맞았다. 시간을 내가 분배해서 쓸 수 있고, 반죽은 제품의 가장 첫 단계니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많았다. 그리고 틈틈이 다음 날 거 준비도 해두고, 시간을 잘 분배하다 보니 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오븐파트에 익숙해지지 않은 후배도 좀 더 도와줄 수도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연말이 지나고, 한 해가 갔다. 반죽파트에 재미도 느끼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을 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기서 모든 파트는 다 돌았는데, 나는 이제 뭘 더 배워야 하지?

일을 하는 건 너무 재미있지만, 여기서 모든 파트를 다 돌고 일도 익숙해지고, 제품도 자신 있게 잘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뭔가 부족했다. 뭔가 허전했다. 옛날부터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생각이 갑자기 뇌리에 스쳤다. 아니 스쳐 지나가다 박혔다.



'일본에 가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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